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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의 계보를 쓴다 — 1950~70년대 한국 소설과 장애의 정치적 상상력 / 이한빛


현대 사회에서 장애는 의료적 치료의 대상 혹은 복지 제도의 수혜자로 이해되곤 한다. 한국 사회에 등장한 수많은 손상된 신체 또한 전쟁과 빈곤, 산업화라는 파도 속에서 등장하면서 그러한 역동의 부산물이자, 의료 및 복지 제도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서 등장해왔다. 이에 따라 장애 신체는 치료를 통해 정상 신체로 복귀되어야 할 결핍된 존재, 혹은 복지 자원 투입을 통해 정상 시민의 주변부 자리에 조건부로 포함될 존재로 의미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손상된 신체를 결핍된 존재로, 사회적 부담으로 보는 관습적 이해는 정상 신체의 시민을 상수로 둔 위계를 바탕으로 하며, 비정상 신체를 분할하고 비가시화하는 통치 권력 및 통치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즉 장애는 의료와 복지의 대상이기에 앞서 정상 신체를 상수로 삼는 사회질서가 작동하는 자리 그 자체이다. 따라서 장애를 사유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비정상 신체의 주변화·낙인화·규범화를 통해 지탱되어온 정상성을 상대화하고, 생산성과 능력을 척도로 삼는 근대적 인간 개념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일이다. 장애에 대한 인문학적 논의는 장애인을 향한 온정주의나 장애인을 ‘위한’ 연구를 넘어, 바로 이 인간 규범의 경계 자체를 문제화하며 그 너머를 모색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해 이 연구는 한국 문학에 나타난 장애 재현을 비판적 장애학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한국 문학에서 손상된 신체 및 정신을 찾는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장애 형상은 시대적 아픔이나 계급, 민족의 비극을 드러내는 상징의 차원에서 이해되는 경향이 강하며, 손상 및 장애에 내재된 억압적 측면과 잠재성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장애를 비정상 신체를 주변부에 배치하고 여러 부정적 의미를 부착해온 과정을 드러낼 거점으로 본다면, 한국 문학의 장애 형상들은 오히려 정상 신체 중심의 사회질서를 비판할 자리이자, 장애에 대한 깊은 인식과 앎을 길러낼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비판적 장애학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한국 문학장에 등장해온 장애 형상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학 연구를 통해 비장애 중심주의(ableism)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 및 이를 중심으로 한 운동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 비판적 장애학에서는 손상을 ‘장애화’하는 사회적 환경뿐만 아니라 지식체계, 문화, 대중 매체, 정체성, 인식론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비정상 신체에 대한 배치와 차별, 의미가 생산됨을 주목한다. 그 중에서도 문화적 장애학은 문학 및 문화적 재현과 장애의 관계를 심문하면서, 전형적인 장애 재현을 비판하는 동시에 재현 및 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따라서 이 관점은 단순히 장애인에 대한 차별 교정을 넘어, 비장애인의 신체와 정신만을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것으로 설정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를 사회 밖으로 밀어내거나 보충적 존재로만 위치시키는 강력한 구조이자 인식틀을 문제화한다. 동시에 억압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는 역동과 가능성을 섬세하게 포착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 연구는 불구(crip)라는 용어를 전략적으로 전유한다. 불구는 오랫동안 장애인을 비하하고 낙인찍는 단어로 쓰여 왔지만, 본 연구는 이 단어가 가진 오욕의 역사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끌어안음으로써 정상성의 질서에 도전하는 저항적 언어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이 연구가 구성하고자 하는 불구의 계보는 단순히 장애가 나타난 작품들을 목록화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 신체를 말하기 위한 조건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각축이 존재했는지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이 연구가 주목하는 시기는 1950년대부터 70년대이다. 한국전쟁 이후 손상된 신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물리적 현실과, 1980년대 이후 장애인 복지법 제정 등 국가 주도의 제도적 장애 담론이 본격화되기 이전의 공백기가 이 시기에 맞물려 있다. 제도화 이후의 장애 담론이 주로 권리와 시민권이라는 정제된 언어로 장애를 관리했다면, 그 이전인 50~70년대의 소설은 장애를 둘러싼 불안과 공포, 그리고 제도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은 이질적이고 역동적인 장애 인식들이 드러나는 장이었다. 본 연구는 바로 이 시기 문학이 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하는 방식을 넘어, 그 안에서 배태되었던 풍부한 장애 인식의 가능성을 발굴하고자 했다. 연구의 구체적인 전개는 전쟁, 문학, 정치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장애가 던지는 핵심적인 질문들을 따라간다. 먼저 한국전쟁 이후 급증한 상이군인과 이들을 수용했던 시설이라는 공간에 주목한다. 손상된 신체는 전후 사회에 근본적인 불안을 일으키는 존재였으며, 문학은 이러한 불안을 상이군인이라는 모순적 형상을 중심으로 펼쳐내거나 시설이라는 폐쇄적 공간 속에서 그 불안을 증폭 혹은 억제시키며 장애 신체의 위치를 규정해 왔다. 이어서 이청준과 오정희 같은 작가들이 자신의 문학적 이념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장애라는 낯선 타자를 어떻게 호명했는지 살핀다. 이들의 작품은 장애를 문학적 기획을 위해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타자와의 진정한 만남의 순간을 포착하며 장애를 사유하기 위한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 한수산의 『부초』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장애가 어떻게 단순한 결핍을 넘어 정치적 주체화의 언어가 되는지 분석한다. 특히 난장이의 불구성에 주목함으로써 난장이라는 불구적 존재가 건강한 노동자-시민을 전제하는 저항적 주체 형성 방식이 아니라 비정상 신체들 간의 연결을 통해 취약함을 매개로 새로운 정치적 주체화 가능성을 제시하고 불구의 존재론을 열어내는 과정을 규명한다. 이러한 분석의 흐름은 장애를 고통의 상징이나 문학적 장식으로 보던 관습을 넘어, 장애 정치를 논의할 수 있는 인문학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본 연구는 한국 문학 연구에 비판적 장애학의 시각을 도입하여, 장애를 한국 문학사의 정전들을 재해석할 방법론이자 인식틀로 정립한다. 이는 비정상 신체의 의미를 확장하고 다양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장애 인권이 선형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보는 진보 서사를 복잡화하는 동시에, 시대적 아픔이나 계급·민족의 상징으로 환원되어온 장애 형상에서 다층적인 의미들을 발굴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연구는 당사자 중심의 장애 운동이 비정상 신체의 자리를 확장하고 쟁점화해온 역사 위에서, 문학이 변혁적 역량을 재발굴할 아카이브임을 드러낸다. 이는 문학 연구가 비판적 소수자 연구와 관계 맺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작업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인문사회 학술장에서 장애에 대한 이해는 의미심장한 전환을 거치고 있다. 오랫동안 장애는 의료적 재활과 복지 수혜의 대상으로 다루어졌으나, 40여 년간 이어진 당사자 중심 장애 운동의 역사가 축적되면서 장애는 점차 권리와 시민권의 언어로, 나아가 정상성 자체를 심문하는 비판적·교차적 사유의 거점으로 재위치되고 있다. 교차성을 고려하며 한국 장애사 서술을 시도하는 기초 연구들, 식민지기부터 동시대까지 장애 서사를 재분석하는 문학 연구들, 접근성과 재현 가능성을 심문하는 장애 연극 연구들이 이러한 전환을 보여준다. 국외로 시선을 돌리면 장애 생애 글쓰기(Disability Life Writing)를 통한 당사자 목소리의 가시화, 고대 그리스 문학부터 동시대까지 범람하는 장애 형상을 재의미화하는 작업이 축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장애라는 범주가 포괄하는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다룬 연구들은 장애 범주에 내재한 갈등과 균열 또한 전면화하면서 비정상 신체가 균일한 소수자 집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논쟁적이고 경합적인 위치임을 드러낸다. 본 연구는 바로 이 전환의 한가운데에 놓인다. 그간 한국 문학 연구가 장애를 시대적 비극이나 계급·민족의 상징으로 환원해온 관습을 비판하고, 제도화 이전인 1950~70년대라는 시기의 소설 작품을 비판적 장애학의 방법론으로 재독함으로써, 본 연구는 한국 문학사의 정전을 '불구의 계보'라는 새로운 인식틀로 재배치하는 작업에 위치한다.


이로써 본 연구는 문학이라는 아카이브를 통해 장애를 둘러싼 우리의 앎을 갱신하고, 정상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치적 상상력을 제안하고자 했다. 이 때 장애는 결핍이나 불운이 아니라, 취약성(vulnerability)과 상호의존성의 개념을 토대로 인간의 근본적 조건을 재검토하게 하는 비판적 거점이자, 주변화되고 억압된 신체들이 길어 올린 정치적 상상력이 발견되는 장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모든 인간이 타자와 환경에 의존하는 취약한 존재라는 사실로부터 서로의 취약함에 응답하는 공동체를 상상할 인문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장애 인권이 선형적으로 진보해왔다는 서사를 복잡화하고, 문학을 장애를 둘러싼 사회적 앎을 갱신하는 아카이브이자 변혁적 상상력의 저장소로 재정립하고자 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향후 연구는 본 연구가 다룬 시기를 넘어 1980년대 장애인 복지 제도 및 담론이 구체화되던 국면과 동시대 문학으로 '불구의 계보'를 확장하고, 장르의 측면에서는 소설을 넘어 시·영화·퍼포먼스·웹 기반 글쓰기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로 분석 대상을 넓히는 방향으로 확장해가고자 한다. 인종·젠더·계급 연구와의 교차적 대화를 본격화함으로써, 한국의 인문학적 장애 연구는 정상성의 경계를 허무는 정치적 상상력을 단일한 목소리로 수렴되지 않는 풍부한 논쟁의 장으로 성장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이한빛(2025 우수 박사학위논문 출판지원사업 선정자, 문학 및 장애학 연구자)
이한빛(2025 우수 박사학위논문 출판지원사업 선정자, 문학 및 장애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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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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