축제의 감각을 일깨운 인천 15분 연극제 / 최엄윤
- 한국연구원

- 10월 30일
- 4분 분량
인천 배다리 마을에서의 15분 연극제
지난 8월 24일 인천 배다리 마을에서 진행된 15분 연극제를 찾았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15분 연극제는 8월 23일과 24일 이틀간 인천문화양조장 1층, 창영당, 문화상점 동성한의원, 유유기지 동구청년21 작은 공연장 등 4개 장소에서 9개 작품을 선보였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도원역에 내려 창영당까지 가는 길에 부모님과 딸로 보이는 어느 가족이 넓은 자리를 펼쳐 빨간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서울을 벗어났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여느 도시와 다름없는 대도시 인천에서 배다리는 그 이름만으로 특별한 정서를 자아낸다. 재개발에 맞서 주민들이 지켜낸 동네, 옛 양조장과 헌책방 등 원도심 공동체와 활동가들이 고공으로만 향해가는 세상에서 낮고 너르고 단단하게 신념과 가치를 뿌리내리는 곳.

15분 연극제에서는 창영당의 <목말라>(극단 우주선)와 <김박사와 철인 28호>(보통현상), 인천문화양조장의 <나시와 락교>(극단 바바서커스), <이렇게 덥지만, 이렇게 더운데>(극단 해인), <이 날 여기 비가 내린 건 두 사람만이 안다>(양현심 작, 신티 연출), 총 다섯 편의 공연을 관람했다. 창영당은 작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전 예약 받은 관객 40명이 옹기종기 앉고 나서야 극단 우주선의 인형극 <목말라>가 시작되었다. 무인도 표류기를 다룬 이 인형극은 재생용지를 겹쳐 만든 소박한 관절 인형이 세 조종사에 의해 정교하고 생동감 있게 움직였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갈매기, 고래, 그리고 수어 통역사와의 호흡까지 20여 분 동안 관객의 시선을 홀딱 빼앗았다. 무대는 테이블 하나, 겨우 두세 걸음 정도로 객석과 짧은 거리, 단순하면서도 풍부한 이야기와 표현, 공연팀의 호흡과 리듬은 물론 관객의 몰입이 만들어 내는 공기는 공동체의 즐거움을 상기시켰다. <목말라>가 끝나고 보통현상의 <김박사와 철인 28호> 배우가 관객들 사이로 등장했다. “피그말리온 신화를 재해석한 신개념 SF 음악극,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밥이 되는 전기밥솥 전격등장!”이라는 거창하면서도 농담 같은 공연 소개가 호기심을 자아냈다. 철인 28호를 만든 천재과학자 김박사를 찾아 관객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도착한 과학 전문 기자 허위, 뒤이어 등장한 여인은 도착하자마자 오이채를 썰고 참기름과 참깨를 뿌리고 밥솥을 열어 창영당 내부는 음식 냄새가 퍼졌다. 말장난으로 미끄러지는 대사들, 어이없는 설정에 피식피식 웃다 결국 박장대소를 터트리게 되는 이 허무맹랑한 SF 음악극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창조자의 손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은 가장 완벽한 로봇”이 만들어 준 김밥과 오이냉채를 나눠 먹으며 끝나는 <김박사와 철인 28호>는 오래된 골목, 잊혀 가는 사람 사는 풍경과 가치를 지켜내려는 배다리 마을에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창영당에서 공연이 끝난 후 인천문화양조장으로 이동했다. 천장이 높은 옛 양조장 1층에서는 세 작품을 공연했는데 작품마다 무대 방향을 달리하여 관객들도 그에 맞춰 이동해야 했다.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 끈적끈적한 열기 속에서 배우도 관객도 땀을 흘리며 공연에 참여했다. 문이 달린 실내공간까지 활용해 히키코모리 이모의 심리와 그 문턱을 조심스레 넘는 조카의 이야기를 표현한 극단 바바서커스의 <나시와 락교> 공연을 시작으로 극단 해인의 <이렇게 덥지만, 이렇게 더운데>가 관객을 생존공동체로 몰아넣었다. 바깥에는 실체를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위험한 무언가가 있다. 실내는 너무 더우니 바깥으로 나가자는 사람, 바깥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사람, 바깥에 나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오겠다는 관객. 두 배우의 반복적인 대사를 들으며 영문도 모른 채 갇히게 된 관객들은 짧고 강렬한 부조리의 세계에 동참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날 여기 비가 내린 건 두 사람만이 안다> 공연은 해수면이 상승한 어느 먼 미래에 옛날 물건을 모으며 사는 한 여자와 방문객의 이야기이다. “살아본 적도 없는 시대를 그리워”하는 여자와 그녀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나 온 남자의 이야기 사이로 기차 소리가 뚜렷이 들려왔다. 그것이 바깥으로부터 들려오는 것인지 기계의 효과음인지 혼동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문화상점 동성한의원과 헌책방 아벨 서점을 들렀다. 축제 주최 측에서 공연 예약금이 3,000원이었고 그 예약금은 고스란히 배다리 마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으로 교환해 주었다. 마을, 예술가, 관객에서 다시 마을과 예술가로 순환하는 축제의 의미가 느껴져서 소중하게 사용했다.
인천 15분 연극제는 단막극의 매력과 배다리의 장소성이 만나 더욱 특별했다. 단막극은 짧은 시간 안에 강력한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다양한 실험이나 자유로운 형식을 택하게 되고, 전형적인 무대가 아닌 장소에서 일어나는 공연은 의도적이거나 비의도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배다리 풍경 속에서 펼쳐진 공연은 관객과 공간을 하나로 묶으며, 여러 형식과 주제의 다양한 작품으로 일상의 틈새를 축제의 순간으로 바꾸었다.
축제에 관한 기억들
짧은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지자체마다 축제와 행사가 가득하다. 지역 특산물 축제와 문화제, 장르예술제는 그 성격과 목표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축제에서 기대하는 것은 다양성과 동질성, 그리고 참여와 즐거움일 것이다. 내게 축제의 즐거움을 처음 알려준 곳은 프랑스의 아비뇽연극제였다. 기차역에 내려서자마자 거리를 온통 도배했던 공연 포스터와 공연 관련 물품을 파는 난장, 이른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공연을 보기 위해 북적이는 사람들, 극장은 물론 광장, 계단, 카페, 몇 사람의 관객이라도 모일 수 있는 모든 곳이라면 무대가 되던 경험은 아비뇽 연극제의 창시자, 장 빌라르의 선언처럼 “살아있는 연극의 시대” 속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예술은 개인의 창작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언어였고, 예술성과 축제성이 공존했다.
축제의 기원은 강력한 사회통합력을 지닌 제의에서 시작되었지만, 다원화되고 공동체가 해체된 시대에 축제는 어떤 상징이 남아 있을까? 개인적으로 몇 년 전까지는 일종의 해방감과 즐거움을 기대하며 여러 예술축제에 참여하는 걸 좋아했지만 최근에는 열의를 많이 잃었다. 특히 도시를 들썩이게 하던 몇몇 연극제는 사라졌고, 예술성은 높지만 축제성을 느낄 수 없는 공연예술제의 경우 즐기는 사람이기보다 ‘이해해야 하는 사람’으로 남겨진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인천 15분 연극제에서 돌아오며 잊고 있던 축제들이 떠올랐다. 아비뇽연극제, 오리악거리극축제, 과천한마당축제, 초창기의 춘천마임축제, 삼덕동인형마임축제와 성주 성밖 숲에서 열렸던 민족극한마당의 기억. 특히 코로나19가 한창이다가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다시 열렸던 2021년, 사회적 거리 두기로 한동안 축제를 누리지 못했던 관객들이 마스크를 끼고 드문드문 떨어진 돗자리에 앉아 환호도 마음껏 지르지 못한 채 음악에 몸을 기울이던 그날, 다시 모일 수 있고,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그 자리의 소중함에 음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는데 많은 사람이 훌쩍이며 눈시울을 닦고 있었다. 소통과 공감 속에 특별한 리듬이 공기를 채우고 함께 살아있음을 감각하는 축제, 어쩌면 공동체의 의미가 희미해진 시대일수록 우리는 다시 ‘축제성’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것은 예술이 삶으로 환원되는 순간의 환희이며 결국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축제’가 아니라 ‘축제의 정신’이다.
“정치를 담당하는 왕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진실을 바보광대는 익살스럽게 내뱉는다. 그것이 축제의 힘이다.”
(이화원, <연극의 축제성, 축제의 연극성>, 『문화예술』, 2001년 10월호, p.58-59)
축제는 예술을 공동체의 언어로 되돌린다. 예술이 비평과 제도의 울타리를 넘어, 서로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배우의 몸짓과 표정, 관객의 웃음과 탄식이 말보다 빠르게 통한다. 이렇듯 축제가 가진 힘은 원자화된 개인을 결집하고 서로를 알아보게 만드는 데 있다. 예술이 소수의 전유물이나 소비 대상만이 아닌, 감정과 웃음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고, 집단적 경험 속에서 언어를 찾아가는 공통의 장이 될 때 축제성을 띠게 된다. 삶과 예술이 연결되는 감각, 타인과 교감하는 순간이,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는 축제의 진정한 기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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