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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섬> 태양극단 / 최엄윤

카르투셔리(CARTOUCHERIE)의 태양극단 (THÉÂTRE DU SOLEIL)

프랑스 파리 12구 뱅 센느 숲의 옛 화약 창고를 개조한 카르투셔리에는 태양극단 및 3개의 극단과 국립안무발전소(CDCN), 배우전통연구협회(ARTA)까지 총 6개 단체가 상주하고 있다. 나폴레옹 3세 때 건설된 카르투셔리는 역사 속에서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프랑스령 알제리 때는 알제리인들을 감금하는 감옥이었고, 한때는 독일인들을 수용하는 감옥이기도 했다고 한다. 태양극단은 1970년에 군대가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스쾃, 즉 무단 점거하기 시작해 현재는 파리시에 임대료를 내며 53년째 거주 중이다.


지난 2월 18일 토요일, 태양극단의 작품 <L’ÎLE D’OR>(황금섬)을 보기 위해 일찍 도착한 카르투셔리에는 유아들의 승마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매표소 주변에는 난민들이 거주하는 듯한 작은 캠핑용 밴들과 컨테이너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이웃의 방문을 맞는 사람들을 드문드문 볼 수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태양극단 단원이 배우들은 지금 점심 식사 중임을 알려 주었고, 앞치마를 두른 요리사가 텅 빈 매표소 앞에 혼자 앉아 기다리는 나에게 손짓으로 인사를 해 주었다.

오후가 될수록 날이 흐려지고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연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1시쯤 되니 관객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매표소 앞에는 간이 카페처럼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는데 일찍 온 관객들에게 따뜻한 차와 커피가 담긴 포트를 제공해 누구든 원하는 만큼 따라 마실 수 있었다. 1시 30분쯤 되었을 때 티켓 박스를 든 단원들이 매표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 앞으로 줄을 섰다. 매표소의 하얀 커튼 뒤로 단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 짧은 기다림의 순간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쥐기 위해 양말 안으로 손을 넣는 아이처럼 설레게 해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막이 오르듯 매표소의 커튼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순간 직원들이 숨바꼭질 놀이를 끝내는 것처럼 고개를 장난스럽게 짠 내밀며 인사했다. 표를 받고 나면 매표소 건너편에 마련된 좌석 배치도로 가서 좌석 뽑기를 해야 했다. 객석을 좌우 반으로 나누어 두 명의 직원이 관객이 원하는 좌석의 스티커를 뽑아 티켓 위에 붙여주는 방식이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의 연극 관람이 이런 분위기였을까? 시끌벅적 축제처럼, 또는 아이들의 장난처럼, 사소한 장치 하나하나에 배려와 재미가 녹아 있었다.

카르투셔리의 태양극단에 가는 건 공연장 입구에서부터 연극이라는 유토피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1964년 창단 이래 1970년 12월 카르투셔리에 정착한 태양 극단. 그 역사를 만들어간 다양한 작품들에 관한 엽서, 포스터, 책, DVD 등을 판매하는 서점부터 현재 진행하는 작품과 관련된 국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음식 판매점, 미니축구 놀이대, 공연장 안까지 이어진 여러 사람이 앉아 식사할 수 있는 넓은 테이블과 좌석, 관객이 다가갈 수 있는 배우들의 휴게공간과 분장실 등,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다 보면 삶과 연극이 같은 색과 향, 맛으로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 <황금섬>의 공연으로 들어가기 전 일본풍의 조명과 그림, 캘리그라피 등을 먼저 만나고 일본식 의상을 입은 단원이 판매하는 오니기리를 비롯한 일본 요리를 맛보는 것으로부터 이미 공연의 일부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공동체와 개인의 운명인 역사 앞에서

태양극단은 시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정치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극단으로 유명한데 <황금섬>을 보러 간 날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모금함을 공연장 입구에 두었고, 기후 위기 등 에너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난방 절약용 담요를 관객에게 나눠주며 사회문제를 상기시키고 동참을 요구했다. 극단의 리더이자 연출가 아리안 므누슈킨(Ariane Mnouchkine)은 라디오 ‘프랑스 컬처’1)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하거나 잘 보지 못하고 외면하는 역사가 있지만 역사는 과거에만 있지 않고 오늘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구현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현재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이 때때로 정보의 평범성에 의해 다 섞이고 모두 똑같은 가치를 갖게 되고 마치 ‘듣지 마, 그냥 배경 소음일 뿐이야’라는 듯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는 배경 소음이 아니라 공동체와 개인의 운명이다. 태양극단은 현재 60~65명의 그룹인데,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수치심 없이 지나칠 수 있을까? 연대할 수 있을까? 등등의 여러 질문을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이미지를 볼 때 그 속에 우리의 운명도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을까?”

아리안 므누슈킨은 1995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에 맞서 단식투쟁을 벌였고 1996년 예술가 공동체의 대표로서 체류증이 없는 아프리카인들을 한동안 카르투셔리에 머물게 했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쿠르디스탄 등 수백만 난민들에 관한 작품 <Le Dernier Caravansérail((Odyssées), 마지막 여행자숙소(오디세이)>을 만들며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100여 명의 아프간 청소년들과 함께 연극 워크숍을 진행하고 아프타브 극단을 창단, 전쟁의 폭격 속에서 살아가는 단원 20여 명을 태양극단으로 데려와 워크숍을 하며 1년여의 시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카르투셔리에 머무는 난민들은 그렇게 세계 곳곳에서 태양 극단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가족뿐 아니라 모든 것들로부터 만들어진다. 선생님, 책, 여행 등. 아이들은 꿈이 있는데 상황과 사람의 만남으로 그 꿈은 풍요롭게 되기도 하고 또는 파괴되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나는 운이 좋았다. 인형극도 보고 그림책도 보고, 전설에 대해 듣고, 내 어린 시절 전쟁 시기에 만난 선생님이 결정적으로 나를 풍요롭게 했고, 영화 제작자였던 나의 아버지는 무대와 분장실의 냄새로 나를 이끌어 풍요롭게 했다. 유전적으로 좋은 환경에 태어났더라도 이후 행운과 불운이 따를 수 있는데 어떤 존재들은 당신이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도울 힘이 있다.”2)

카르투셔리의 역사적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아리안 므누슈킨은 몇 해 전부터 순간을 기념하고 현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배웠다고 답한다. 행복의 전제는 없고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아무것도 없는 카르투셔리에 정착할 때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고, 성공하고 나면 모든 것이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힘들고 그건 다른 어려움이다. 우리가 젊거나 불행할 때 ‘행복의 전제’에 대해 생각하지만 행복은 전제가 아니라 그 순간이다. 우리가 전제하고 있을 때 이미 우리의 삶인 것이다. 어쩌면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구체적 방식, 크고 작은 노력들, 그것이 바로 행복 자체인 것이다.


세상 곳곳의 재난에 처한 국가에서 상상의 생존자 무리가 <황금성>으로 달려오다.



태양극단은 2021년 4월 예정되었던 공연 창작을 위해 2020년 3월 한 달 동안 일본 사도가시마 섬으로 떠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며 여행은 취소되었다. 사도가시마 섬은 일본의 동쪽 바다에 위치한 섬으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우수한 문화의 보고이자 오랫동안 지식인과 예술가의 유배지였다. 아리안 므누슈킨이 태양극단 창단을 위해 1964년 떠났던 일본, 그곳에서 그녀는 일상에 스며든 예술을 발견했었기에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 일본과 극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을 담아 피난처이자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L’ÎLE D’OR>(황금섬)을 구현하게 되었다.

무대 위에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백발의 여성, 꼬르넬리아가 있다. 정신이상처럼 보이는 그녀는 자신이 일본에 있다고 생각하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난들에 대한 악몽을 꾼다. 무대는 모두 그녀의 꿈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부분의 인물들은 피부 모양의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 꿈속에서 사도가시마 섬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황금섬 ‘카네무지마라’의 시장은 부동산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세력에 맞서 전 세계의 극단을 맞이하는 연극제를 조직한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중국, 일본, 인도, 프랑스 등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연극제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도착하고 그 여정 속에 아프간 난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부패한 브라질의 전 대통령 등 세계의 비참과 혼돈에 관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금은 무엇인가? 행복의 수호자인 우리에게 그것은 광산과 은행의 금이 아니라 환대의 금, 순수한 금, 금고 밖의 금, 우정과 선의 향연인 금, 다가올 치유와 되살아난 지능의 축제를 가능하게 하는 금이다.”3)

점점 더 복잡하게 격동하는 세상을 상상과 유머, 시적 은유로 다가가는 태양극단의 작품 세계에는 연대와 휴머니즘이 가득하지만, 해결의 단순함보다는 관객의 자리를 마련해둔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관객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극장을 만남의 공간으로 열어놓은 태양극단처럼 <황금섬>은 연극적 유토피아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France Culture> 시리즈 ‘fou d’histoire(역사광)’, 에피소드43 : <Ariane Mnouchkine, “Folle” d’histoire> 2022년 12월 2일, 진행 Xavier Mauduit(자비에 모뒤)에서 발췌 https://url.kr/i86zo7

2)위의 인터뷰에서 인용

3)<L’ÎLE D’OR>(황금섬) 소개글, Hélène Cixous(엘렌 식수), https://www.theatre-du-soleil.fr/fr/


최엄윤, 사무엘 베케트의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언젠가 결국은 창작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omyu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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