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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부터 / 마준석

전체 독일 인구 중 4명 중 1명이 이민자 또는 이민자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베를린에서는 그 수치가 더 높아서 예컨대 베를린의 한 구역인 노이쾰른에는 그 비율이 48%에 달한다. 베를린은 정말로 국제적인 도시다. 만약 당신이 외국의 어느 식당에서 현지 언어로 떠듬떠듬 주문했을 때 종업원이 끝끝내 못 알아듣는다면, 보통은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이다. 당신의 발음이 심각하게 구렸거나 아니면 인종차별이거나. 하지만 베를린에서는 상황이 달라서 여기서는 언제나 제 3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종업원이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도 퇴근 후에는 나처럼 어딘가의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있을 터이다.

 

베를린 노이쾰른 (출처: Berliner Morgenpost)
베를린 노이쾰른 (출처: Berliner Morgenpost)

 

베를린에서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 모두가 각자의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이 도시로 흘러들어 왔으며, 보다 더 나은 삶이라는 아직은 불투명한 목표를 실현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누구와 만나 이야기를 하든 간에, 환경, 직업, 음식 등 각각의 주제에서 저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고, 나는 각 문화마다 삶의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베를린의 어떤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운다면 언제나 독일어 그 이상을 배울 수 있다.

 

한번은 체벌과 훈육이 대화의 주제였다. 부모님이 체벌을 가한 적이 있는지, 그것이 자국의 문화에서 용인되는지, 그리고 본인이 만약 자녀를 양육한다면 체벌을 가할 것인지. 적절한 체벌은 효율적인 훈육 방법인지 아니면 체벌은 비윤리적인지. 토론은 활발하고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내가 “나의 세대는 학교에서도 종종 맞았지만...”이라고 말하고 모두가 경악스러운 비명을 내뱉기 전까지는 말이다. 친구들은 나에게 정말로 ‘선생님’이 체벌을 가한 것인지 동일한 질문을 세 번 반복해가며 확인했고, 어떤 상황에서 무슨 연유로 신체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순식간에 나는 국가 기관으로부터 자행된 구조적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가련한 피해자가 되어있었다. 지금은 당연히 학교에서의 체벌이 금지되었으며, 체벌 당시에도 ‘대체로는’ 선생님의 애정 어린 분위기가 감돌았다는 사실을 나는 최대한 전달하고자 했으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보면서, 나는 반대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학교 체벌이 이미 옛날부터 심각한 폭력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우리는 온갖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바로 전쟁이다. 교실에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그리고 이스라엘인과 이란인이 함께 있어서, 우리 모두가 ‘전쟁’을 언급하지 않기 위해 암묵적으로 노력했다. 지난 6월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 분쟁이 일어나고 미국까지 참전하여 이란의 핵 시설을 폭격할 즈음에, 내 옆에 있던 이란인 친구는 전혀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는 세 시간 내내 핸드폰으로 뉴스를 찾아보았고,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알고서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라는 주제는 자주 억압된다. 전쟁은 분명히 고통으로 가득 찬 비극이며, 우리가 전쟁을 회피하고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말 이외에는 더 덧붙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전쟁을 인간이 자신의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계기로 평가하는 칸트의 구절은 우리에게 감출 수 없는 당혹감과 의아함을 안겨준다. 『영구평화론』에서 그는 인간이 전쟁과 같은 반사회적 반목을 통해 자신의 앎을 본능의 한계 너머까지 확장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이성적 자유를 깨닫는다고 짚는다. 심지어 『판단력비판』에서는 역학적 숭고를 논하면서, 천박한 이기심과 유약함이 만연하게 하는 오랜 평화보다는 차라리 용기 있는 전쟁이 숭고하다고까지 주장한다. 헤겔 또한 마찬가지로 강조하기를, 전쟁은 필연적일 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 민족들의 인륜적 건강함이 [...] 유지되는데, 이것은 마치 바람의 운동이 바다를 부패로부터 막아 주는 것과 같다. 지속적인 고요가 바다를 부패하게 만들 듯이, 지속적이거나 영구적인 평화는 인민들을 부패하게 할 수 있다.”(『법철학』, §324) 이러한 경악스러운 주장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는 호전적인 독일 민족 정신 내부에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는 폭력성의 표현인 것인가?

 

우리는 흔히 저마다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민족들이 있고 이 민족들이 상이한 믿음들과 이해관계로 인해 충돌할 때 전쟁이 발발한다고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역이어서, 하나의 민족이 지닌 정체성 내지는 동일성은 오히려 전쟁을 통해 창안된다. 나폴레옹 침공 당시의 독일을 보자. 19세기 초까지 독일은 정치적으로 수백 개의 영방국가들로 쪼개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문화적, 경제적으로도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프로이센 왕국군을 물리치고 베를린에 입성했을 때, (헤겔을 포함하여) 시민들은 그를 열렬히 환호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시 그들에게 ‘민족’이나 ‘조국’은 아직 창안되지 않은 개념에 불과했기에, 신성로마제국이 무너졌을 때 그 신민들은 어떠한 슬픔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잃어버릴 조국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반면 그들에게 나폴레옹은 막연하지만 그럼에도 어떠한 방식의 진보를 체현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의 베를린 입성>, 1806, Charles Meynier
<나폴레옹의 베를린 입성>, 1806, Charles Meynier

 

하지만 프랑스의 가혹하고 굴욕적인 압제가 지속되자 독일 인민들은 그들이 프랑스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다시 말해 비로소 스스로를 독일 민족으로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조국과 자유를 찾기 위한 해방운동이 열광적으로 일어났으니 반프랑스적 민족주의 작품들과 선전들이 쏟아져나왔고, 해방군에는 자원병이 넘쳐났으며, 인민들은 해방전쟁을 위해 자신의 가산을 내어주었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통해 독일인들은 불과 1년 반 만에 자신들의 조국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파괴되어 상실된 조국’으로서 말이다. 그렇기에 독일의 역사학자 토마스 니퍼다이는 자신의 독일사 3부작을 “태초에 나폴레옹이 있었다(Am Anfang war Napoleon)”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이미 지니고 있던 무언가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없다는 느낌을 바탕으로 그것을 빼앗긴 것으로서 사후적으로 구성해낸다.

 

한국도 동일한 경험을 공유한다. 한민족은 고조선부터 수천 년 동안 한반도에 거주했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진정으로 한민족으로서 발견했던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일제의 잔인한 폭력에 두려워하며 굴복하지 않고서 맞서 투쟁함으로써만, 우리는 한민족과 대한민국이 우리 자신에게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자유에의 감각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일성의 핵심은 그 공동체 내부에서 자기충족적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에 의존하여, 심지어 타자와의 갈등과 불화라는 부정적 관계 내에서 마련된다. 바로 이 점에 전쟁이 수행하는 긍정적인 도야의 계기가 놓여있다.

 

이는 하나의 민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자유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와 반대로 한 민족의 정체성은 언제나 타자에 대한 적대와 혐오로 얼룩져 있다는 의미이고, 이렇게 동일성이 타자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근본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헤겔은 전쟁이 하나의 국가 공동체에 고유하고 필연적인 구성적 계기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예컨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는 러시아의 계획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 전쟁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는 가장 강력한 민족 국가로 다시 창안되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민족의 정체성이 러시아에 대한 혐오와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타오르는 이상, 설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할지언정 끝내 정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직접적으로 인식함으로써 곧바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를 기만하는 오류에 대한 분석을 통해 비로소 진리로 나아간다. 진리는 언제나 오류의 진리일 뿐이다. 인류의 역사는 갈등과 전쟁 그리고 잘못된 선택들로 점철되어 있고, 그것은 역사의 필연적인 구성적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은 그러한 실패를 반성하고 이를 통해 더 이상의 폭력을 지양하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자유를 위해서 계속 투쟁하는 것이다. 칸트가 말했듯이 “자연의 역사는 신의 작품이기에 선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자유의 역사는 인간의 작품이기에 악으로부터 시작한다.”(『추측해 본 인류 역사의 기원』, A13)

 

출처: REUTERS
출처: REUTERS

 

우크라이나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I는 딸과 함께 베를린으로 피난을 왔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과 재산을 전부 잃었다. 그녀는 독일어를 배우며 새로운 일을 찾고 있다. 그녀는 여기서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났고 함께 살고 있다. 남자친구는 친절했고 둘은 나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통 식사를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딸은 훔볼트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고 연구주제는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와 ‘대안적 사실’ 개념이다. 이란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프랑스 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S도 베를린으로 피난을 왔다. 그녀는 지금 간호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가족과 남자친구는 아직 이란에 있다. 이란이 공습을 받던 날, 그래서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던 날, 이스라엘 친구 A는 S에게 다가가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건넸다. S는 미소지으며 받아주었다. 그들의 삶은 전쟁으로 훼손되었지만, 전쟁이 그들을 부러뜨리지는 못했다. 그들은 나날의 안온한 일상을 위해 오늘도 자신의 삶 속에서 투쟁하고 있다.

 


 *9월부터 필자들의 연재순서를 변경합니다.

 

마준석(연세대 철학과 석사) wegmarken1213@naver.com
마준석(연세대 철학과 석사) wegmarken1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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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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