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논란의 의미와 본질 / 강부원
- 한국연구원

- 9월 18일
- 4분 분량
사회적 인간의 조건으로 문해력이 운위되는 시대이다. 공적으로 발화되는 기본적인 언어 표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부터이다. 문해력이 보편 교양의 척도이자 기초 지성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 가능한 어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난해하고 알아듣기 어려운 표현인 경우가 많아졌다. 디지털 글쓰기의 유행, 독서량 감소, 한자 교육 부재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명일 우천시 소풍 장소는 추후공고”
자녀의 학교에서 보낸 다음과 같은 안내 문자를 받은 MZ세대 학부모가 ’명일‘과 ’우천시’, ‘추후공고’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내일이란 의미의 ‘명일’이란 단어의 뜻을 어느 날인지 알지 못하거나, ‘우천시’를 비가 오는 경우가 아닌 어느 지역의 도시 이름쯤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다. 또 ‘추후공고’는 다시 공지를 해주겠다는 뜻이 아닌 어느 특정 공업고등학교 이름을 지칭하는 의미로 잘못 이해한다.
이 밖에도 ‘금일’을 금요일로 알고 있거나, ‘사흘’을 4일로 이해하며, ‘중식 제공’을 중국음식이 나온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소문이다. 물론 위의 사례들은 한국사회의 문해력 수준이 많이 낮아졌음을 드러내기 위해 과장해 꾸며낸 이야기일 공산이 높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문해력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웃자고 만들어 낸 극단적 예시일지도 모른다. 전반적인 문해력이 이 정도까지 낮아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설마 진짜 저런 어휘도 모를리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문해력 저하와 관련된 안타까운 에피소드는 잊을만하면 종종 불거져 나온다. ‘금주계획’, ‘소정의 절차’, ‘심심한 사과’ 같은 표현의 뜻을 오인해 빚어지는 소동들이다. 아이들이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닌데 금주 계획이 왜 필요하냐는 항의가 들어오고, 정치권에서는 소정의 절차라는 말뜻을 간소한 절차로 잘못 알고 있던 아나운서 출신 국회의원이 망신을 사기도 했다. 사과를 하면서도 심심해한다며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문해력이 이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라면 한국사회에서 보편적 의사소통은 이제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최근 우리나라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아우성을 듣기 어렵지 않은 사회가 됐다.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습득해야 할 어휘 지식의 필수적 총량을 정해놓고 강제로라도 교육해야 한다는 말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문해력을 둘러싼 논쟁과 공방이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낮은 문해력을 근거로 상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와 다른 언어적 조건이나 상황에 놓여있다고 양해하기보다, 대번에 무시하고 얕잡아 본다. 이렇듯 현재 한국사회가 처한 문해력 위기는 어휘 한두 개를 더 이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단순한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굳이 어려운 한자 기반의 어휘들을 모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아직도 어려운 말을 고집해 사용할 필요가 있느냐며 도리어 역정을 낸다. 그런 단어들을 모르고 살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무래도 비교적 젊은 30대 이하 세대가 여기에 많이 속해있다. 기성세대는 새로 유행하는 신조어와 줄임말은 전혀 모르고 배우려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말을 모른다고 젊은 세대를 나무라기만 한다며 볼 멘 소리를 한다.
반면 기초 문해력의 필요와 쓸모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기초 한자는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므로 필수적으로 인지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활 언어 수준의 한자어 사용은 전문적인 한자교육과는 무관하며, 한국어의 기본 활용에 한자어의 쓰임이 내재돼 있으니 일상적인 차원에서나 공적 발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면 된다는 논리이다.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문해력 논란은 실상 개인이 알아야 할 어휘의 총량에 대한 각자의 기준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각 세대와 계층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거나 선호하는 언어 규범과 체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서로의 언어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불통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적확한 설명이다. 세대와 계층 사이의 언어 사용 패턴이 달라졌음을 간과하고, 과거와는 달라진 쓰기와 읽기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논란에 가깝다. 즉, 현재의 문해력 논란은 사회적 소통 단절의 맥락에서 바라봐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 난무하는 ‘문해력 걱정’은 상대방과의 격절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측면이 있다. 나와 다른 지적 배경을 갖고 이질적인 언어 환경에서 살아가는 상대를 공격하는 인지적 도구로 활용하는 양상이 그렇다. 특정한 한자 어휘를 즉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단소한 사례만으로 한 개인의 총체적 언어 능력을 폄하해선 안 된다. 문해력이라는 언어 이해 능력을 한자 언어 사용의 기준으로만 가둬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통적 한자어는 익숙하지 않아도 새로 등장하거나 만들어진 말은 쉽게 익히고 편하게 사용하는 무리가 있다. 신조어, 유행어, 외래어에 능한 젊은이가 자기가 사용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신어에 무딘 상대방을 말귀 못 알아듣는 늙은이 취급하는 것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문화 변동 과정에 따라 완전히 새롭게 생겨낸 말이거나, 과거에는 없던 말이지만 어느 순간 출현해 언중에 의해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말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구어와 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말도 있고, 그 쓰임의 구별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전통적 문자 규범을 여전히 존중하고, 입말과 글말 사이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언어는 유기체다. 태어나 살아 숨 쉬고 변화하며 사멸하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어휘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며,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말도 많다. 나이나 세대에 따라 언어 사용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언어는 인간이 축적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서로 간의 생각이나 감정을 교류하게 하는 매개이다. 시간 경험과 언어 지향이 다른 세대나 계층 간에 언어가 사용되는 양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세대와 성별이 다르고 계층과 정치적 지향이 같지 않다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즉, 문해력 논란은 언어 지식의 문제라기보다 언어 지향과 사용의 양상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충돌이다. 문해력의 차이에 따른 소통 단절은 분열된 사회의 증상이기도 하다. 불통과 오해로 인해 발생하는 적대와 경멸의 감정을 언어라는 그릇에 담아 상대 진영과 다른 세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일은 중단돼야 한다. 상대가 사용하는 말을 내가 다 알기란 불가능하고, 상대가 쓰는 말을 빠짐없이 모두 이해할 수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상대가 구사하는 언어를 조금씩 알아채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고 각자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나와 다른 상대의 언어적 배경과 조건을 받아들이며 이해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문해력 논쟁은 단순히 언어 지식의 총량을 측정하거나 채워 넣어야만 하는 과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세대와 계층 간의 불통과 몰이해가 빚은 사회 갈등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문해력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토대 위에서만 새롭게 길러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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