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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코리아>리뷰1: 퀴어를 밈화하기 / 김경수

최종 수정일: 2023년 5월 3일

『퀴어 코리아』는 2013년에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열린 <퀴어 코리아를 기억하기>라는 소규모 학술대회를 기반으로 쓰인 책이다. 이 기획은 2020년까지 7년 가까이 숙성된 끝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아홉 편의 논문은 인류학, 문화연구, 문학, 영화학 등 각자 분야에 정통한 연구자가 쓴 것이다. 그만큼 주제도 다양하다. 1부에서는 샤머니즘, 이상의 작품 속 퀴어 시간성, 연애 담론, 식민 전시체제 아래의 여성의 동성연애, 박정희 체제 아래서의 젠더 코미디 영화의 검열, 대중잡지에서의 퀴어의 스캔들화를 다룬다. 2부에서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의 게이 하위문화의 형성, 생존주의 시대의 젊은 퀴어 여성의 비가시성, 주민등록과 트렌스젠더 문제를 다룬다. 책에 적혀있듯이 선집에 참여한 연구자의 정체성도 다양하다. 또한 여섯 편의 논문에 제시되는 각자 다른 퀴어 연구 방법론은 미래의 퀴어 연구자가 참고하기에 적당하다. 비록 외국인의 시선으로 쓰인 것이라 한들 한국의 여러 문제적 상황과 그것을 촉발한 여러 지정학적 조건을 고려하려는 윤리적인 시선 아래서 쓰이고 있다. 한동안 이 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념비적인 책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서평을 쓰는 일이 멋쩍고 부담스러운 것도 이 책의 무게감 때문이다.


사실 이 책에 흥미를 느낀 것은 이 책의 문제 설정에 의해서다. 이 책의 편저자 토드 A.헨리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이 책은 지금 한국의 여러 문제적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2013년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그의 연인 김승현의 공개 결혼식을 시작으로 한국의 퀴어는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퀴어 퍼레이드가 전국 각지에서 매해 열리는 중이지만 맞불을 놓듯이 시위하는 이들도 무시할 수 없다. 퀴어를 악마화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여전하며, 우경화로 가는 백래시의 물결이 거세기까지 하다. 여전히 한국의 퀴어는 억압당하는 중이다. 『퀴어 코리아』는 앞서 말한 문제적 상황의 기원을 발견하고자 하는 책이다. 토드 A. 헨리는 이 책은 “사회문화적 불안이 가득했던 순간을 상기시키는 역사화된 설명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비규범적 표현과 욕망을 모두 침묵시키고 지우고 동화시키려는 권력의 장에서 이들 과거의 지속적인 영향을 살펴보”1)려는 목적에 기반해 있다고 밝히기까지 한다. 근현대사를 아우르며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이성애가부장제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상성 규범의 기원을 밝히려 하는 문제 설정은 그야말로 야심이 가득하다.


이러한 문제 설정은 1910년대 이후 한국 근현대사를 권위주의와 탈권위주의라는 기준으로 나누고 그것으로 목차를 나눈 책의 구성과도 이어져 있다. 토드 A. 헨리는 탈권위주의에서 이루어진 해외 퀴어의 경험에 근거한 기존의 퀴어 이론이 한국의 퀴어가 경험하는 비가시화의 문제를 설명할 수가 없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편저자는 한국만의 고유한 역사적 경험을 파고든다. 일본의 식민 지배, 냉전, 민족 분단, 박정희의 독재 등 여러 역사적인 사건이 어떻게 가부장제와 민족국가주의 등을 생산하는지 분석하며, 이를 권위주의라는 프레임으로 분석한다. 편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으로 여러 연구자의 연구를 연대기 순으로 배치한다. 191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룬 6편의 연구를 1부로, 1990년대 이후 탈권위주의 시대를 다룬 3편의 연구를 2부로 배치하고 있다. 책은 권위주의의 정신적 유산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배치로도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그러한 배경 아래서 형성된 규범적인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시대마다 비규범적 섹슈얼리티를 추방했는지를 기준으로 편집한다. 여섯 편의 논문은 놀라우리만치 지금 우리 사회와 이어져 있다. 이 책은 과거에 더욱 비중을 두면서 독자가 그 시간을 체험하기를 바라고 있다. 근현대사 속의 퀴어를 보고 독자가 LGBTQ를 둘러싼 지금의 문제적인 상황을 고찰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권위주의에 기반한 퀴어 대상화는 놀라우리만치 정치적 밈의 생산 과정과 같다. 정치적 밈은 동질 집단을 모으고자 타자를 악마화하는 데에서 탄생한다. 정치적 밈은 세계를 나와 타자로 나누려는 이분법의 논리에서 생긴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나누는 논리로도 이어진다. 이 책의 6부는 퀴어의 서사를 교훈담으로 전환하고, 가부장제를 공고화하는 정치적 밈의 탄생 과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3부에서도 서양에서 연애라는 단어가 번역되면서 정신적 사랑과 신체적 사랑의 분리가 이루어졌다고 분석한다. 물론 이러한 사랑은 이성애중심적인 것이며 퀴어는 이 이분법 가운데에서 비가시화되었다. 이 책은 여태껏 한국에서 정상적인 성 규범에 흠집이 나려 할 때마다 거시적, 미시적 차원 둘 다에서 이러한 작업이 수행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퀴어는 규범적 성애의 희생양으로 밈화된 셈이다. 이는 국가, 이념이라는 거대 담론 아래서, 신문 등에서 유통되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이 책의 미덕은 퀴어에 가해진 정신적 억압을 여러 자료의 틈새에서 발견하는 연구자의 시선으로부터 온다.


한편 퀴어는 인터넷 밈과 친연성이 있기도 하다. 7,8장은 퀴어가 비가시화되는 것의 문제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와도 맞물린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무한경쟁과 고용 불안정 속, 살아야 한다는 가언명령이 우선시된 생존주의 사회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성적 규범을 유지해야만 하는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 커밍아웃은 수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항상 중산층 퀴어다. 퀴어가 정상성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인해서 본인의 정체성을 감추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책의 8장에서 젊은 여성 퀴어가 스스로 잉여라고 말한다는 사례가 나온다. 이때 잉여는 고용되지 못하고 자본주의의 일상성에서 탈구된 이들이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버려진 이미지를 가공하고, 인터넷의 하위문화인 밈 문화를 탄생하게 했다. 이는 3장에서 살펴본 이상의 문학 세계에서 드러나는 퀴어적인 시간성, 잉여의 시간성과도 닮아있다. 젊은 여성 퀴어는 무직, 패배자 등을 뜻하는 자학적인 뉘앙스로 이 단어를 쓰기는 한다. 그러나 잉여는 한편으로 전복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의 구성은 퀴어와 잉여 등 사회로부터 밀려 나간 모든 밈적인 것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1) 『퀴어 코리아』, 토트 A. 헨리 편저,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 연구자 네트워크 옮김, 산처럼, 2022, p.27


김경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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