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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여자들이 있었다 / 한보람
올 여름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른바 ‘케데헌’으로 불리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를 휩쓸었다. 영화가 처음 공개된 날부터 입소문은 심상치 않았다.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영화를 틀었는데,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생소함과 반가움이 밀려왔다. 화면에는 3인조 케이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거대한 악을 물리치는 화려한 액션이 펼쳐졌다. 온전히 여성들만의 강력한 힘으로 악령과 싸워 세상을 구원하는 시나리오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놀랐다. 이전에도 여성 슈퍼히어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 슈퍼히어로들이 적지 않게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더우먼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여성 히어로들은 강력한 힘과 재주를 가진 남성 히어로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도였다. 이처럼 확고하고 온전하게 그들만으로 세상을 지켜낸 여자들의 이야기는 이미 존재했을지라도 그리 익숙하고 당연한 건 아니었다. <케이팝

한국연구원
11월 12일3분 분량


우리가 숲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 / 오영진
작년 11월, 학생들이 숲속에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생태학 수업처럼 보이지만, 이 수업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이었다.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을 논하면서 우리는 왜 숲에 있었을까. 학생들이 찍어온 사진들을 보면 개미 세 마리가 기이하게 얽혀 있는 장면, 오래된 솔방울 위에 기생해 돋아난 버섯, 흙과 이끼가 엉킨 이미지들이 있었다. 모두 비정형적이고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나는 이 이미지를 그대로 프롬프트로 최대한 옮겨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재현을 시켜보았다. 그러나 결과물은 달랐다. 개미는 세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로 나오거나, 더듬이가 과도하게 많았다. 아무리 자세히 지시해도 학생들이 가져온 현실의 장면과 닮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언어 기반의 기계에게 재현하라고 시키는 일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어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지만, 사실 언어로 표현할

한국연구원
10월 30일3분 분량


축제의 감각을 일깨운 인천 15분 연극제 / 최엄윤
인천 배다리 마을에서의 15분 연극제 지난 8월 24일 인천 배다리 마을에서 진행된 15분 연극제를 찾았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15분 연극제는 8월 23일과 24일 이틀간 인천문화양조장 1층, 창영당, 문화상점 동성한의원, 유유기지 동구청년21 작은 공연장 등 4개 장소에서 9개 작품을 선보였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도원역에 내려 창영당까지 가는 길에 부모님과 딸로 보이는 어느 가족이 넓은 자리를 펼쳐 빨간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서울을 벗어났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여느 도시와 다름없는 대도시 인천에서 배다리는 그 이름만으로 특별한 정서를 자아낸다. 재개발에 맞서 주민들이 지켜낸 동네, 옛 양조장과 헌책방 등 원도심 공동체와 활동가들이 고공으로만 향해가는 세상에서 낮고 너르고 단단하게 신념과 가치를 뿌리내리는 곳. 15분 연극제에서는 창영당의 <목말라>(극단 우주선)와 <김박사와 철인 28호>(보통현상), 인천문화양조장의 <나시와

한국연구원
10월 30일4분 분량


1862년 3월 24일 서울 선비의 도성 답사 / 노관범
때는 임술년 2월 정축일, 그러니까 1862년 3월 24일이었다. 절기로는 춘분 무렵의 어느 봄날, 미시(未時)부터 인정(人定)까지 오후 내내 봄비가 내렸다. 측우기로 측정된 강우량은 1푼, 곧 2mm를 가리켰다. 이 날 서울 선비가 북부 순화방 집을 나섰다. 선비의 나이 스물 셋, 한창 성균관의 시험에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를 식히러 나들이를 나온 것일까. 경쾌한 발걸음은 이윽고 돈의문에서 멈추었다. 돈의문, 곧 서대문이 서울 도성 순행의 출발점이었다. 순행을 시작한 선비는 걸어가면서 성곽 너머를 보았다. 길마재 승전봉이 눈에 들어왔다. 길마재 승전봉은 구경 가기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 올라 탁 트인 시선으로 사방을 보는 재미란. 승전봉 등반은 특히 겨울이 좋았다. 동쪽으로는 성곽 안팎의 누대와 골목이 환히 보이고 북쪽으로는 도봉산과 삼각산의 아름다운 설경이 빛나며 서남으로는 얼어붙은 강물이 푸른 유리로 화해 있었다. 1820년 1월 2일 김조순

한국연구원
10월 30일3분 분량


당신은 지금 회복 중인가? / 김동규
당신은 모른다. 2024년 평온한 대한민국에서 당신은 계엄령이 선포되고 무장군인들이 국회로 난입하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되리라는 것을 모른다. 친위 쿠데타를 통해 정적 제거 및 장기 집권 계획이 오랫동안 준비되어 온 것을 당신은 모른다. 계엄에 깊숙이 관여한 이의 70쪽짜리 수첩에 500여명을 ‘수집’하겠다며 구체적인 체포 계획이 적혀 있으리란 것을 모른다. “여의도 30∼50명 수거”, “언론 쪽 100∼200(명)”, “민노총”, “전교조”, “민변”, “어용판사” 등이 ‘1차 수집’ 대상이고, 거기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청래 의원, 권순일 전 대법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방송인 김어준씨 등을 비롯해 문재인 전 대통령, 유시민 작가의 이름도 있으며, 그들의 ‘수용 및 처리 방법’, ‘사살’이라는 표현까지 있다는 것을 모른다. 1)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고 대통령 탄핵이 선고되고 새 대통령이 뽑히고, … 그러나 여전

한국연구원
10월 17일5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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