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목숨값과 면죄부 – 유가족의 절규와 사법적 딜레마 / 강부원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이 말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가장 유력한 선거구호 중의 하나였다. 노동현장에서의 안전 규정을 강화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목숨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겠다는 선언이었다. 아침에 출근한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죽게 돼 저녁이 되어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세계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더 이상 무리한 작업양을 비정상적인 속도로 처리하는 게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이 되어선 안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쫓는다는 이유로 안전에 대한 가치는 뒷전으로 밀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OECD 회원가입 국가 중 한국이 일터에서 죽는 사람의 숫자가 가장 많다는 통계가 말해주듯 많은 사람들이 그간 야만적인 노동 환경을 견디며 살아왔다. 2025년 통계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산업재해 사망자수가 32.9명으로 OECD 국가들 중에서 압도적 1위다. 즉, 이재명 대통령의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라는 약속은 한국사회의 안전불감증과 인명 경시 풍조를 노동현장 저변에서부터 바꾸겠다는 국가 차원의 사회 대개혁 대개조 공약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제로 취임 직후부터 산업현장의 중대재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단속했다. 자신이 내건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겠지만 그간 숱하게 발생한 노동현장 사망 사례들이 너무나 처참하고 끔찍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중 2024년 6월 경기도 화성시의 리튬 배터리 제조 공장 ‘아리셀’에서 발생한 참사는 대한민국 산업안전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직면하게 해준 사건이었다. 리튬 배터리 폭발로 인해 발생한 공장 화재 때문에 무려 23명의 노동자가 작업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들 대부분은 비상구의 위치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일해야 했던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1심 재판부는 고용주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인 징역 15년을 선고하며 “경영책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 입법 취지”라고 천명했다. 지금까지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고용주들에게 솜방망이 처벌만 이어졌던 관행을 깨뜨리고 상당한 중형과 벌금이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불과 7개월 뒤인 지난 2026년 4월 22일 들려온 항소심 결과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가슴에 또 다른 대못을 박았다. 아리셀 박순관 대표의 형량이 징역 4년으로 대폭 감경됐기 때문이다. 23명의 생명이 사라진 대가가 고작 징역 4년으로 낮아진 재심 결과를 받아든 유가족들은 “이게 법이냐”며 절규했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가 내세운 핵심적인 감형 사유는 ‘피해 유가족과의 합의’였다. 재판부는 피해 변제 노력을 양형에 반영하지 않을 경우, 가해자가 피해 회복을 포기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법 판결이 처한 거대한 논리적 딜레마와 윤리적 파열음을 목격하게 된다. 과연 금전적 합의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구조적 죄과를 덮는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실질적인 피해 구제를 위해 합의를 유도하는 사법적 유인책은불가피한 조정책인가.

     

먼저 ‘합의를 통한 감형’이라는 판결 논리는 자본을 가진 고용주들에게 사고 예방보다 사후 합의가 싸게 먹힌다는 위험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근본 목적은 기업이 사전에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해 사고 자체를 막도록 강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재판부가 합의를 결정적 감형 요소로 삼는 순간 기업은 값비싼 설비 투자와 복잡한 안전매뉴얼 구축 대신 합의금 마련과 대형 로펌 선임에만 더 집중하게 된다. 이는 노동자의 목숨을 자본으로 환산 가능한 비용의 영역으로 전락시키는 처사다.

 

더욱이 유가족들에게 고용주와의 피해구제 합의는 결코 평등한 선택지가 아니다. 갑작스러운 참사로 생계 수단을 잃은 유가족들은 경제적 궁핍 속에서 사측이 제시하는 합의금을 거부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유족과의 합의를 제한적으로만 참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리셀 유가족 측은 이번 판결이 “현실적 문제로 합의할 수밖에 없는 유가족의 상황을 이용해 안전 체계 미비를 합의로 덮는 현실을 공고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법원이 피해 구제를 명분으로 내세운 합의가 역설적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희석하는 도구가 된 셈이다.

     

이번 2심 재판부의 판단은 합의와 감형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던져주었다. 만약 합의 노력을 전혀 양형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가해 기업은 유가족에 대한 보상을 회피하거나 재산 은닉 등을 통해 책무를 저버릴 가능성이 크다. 국가 형벌권이 유가족의 당장 급한 생계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원이 가해자에게 금전적 배상을 독려하기 위해 양형이라는 당근을 사용하는 것은 사법제도의 현실적 고육지책일 수 있다.

     

이 딜레마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형 선고의 중심축이 이동해야 한다. 유족과의 합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감형 사유는 합의금 액수가 아니라 사고 이후 기업이 보여준 실질적인 재발 방지 조치와 안전 시스템의 근본적 혁신이어야 한다. 단순히 돈을 주고 처벌을 깎는 금권 사법이 아니라 가해자가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어떤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냈는지를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


     

아리셀 참사의 2심 판결은 우리에게 산업현장 재해에 대한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인지하게 하는 동시에 사법 판결과 관련한 딜레마적 상황에 대한 무거운 질문도 함께 던졌다. 대한민국은 “일하다 죽는 사회”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지만 사법부의 관성적인 합의 감형 논리는 여전히 그 법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23명의 노동자가 불이 난 공장에서 비상구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그 현장의 고통은 알량한 합의금만으로 치환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다.

     


법원이 가해자의 피해 회복 의지를 챙기는 사이, 정작 사람의 목숨은 돈보다 귀하다는 사법의 가장 기초적인 정의는 실종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되새겨야 한다. 정의의 저울 균형추가 자본의 무게에 의해 기울어지는 순간 법은 더 이상 약자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강자의 탈출구가 될 뿐이다. 이번 아리셀 판결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나쁜 선례가 되지 않도록 대법원에서 선고 기준에 대한 보다 엄격하고 윤리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강부원( 작가,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등 저술)
강부원( 작가,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등 저술)

Comments


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Thanks for submitting!

  • White Facebook Icon
  • 화이트 트위터 아이콘

© 2019. RIKS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