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계약의 도시, 서울 -경험은 넘치고 삶은 유예되는 곳 / 김보슬

서울에서의 삶은 현재보다 다음을 먼저 계산하게 만드는 구조 위에 놓여 있다. 계약 만료 시점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다음 거처를 준비해야 하는 기점이 된다. 지금의 생활은 언제나 이후의 이동 가능성을 전제로 이해된다. 이 도시에서 집은 더 이상 삶이 축적되는 기반이라기보다, 일정 기간 유지되는 조건에 가깝다. 거주는 지속이라기보다 갱신에 가깝고, 정착이라는 말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간다. 그래서 서울에서의 삶은 ‘사는 것’이라기보다, 특정 상태를 일정 시간 유지하는 방식으로 경험된다. 이 감각은 단순히 주거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작동하는 방식 전반과 연결되어 있다.


경험으로 소비되는 도시, 서울

서울은 지금, 어느 때보다 매력적인 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외국인에게 서울은 더 이상 관광 콘텐츠를 소비하는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보고 싶은 목적지가 되었다. 최근 BTS의 컴백 공연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연출되었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아티스트가 이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은, 서울을 문화 중심지로 각인시키는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로 일종의 ‘안전한 도시’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기도 한다. 올림픽이 도시의 위상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면, 이와 같은 문화적 이벤트는 다른 방식으로 서울을 세계에 위치시킨다.

이미지 출처: KBS News
이미지 출처: KBS News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연출은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경복궁이나 세종대왕 동상과 같은 상징적 공간이 공연의 배경으로 활용되면서, 그것이 하나의 깊이 있는 문화적 맥락으로 작동하기보다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처리된 것은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도시의 역사와 상징이 서사의 일부로 통합되기보다 시각적 장치로 사용될 때 서울의 매력은 돋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얕은 방식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성수동의 쇼룸과 한남동의 편집숍, 을지로의 재생된 골목은 단순한 상권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으로 소비된다. 서울은 점점 더 잘 기획되고, 잘 연출되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경험의 밀도는 생활의 안정성과 나란히 증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서울은 무엇을 하기에 좋은 도시이지만, 오래 머물기에는 점점 더 어려운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기회는 풍부하지만, 그 기회에 접근하기 위한 비용 역시 함께 상승한다. 그래서 서울은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세계적으로는 ‘가보고 싶은 도시’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가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도시’다.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조건으로 작동하는 이 구조 속에서, 서울은 자유로운 목적지라기보다 필수적인 경유지에 가까워진다.


정착이 아닌 순환의 도시

이 도시는 사람을 붙들어 두기보다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서울은 정착의 공간이라기보다 순환의 공간에 가깝다. 20대 초반의 인구는 대학과 첫 직장을 위해 서울로 유입된다. 그러나 결혼과 주거 안정, 양육이라는 문제를 마주하는 시점이 되면 많은 이들이 서울을 떠나거나 떠날 준비를 한다. 주목할 점은 이 이동의 시점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은 더 이상 오래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라, 일정 시기를 통과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 도시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과 동시에, 일정 단계 이후에는 밀어내는 구조를 함께 갖는다. 그 결과 서울에서의 시간은 일종의 투자로 이해된다. 더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비용이자,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 기간. 그러나 그 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기대가 실현되기 전에 먼저 이탈하기 시작한다.


서울 밖이라는 선택지의 변화

흥미로운 것은, 서울이 아니어도 생활이 성립하는 조건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상적인 소비나 생활 여건에서 서울이 특별히 유리한 점도 많은 반면, 교육 환경이나 공공시설 접근성처럼 삶의 질과 직결되는 요소에서는 서울과 큰 차이가 없거나 더 나은 지역도 존재한다. 그 결과 서울에 반드시 머물러야 할 이유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들조차 경기도 외곽이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이 흐름은 하나의 질문을 만든다. 서울에 남아 있는 것은 과연 선택의 결과인가, 아니면 다른 선택지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기 때문인가. 서울은 여전히 강력한 중심이지만, 동시에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만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지방 도시의 모방과 한계

그렇다고 해서 지방 도시가 대안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많은 신도시와 지역 개발은 여전히 ‘서울처럼 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인천 송도신도시, 고양 향동신도시, 무안 남악신도시와 같은 공간들을 채우는 것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고, 그렇기에 어디로 가든 소비와 경험의 궤적도 엇비슷하다. 지역의 고유한 맥락은 개발 과정에서 희미해지고, 대신 익숙하지만 얕은 복제가 반복된다.

이러한 공간은 분명 생활 편의를 제공한다. 하지만 머무를 이유까지도 충분히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을까? 시설의 규모와 화려함에 비해 실제 이용 밀도나 체류 시간은 낮고, 일상과 연결되지 못한 채 분리된 공간으로 남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반면 기존의 자산과 지역성이 살아 있는 곳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선 광주 동명동은 한때, 특정한 역사와 상인, 문화가 결합된 지역이 서울을 모방하지 않으면서 (또는 모방하면서도) 그만의 고유한 매력을 형성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울과 얼마나 닮았는가가 아니라, 그 도시만의 경험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구성할 수 있는가에 있다.


경험의 도시, 그러나 유예된 삶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 이 도시는 분명 경험의 측면에서는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의 기반으로서도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하기 어렵다. 주거가 안정되지 않는 환경에서 삶 역시 장기적인 계획을 갖기 어렵고, 그 결과 중요한 선택들은 계속 뒤로 미뤄진다. 결혼, 양육, 창업, 정착과 같은 결정은 모두 지속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거주 자체가 계속 갱신되어야 하는 상태로 남아 있는 한, 이러한 선택은 자연스럽게 유예된다. 이 지점에서 서울은 이렇게 정의될 수 있다. 경험은 확장되지만, 삶은 지연되는 도시. 머무를 수는 있지만, 정착하기는 어려운 도시.


서울을 통과하고 있다는 감각

서울이 BTS의 무대가 되어 세계 팬들의 집중을 받는 동안에도, 이 도시 안에서의 삶은 여전히 다음을 준비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삶을 쌓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전까지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일까.


서울역 광장을 지나 남대문과 명동을 걷는다. 전광판에는 여전히 케이팝스타가 춤추고, 사람들은 그 장면 앞에 멈춰 선다. 이 도시는 그렇게 계속 새로운 순간과 이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장면은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상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그 안으로 들어오지만, 그 안에서 계속 살아가지는 못한다. 모두를 끌어들이는 장면을 만들어내지만, 그 안에서의 삶까지 붙들어 두지는 못하는 도시. 그래도 내 삶을 어떻게든 거기 붙들어 두겠다는 욕심으로 나는 오늘 지치도록 열심히 일한다. 퇴근하는 차 안에서 노래 한 곡, 들어야겠다.


“케이팝스타와 함께라면 온 세상을 다가진 너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아름다운 청춘을 노래하며 춤추네 춤을 추네
하늘엔 조각구름 강물에 유람선 그대로인데 너는 지금 어디에 종로에는 사과나무 을지로에는 감나무 그대로인데 너는 지금 어디에…”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Comments


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Thanks for submitting!

  • White Facebook Icon
  • 화이트 트위터 아이콘

© 2019. RIKS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