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염상섭 소설에서는 ‘집’과 ‘토지’는 화폐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획득하고 있는 재산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특이한 것은 이 시기 염상섭 단편 소설의 여성 인물들이 상당수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남겨진’ 집을 기반으로 삼아 경제 활동에 나서거나, 집을 끝까지 유지하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처절한 생존 경쟁에 뛰어든다. 물론, 여성이 주택을 소유하는 일이란 역사적 격변기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남성 부재 상황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상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여성에게 소유권과 매매권이 등기 이전된 주택이 소설 속에서 주요한 소재와 화소로 채택되고 있다는 사실은 생존 경쟁의 전선에 뛰어든 여성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염상섭은 한국전쟁으로 파괴되거나 공동화된 서울의 모습과 피난살이의 고난을 다루는 단편 서사를 주택의 소유와 처분 권리가 남성에게서 여성에게로 이전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이 남성으로부터 여성에게로 가계 경제권이 전면적으로 이동하게 된 계기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또한 한국전쟁은 전통적인 ‘家’ 질서를 유지해야할 책임을 여성들로 하여금 대리하게 하는 사회적 임무의 본격적 전환기였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염상섭의 후기 단편 소설들은 해방과 분단, 미군정 시기와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분주하게 겪어나가며 쓰여진 소설들이다. 「두 파산」은 물론 「탐내는 하꼬방」을 비롯 「굴레」, 「새 설계」, 「해지는 보금자리 풍경」까지 염상섭 단편 소설들은 ‘집’을 기준으로 계상하여 취급되는 돈의 셈법은 그 계산의 정교함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런 섬세한 계산법은 당대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리얼리티를 확보하면서 핍진한 당시 삶을 재현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염상섭 소설이 보여주는 리얼리즘적인 면모이자 작가의 독특한 창작 기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가난과 곤경에 처한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이 취하는 온갖 자질구레한 계산법과 먹고 살기 위한 치밀한 계획들이 ‘집’을 매개로 하여 구성되고, 실천되며 간혹 배반당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염상섭에게는 ‘집’이야 말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고통의 세계에서 개인과 가계에 절대적인 안정 기반이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앞두고 이데올로기 경쟁에 내몰린 남성-지식인들을 대신해 여성 소유의 ‘집’과 ‘토지’를 새로운 국가의 법 제도를 통해 인정받는 일은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교두보이기도 했다.
먼저 염상섭 후기 단편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두 파산」(『신천지』, 1949. 5)의 첫 장면을 살펴보자. “정례 모녀”는 “교장”과 “옥임”에게 빌린 돈의 이자 걱정과 무리하게 시작한 학교 앞 문방구의 일을 보느라 하루하루 정신이 없다. 빌린 돈의 원금과 불어나는 이자를 갚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가게를 처분해야 하는 사실은 “정례 모녀”에게 가장 큰 고민이자 고통이었다. 하지만 「두 파산」에서 “정례 모친”과 “옥임” 그리고 “교장”까지 합세해 서로 차지하려고 드는 이 ‘가게’가 당시 변변치 못한 남성 주체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하게 대리하는 보완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정례 모친”에게 ‘가게’는 경제적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남편의 기능을 대체하는 생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늙은 남편을 둔 “옥임”에게 “정례 모친”의 가게는 젊은 남편을 둔 “정례 모친”이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고 여기게 만드는 질시의 산물이기도 했다. 한편 이 가게가 ‘교장’에게는 어떻게든 사취해 제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대상이기도 했다. 즉, 이 ‘가게’는 “정례 모친”과 “옥임”, “교장” 세 인물 모두에게 각자 ① 남편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가장의 경제적 기능을 대리하거나, ② 결핍된 남성성을 분유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질시로 상대를 박해하거나, ③ 딸의 아버지로서 가장의 역할을 간교하게 완성하는 의미를 갖는다. 「두 파산」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한 해 전인 1949년 발표된 작품이다. 해방과 분단, 미군정 시기와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진행된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은 재구조화된다. 아직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이기는 하지만 역사의 격랑은 이미 충분히 파고가 높았다. 국가 건설 초기 당시 가정의 생계유지 항목은 긴요한 남성의 사회적 의무로 강조되지 않았다. 염상섭을 제외하고 당시 쓰여진 소설들에서 보통 발견되는 제일순위의 남성 역할은 식민지의 오랜 유산을 정리하거나 극복하는 일에 할애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게다가 더 긴급하게는 국제정세를 비롯한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갈등 문제에 대응하거나 국가 건설의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는 일이 남성적 역할의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가정 경제를 유지해야 할 책임은 자연스럽게 여성에게 전가되었다.
「일대의 유업」(『문예』 3호, 1949. 10)과 「속 일대의 유업」(『신사조』 1호, 1950. 5) 역시 한국전쟁 직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소설 역시 서른 셋 밖에 안 된 아내인 “지주부(기현 어머니)”와 “어린 아이 둘”을 두고 죽어버린 남편이 남기고 간 “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살 가망도 죽을 용기”도 없을 것 같은 아내가 결정적으로 힘을 낼 수 있었던 사정은 남편이 자신의 이름으로 남겨주고 간 집 한 채 때문이었다. “기현 어머니”는 이 집 한 채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 하겠고, 이 집 한 채를 이용해 어떻게든 벌어먹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결국 “기현 어머니”가 자식 둘과 함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하는 일이란 남편이 생존 당시 취미 삼아 해보라고 권유했던 ‘삯바느질’과 남편이 남겨주고 떠난 집에 하숙과 세를 주는 일이었다.
“기현 어머니”의 경제관념은 철저하게 “남겨진 집 한 채”를 기준으로 하여 생성된다. 남는 방의 유효 숫자와 거기에 하숙과 세를 들였을 때 발생하는 비용을 산출하여 자신의 생활비를 타진한다. 「일대의 유업」에서 남편이 죽은 뒤 “기현 어머니”가 담당하는 주된 노동은 삯바느질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그 집안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남겨진’ 집 한 채가 계속적으로 발생시키는 금전적 이익이었다.
즉, “쉰도 못채우고 마흔 아홉 수를 못 때우”고 죽어버린 남편이 물려주고 간 집은 남성 가장의 빈자리를 계속 대신한다. 마치 살아있는 남편보다 죽은 남편이 물려주고 간 집 한 채가 가장의 역할을 더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집은 부재하는 남편의 상징이기도 했다. 물려받은 집 한 채가 자신의 소유로 남아있고 그것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상 “기현 어머니”에게 죽은 남편은 집을 떠올릴 때마다 늘 상기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즉, 「일대의 유업」에서 남겨진 집은, 죽은 남편을 대신하는 유산이자 정신 그 자체였다.
그래서 학생이 아닌 젊은 남성인 “김선생”에게 방을 내줄 때, 남편이 죽고 없는 젊은 과부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의식과 낯선 남자와 동거하게 됐을 때 받게 될 주변의 감시와 의심의 눈초리는 계속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생계 문제가 더 급박한 “기현 어머니”에게 “돈 만원”을 앉아서 벌게 하는 세입자를 포기하기 어려웠다. 사실 “생전 조선옷만 입던 늙은 남편을 시아버지 모시듯이 하고 살아온 기현 어머니”에게 새로 방에 들어온 젊은 “김선생”은 가슴을 뛰게 하는 동시에 먹고 살기 넉넉할 만큼의 든든한 세를 선뜻 내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대의 유업」이 동일한 에피소드로 구성된 식민지 시기 소설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조광』, 1935. 12)와 확연히 다른 점은 이 집을 두고 다른 인물들과 벌이는 경합 관계가 “김선생”과의 일련의 애틋한 에피소드 망 외부에서 연속적으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삯바느질 일감을 주는 “사동 마누라”는 “기현 어머니”를 아예 제 집으로 들여 일을 부리려고 한다. “사동 마누라”가 “기현 어머니”를 설득하는 방법 역시 철저하게 집 문제를 중심으로 기획된다. 지금 사는 집을 내놓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침모 겸 차집 겸 진일 마른일”을 도와주면 월급도 주고 남은 방 모두 세를 받으면 지금보다 형편이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기현 어머니”도 그 제안에 솔깃해하고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형편이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기현 어머니”는 남편이 물려준 이 집을 떠날 수 없다. 집은 당시 여성에게 일정한 거주 공간 의미 이상의 윤리 규범을 내재화하는 엄격한 상징 규율로 기능하였다. 여성 혼자 사는 집은 남편의 부재 사실을 숨길 수 없게 하지만, 아내가 계속 그 집을 지키는 일은 남편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가정사적으로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집을 팔거나 떠나 버리는 행위는 남편의 부재와 동시에 남편과의 관계성을 모두 단절하는 일이었다.
또한 소설 말미에 남편의 시동생 부부가 등장하여 그 집을 차지하기 위해 들이닥치는 것도 주택의 소유와 권한 분쟁이 가족의 법적 구성력과 전통적 ‘家’ 질서의 긴장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죽은 남편의 집이었기 때문에 시댁 식구가 그 주택의 일정 지분에 대한 법적권리를 주장하는 일이란 부재하는 남성을 대신하는 여성에게도 사유재산에 대한 법적권한이 원활하게 승계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1950년 한국전쟁의 전선이 구축되면서 후방의 여성 초과는 일반적인 현상이었지만 파괴되고 공동화된 서울을 지키는 임무 역시 여성에게 할당되었다. 「탐내는 하꼬방」(『신생공론』, 1951. 7)은 이와 같은 한국전쟁 중의 서울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집의 의미는 좀 더 즉물적인 가치의 재생산 수단으로 표현된다.
“세 자식하구, 네 입이 무얼 먹구 사나?”
“죽어 버리지!”
필준이댁은 손쉽게 결론을 지으니 마음은 거뜬한 듯하나, 눈물이 쭈르르 흐르며, 비를 맞고 허덕허덕 끌려가는 남편의 비 맞은 얼굴과 샤쓰가 등에 철썩 붙은 형상이 눈앞에 어른거려서 더 걸을 수가 없다. 발을 멈칫하고 서니 우산에 듣는 빗소리가 아니 들린다. 우산을 접어 들고 다시 걸었다. 또다시 눈물이 난다. 살 걱정인지 남편이 가엾어서인지……
“하꼬방을 넘기면 한 십만원 받을까?”
눈물 뒤에 잠깐 동안 마음이 가라앉으니까 생각은 다급한 실제문제로 돌아갔다.
유월 이십 칠일 저녁밥을 먹다가 공포인지 실탄인지는 알 도리 없으되, 당장 집 한모퉁이가 으스러져 나갈 것만 같고, 물계를 보러 대문 밖에를 나서던 남편이, 실탄이 팽하고 지나가는 통에 전날부터 싸놓았던 짐을 일제히들 꾸려 들고 사래같이 미려오는 피난민에 밀려 나갔던 것이다. 그때 다시 들어올 제 금반지를 빼놓은 것은, 불과 석달 내지의 일이지만, 벌써 옛날 일 같다. 다음에는 남편의 시계 양복 두루마기 치마 저고리…… 날마다 한 가지 두 가지씩 들고나기 시작하니 한 달이 못 가서 장속이 텅텅 비어졌다. 이러다가는 굶어 죽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남은 옷가지를 싹싹 쓸어다 장만한 것이 그 하꼬방이요, 어쨌든 그덕에 이즈막 한 달 남짓은 그 하꼬방이 다섯 식구를 먹여 살렸던 것이다.
(염상섭, 「탐내는 하꼬방」, 『신생공론』, 1951. 7)
피난을 떠난 남편을 대신하여 서울의 집을 지키고 사는 “필준댁”의 이야기가 「탐내는 하꼬방」의 주요한 서사이다. 여기서 ‘하꼬방’은 초라할 망정 남편이 떠나 버리고 남은 네 식구를 먹여 살리는 든든한 자산이다. 남편이 떠난 이후 집안의 물건을 모두 저당 잡히고 마련한 것이 바로 이 하꼬방이다. 남편이 떠난 뒤 세 달이 지난 후 유일하게 남은 자산은 하꼬방 뿐이지만 이 집만은 절대로 팔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꼬방은 마지막 남은 생계의 터전이자, 떠난 남편이 다시 돌아올 근거지이기 때문이다. 즉, 하꼬방은 “필준댁”에게 가장의 복귀와 존재 회복을 고대하는 기다림의 장소이다.
실제로 “필준댁”은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하꼬방 만은 절대로 팔지 않는다. 결국 그녀의 바람대로 남편 “필준”이 어느 밤 몰래 돌아온다. 적 치하에서 의용군과 부역에 지원하지 않은 젊은 남성은 감시와 수배의 대상이었다. 하꼬방 지하에 들어가 숨어 지내기를 며칠, 적치하 서울은 늘 위험과 공포가 상존하는 공간이었다. 결국 “내무서원”의 갑작스러운 ‘순검’에 존재를 들켜버린 남편 “필준”은 어딘지도 모르게 끌려가버리고, “필준댁”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노력했던 하꼬방 대문에는 ‘역산(逆産)’이라는 꼬리표가 나붙게 된다.
「탐내는 하꼬방」은 한국전쟁 개시 직후 점령된 적(敵) 치하 서울의 살풍경이 하꼬방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잘 묘사된 단편이다. 이 작품만큼 염상섭이 한국전쟁 시기 집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소설은 찾아보기 드물다. 필준댁이 마련한 하꼬방은 현재로서는 부재하지만 미래에 회복될 남성 가장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현재의 여성 가장이 통절하게 희생하는 공간이었다.
집을 기반으로 한 사적재산에 대한 법적 권리는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고통의 세계에서 개인과 가계에 절대적인 안정 기반이며, 새로운 법률이 지배하는 신생 공화국에서도 단연 확실한 법적 구성물이라는 염상섭의 판단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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