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감각을 회복하는 제3의 장소들 / 최엄윤
- 한국연구원
- 2일 전
- 4분 분량
내가 자주 이용하는 우리 동네 장소들은 대체로 도보 15분, 버스 20분 이내 거리에 있다. 공공도서관 세 곳, 청소년센터 등 문화체육 시설 두 곳, 달리기 트랙이 있는 홍제천과 불광천, 한강유원지, 한국영상자료원과 신촌, 홍대 등 대학가의 다양한 장소들. 그리고 부담 없이 작업할 수 있는 카페는 안부를 전하는 이웃이며, 서로의 드나드는 동네 친구들의 집도 있다. 이러한 동선은 프랑스 파리의 안 이달고(Anne Hidalgo) 시장의 “15분 도시” 정책에 부합하는 듯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15분 도시는 “학교, 상점, 병원, 문화시설, 직장 등 생활 필수시설을 보행과 자전거, 대중교통만으로 15분 안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로 환경, 사람, 생활권 중심의 ‘연결과 공유’에 가치를 두고 있다. 운 좋게도 내가 사는 동네는 나의 취미와 취향을 대체로 충족시켜 주는데, 어쩌면 역으로 취미와 취향을 형성하게 된 건 내가 살아왔던 환경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는 건강한 신체로 어디든 마음껏 다닐 수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나에게도 이웃 친구들에게도 없다. 몇 년 후에는 고향에 있는 엄마 곁에 머무는 삶도 고려하고 있는데 그다음을 생각하면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돌보고 돌봄 받는 삶의 연속과 순환에서 ‘연결과 공유’는 대도시, 번화가만이 아닌 혈관처럼 지역 곳곳으로 흐르는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 3의 장소, <나의 올드 오크>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집이 제1의 장소, 직장이 제2의 장소라면 개인과 집단의 사생활을 보장하면서도 교류의 기회도 동시에 제공하는 작은 카페, 서점, 동네 술집 같은 어울림의 장소를 『제3의 장소』(풀빛, 2019)라 주창했다. 이러한 장소들은 친밀감이 들고, 아늑하며, 한 번 또는 이따금 들르는 손님보다는 가까운 이웃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펍은 퍼블릭 하우스의 줄임 말로 그곳을 지나쳐 가는 여러 계층을 포용하는 공간이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사회에 살던 때에도 여러 개의 방을 두어 여성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모두의 것’이었다고 한다.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마지막 작품 <나의 올드 오크>는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이 배경이다. 과거의 번영이 사라지고 쇠락한 마을에 2016년 시리아 난민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다. 난민에게 제공되는 주거와 기부품이 자신들에게 올 권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여 이들을 경계하거나 배척하고 혐오와 조롱을 내뱉는 마을 사람들이 두드러지지만, 한편에서는 조용히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동네 청년에 의해 아버지로부터 받은 소중한 카메라가 부서진 시리아 소녀 야라를 도와준 사람은 “The Old Oak(올드 오크)”라는 오래된 펍을 운영하는 TJ(토미 조) 발렌타인이다. 그는 자신의 카메라를 처분한 돈으로 야라의 카메라 수리 비용을 지원해 주며 친구가 된다. 올드 오크에서는 80년대 영국 광산 노동 운동 시기, TJ의 어머니가 광부들에게 밥을 지어 먹였었고, 그 시절의 사진, 깃발,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구호가 담긴 뒷방이 오랫동안 잠겨 있었다. 어느 날 쓰러진 아이를 도와주다 오해받고 쫓겨난 야라는 마을에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 닫은 폐광, 할 일 없이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중년 남성들, 황량한 거리에 돌봄 받지 못하는 아이들, 더욱 가난해지는 현실로 피폐해진 주민들 역시 자본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 마음 둘 곳 없는 신세이다. 이 사건 이후 야라는 올드 오크의 뒷방을 열어 주민과 난민이 어울려 음식을 나눠 먹자고 제안하고 TJ는 고민 끝에 누구나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달아도 끝내 떨어지고야 마는 간판의 알파벳처럼 이 영화를 희망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TJ의 반려견 마라(광부의 언어로 서로 힘이 되고 지켜주는 동료)는 결국 마을의 큰 개에게 공격받아 죽어 버리고, 올드 오크의 오랜 단골들이 가장 강경한 태도로 난민을 배척하고 더 이상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없도록 뒷방을 망가뜨려 놓는다. 영화의 마지막은 야라 아버지의 부고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야라의 집에 추모하러 오는 모습으로 끝나지만, 2025년 오늘은 영화의 배경이었던 2016년보다 자국중심주의가 더 심화됐다. 상업주의가 팽배한 영화 산업 현장에서 올곧게 노동자 계급의 일상과 공동체, 사회주의 이상을 이야기 해 온 켄 로치 감독의 마지막 작품 <나의 올드 오크>는 더 나아지기는커녕, 약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배척하는 현실에 마지막 연대를 호소하는 슬픈 동화처럼 다가온다.
같이 삽시다. 그리고 같이 잘 삽시다.
레이 올든버그는 가격표로 가득 찬 라이프스타일은 결국 “인류의 본질적 소외”를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에 제3의 장소는 일터와 가정 외의 해방구 정도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근간이자 비공식적 사회안전망, 민주적 토론의 장, 계층이나 직업·연령에 따른 분절화를 막는 통합 기체 등 폭 넓은 개념을 아우른다. 2015년 파리 테러 후 사람들이 “#나는 테라스에 있다”라며 해시태그 했던 일을 기억한다. 두려움에 맞서 용기를 잃지 않고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받기 위해 사람들은 프랑스의 대표적 제3의 장소인 카페테라스로 나왔다. 한국에서는 지난 12.3 계엄 후 광장에 나부끼던 고독사방지협회의 깃발을 기억한다. “배달비 N빵 인원 상시 모집 중”이라는 부제는 “함께 먹을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는 구호의 변주처럼 다가왔다.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 등을 꿈꾸기 힘든,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인 2030 청년들은 인구 과밀 도심의 삶에 피로를 느끼고, 다른 방식의 삶을 찾기도 한다. 거기에 맞춰 촌캉스, 오도이촌, 한 달 살기, 워케이션 및 웰니스 관광 등 여행 트렌드와 관광 정책도 변화하고 ‘생활인구·관계인구’ 개념과 정책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5월 7일에는 강화유니버스와 듣는연구소의 공동 주최로 <지역소멸을 넘어, 강화유니버스: 관계로 살아가는 전환의 현장> 세미나가 진행됐다. 2013년부터 다양한 로컬 활동을 해 온 강화유니버스는 “로컬, 주체성, 존중, 다양성, 소통, 재발견, 생태, 환경, 안심, 즐거움, 연결”의 키워드를 원칙이자 세계관으로 삼고 라이프스타일의 전환을 모색해 왔다. 강화유니버스는 그들의 대표 체류형 프로그램인 <잠시섬>을 “여행업이 아닌 환대업”으로 소개했다. 오랫동안 강화도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지역 주민 및 소상공인과의 탄탄한 관계를 바탕으로 <잠시섬>을 찾는 사람들이 관광을 넘어 문화생산자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다음 세대가 커뮤니티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지역 곳곳과의 관계망으로 소속감과 장소감을 형성해 가는 강화유니버스의 방식은 단기간의 성과와 수치로 증명해야 하는 정부의 관광 정책 언어와는 거리가 있다.
카페나 펍, 메인 스트리트처럼 제3의 장소들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곳을 이용하는 이웃들이 건재해야 한다. 탄광이 폐쇄되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떠나고 지역 경제가 연쇄적 어려움을 겪고 결국 소멸의 위기를 겪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웃이라는 생태계에서 공존하는 우리는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온라인 환경의 초연결 사회가 된 오늘날, 모순되게도 고립과 단절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고 대한민국은 2004년 이래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해 왔다. 최근에는 故 노회찬 의원의 말이 자주 생각난다. “같이 삽시다. 그리고 같이 잘 삽시다.” 공동체라는 단어는 낭만적으로 들리며 촌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것처럼 되기도 했지만, 차기 정부는 ‘연결과 공유’의 공동체 감각 회복에 힘을 쏟으면 좋겠다. 경제, 사회, 문화도 연결하고, 환경, 사람, 생활도 연결하여 같이 잘 사는 법을 모색했으면 좋겠다. 중앙정부 중심이 아닌 지역 중심으로, 물리적 공간과 시설 중심이 아닌 “정서적 장소”의 개발과 발굴로, 산업, 숫자, 경쟁, 유치 등 성장의 언어보다 교류, 관계, 돌봄, 분배의 언어가 충분히 여유로운 시간을 거치며 스며들면 좋겠다. 전문가와 대변자의 목소리보다 다양한 시민 개개인의 목소리를 더 많이 담을 수 있는 정책 환경이 되길 바란다.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는 중립지대에 존재하며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동등한 조건으로 수평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했다. 지난겨울 뜨겁게 들끓었던 광장은 제3의 장소였다. 추운 날씨에도 자신의 소중한 빛을 들고 외치던 다양한 목소리를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 일상 곳곳, 어느 지역에서나 이러한 장소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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