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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인공지능들, 요즘 뭐해? / 박성관

알파고의 ‘고’는 바둑을 뜻하는 기(碁)의 일본어 발음이다. 영어로도 바둑을 go라고 하는데, 이는 일본이 서양에 바둑을 활발히 보급해온 결과다. 마치 불교를 영어권에서 일본어 발음대로 zen(禪)이라고 하듯이 말이다.

알파고는 이세돌9단을 4:1로 꺾었고 이후 더 강해진 버전인 알파고 마스터는 중국의 커제9단을 3:0으로 꺾었다. 두 경우 모두 꺾었다기보다는 지도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실력차가 났다. 그러고 나서 곧 AI는 바둑계 은퇴를 선언한다. 알파고는 어차피 모든 IT 서비스에 적용되는 단일 인공지능을 목표로 개발된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분야로 옮겨간 것이다. 은퇴 기념으로 알파고는 자기가 자기랑 두면서 학습한 기보 중 50판을 추려 인류에게 남겼다. 노자가 함곡관을 통과하기 전에 5000자의 텍스트 󰡔도덕경󰡕을 남기고 인류로부터 스스로 실종되었듯이.


지금은 또 다른 버전의 AI 기사들이 출현하여 맹활약중이다. 카타고, 절예, 릴라제로, 골락시 등이 그들이다. 이중 카타고는 한국 기사들이, 절예(絶藝; 이름 한번 멋들어진다)는 중국 기사들이 주로 스승님으로 모시며 절대 무공을 연마 중이다. 예전에는 과거 기보들의 검토, 동료 기사들과의 대국 등을 통해 바둑 공부를 했다면, 요즘엔 인공지능과 대국하면서 각종 신수들도 개발하고 결정적일 때 상대를 부러뜨릴 묘수들을 장착하기도 한다. 첨엔 그렇게 개인적으로 인공지능들을 활용하는가 싶더니 지금은 아예 AI가 알려주는 정보를 띄워놓고 바둑 방송을 한다. 첫 수를 둘 때부터 흑백간 승률이 현재 어떤지, 집 차이는 몇 집인지를 알려준다.

바알못들은 모르겠지만, 사실 초일류 기사들의 실력은 상상 초월이다. 아마 6, 7급의 기력을 자랑하는 내가 볼 때 정녕 그러하다. 도대체 인간은 얼마나 더 깊고, 넓고, 멀리 사유할 수 있는건지 경탄을 하곤 한다. 예로부터 9단의 별칭이 입신(入神)이었던 것도 그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현대의 최정상권 기사들도 AI에겐 상대가 안 된다. 무려 세 점을 먼저 깔고 시작해야 한다. 네 점을 깔고 두면 AI도 자주 흔들리며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게 작은 위안이다. 몇 수 아래인 인간들이 아니라 지들끼리 겨루는 세계 AI 바둑대회도 열린다. 이때는 인간들에겐 이해가 안 되는 수들이 속출한다. 얘들은 바둑도 쎄지만, 두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연산 속도가 어마무지하게 빠르니까 당연한 결과다.



40년도 더 전에 침 묻혀 가며 열독했던 강철수 작가의 바둑 만화, 거기서 봤던 일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어떤 세계적인 기사에게 “바둑의 신이 있다면 몇 점을 깔고 두겠는가?” 그랬더니 기사 왈 “두 수 먼저 두면 이기지 않을까? 허나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세 수라고 답하겠다”고 했던 장면. 지금 이렇게 답할 기사는 아무도 없다. 인류가 ‘상상’했던 신보다 인류가 ‘제작’한 기계 쪽이 더 강하고 풍부하다.

이제 AI에 대한 거부감은 바둑에 관한 한 완연히 쪼그라들었다. 바둑 유튜버들은 물론이고, 케이블 방송에서도 대놓고 인공지능을 보여주며 진행한다. 어떨 때는 프로 기사가 두 명이 나와서 인간끼리의 대국을 해설하는데, 한 명은 카타고, 또 한 명은 절예의 ‘의견’을 계속 소개해주며 상호 비교를 한다. 제시하는 답이 인공지능 간에 다를 경우도 있다. 인간으로서는 이해 불가능한 수를 두 인공지능이 똑같이 최선의 다음 수라고 답할 때는 기이한 느낌마저 든다.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 있느냐에서, 인간이 기계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로 바뀐 세계.

덕분에 바둑 중계에도 멀티튜드의 봄이 왔다. 예전에는 입신의 경지라던 9단들이 주로 해설자로 권위 만빵이었지만, 지금은 개인들도 쉽게 AI를 사서 자기 컴퓨터에 깔 수 있기 때문에(AI 종류마다 가격은 천차만별) 누구나 최선의 수를 알 수 있다. 그 수가 왜 좋은지도 인공지능이 이후 수순을 통해 알려준다. 이제는 해설자의 실력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몇 배 더 얼마나 쉽고, 재밌고, 친절하게 말하느냐가, 또 외모나 목소리가 중요해졌다. 유튜브 붐과 AI 발전이 맞물리면서 바둑 유튜브 채널도 급증했다. 절정의 고수가 아니어도 바둑 유튜버가 될 수 있으니까. 나도 종종 여성 기사들의 바둑 유튜브 채널을 즐긴다.


프로 기사들이 워낙 AI와 많이 두며 수련하다 보니 바둑이 점점 AI의 기풍을 닮아간다. 그래서 신공지능(신진서9단)이나 박공지능(박정환9단), 커공지능(커제9단)이라는 말도 유행 중이다. 이 기사들 간의 대결을 보면 특히 초반부는 AI랑 잘 구별이 안 된다. 기계가 인간을 닮을 수 있겠느냐는 논쟁은 인간의 관념 속에서나 유효하다. 인간이 기계들을 닮아가려 애쓰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잠시 중국의 바둑 리그 이야기를 하자. 이름은 중국 리그지만 외국의 최강자들도 용병으로 출전하는 세계 최고의 리그다. 중국 기사들의 선수층이 워낙 두텁다 보니 갑조리그와 을조리그, 두 리그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 터프한 리그에 용병으로 참가하는 몇몇 한국 기사들은 올해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리그를 지배했다. 그런데 가끔 한국 바둑팬들 중에 신공지능이나 박공지능이 삐끗하는 수를 두면 방심을 했다느니 너무 대충 둔다느니 비난하는 분들이 있다. 그거, 거의 현실성 없는 멘트다. 이 선수들이 한 판 둬서 이기면 1,500에서 2,000만원을 받는다(더 낮게 받는 기사들이 물론 대부분이다). 당신 같으면 5시간 정도 둬서 이만한 돈을 받는데 대충 두겠는가! 이 얘길 들으면 또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다. 한 수 둬서 얼마 받는다느니, 고작 다섯 시간에 몇 천만원이라느니!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최정상급 기사들과 대결해서 이기려면 1년 내내 바둑공부와 체력 단련, 컨디션 조절 등에 거의 매진해야 한다. 권투 선수가 몇백억의 대전료 받고 1회에 KO승하면, 주먹 한 방에 몇 억이라느니 몇 초에 얼마 벌었다느니 하는 식의 소리는 좀 삼가자. 뭐~ 이렇게 쓰긴 했지만, 개부럽긴 나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만 더 추가하자. 중국 리그에서 받은 돈은 일단 중국에서 세금 떼고, 한국에서 또 떼고, 기사회에서 또 떼고 등등 해서 35% 정도를 뜯긴다. 그리고 승부에서 지면 빵원 받는다(중국 리그에선 그렇다). 배 아프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길 바란다.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 이제 바둑은 끝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AI보다 훨씬 약한 인간들끼리 두는 바둑이 얼마나 재미와 긴장이 있겠느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인간과 AI가 합체되면서 바둑의 전혀 새로운 장관이 펼쳐질 거라 예상했고 또 바랬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내 희망대로 되어가는 것 같아 기쁘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기계가 인간만큼 잘 둘 수 있느냐’는 인간중심주의적인 낡은 질문 틀이 깨졌다는 거다.

우리는 감성과 이성이라는 인간의 틀로 다른 존재들을 재단한다. 동물보다는 이성적인 우리가 뛰어나고, 가령 AI보다는 감정이 있는 우리가 더 풍부한 존재라는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그토록 이성적이고 창조적이라는 인간이 AI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밖에 못 두고, 심지어 그들이 두는 수를 이해조차 못할 때가 드물지 않은 상황이다. 시각을 좀 바꿔보기 위해 불교와 볼테르를 데려와 보자.


불교에 따르면 인간은 눈, 코, 귀, 입, 피부, 의(意)라는 여섯 감각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눈부터 피부까지가 감각이고, 6번째인 ‘의’가 제6 의식이라 불리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다시 제6 의식, 제7 마나스식, 제8 아뢰야식으로 세분된다. 간단히 6 의식을 의식, 7, 8식을 무의식이라 퉁!치면 대략 맞다. 나는 예전부터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게 하나가 아니고 여럿일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깡디드󰡕에도 상통하는 대목이 나온다.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이 인간에게 다섯 감각밖에 없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란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감각은 72가지(정확한 숫자는 기억이가 잘 안 난다)라 답하며 인간들이 불쌍해 엄청 운다.

AI 기사들과의 교제를 통해 열리는 무궁한 앎과 마음의 세계, 그것은 우리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의 장임과 동시에 거대한 착취와 억압과 통제의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 사는 이후 알파폴드1과 2를 개발해 단백질 분석 분야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앞으로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커다란 충격이 일어날 것이다. 여기에 최근 치열한 개발 경쟁에 돌입한 양자 컴퓨터가 실현될 근미래까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셈이다. 인간의 사이언스(지성)가 지배하던 세계에서, 인간과 사물이 뒤얽히면서 펼쳐질 테크놀로지의 차원으로!


박성관(독립연구자 겸 번역가. 『표상 공간의 근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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