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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수많은 우리가 범람하는 세계에서 -김초엽 <파견자들>(2023) 리뷰 / 김민선


지구는 문득 곰팡이의 세계가 되었다. 지하는 인류의 새로운 세계가 되었다. 간혹 사람들은 광증을 일으켰다. 곰팡이, ‘범람체’에 의해 오염된 사람들이다. 검사 기계가 거리에 돌아다니며 아포(芽胞)를 감지하고, 감지된 사람을 격리한다. 쓰레기에 가까운 음식을 먹으며 기계의 감시 속에서 살아가는 지하의 인류. 김초엽의 장편소설 󰡔파견자들󰡕(퍼블리온, 2023) 속 인류의 모습이다.


소설의 주인공 태린은 높은 면역력과 신체능력을 지니고 지상으로 파견을 나가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가 되고자 한다. 파견자는 위험에 빠지기 쉬우나 동시에 인류가 두고 온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 다만 태린이 파견자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지상에 대한 매혹만은 아니다. 그를 늘 두근거리게 만드는 이제프에게 다가가는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게 파견자가 되는 것은 지상으로의 모험을 허락받는 것이자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방법이다. 물론 그 또한 알고 있다. “지상에도, 누군가의 마음에도 그렇게 쉽게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을.”(47)


그래도 소설은 계속해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맞닿는 지점들을 탐색한다. 훈련과 시험의 과정에서 마주한 자신 안의 또다른 존재인 쏠과 소통하면서 태린은 하나의 육체에 공존하는 법을 터득한다. 태린과 쏠. ‘나’와 ‘너’는 하나의 육체를 공유하며 서로를 인정한다. 훈련의 과정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목적에 따라 소통하고 협력하는 과정이 된다. 물론 다른 존재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마지막 시험장에서, 마침내 도달한 지상에서, 이제프와 마주한 순간에, 태린은 끊임없이 재확인한다.


그러나 ‘너’를 이해할 수 없는 ‘나’는 또한 어떤 존재인가. 과연 ‘나’를 단독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가. 쏠은 두통과 환각, 환청으로 뇌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음을 그녀에게 증명한다. 그렇다면 대체 태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태린의 신체는 온전히 태린만이 점유하는 단독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자주 잊고 사는 사실이지만 나의 신체에는 수많은 다른 존재들이 거주하고 있다. 나의 피부는 박테리아와 미생물들이 거주하는 특별한 생태계이자 풍부한 서식처이다. 단지 ‘나’의 눈으로 보지 못할 뿐, 나는 “신체들의 배열이며, 중첩된 일련의 미생물군 유전체에 있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신체들이다.”(제인 베넷, 문성재 역, 󰡔생동하는 물질󰡕, 현실문화, 2020, 276면) 범람의 징후처럼 가시화되지 않을 뿐, ‘나’는 우리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쾨쾨한 냄새를 피워내는, 어딘지 끈적하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부글거리며 부패하는 늪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구의 표면에서 태린이 만난 늪은 신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변이를 일으킨다. 피부에는 범람 산호가 자라기 시작한다. 살은 무언가를 피워내고 흐무러지며 다른 범람체와 연결된다. 자아 또한 서서히 섞인다.


지상에서 만난 범람체는 자아의 죽음을 논하는 태린에게 말한다. 그것은 그저 ‘우리’의 하나로 편입되는 과정일 뿐이다. 범람체는 ‘우리’이며 동시에 개체로서 존재한다. 끈적한, 수많은 균류로 연결된 거대한 생명. 무언가가 부패하고 다른 것을 탄생시키는, 부글거리는 늪에서 태린은 범람체의 목소리를 듣는다.


인간의 언어로 말해보자. 변이의 과정은 죽음이다. ‘나’를 잊고 잃는 과정이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바로 범람체이다. 범람체에 의해 ‘오염’되고 ‘전염’된 인간은 결국엔 죽음에 이른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범람하는 지상을 피해 지하로 피신했다. 경계를 세우고, 구역을 만들어 범람의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격리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하여 지하와 지상의 경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범람체의 시선에서 그것은 단지 다른 방식으로 변이한 것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범람한 ‘우리’들 속에 존재한다. 늪은 ‘나’의 피부에 범람체를 피워낸다. ‘나’와 ‘우리’의 경계가 무너진다. ‘나’의 신체 또한 ‘우리’의 것이었음을, ‘우리’는 그 자체로서 부글거리는 늪이었음을 돌아보게 한다. 늪은 나를 범람하게 하고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늪에서 나온 태린은 그제야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린다. “늪에서 함께 추던 춤. 몸과 몸 바깥의 경계가 잠시나마 지워졌던 것.”(248) 이제 태린은 쏠과 자신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쉽게 닿을 수 없었던 이제프 또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우리'의 경계가 사라진다. 미드저니 봇, 프롬프트 오영진

소설 󰡔파견자들󰡕은 수많은, 연결되고 확장된 ‘나’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단 하나의 존재임을 자신하곤 한다. 나의 신체를 기준으로, 나와 세계는 분리되어 있다. 너와 내가 그러하고, 인간과 자연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소설은 범람체와 늪인을 통해 말한다. 인간에 의하여 지구의 기후와 생명체가 변형되는 시대에 “자연상태와 인간 사회, 또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대비시키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 인간 존재자와 그것의 생산물은 자연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스티븐 샤비로, 안호성 역, 󰡔탈인지󰡕, 갈무리, 2022, 298면) 우리의 신체는 수많은 존재가 거주하며 통과하는 다수의 개체이다.


물론 우리는 같으나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지하로 이주한 모든 사람들이 지상에서 늪인으로 사는 삶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누군가는 피부에서 범람 산호를 피워내며 천천히 범람체와 섞이기를 택한다. 나이가 들고 늙어가듯 천천히 범람하여 자아를 지워내고 범람체에 편입된다. 새로운 지구에 적응한 태린. 아니, 테란의 삶이다.


어쩌면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테란의 태도일지 모를 일이다. 얇은 피부로 나와 세계를 분리하고 기준을 만드는 대신, 허물고 무너뜨리고 뒤섞여서 함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그간 생각해온 것과는 다른 언어로 ‘너’를 혹은 세계를 바라보고 소통하는 것.


소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그 애는 겨울에 도착한 불청객이었다.”(7)


다른 존재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과, 하지만 막상 마주한 그는 나의 기대와는 온전히 다른 존재라는 깨달음의 문장이다. 나와 다른 존재와의 만남에 관한 문장으로 너와 나, 혹은 ‘수많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파견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소설은 수많은 ‘나’와 ‘너’, 혹은 수많은 우리의 만남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고 사고를 범람시키기 위해서는 끈적한 늪으로 들어서야 한다. 더럽다고? 인간의 관념일 뿐이다. 수많은 존재가 부글거리며 연결되고 탄생하는 ‘우리’의 공간이다. 수많은 우리가 부글거리는 지구로 파견될 시간이다. 숨 참고 우리의 늪으로 Dive...


김민선(한양대 박사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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