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달은 책 제목 [[사이버네틱스 혁명가들]]을 곧장 리뷰 제목으로 가져왔다. Cybernetic Revolutionaries: Technology and Politics in Allende's Chile (The MIT Press, 2011). 뒤에 붙은 말이 좀 특이하지? 앞 제목만 보면 사이버네틱스 기술 관련한 혁신가들인가보다 싶겠지만, 뒤에 보니 아옌데의 칠레에서 기술과 정치에 대한 얘기라고 하니, 그럼 사이버네틱스라는 테크놀로지와 칠레의 정치가 중요한 관련이 있다는 거? 맞다. 정확히, 충분히 그렇다. 아옌데라는 역대급 위대한 정치가가 대통령이 되었고, 혁신적인 정치를 감행하는 과정에서 사이버네틱스 기술을 도입하게 되었다. 생산성 향상을 포함한 칠레 경제 전체의 발전을 위하여. 아옌데는 좌파연합의 대통령 후보였고 그 자신은 젊었을 때 아나키즘과 맑스주의의 세례를 받은 독실한 사회주의자였다. 사회당 후보이기도 했고. 1970년에 집권한 이 정권에 플로레스라는 기술 관료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우연히 영국의 사이버네티션인 스테포드 비어의 책 [[사이버네틱스와 경영]]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초빙해 칠레형 사회주의라는 제3의 길 구현에 힘을 보태달라고, 특히 사이버네틱스를 활용하여 칠레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이뤄달라고 부탁했다.
2. 스테포드 비어는 영국의 사이버네티션인데, 사이버네틱스를 통한 기업 경영은 물론이고 사회, 나아가 국가 전체의 개혁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 사회주의 성향을 갖고 있었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생각했다. 물론 가장 혐오한 것은 관료주의였는데, 소련 사회주의에 대해 싫어한 것도 크게는 바로 관료주의의 폐해가 심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비어는 플로레스의 제안을 받고, 이거야말로 자기가 열렬히 꿈꾸었던 구상을 국가 레벨에서 실현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덥석 잡았다. 게다가 칠레형 사회주의로, 기존의 자본주의도 또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라지 않는가! 하던 일을 포기하거나 미루고 칠레를 방문해 전격적으로 일에 착수했다. 1971년 11월, 1주 동안의 출장일 뿐이긴 했다. 그리고 곧 영국으로 귀국했다가 1972년 3월 13일 칠레를 재방문해서 3월 24일 또 런던으로 돌아왔다. 물론 1971년 11월의 첫 방문 한참 이전에도 사전 업무들을 진척시켰고, 재방문 이전과 이후에도 여러 가지 통신 기기들과 중간 협력자들 및 팀을 꾸려 이 프로젝트는 급속히 진행되었다. 칠레의 정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197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네루다는 사실 공산당 후보로 1970년 대통령 선거에 추대되었는데, 좌파를 중심으로 중도까지 포함한 연합(<인민연합>)이 결성되면서 사회당 후보였던 아옌데에게 양보하였다.
3. 1970년 선거에서 ‘개혁파’의 승리는 칠레를 세계 정치의 무대로 화려하게 등장시켰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당연히 큰 주목을 했다. 그는 아옌데 당선 보고를 받은 당일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고 하며, 이후에는 “관료주의적 절차를 도외시하라”고 지시했다. 새로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걸까? 이 대목의 저자 주(2장의 후주 6)를 보자.
“칠레는 아옌데의 당선 전부터 미 정부의 초점이었다. 칠레는 1962년부터 1969년까지 미국의 <진보를 위한 동맹>을 통해 보조금이나 융자를 포함해 10억달러 이상의 원조를 받았다. <진보를 위한 동맹>이라는 건 부분적으로 칠레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공산주의 확대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미국 상원 <<칠레에서 수행한 비밀공작 1964-1973년 – 첩보활동에 관한 정부업무 조사특별위원회 스탭 리포트>>(94th Cong., 1st sess., 1975, S. Rep.) 63-372, 151.”1)
4. 그런데 아까부터 나온 사이버네틱스란 무엇인가, 그게 이런 격렬한 국제 정치 정세 속에서 무슨 관련이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저자 에덴 메디나는 책의 서장 「정치적 및 기술적 비전」을 쓴 다음, 곧장 1장 「사이버네틱스와 사회주의」로 들어갔다. 사이버네틱스란 미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노버트 위너가 1948년, 그러니까 2차 대전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강대국으로 우뚝 선 미국에서 출간한 책으로 부제는 ‘동물과 기계의 제어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사이버네틱스는 그러니까 전쟁에서 탄생한 학문이었는데, 미국의 프래그머티즘 자체가 19세기 중후반에 전쟁으로부터 탄생했으니 그 전통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과 관련하여 위너는 강연을 하곤 했는데, “그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위너가 그의 강력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더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는 [[사이버네틱스]]보다 더 이해하기 쉬운 책을 써야 한다는 의견을 줄기차게 피력했다. 그렇게 해서 1950년에 새로 출판된 책이 바로 [[인간의 인간적 활용 – 사이버네틱스와 사회]]이다. 이 책에서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기계에서건 살아 있는 동물에서건 제어이론과 커뮤니케이션이론과 통계역학이 만나는 총체적인 분야로 정의했다.”2)
5. [[인간의 인간적 활용]]은 10여 년 전 번역되었고, 6, 7장까지는 번역이 좋다가 그 뒤 마지막인 11장까지에는 아쉬운 대목들도 있었다. 그리고 책 뒤에 역자가 달아놓은 주가 매우 좋다. 이 번역본은 현재 품절인데 조만간 새 번역이 나올 거 같다. 이 책보다 수식이 꽤 많다는 점에서 심히 어려운 [[사이버네틱스]]는 그러나 아예 수식으로 가득 찬 몇몇 장을 건너뛰면 책 자체는 눈 뜨고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두 권 모두 마음을 열고 읽지 않으면, 평소에 상식적인 감으로 읽으면 ‘이런 책이 왜 좋다는 거지’, ‘뭐가 그리 뛰어나다는 거지’ 하며 실망 끝에 중도 낙오할 가능성이 있다. 먼저 읽어본 사람으로 단언컨대 20세기 최고의 책 몇 권에도 꼽힐 만큼 훌륭한 책이고, 또 세계를 크게 변화시킨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계를 변화시킨 건 저자인 노버트 위너이고, 이 두 책은 그가 다소의 근심을 담아 예언한 미래의 서다. 한 가지 기쁜 소식은 [[사이버네틱스]]가 “곧”(아마도 이번 6월에, 늦어도 7월에는?) 번역 출간된다는 거다.
6. 에덴 메디나 [[사이버네틱스 혁명가들]]은 일역본 번역자 다이코쿠 다케히코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의 글을 몇 편 읽었는데, 매우 좋았다. 국내에도 [[정보사회의 철학]]과 [[가상사회의 철학]]이 번역되어 이 분야의 관심있는 독자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랬던 그가 [[사이버네틱스 혁명가들]]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참고로 다이코쿠 다케히코는 이 분야의 실력자일뿐 아니라 리클라스 루만에 관한 실력자기도 하다). 마침 나도 요즘 관심사가 자기 조직화(오토포이에시스)이고 (하인츠 폰 푀르스터를 중심으로 한) 2차사이버네틱스인데다가, 이 두 분야가 실제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였기 때문에 에덴 메디나의 이 책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7. [[사이버네틱스 혁명가들]]의 저자 에덴 메디나는 MIT에서 정보사회학, 컴퓨터와 정보논리, 테크놀로지의 지리학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정치와 테크놀로지와 역사를 무게감 있게 결합한 이 책으로 굵직한 상들을 다양하게 수상했다. 기술사 관련의 탁월한 연구에 수여되는 에델스타인상, 컴퓨팅의 역사 분야에서 걸출한 작업에 주어지는 컴퓨터 역사박물관상, 라틴아메리카 연구협회에서 수여하는 <근대사와 기억> 부분 서적상(가작)을 수상했다. 이 책은 브뤼노 라투르의 ANT(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에 입각해 쓰여졌다는 의미에서도 각별하다. ANT에 정확히 부합되느냐 여부보다는 그 이론에 바탕해 쓰인 역사서가 어떠한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그녀는 기술결정론에도 반대하고 기술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견해에도 반대한다고 말해두겠다.
8. 취임 3년만에 (미국과 초국적 기업들의 갖은 공작과 연동된)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면서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 총을 들고 적에게 총격을 가하면서 끝까지 저항했다. 그리고 쿠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에게 받은 총으로 자살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사회주의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그가 무엇을 하려 했는가에 대해서는 「나무위키」에 ‘아옌데’를 쳐보기 바란다.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라 여러 반론들도 많지만 최소한 기본 정보는 알고 있을 가치가 있는 큰 인물이었다. 참고로 카스트로는 아옌데 정권 1주년 기념으로 칠레를 1주간 예정으로 방문했다가 칠레 인민들의 환호와 맞물리면서 3주 동안이나 머물렀다. 그런데 귀국하면서 카스트로는 아옌데처럼 평화로운 방식으로는 자본주의라는 적을 타도할 수 없다며 강렬한 비판을 가했다. 처음에 카스트로는 아옌데에 대해 “나와 똑같은 목표를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실현하려 한다”며 아옌데를 높이 평가했었는데 말이다. 옳고 그르고의 차원과는 별도로 이것이야말로 혁명과 역사의 비극일 것이다. 그래도 두 사람 모두 하고자 했던 바를 극한까지 밀어부쳤으니 무슨 미련이 있으랴!
9. 이 책을 나는 다이코쿠 다케히코의 일역본으로 반쯤 읽었다. 매우 오랜 세월에 걸쳐 집필된 큰 스케일의 작품인 만큼 저자 주 하나하나에도 많은 사연과 자료들이 담겨 있고, 특히 내게 친숙하지 않은 미국에서의 과학사 작업들이 많이 참조되기 때문에 읽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그뿐인가? 칠레라는 나라의 복합성에 대해서도 찬찬히 들려주기 때문에 더 좋으면서 힘들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도 이런 여러 가지 점에서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읽으면서 중간중간 눈이 휘곤해지면(아~ 일본어는 왜 계속 세로쓰기를 하는 거야 !!!) 권보드래의 [[3월 1일의 밤]]을 읽었다. 이건 한글이기도 하고 읽는 글맛도 있어 물찬 제비처럼 신나게 반 너미 읽었다. 두 권을 교독(交讀)하며 세계를 일신, 아니 나와 우리와 세계를 통째로 혁신하려던 세계사의 물결을 실감할 수 있다.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크게 상쾌하다. 돌아가신 백기완 선생의 표현처럼 확!확! 뚫는 혁명의 기세가 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아침에 읽으시기를 권한다. 역사의 아침을 맞이하겠다는 기분으로. 그런데 참, [[3월 1일의 밤]]은 아주 좋은 책이고 잘 쓴 책인데, 뭔가 기본적인 게 하나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첨엔 가볍게 들었는데, 점점 더해 간다. 그게 무엇인지는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지만, [[3월 1일의 밤]]을 다 읽으면 비슷한 시기인 2019년 봄에 나온 [[역사 논픽션 3.1 운동]](한울)을 읽으며 그것을 꼭 잡아채고 싶다.
1)Cybernetic Revolutionaries: Technology and Politics in Allende's Chile. p.257.
2)[[인간의 인간적 활용 - 사이버네틱스와 사회]], 노버트 위너, 이희은&김재영 역, (텍스트, 2011). 「옮긴이 해설」중에서.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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