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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신도시의 밤과 생활의 리듬 / 최엄윤

밤이 사라졌다

올해 초부터 경상북도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예천과 안동의 경계에 있는 신도시에 오피스텔을 얻었다. 수납장을 열면 빨래 건조대까지 나오는 1인 맞춤형 작은 공간, 오피스텔에서 살아 보는 건 생애 처음이라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낯설다. 오랜 친구는 이곳에 와 보고 나를 닮지 않은 공간이라 했다. 게다가 2주 간격으로 한 번씩 서울로 오가는 두 지역살이를 하게 되면서 이곳, 저곳 모두에서 내 ‘몸에 맞는 생활의 리듬’을 찾기가 어렵다.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친구들을 초대하고, 산책하고, 달리고, 주말이면 공연·전시 등으로 채워졌던 일상의 리듬에 균열이 생겼고, 다시 내 몸에 적합한 생활 방식을 찾아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지방 도시의 밤은 일찍 시작된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아파트가 밀집한 상권과는 거리가 있다. 주변은 황량하고 밤이면 더욱 속도를 내는 자동차 소리만 크게 들린다. 어느 날은 퇴근 후 혼자 상가 지역으로 가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봤다. 우주에 던져진 한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우정 영화라는 소개 글에 어쩌면 인구 감소 지역에 살게 된 나의 자아와 겹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동기도 부여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선 상가는 임대 중인 공실이 대부분이었고 매표소가 있는 3층도 한산했다. 새벽 2시까지 운영된다고 했지만, 마지막 상영은 보통 7시 전후인 듯했다. 총 6개의 상영관 중 한 곳에서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상영 중이었는데 모임으로 온 중년 관객들이 대여섯 명 보였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상영관에는 나를 포함 세 명의 관객뿐이었다. 카드 할인, 쿠폰 등을 적용해서 정가 만 사천 원 영화를 삼천 원이라는 가격으로, 리클라이너 좌석에서 볼 수 있었지만, 텅 비다시피 한 영화관이라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영화를 마치고 30분 정도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거리는 한산했고 차들만 지나갔기 때문에 가로지르는 골목길이 아닌, 조금 돌아가더라도 일부러 도로 쪽으로 걷는 걸 택했다. 밤 열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 온 뒤 해가 진 후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도시가 아닌 곳에 여행을 가거나 거주할 때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상점이나 식당이 저녁 8시면 문을 닫고, 대중교통이 일찍 끊긴다는 것, 조명 시설이 많지 않아 저녁에 돌아다니기 무섭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은 뚜벅이에게 지방에서 사는 것은 하루 삼분의 일이 단축되는 기분이다. 얼마 전엔 해가 길어져 저녁 시간에 집 근처 호수 주위를 뛰었다. 길은 울퉁불퉁했고 곧 어스름이 내려앉아 조명이 켜졌지만, 희미한 빛에 발을 헛디디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두 지역살이를 하게 된 후 나는 스스로에게 곧잘 질문을 던지고는 한다. “밤이 사라졌다”라는 표현은 불야성을 이룬 도시에 어울리는 표현일까? 혹은 캄캄한 시골일까에 어울리는 표현일까?

     

신도시의 밤. 최엄윤 제공
신도시의 밤. 최엄윤 제공

생활의 리듬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한 대책으로 행정안전부는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했다. 생활인구는 정주 인구(주민등록 인구), 관광·통근·통학·업무 등의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머무는 체류인구, 그리고 외국인을 포함하는데 월 1회 이상, 1일 동안 머무른 시간의 총합이 3시간 이상이면 생활인구로 집계된다. 내가 일하며 거주하는 이곳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되어 ‘생활인구’ 유입이 중요한 정책의 화두 중 하나다. 여기서 ‘생활’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어 보자. 나에게 생활한다는 것은 먹고 자고 무언가를 하고, 이동하고, 소비하고, 만나는 행위들을 포괄한다. 일상의 반복이 일어나는 것, 앙리 르페브르의 말을 빌리자면 리듬 안에서 “이 현재를 고립시키지 않고 ‘주체’와 ‘객체’, 주관적인 상태와 객관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그 모든 다양성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앙리 르페브르, 『리듬 분석』, 갈무리, p.127.)이다. 그런데 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이라는 말에서 인터체인지를 통과해 어느 지역에 도착해 밥 먹고 카페에서 머물다 떠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숫자로 환산 할 수 있는 체류 시간은 행정적으로 유용하지만, 그 안에 포함된 ‘생활’이라는 단어는 쉽게 정의되지 않는다. 머물지만 관계를 맺지 않고, 기억이 쌓이지 않고,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는 비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어 있는 상가, 임대 중인 건물, 잠깐 머물다 떠나는 카페와 프랜차이즈, 지방 신도시의 모습 역시 분명 누군가의 생활공간이지만, 동시에 어딘가를 지나가는 중간 지점이며 리듬이 끊어진 비장소와 닮았다.

     

생활은 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그 시간 안에서 반복될 수 있는 행위들의 두께로 구성된다. 물론 나는 내 오피스텔에 편히 머물며 책을 읽고 팟캐스트나 음악을 듣고 TV를 보거나 다양한 구독 서비스로 삶의 콘텐츠들을 풍부하게 할 수도 있고, 고요한 밤 그 자체를 오롯이 누릴 수 있다. 삶의 리듬이란 결국 ‘나다움’의 발현이기에 모든 곳이 대도시의 화려함, 편리함과 닮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안전함이나 공공성과 연결될 때는 권리문제가 된다.

     

‘지방 소멸’이라는 말을 쓰는 곳은 일본과 한국 두 곳 밖에 없다고 한다. ‘소멸’이라는 단어는 위기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협적이다. 소수의 사람이라도 생활하고 있다면 그곳은 소멸한 것이 아닐 것이다. 다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로 돌아가 보자. ‘헤일메리’의 의미는 “미식축구에서 경기 종료 직전, 성공 확률은 낮지만, 마지막으로 기적을 바라며 던지는 최후의 승부수”라고 한다. 인류를 멸망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우주로 내던져진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외계인 로키를 만나며 공존을 모색하고 길을 찾아낸다. 각자의 행성을 구하러 온 두 생명체가 서로의 몸짓을 흉내 내며 경계를 풀고 소통을 시작하고, 합심하여, 마침내 서로를 구하여 세상을 구하는 천진하도록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다. ‘소멸’의 위기, 위협 속에서 인구감소지역에 던져질 최후의 승부수는 무엇일까? 영화 속 주인공이 우주라는 완전히 낯선 환경 속에서도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를 통해 살아갈 방법을 찾아냈듯, 현실 세계 역시 선한 사람들이 꿈꾸는 작은 유토피아에만 기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쓸쓸해진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천진하게 행복할 수 없는 건 정책의 언어는 숫자를 강조하는데 ‘관계’나 ‘생활’ 같은 단어는 데이터로 증명하기 힘들다는 걸 수없이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 담론에 던져야 할 진정한 승부수는, 수치로서의 ‘인구’가 아닌 감각으로서의 ‘생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감각은 지역을 구성하는 ‘몸들’이 리듬을 잃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소하고도 구체적인 것. 예를 들어 느린 걸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구획된 거리, 관계가 맺어지고 비빌 언덕이 되는 공간들, 안전하다고 느끼는 일상, 먹고, 자고, 무언가를 하고, 소비하고, 이동하고, 만나는 수많은 생활 풍경이 흐르듯 연결되는 모습일 것이다.



최엄윤, 사무엘 베케트의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언젠가 결국은 창작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omyunchoi@hanmail.net
최엄윤, 사무엘 베케트의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언젠가 결국은 창작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omyu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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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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