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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을 차지한 국악, 추다혜차지스(Chudahye Chagis) / 김보슬

생기탱천(生氣撑天)은 전통음악 공연 시리즈이다. 국악 전문 레이블 ‘플랑크톤뮤직’이 기획하고, 홍익대 앞 미술학원 거리에 위치한 음악 스튜디오 겸 공연 클럽 ‘생기스튜디오’에서 공간을 제공하는 형태로, 두 단체가 함께 주관하는 이른바 콜라보레이션이다. 공연장의 이름을 따, ‘생기가 하늘을 찌른다’라는 뜻으로 제목을 정한 생기탱천 시리즈는 2019년 5월에 시작되어, 격월로 국악 솔로 아티스트를 선정하고, 해당 아티스트가 대중에 소개하고 싶은 동료를 게스트로 함께 무대에 세운다. 국악은 더 이상 국악당에서만 듣는 게 아니라 클럽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로 소개된 아티스트 중 서도 소리꾼 추다혜가 있었다. 생기탱천을 통해 지난 9월 처음으로 자신의 밴드 ‘추다혜차지스(Chudahye Chagis)’를 시작하게 된 추다혜는 우연한 기회로 민요를 접하게 돼 서도소리를 전공하고, 전통음악과 연희를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무대를 경험해 왔다. 특히, 최근에 세계 무대를 휩쓸었던 밴드 '씽씽(Ssingssing)'의 멤버로 활약하는 동안 미국 NPR Tiny Desk 등 해외 유명 매체에 소개되어, 국내외로 활발한 행보를 구축한 바 있다.


[사진 1. 생기탱천 Vol. 3 추다혜, 2019년 9월 6일, 생기스튜디오, 사진 제공_추다혜]

[사진 2. 생기탱천 Vol. 3 추다혜(추다혜차지스), 2019년 9월 6일, 생기스튜디오, 사진 제공_추다혜]

'씽씽(Ssingssing)' 이후 솔로 활동, 그리고 추다혜차지스 활동으로 전통소리의 저변을 넓히고 있는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이 지면을 통해 공유한다.


Q 솔로 아티스트로 돌아간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새로운 작업을 위한 구상 중일 텐데.


시간에 쫓기며 잃었던 체력을 보충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지게 됐다. 나는 오기나 욕심만으로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 동기가 부여될 때까지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게으르게, 천천히 미루고 미뤘던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Q 씽씽 활동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 이전부터 꾸준히 퍼포머로서의 저력을 다져 왔다. 서도민요 뿐 아니라 연기 활동도 해 온 것으로 아는데. 추다혜의 소릿길은 어디서 시작하여 어떻게 지금으로 이어졌는가.


어릴 적 꿈은 단연 연기자였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던 차, 고2 때 우연히 방과 후 민요수업을 통해 서도민요를 배웠고, 그걸 특기로 삼아 연극과에 갈 심산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민요 전공으로 서울예대 국악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내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결국 다시 입시를 준비해서 스물네 살에 중앙대학교 음악극과 노래연기전공으로 재입학 했다. 그 당시에는 대세였던 뮤지컬에 출연하기 위해 다들 오디션을 보러 다닐 즈음, 나는 브레이크가 걸려 있었다. 연기도 좋고 노래도 좋은데 이상하게 라이센스 뮤지컬이 내 정서에는 맞지 맞았다. 그래서 전통연희를 바탕으로 한 창작극이나 한국 정서를 담는 음악극을 시작했다. 결국은 전통소리도, 정통연극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그야말로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한 우물을 파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더불어 치열하게 대학교만 두 군데를 다니다 보니 20대가 거의 끝나고 있었다.

그러다 서른 살에 희문 오빠(경기소리꾼 이희문)와의 작업을 계기로 다시 민요를 시작하게 되었다. 삼십대가 되고 이러저런 작업을 해 보니 식견이 넓어졌다.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더라. 연기든 노래든 장르를 하나로 결정해야 하는 게 아니구나, 퍼포머로서 다양한 무대에 서면 되겠구나, 싶었다. 긴 방황에 종지부가 찍히는 게 그렇게 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공연에 어울리는 퍼포머로서 자유롭게 무대에 서고 있다.

[사진 3. 2018년 씽씽 공연, 사진 제공_추다혜]

Q 추다혜차지스의 ‘굿 패키지’는 전통 굿을 작업의 소재로 삼고 있다. 사실 여러 장르에서 이미 굿 모티프를 작품화한 사례가 많다. 새로운 소재나 주제가 아닐 수 있는데도, 어떤 이유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이미 민요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움보다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게 관건이다. 굿에 관심을 가진 건 최근 3년 정도에 불과하다. 요가를 하면서 그렇게 됐다. 요가 음악의 주를 이루는 가사는 만트라인데 일종의 주문이다. ‘만트라’는 산스크리트어 단어이고, 뜻은 이러하다. 진언(眞言): 참된 말, 진실한 말, 진리의 말. 종교나 철학에 따라서 해석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요가 음악에서는 그 주문을 노래로 잘 풀어낸다. 그런데 어느 날 굿 음악을 듣는데 그게 만트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굿 소리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공부를 시작했다. 굿판을 찾아다녔다. 현장에서 굿 소리를 배웠고, 그걸 바탕으로 내 노래까지 짓기에 이르렀다.

[사진 4.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최정화—꽃, 숲' 중 퍼포먼스, 사진 제공_추다혜]

Q 추다혜는 연극 무대와 전통소리판에 모두 주력해 왔다. 연극이나 뮤지컬, 판소리는 극 구조를 띄는 데에 반해, 민요는 그렇지 않다. 민요는 시에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서사로부터 자유롭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렇게 상이한 두 장르를 모두 넘나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괴리는 없는가?


괴리는 없다. 재미는 있다. 배우와 보컬리스트라는 직업이 같으면서도 다르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 극 안에서 발산할 수 없는 에너지를 노래하는 동안의 짧은 순간에 몰입해 발산할 수 있다. 그 쾌감이 아주 짜릿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 찬다. 극 작업처럼 호흡을 길게 가져갈 수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면 뭐랄까, 무겁고 긴 인내의 작업이 필요해진다. 짜릿한 쾌감과는 달리 긴 여운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서 극 작업을 하면 그런 부분이 해소가 된다. 둘 중 한쪽으로 치우치면 아쉬움을 느낀다.

Q 앞으로의 방향은?


전통 예술가로서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전통문화를 ‘재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다만 창문 삼아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통에 교묘히 감미료를 섞어 맛 좋고 예쁜 것으로 변형시키고 싶지 않다. 가령, 무가(巫歌)는 무가다. 있는 그대로여야 한다. 그걸 부르는 내 자신의 태도가 그래야 하고, 세련된 척하면 안 된다. 옛 것은 옛 것 자체의 냄새가 나야 한다. 다만 오늘의 악기를 동원하는 것은 어떤 장점을 가진다. 오늘의 악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신구(新舊)의 대조가 옛 것을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게 할 따름이다. 추다혜차지스가 바로 그런 다리이며 창문이 되길 바란다. 그럼으로써 굿이 소실되는 것이 아니라 즐길 만한 무엇으로 발전하며 나아가기를 함께 바란다.

[사진 5. 추다혜, 사진 제공_추다혜, 사진 카피라이트_박기덕]


추다혜차지스, 굿 패키지 中 <차지타령>

2019.11.05. 서울 상수동 그문화다방


추다혜 <상여소리>

2018년 국악방송 콘서트 오늘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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