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인 악을 위하여 / 마준석
- 한국연구원

- 1월 5일
- 5분 분량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2>는 끝내주는 맷집으로 쿵푸 마스터가 된 ‘포’와 대포의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쿵푸의 명맥을 끊으려는 악당 ‘셴’ 간의 대결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포가 그의 앞길을 막고 대적하자 잔악한 셴은 대포의 모든 포문을 열어 포에게 직사 사격을 가한다. 하지만 이미 쿵푸의 극의인 내면의 평화를 깨달은 포. 포는 푸짐한 뱃살에서 오는 탄성으로 부드럽게 모든 포탄을 도로 셴에게로 돌려보내고 셴의 군대는 궤멸한다. 절망한 채 완전히 넋이 나간 셴. 포가 다가와 마지막 화해의 말을 건넨다.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셴도 다시금 선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팬더 일족과 자신의 부모를 학살한 셴에게도 회개의 손길을 내미는 포를 보고, 셴은 가슴속에 깊이 팬 상처를 끼고돌았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본다. 상처는 결국에 나을지언정, 그럼에도 흉터는 남는다고, 그리하여 오직 더 많은 힘과 권력만이 흉터를 덮고 행복을 쟁취하는 열쇠라고 믿었던 자신을 말이다. 과거의 유령에 쫓겨왔던, 광기와 폭력으로 점철된 삶이 실패로 귀결되었음을 깨달은 셴은 끝내 포가 내미는 손을 잡지 않는다. 그는 차라리 실패한 악으로서 남기를 선택하고, 비수를 던지며 포를 내몬 후 자신을 덮쳐오는 거대한 대포를 피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편안한 얼굴로 최후를 맞이한다. 셴은 그렇게 내면의 평화를 자신의 방식으로 찾는다.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도 악이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채 여전히 악으로 남는 이 움직임은, 일종의 윤리성을 기묘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내보인다.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을 보자. 법의 사디즘적 본성을 체현하는 그는 불법 속에서도 끈질기게 선으로 다가가는 자를 목격함으로써 자신의 실패를 깨닫고, 자기 자신을 처벌함으로써 실상 악과 구분되지 않았던 자신의 강박적인 정의관에 책임을 진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2막의 끝에서 돈 조반니 또한 거짓과 배신으로 점철된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는다. 석상이 싸늘하게 식은 손으로 그를 붙잡고 “회개하라”고 주문했을 때, 그가 거기서 회개하기만 한다면 그는 얼마든지 타오르는 지옥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회개한다고 그저 말 한마디만 한다면. 하지만 그 단순하고 손쉬운 선택지를 돈 조반니는 비이성적인 완고함으로 기어코 거부하고, 그렇게 지옥에 떨어지며 퇴장한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더 이상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목숨을 구걸하며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보를 전부 부정했다고 해보자. 그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악의 대립 개념인 선이 아니라 단지 비굴한 기회주의일 뿐이다. 오히려 간편한 해결책을 앞에 두고서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악의 길을 고집한다는 점이, 그리하여 스스로 자멸의 길로 나아간다는 점이 우리로 하여금 기이한 방식으로 어떤 숭고한 윤리를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과 악은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갈라지는 대립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본질적인 순간에 선과 악은 형식적으로 동일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이 도래하는 첫 번째 순간에는 언제나 악의 외피를 두르고 등장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예수가 말하기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태복음 10:34-36)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언도받은 죄 또한 젊은이들을 불손한 이념으로 타락시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대적하도록 했다는 점이었다. 종종 근대의 시작점으로 평가되는 조르다노 브루노의 화형 재판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우주가 무한하며 고정된 중심이 없고 이 태양계 외에도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단적 주장으로 심판받았다. 로마의 종교 재판관들은 그를 7년이나 가둬두고 그의 생각을 바꾸고자 온갖 방법으로 괴롭혔다. 그가 자신의 사상을 철회하기만 한다면, 그래서 교회에 복종하겠노라고 말 한마디만 한다면 그의 재판은 갈릴레이처럼 가택연금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판단력으로 입에는 재갈을 차고 벌거벗긴 채 광장에서 타오르는 악이 되기를 선택했다.
이 모든 사건들을 지금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때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나 소크라테스, 브루노는 당시의 대중들에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생각과 주장들로 공동체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악이었다. 그들은 사회의 규범들을 파괴하고 삿된 말과 그릇된 행동으로 순진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단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악의 형상을 고수했기 때문에, 다가오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진리의 공간을 열어 밝힐 수 있었다. 자신의 파멸을 예견하면서도 묵묵히 나아가는 끈질김이 그들의 무한한 윤리를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대한민국 보수 정치에 대해 생각한다. 12.3 비상계엄 1주년을 지나며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고 쇄신을 이뤄내야 한다는 요구가 당 안팎에서 분출하고 있다. 원조 찐윤 중진이었던 자는 본인이 윤 전 대통령에게 직언했다가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욕을 들었다고 뒤늦게 고백하며 당 대표 면전에 윤 전 대통령과의 결별을 촉구했고, 탄핵 소추 당시 당내 탄핵 찬성파에 배신자라 고함치며 탈당을 윽박질렀던 다른 친윤 의원도 갑자기 미디어에 나와 윤 전 대통령의 사과와 당의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 체포 시도 당시 관사 앞에 모여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소리 높여 외치던 다른 의원들도 별안간 SNS에 저마다 사과문을 올리고 있으니 참으로 눈물겨운 개심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시선은 현 대통령과 여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야당 지지율과 어느덧 반년 앞으로 다가온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향하고 있다. 그들은 가증스럽게도 이제서야 살아나갈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깊어지는 보수 정당의 내홍 속에서 장동혁 당 대표는 절연, 사과, 반성 없는 강경 대여 투쟁을 여전히 고수하며 말했다. 우리가 끊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이 말에 진리가 놓여있다고 믿는다. 이는 단순히 현재 장동혁 지도부가 생각하듯이, 이제 와 대국민 사과를 한다손 치더라도 국민의힘 뽑아줄 사람이 몇이냐 되겠냐는 자조 섞인 푸념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쩌면 당내 지분을 넓혀가고 있는 쇄신파가 믿듯이, 야당은 대국민 사과 후에 현 정부 여당의 실책에 붙어먹어 지선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선을 표방하는 사죄와 반성의 길이 형식상으로만 윤리적일 뿐, 오히려 근본적인 악으로서 정치적 의사소통을 교란하고 담화 공간을 좀먹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사죄와 반성이 정치 공학적인 관점에서의 손쉬운 해결책에 불과할 때, 뒤따르는 것은 쇄신이 아니라 구태 정치의 반복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실상 끊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한민국 보수 정당이 진정으로 염려해야 할 것은, 정당이 극우화되어 중도층의 외면을 받고 선거마다 참패하는 것이 아니고, 계파 분열 속에서 당권 투쟁하다가 내부 총질 끝에 자멸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위험은 보수 정당이 살아나가는 데에, 다시 말해 허울뿐인 자성과 개혁을 통해 적당히 갈등을 봉합하고 그저 그런 보수 정당으로 되돌아가는 데에 있다. 겉보기에 모든 것은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기능할 터이다. 그들은 영남 지역 정당으로서 100-120석의 의석으로 만족하며, 어떠한 입법 주도권도 없기에 할 일 없어 머쓱해지면 아스팔트 위로 한 번씩 나가 반공 이데올로기와 부정선거론을 부르짖을 것이고, 혹여 약간의 이탈표라도 나올세라 “돌로 쳐 죽일 것”이라 공공연하게 겁박하면서 배신자 조리돌림과 공개처형에 몰두할 것이며, 국정 감사나 상임위원회에서 맥락 없이 호통치는 장면들을 짜깁기한 쇼츠로 근근이 빌어먹을 것이다. 그러니까 허구한 날 유튜브에 나와 장애인 비하부터 호남 멸시, 중국인 혐오까지 종합 선물 세트로 선보이며 구질구질하게 입에 풀칠하는 정당 말이다. 진정한 위험은 이렇게 제대로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채로 무기력하게 존속하기만 할 때 발생한다.
그렇기에 나는 장동혁 대표의 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본인들 국회가 침탈당하는데도 수수방관했던 대다수의 국민의힘 의원들과 달리 계엄 해제 표결에 참석했던 강단 있는 정치인인 그는, 이미 좀비 상태인 국민의힘을 연명 치료하려는 당내 쇄신파에 맞서 국민의힘을 회복 불가능하게 안락사시키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안락사 후에도 대한민국 보수 정치의 명맥을 이어갈 후손이 필요하기에, 당무감사위와 열성 지지자들을 동반한 집단 린치로 당내 비주류 계파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려 하니,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사멸의 과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배려함이다. 이 깊은 뜻을 헤아릴 줄 모르고 그들은 장동혁 지도부에 원망만 쏟아내고 있으니 통탄할 따름이다.
보수 야당은 지금 사과와 반성이라는 손쉽지만 허울뿐인 해결책을 선택하지 않고서 스스로의 악을 고수하는 어려운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 앞에는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 죽음은 종국에 새로운 보수 정치의 구성적인 공간을 열어밝힐 것이다. 그들의 악의 형상을 향한 이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집착과 묵묵한 고집이 그들의 윤리를 이루고 있다. 그들이 흔들리지 않기를, 그렇게 그들의 발걸음을 책임 있게 완수하여 끝내 내면의 평화를 찾기를 나는 진정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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