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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어류(朱子語類) 권 14 서평/안동섭


『주자어류(朱子語類)』를 홀로 완역하겠다는 계획은 좋게 말해도 무모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책을 내겠다고 결심한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 그런 (바보 같은) 결심을 하게 되셨어요...?”라며 위로에 가까운 질문을 건네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짧은 버전 스토리와 긴 버전 스토리가 있으니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고 답하는데요, 아쉽게도 지금까지 그 누구도 긴 버전을 고르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 번 길게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성리학을 전공한 이래로 『주자어류』는 늘 애용하는 문헌이었습니다. 실제로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지난 20년간 어떤 형태로든 『주자어류』의 문장을 읽지 않은 해가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240개월간 한 번도 읽지 않은 달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뿐만 아니라 조선사나 동양철학 등 유관 분야 연구자라면 누구라도 어떻게든 꾸준히 읽어왔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헌이고, 피하고 싶어도 우회할 수 없는 강적입니다. 강적은 두려운 상대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매력적인 상대입니다.『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이 강적을 맞아 싸울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저 또한 언젠가 『주자어류』를 상대로 두근두근하게 한 판 붙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2020년, 저는 중국의 호남대학(湖南大學) 악록서원(嶽麓書院)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엄중한 코로나 방역을 뚫고 중국에 가기 위해서는 4주간의 격리가 필수였습니다. 첫 학기를 마치고 귀국하니 우리 정부 역시 저에게 3주간의 격리를 요구했습니다. 방학이 끝날 무렵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4주간의 격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해가 저물 무렵 헤아려 보니 1년 중 격리로 보낸 시간만 3개월이었습니다. 저는, 호텔인간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참으로 기막힌 경험입니다.

저처럼 얌전하고 차분하고 내성적인 사람에게 격리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저, 책도 없고 인터넷 연결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노트북 하나만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어려웠을 뿐입니다. 이럴 때는 역시 시간을 때려 박는 반복성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고전 번역이었습니다.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기계적으로 번역하다 보면 무슨 책이든 금방 번역해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물론 큰 착각이었습니다. 반년이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첫 번째 번역서의 출간까지는 실제로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착각했던 것일까요?


첫째, 번역이라는 업의 본질을 오해했습니다. 고전 한 줄 읽고 우리말로 한 줄 쓰는 일을 끝까지 반복하는, ’기계적’ 작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그야말로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고전 번역은 중노동이지만 동시에 제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창조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암벽등반과 같았습니다. 누구에게도 정복된 적 없는 암벽에 못을 박아 넣고 줄을 걸어가며 등반하는 일은 일견 근육만 수고로운 일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매 단계 다음 스텝을 생각하고 살펴야 하는 창조적인 작업입니다. 단조로워 보이는 표면 뒤에 활발발(活潑潑)한 정신적 활동이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성은 물론 외부의 조건에 구애되지 않고 제멋대로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주어진 도전을 마주하여 그때그때 최선의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도전자의 정신은 날카롭게 벼려집니다. 고전 번역은, 암벽등반이 그러한 것처럼,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정신의 끝없는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저는 이 작업을 책도 없고 인터넷 연결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노트북 하나만 가지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오, 세상에. 지금 이 문장을 제 손으로 쓰면서도 다시 한번 아찔합니다. 참으로 끔찍한 오산이었습니다. 올해 초 넷플릭스는 미국의 암벽등반가 알렉스 호놀드가 맨손으로 타이페이101 타워를 등반하는 장면을 전 세계로 송출했습니다. 세상 어딘가에 그런 초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평범한 장삼이사가 장비 하나 없이 509미터 높이의 고층건물을 등반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한문 번역의 초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저도 나름 전문가이니만큼 장삼이사 필부필부 수준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맨몸으로 타이페이101을 등반할 수준은 아닙니다. 아이신기오로 위윈(愛新覺羅毓鋆, 1906-2011) 노사는 청나라 황실의 후예로 대만 봉원서원(奉元書院)에서 오랜 기간 고전 한문을 가르쳤습니다. 고전에 매우 해박했던 그는 기세등등한 학생들에게 종종 “자네들이 참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예전 궁녀들이나 환관들 수준의 문해력밖에 안 된다네”라고 격려하며(?) 기를 꺾었다고 합니다. 위윈 노사 같은 분들은 어쩌면 맨몸으로 『주자어류』를 완역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만, 문해력이 환관 수준인 안동섭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스포츠 격언 가운데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거꾸로 이해합니다. 세상 모든 하수들은 겸허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좋은 장비를 써야 합니다. 이왕이면 너무 과하다 싶을 만큼 좋은 장비를 써야 합니다. 저는 첫 격리에서 풀려나는 즉시 악록서원이 지급해준 초임교수 연구비를 거의 모두 중국 자료를 구입하는 데 퍼부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은 중국 생활이지만 그 덕에 많은 문헌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2022년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악록서원에서 퇴직하고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연구원직을 얻어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성대 도서관에서 보관 중인 『주자어류』󰡕 관련 서적의 양과 질은 과연 훌륭했습니다. 비록 반년 만에 다시 울산대학교로 이직하게 되었지만, 그 사이 한국어 자료를 마음껏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울산대학교에 부임하고 보니 직장 동료들 가운데 일본 유학파가 많았습니다. 이런 공교로운 행운이 또 있을까요? 저는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어 자료를 두루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역시 스리샨(石立善, 1973-2019) 선생의 박사학위논문을 확보한 일이었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의 교토대학 문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스선생은 상해사범대학에서 재직하셨습니다.『주자어류』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로 뛰어난 논문을 다수 남겼으나 학위논문만큼은 미처 저서로 출간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로서는 이 논문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조금 알아보니 교토대학 문학부 도서관에 한 부, 일본국회도서관 간사이관에 한 부가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교토대학 문학부 도서관에서는 저자 본인 혹은 유가족의 명시적 허가가 있어야만 논문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하고, 국회도서관에서는 열람은 가능하나 논문 전체를 복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고, 최후에는 교토대학의 후쿠타니 아키라 선생의 결정적인 조력을 받아 논문 전체를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생입니다.

일본의 다양한 학술지에 실린 『주자어류』󰡕 번역의 파편들을 수집하는 것 역시 난관이었습니다. 지금도 원하는 모든 자료를 입수한 상태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민기, 홍신혜, 다나카 유키 선생 등의 도움을 받아 상당한 분량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장비를 갖추려는 하수를 물심양면 도와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관련 자료를 왕성하게 수집하다 보니 이미 어떻게든 번역된 구문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자어류』의 완역은 없어도 부분부분 번역된 경우는 적지 않았던 것이지요. 저는 천성이 게으른 편이라 남들이 이미 해놓은 게 있거든 그 위에 공짜로 업혀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컨대 무슨 책 몇 페이지에서 『주자어류』󰡕 권14의 27번째 조목을 인용하고 번역해 두었다고 한다면, 제가 해당 조목을 맨땅에서 초벌 번역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선배 학자들의 번역문과 역자주를 참조해가며 재역(再譯)하면 일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번역문들을 인덱싱하기 시작했습니다. 엑셀로 거대한 표를 만들어서 『주자어류』󰡕 각 조목의 번역문이 어느 책의 몇 페이지에 실려 있는지 찾아서 기록한 것입니다. 이 표 하나만 만들면 『주자어류』번역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워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낸 번역문 인덱스는 과연 쓸모가 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아주 엄청나게 도움이 된 것은 또 아니었습니다. 번역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는 여러 학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번역위키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 혼자 해낼 일은 아닌 것 같으니, 위키(Wiki) 페이지를 하나 만들어서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번역문을 업로드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었지요. 국내 각지에서 암약하고 있는 성리학 마니아들이 달라붙어서 협업한다면 의외로 금방 끝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람을 일으켜보겠다는 생각으로 제가 앞장서서 원문을 통째로 업로드하고 매일 한두 조목씩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꼬박 1년을 그렇게 하고 나니 권 14부터 18의 초반까지 초벌번역해내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대와는 달리 성덕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은 없었습니다. 황인석 선생이 권 37의 일부를 번역해 업로드해 주신 것이 유일한 예외입니다. 결과적으로 위키 프로젝트는 불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거울을 보고 스스로의 동기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자료를 산더미처럼 갖추겠다는 마음도, 이미 번역된 번역문을 수집하여 인덱스를 만들겠다는 마음도, 위키 페이지를 만들어서 호응을 유도하겠다는 마음도, 따지고 보면 이 과업을 어떻게든 ‘날로 먹겠다’는 심보가 아니었을까요? 제 이름을 걸고 번역서를 내는 것이 한편으로는 귀찮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런 불순한 의도로 시종일관 이런 꼼수와 저런 편법, 신비로운 묘수와 기책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속내를 인정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습니다. 속이 시원해지고 나니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그냥 해치워버리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정식 번역서 출간을 결심했습니다.


결심이 서고 나니 불순한 마음으로 벌였던 기왕의 삽질들이 번역서를 길러내기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되어주었습니다. 잔뜩 쌓은 자료, 열심히 정리한 번역문 인덱스, 위키 페이지에 올려둔 초벌 번역을 조합해서 원고를 작성하자 생각보다 일의 진척이 빨랐습니다. 25년 말에 권 14를 출간했고, 이 글을 작성 중인 26년 5월 현재 권 15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상태입니다. 제가 너무 일찍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으면서 앞으로 50년 정도 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주자어류』󰡕 완역도 가능할 듯합니다.

어쩌면 그 전에 죽는다고 해도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기 전까지 한동안 성실히 활동하면서 유의미한 분량을 출간하고 죽을 수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이 작업이 의미 있는 작업이고, 즐거운 작업이며, 제가 내려놓은 자리에서부터 누군가가 다시 시작할 가치가 충분한 일이라는 것을 몸소 입증할 수만 있다면, 저보다 늦게 태어난 누군가가 나타나 이 일을 마무리해 줄 거라고 믿습니다. 마지막 한 권을 출간하고 막을 내리는 게 반드시 안동섭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사정 설명만 늘어놓다 보니 정작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짧게 이야기하고 두서없는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한형조(1958-2024) 선생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번역은 엽기적이어야 합니다. 원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그 포인트를 분명하고 선명하게 소화해서 현대어로 전달하는 번역은 설령 틀렸어도 좋은 번역입니다. 반면에 자기가 번역하는 내용을 스스로 아는지 모르는지도 남들한테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뭉개버리는 번역은 설령 트집 잡기 어렵게 잘 뭉갰다 하더라도 비겁한 번역입니다. 애매하고 비겁하게 뭉개느니 선명하고 화려하게 틀리는 편이 낫습니다.



언젠가 제가 지은 언어의 집이 낡고 초라해질 즈음 누군가가 새 언어로 새 번역서를 내놓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의 선명하고 화려한 오역들은 그분이 손수 바로잡아 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제 실수가 아무리 바보 같아 보인다 하더라도 뭉개는 방식으로 교정하지는 마시옵고, 역시나 선명하고 엽기적인 방식으로 교정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안동섭 (울산대학교)
안동섭 (울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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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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