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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망각에서 기술 공포로 / 박준영
‘망각’에서 시작해 보자. 베르나르 스티글러가 ‘기술 망각’을 말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마치 일련의 우발적 경험인 것처럼 간주했다. 학계는 그를 이단아 취급했다. 일반 독자들은 말해 무엇하랴. 익숙했던 대로 머물러 있기를 바랐던 사람들은 기술적 객체들이 주변에 그토록 많음에도 한갓 관념적 ‘정의’나 ‘사랑’ 따위를 더 선호했다는 것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던 셈이다. 당연하게도 불과 20 여년 전까지만 해도 기술적 객체들은 말이 없고, 고분고분했으며, 죽은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 그래서 심대한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억압당해 왔던 것은 다름 아니라 기술적 객체들이고, 이제 그것들이 말을 하고, 명령하며, 우리의 신체적 역능과 감응 능력을 시험한다. 문제는 이러한 지배-피지배 역전 현상의 표면적 진행 과정이 아니다. 일상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불안이나, 어쩌면 연성 스트레스에 해당되는 잔잔한 고통을 느낀

한국연구원
Apr 234 min read


인공지능의 바깥은 어디일까? / 이영준
인공지능,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이 널리 퍼져 사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끼칠 안 좋은 영향은 그것을 삶의 어느 시점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디지털기술과 문화라는 것이 전혀 없던 1960년대에 태어난 필자에게 생성형 인공지능은 또 다른 디지털 기술일 뿐이다. 쓰면 좋고, 안 써도 그만인 것이다. 2007년 스마트폰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필자는 46세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 한참 후에 스마트폰을 받아들었기 때문에 스마트폰은 살면서 만난 온갖 기계들 중 하나일 뿐이다. 결코 신주단지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젊은 사람들이 보이는 스마트폰에 대한 지나친 집착증은 없는 편이다. 길을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본다든가,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딱히 볼 것이 없으면서도 스마트폰부터 꺼낸다든가 밥을 먹으면서 스마트폰을 본다든가 하는 식의 행동 말이다. 반면, 지금 태어나는 세대에게 생성형 인공지능은 디폴트(d

한국연구원
Apr 213 min read


AI 앞에서 어떤 문학이고자 하는가?아니 어떤 인간이고자 하는가? / 김언
아직은 찻잔 속의 폭풍 GPT 계열의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문학 분야에서도 지난 몇 년간 비상한 관심을 쏟아냈다. 온갖 지면에서 문학과 AI를 연결한 특집을 다뤘던 것이 그 증거다. 지면을 옮겨가며 다양한 의견이 개진된 가운데 몇몇 공유되는 지점도 보인다. 질문으로 옮기면 대략 이렇다: AI라는 비인간이 인간의 문학을 구현할 수 있을까? 구현한다면 인간은, 인간의 문학은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단순히 구현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문학을 능가하거나 대체하는 수준에 다다른다면 그때는 또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아니 AI가 침범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공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2016년 알파고의 등장 이후 바둑계가 겪은 혼란과 진통의 시간을 이제는 어느 분야에서도 남의 일처럼 여길 수 없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문학에서는 아직까지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큼의 큰 사

한국연구원
Apr 218 min read


비빔밥과 반상-‘나’와 ‘우리’가 따로 또 같이 / 노경희
K-컬쳐는 ‘비빔’이다? 한국문화의 속성을 ‘비빔밥’에 비유하는 이야기는 이제 고전이 된 담론이다. 일찍이 이어령은 디지털 시대야말로 아날로그가 더 필요하다면서 ‘디지로그’ 곧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함께 존재함을 아는 것, 이것이 문명을 읽는 지혜라고 하였다.(『디지로그-선언편』, 생각의나무, 2006) 그러면서 문화의 ‘통섭’을 강조하며 “여러 종류의 음식물을 함께 어울리게 하는 ‘비빔밥 문화’, 모든 걸 버무려 한입에 넣는 ‘보쌈 문화’, 이렇게 섞고 버무리는 게 ‘통섭’ 곧 ‘원만하게 포용하고(圓) 버무리고(融) 만나고(會) 소통하는(通) 원융회통’의 정신”이라고 말했다.(「파워인터뷰-이어령」 ‘산업화·민주화 영웅들 짐 내려놓고 떠나라’, 「문화일보」, 2011년 9월 10일)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또한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Electronics, Arts and Bibimbap)」(『신동아』, 1967)이라는 에세이를

한국연구원
Jan 316 min read


비빔밥 문화론으로 본 웹툰의 장르 / 박세현
대중문화의 소재적 ‧ 장르적 비빔밥 문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자신의 예술세계가 ‘한국의 비빔밥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에서 착안된 ‘비빔밥 문화론’은, ‘우연의 창조적 활동’에서 ‘필연의 창조적 의미’를 도출해내고자 하는 창작자적 본능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작 나는 억지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러 아이디어를 섞어서 실행을 옮겼더니, 아니 그 결과물이 어느 새 서로 다른 것들의 융합을 통해서 알 수 없는(혹은 생뚱맞게도) 조화를 보인다는 것이다. 한때 미디어 학자 헨리 젠킨스가 미디어 콘텐츠가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들면서 융합하여 새로운 형태와 문화현상을 만드는 것을 컨버전스(convergence)라고 칭하면서, ‘융합’이라는 용어보다 ‘컨버전스‘가 더 익숙한 말이 되기도 했다. 물론, 백남준의 비빔밥 문화와 헨리 젠킨스의 컨버전스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겠지만,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기술적‧문화적 융합을

한국연구원
Jan 313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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