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모자와 화이트보드: 당일바리 인생수첩
- 한국연구원
- 1일 전
- 3분 분량
마산. 지금은 행정구역상 경남 창원시의 일부가 되었지만, 우리 집안에서 ‘마산’은 여전히 특별한 지명으로 남아 있다. 그곳은 할아버지의 고향이었다. 나는 그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백일을 막 넘기던 무렵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분은 내 기억의 어느 한 귀퉁이에 항상 존재한다. "너를 참 예뻐하셨다"는 한 마디가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끈 때문이다. 기억나지 않는 사랑은 오히려 상상 속에서 더 진하게 채색된다.
할아버지는 해방 직후 강원도로 출장 갔다가, 그곳에서 할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사랑은 우연처럼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기회가 될 때마다 할머니의 집 앞에 해산물을 수북이 쌓아두었다. 지금 같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정성과 구애의 표현이었다. 얼음 보관조차 쉽지 않던 시절, 신선한 해산물 한 꾸러미를 먼 지방에서 가져오는 일은 로맨스를 넘어서 거의 헌신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구애에 쉽게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직업을 가진 여성이었고, 결혼보다는 자신의 경력성취와 사회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날마다 문 앞에 놓인 해산물은 동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끝내 그녀는 "부끄러워서" 결혼을 결심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다. 신랑이 자신의 고향에 정착할 것. 장인어른이 그 먼 남쪽으로 딸을 보내기 어렵다 하셨고, 할머니 역시 연로하신 부친을 두고는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하니, 할아버지는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끝내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고향 삼아 살았다.
몇십 년이 흐른 지금, 나에게 마산은 아주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실비바 파도’라는 작은 음식점에서다. 이곳에서는 마산과 통영에서 당일 올라온 해산물을 판매한다. 실비(實費)는 원가에 가까운 비용으로 음식을 제공하는 남도식 주점에서 유래한 말이고, 여기에 바(bar)가 붙었다. 요리사와 스태프들이 일하는 작업공간을 중심으로, 한 번에 열댓 명 남짓 좁은 바 테이블에 빙 둘러 앉는다.
지난 6개월간 나는 이곳에서 저녁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낮에는 본업, 저녁에는 알바생이라는 이중생활. 한 번도 식당일을 해 본 적 없었던 내가 왜 갑자기 초록색 모자에 앞치마를 두르고 홀을 오갔을까? 사실 나도 정확한 대답을 찾지는 못하겠다. 다만 그 무렵의 나는 무엇이든 '손을 써서' 해 보고 싶었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고민을 끊고 싶었고, 기계적으로 육체를 움직이는 단순노동에 스스로를 욱여 넣고 싶었다. 그렇게 손님으로 드나 들던 문을 다시 ‘스태프’의 입장으로 여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단순노동이라는 생각은 며칠 만에 깨졌다. 주문을 기억하고, 해당 자리에 어떤 찬거리나 소스가 함께 나가야 하는지 체크하고, 바뀐 메뉴의 가격을 숙지하고, 손님의 흐름과 주방의 속도를 동시에 읽어내야 한다. 매일 바뀌는 메뉴는 화이트보드에 손글씨로 적히고, 어제의 룰은 오늘 통하지 않기도 한다. 특히 음식을 엉뚱한 좌석에 전달하지 않는 것은 초보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다. 정신없이 움직이면서도 실수는 없어야 한다. 나는 한때 공연 현장에서 수많은 스태프들을 조율해 본 적도 있었지만, 이 작은 식당에서는 매일 멍청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멍청이는 곧 ‘배우는 사람’이 된다. 손님의 표정을 먼저 읽는 법, 소란스러운 환경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법, 실수했을 때 솔직하게 사과하는 법, 무엇보다 불•칼•먹거리를 다루는 환경에서 안전하게 움직이고 사람들과 조화 이루는 법을 알게 되었다.
‘당일바리’란 그날 들어온 해산물만으로 음식을 만든다는 뜻이다. 경상도 상인들의 말투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어쩌면 인생이란 것도 매일의 당일바리 같은 것이 아닐까.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고,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고, 매일 가장 신선한 것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바다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바다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 식당의 방식이고, 어쩌면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서울 한복판에서 마산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 세대만이 누릴 수 있는 시대의 역설이다. KTX를 타면 서울에서 약 네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마산. 물리적인 거리는 과거에 비하면 놀랄 만큼 가까워졌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도착해도, 옛사람 기억 속의 마산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떠나온 그 시절의 바닷내음, 시장통의 고함소리, 골목을 물들이던 젓갈 향기 같은 것들 말이다.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그 거리가 품고 있던 정서는 멀어져 간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러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마산의 맛을 마주하는 이 경험은 단순한 미각 향수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관계 회복이자 재발견이다. 더 이상 ‘고향’이라는 말이 물리적 장소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관계를 통해 지역을 다시 만난다. 또한 음식을 통해, 사람을 통해, 공간을 통해. ‘서울에서도 마산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은 단순히 물류의 발달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고향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니라, 이곳에서 새롭게 이어나갈 수 있는 어떤 정서적 공동체로 재탄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실비바 파도는 나에게 단지 음식점이 아니다. 그것은 서울과 지역 사이에 놓인 감각의 다리다. 바다가 매일 무엇을 내어줄지 알 수 없듯이, 오늘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와 어떤 기억이 차려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작위성 속에서도 어떤 정직함이, 어떤 정겨움이 존재한다. 매일 달라지는 메뉴 속에서 오히려 변하지 않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나는, 어둡고 지독한 고민들 대신 정다운 스태프들 사이에 있었다. 함께 웃고, 때로는 실수하며, 이따금 맥주를 곁들이던 저녁들. 정을 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비단 일뿐 아니라 동료들이었고,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이제 나는 그곳을 떠난다.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역할로, 다시 나아간다. 매일 파도를 갔지만, 사실 나는 파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손님이던 내가, 다시 손님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애창곡이었던 〈인생수첩〉의 가사를 떠올린다. “가도 가도 아득한 인생길 눈보라길에 정들면 타향도 좋더라.” 그는 정말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타향에서 정을 붙이고, 인정으로 삶을 견뎌냈던 사람. 나도 그런 6개월을 지나온 듯하다.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오늘의 바다를, 그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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