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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도시, 고구려 도성 / 권순홍



1. 연구의 출발과 문제의식


대학원 석사과정의 첫 수업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강독 수업이었다. 사료에 계속 나오는 졸본, 위나암, 국내성, 평양성, 평양동황성 등 여러 도성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를 바탕으로 그 위치를 비정하는 작업을 레포트로 제출한 뒤, 그것이 석사학위논문으로 발전하였다. 박사과정에 진학한 뒤에는 석사학위논문에서 해결하지 못하거나 다루지 못했던 고구려 도성 관련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며 학위논문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주제의 박사학위논문이 제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가 구상 중이던 목차와 거의 비슷했다. 대폭 수정이 불가피했다. 내용이 다르더라도, 목차가 비슷하면 아류로 보일 수 있다는 선배의 조언이 있었다. 졸본-국내-평양의 시간순서를 따르지 않는 목차가 필요했다. 다른 여러 박사학위논문의 목차를 탐독했다. 일본학계의 연구서 목차를 참고해보라는 조언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도성사 연구서들을 구성하는 개념어들이 주목되었다. 한국학계에서도 많이 사용되던 ‘공간’ 등의 개념 외에, ‘경관’, ‘도성권’ 등 생소한 개념들이 흥미로웠다. 그들의 문제의식을 이해해가면서 고구려 도성 연구의 새로운 돌파구가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이로써 학위논문 『고구려 도성 연구』는 시간순이 아닌, 「위치-공간(경관)-관계(도성권)」와 같은 개념별 목차로 구성될 수 있었다. 선행연구와 구분지으려던 개인적 고민이 비로소 문제의식으로서 선명해진 결과였다.



2. 지리적 위치에서 공간적 배치로


도성에 관한 관심은 언제나 지리적 위치로부터 출발한다. 장소를 소거시킨 상태에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도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고구려는 졸본(卒本)에서 국내(國內)로, 국내에서 다시 평양(平壤)으로 최소 두 차례 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평양을 제외한 두 곳은 멸망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 위치가 잊혀졌으므로, 고구려 도성에 관한 관심은 ‘그 위치가 어디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 이후 이 주제를 선점했던 일본 연구자들의 연구는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재단되었다. 연구의 시작부터 조선총독부가 위탁한 고적조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연구의 방향 역시 고구려사를 미발달된 사회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비록 본격적인 현지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의 환런(桓仁)을 졸본으로, 지린성(吉林省)의 지안(集安)을 국내로 비정할 수 있었고, 평양 지역 내 고구려유적들이 다수 발굴되었지만, 그 와중에 『삼국사기』󰡕 초기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해석이 강조되거나 고구려 도성제의 저급성이 언급될 뿐이었다. 당시 연구방법론으로서 중시되었던 근대 지리학 및 고고학 자체가 제국주의의 도구로서의 성격이 강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오녀산성, 고구려 초기 도성으로 비정되는 오녀산성(중국 랴오닝성 환런)
오녀산성, 고구려 초기 도성으로 비정되는 오녀산성(중국 랴오닝성 환런)

해방 이후 한국 연구자들의 과제는 선행 연구의 제국주의적 시선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바탕으로 한 재해석이 속속 제출되었고, 쟁점은 도성의 지리적 위치와 관련된 환런에서 지안으로의 천도 시점에 맞추어졌다. 다만, 현지에 대한 조사는 물론, 접근조차 어려웠으므로, 문헌사료에 대한 논리적 해석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1980년대 이래 중국의 발굴조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중국 내 고구려 도성에 관한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문헌사료 간의 논리성뿐만 아니라 고고자료와의 정합성까지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료에 등장하는 초기 도성의 구체적인 위치에 관한 논쟁이 재점화됨과 동시에 천도 시점에 관한 해석에도 새로운 견해가 제기되었다.

논의의 심화는 주제의 확장으로도 이어졌다. 지리적 위치 및 천도 시점뿐만 아니라 도성의 구조와 성격의 변화까지 고려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중국에서 고구려 도성 관련 유적들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이제 도성 연구의 관심은 지리적 위치와 그에 수반된 천도 시점에만 국한될 수 없었다. 도성 내부의 공간적 배치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은 주제의 확장은 다시 연구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 공간은 단순히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전개와 더불어 끊임없이 재생산된 사회적 산물이므로, 공간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그 사회를 이해하는 관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치가 인간행위의 단순한 무대라면, 공간은 인간행위에 의해 생산된 결과물인 셈이다. 이제 고구려 도성 연구에서는 어떤 공간이 어떻게 생산되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주된 관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로써 도성 연구는 새로운 장을 맞이한 셈이다. 나의 학위논문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고구려 도성을 단순한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생산된 공간의 문제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한 걸음만 더 내딛고 싶었다.


장군총,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으로 비정되는 지안(중국 지린성)에 있는 초대형 적석총
장군총,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으로 비정되는 지안(중국 지린성)에 있는 초대형 적석총


3. 권력의 문제에서 삶의 문제로


도성에 관한 관심은 사회적 산물로서의 공간적 배치로 그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그 관심은 필연적으로 공간에 투영된 권력관계를 주시한다. “사회적 관계는 하나의 공간으로 투사되며 그 공간을 생산함으로써 공간 안에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결국 도성 공간에 대한 분석은 고대 권력에 대한 이해와 무관하지 않다. 공간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한편으로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인간의 삶도 간과할 수 없다. 공간에 투영된 사회적 관계는 비단 권력관계뿐만 아니라, 집단과 집단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공간을 넘어, 관계의 공간에 주목하고 싶다. 관계의 공간은 인간의 삶을 통해 생산된 것이리라. 도성의 삶은 성벽 안에서만 완결되지 않았고, 주변 취락과 생산지, 숲과 하천, 이동 경로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권력에 의한 공간의 생산, 그리고 생산된 공간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 양자의 상호작용을 고민할 수 있다.

2010년 일본학계에서 처음 제기된 ‘도성권’ 혹은 ‘도성경역’, ‘도성권 사회’라는 흥미로운 개념들에 따르면, 도성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주변 지역과의 관계에 의해 유지됨으로써 관계의 공간을 형성하였다. 고구려 도성의 경우도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권력의 문제로만 다루어졌던 도성 연구를 삶의 문제로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학위논문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있었고, 이로써 「위치-공간(경관)-관계(도성권)」라는 구성은 그 문제의식을 정리한 결과이기도 했다.



4. 도성에서 도시로


학위 취득 이후에는 누구나 그렇듯 학위논문을 수정하고 보완하는데 진력할 수밖에 없었다. 지나고 보니, 사료 및 자료에서 비롯된 귀납성보다는 당위적 문제의식에서 배태된 연역성이 커 보였기 때문이다. 수정의 끝은 요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의 방향만큼은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 이유는 삶의 조건이 달랐을 뿐 고대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 살았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가지 파생 주제를 고민하고 있다. 우선 도성의 도시성이다. 도성은 왕권과 지배의 거점인 동시에 사람들이 모여 살며 관계를 맺는 도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학위논문에서 다뤘던 도성권은 결국, 도시성의 시각화였던 셈이다. 이제 주목되는 것은 도성권이라는 범위보다도 도성과 그 주변의 관계를 통해 하나의 지역공동체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다. 도성뿐만이 아니다. 도성 이외의 이른바 ‘지방도시’와 그 주변을 포괄하는 지역공동체의 존재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를 통해 보면 고구려 사회 내부에는 고구려 전체 공동체와 다른 층위를 이루는 다원적 지역공동체가 존재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 방향의 문제의식은 고구려를 하나의 균질한 정치공동체로만 파악해 온 기존의 시선에 재고를 요구하며, 도성 연구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끝으로, 역사 속의 다양한 중층적 공동체를 재현하려는 관심은 결국 현재의 고민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국제정세의 예측 불가능한 변동은 공동체를 다시 사유해야 할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다만 그 방향이 민족/국가로의 회귀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역사학은 대안공동체의 여러 가능성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고구려 도성 연구는 고구려를 하나의 단일한 정치공동체로 환원하지 않고, 그 내부의 다양한 관계와 층위를 재현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권순홍(2025 우수박사학위논문 출판지원사업 선정자,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
권순홍(2025 우수박사학위논문 출판지원사업 선정자,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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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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