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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신도시의 밤과 생활의 리듬 / 최엄윤
밤이 사라졌다 올해 초부터 경상북도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예천과 안동의 경계에 있는 신도시에 오피스텔을 얻었다. 수납장을 열면 빨래 건조대까지 나오는 1인 맞춤형 작은 공간, 오피스텔에서 살아 보는 건 생애 처음이라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낯설다. 오랜 친구는 이곳에 와 보고 나를 닮지 않은 공간이라 했다. 게다가 2주 간격으로 한 번씩 서울로 오가는 두 지역살이를 하게 되면서 이곳, 저곳 모두에서 내 ‘몸에 맞는 생활의 리듬’을 찾기가 어렵다.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친구들을 초대하고, 산책하고, 달리고, 주말이면 공연·전시 등으로 채워졌던 일상의 리듬에 균열이 생겼고, 다시 내 몸에 적합한 생활 방식을 찾아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지방 도시의 밤은 일찍 시작된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아파트가 밀집한 상권과는 거리가 있다. 주변은 황량하고 밤이면 더욱 속도를 내는 자동차 소리만 크게 들린다. 어느 날은 퇴근 후 혼자

한국연구원
May 34 min read


목숨값과 면죄부 – 유가족의 절규와 사법적 딜레마 / 강부원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이 말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가장 유력한 선거구호 중의 하나였다. 노동현장에서의 안전 규정을 강화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목숨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겠다는 선언이었다. 아침에 출근한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죽게 돼 저녁이 되어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세계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더 이상 무리한 작업양을 비정상적인 속도로 처리하는 게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이 되어선 안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쫓는다는 이유로 안전에 대한 가치는 뒷전으로 밀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OECD 회원가입 국가 중 한국이 일터에서 죽는 사람의 숫자가 가장 많다는 통계가 말해주듯 많은 사람들이 그간 야만적인 노동 환경을 견디며 살아왔다. 2025년 통계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산업재해 사망자수가 32.9명으로 OECD 국가들 중에서 압도적 1위다. 즉, 이재명 대통령의 “일하다

한국연구원
May 33 min read


참을 수 없는 결단의 가벼움 / 마준석
호르무즈 해협은 앞으로 단순한 바닷길이 아닐 것이다. 이란은 지금까지 상상만 해오던 자신들의 지정학적 ‘무기’가 얼마나 강력한지 확인했다. 미국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한 나라의 지도부를 갈아버릴 수 있는 권능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정확히 그것까지만 할 수 있다는 무능력도 내보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제 협상과 폭력, 돈과 종교, 봉쇄와 봉쇄에 대한 봉쇄가 한꺼번에 겹쳐진 정치·외교적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 공간을 둘러싼 전쟁은 느닷없이 시작되었고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미국과 이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휴전을 간절하게 원하는 만큼 전쟁은 아마 느닷없이 끝날 것이다. 출처: MALLEY TODAY 애초에 미국의 대이란 강경책은 미국의 거시적인 전략의 일부였다. 풍부한 에너지 생산지인 중동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미국의 핵심적 관심/이익(interest) 공간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 지금까지 지출했던 금

한국연구원
Apr 244 min read


추천된 세계, 전도된 공동선 / 윤종환
소셜미디어 시대의 공동선 어떤 대상을 싫어하고픈 마음에 익명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들어본 적. 그 계정으로 혐오와 냉소를 쏟아내는 사용자를 보게된 적. 이해되지 않는 이념과 현상에 욕 해본 적. 동조하는 게시물을 발견하면 관련 댓글을 확인하며 ‘좋아요’, ‘하트’, ‘공감’, ‘대댓글’ 수를 통해 다수의 생각을 염탐해본 적. 그중 하나에 수를 보태어 본 적. 익명의 공동체에 참여하며 사소하지만 분명한 즐거움이나 해방감을 느껴본 적. 이러한 경험이 실제로 있었든 없었든, 우리는 이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세상에 함께 살고 있다. 본래 어떤 것을 싫어하거나 싫어하고 싶다는 충동은 자기 보존, 경계 설정, 정체성 유지과 관계된 정서적 본능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순한 성악 본성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의 기쁨을 감소시키는 원인에 대한 정념의 문제다. 그리고 이 정념은 또다른 사고(思考)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든 행위와 반응은 개인의 경험이

한국연구원
Apr 16 min read


更張은 경장인가, 갱장인가? / 노관범
언젠가부터 학문 공동체의 학술 글쓰기에서 한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술지 논문의 본문은 한글로 쓰고 각주에서 한문 원문을 밝힌다. 논문 본문에 한문 사료를 열거하고 입론을 전개하는 옛날 방식은 요즈음 찾아보기 어렵다. 본문의 한자는 가급적 한글로 변환해 주거나 괄호를 쳐서 병기해 준다. 이는 가독성 때문이다. 본문 중간 중간에 한자가 튀어 나오면 잘 읽다가도 흐름이 끊길 수 있다. 여기에 학술지 논문의 분량 제약도 한몫 한다. 투고 논문의 분량을 줄이는 좋은 방법은 본문에서 한자 병기를 삭제하는 것이다. 각주에서 출처만 밝히고 한문 인용을 생략해도 효과적이다. 학술지 논문에서 한자가 사라지는 현상은 때로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일으킨다. 한자의 독음이 하나가 아니라 그 이상일 경우 그것의 한글 표기가 정확한지 점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전에 한자를 쓰면 그만이었던 시절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문제이다. 예를 들어 1

한국연구원
Apr 13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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