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更張은 경장인가, 갱장인가? / 노관범

언젠가부터 학문 공동체의 학술 글쓰기에서 한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술지 논문의 본문은 한글로 쓰고 각주에서 한문 원문을 밝힌다. 논문 본문에 한문 사료를 열거하고 입론을 전개하는 옛날 방식은 요즈음 찾아보기 어렵다. 본문의 한자는 가급적 한글로 변환해 주거나 괄호를 쳐서 병기해 준다. 


이는 가독성 때문이다. 본문 중간 중간에 한자가 튀어 나오면 잘 읽다가도 흐름이 끊길 수 있다. 여기에 학술지 논문의 분량 제약도 한몫 한다. 투고 논문의 분량을 줄이는 좋은 방법은 본문에서 한자 병기를 삭제하는 것이다. 각주에서 출처만 밝히고 한문 인용을 생략해도 효과적이다. 


학술지 논문에서 한자가 사라지는 현상은 때로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일으킨다. 한자의 독음이 하나가 아니라 그 이상일 경우 그것의 한글 표기가 정확한지 점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전에 한자를 쓰면 그만이었던 시절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문제이다.


예를 들어 16세기 조선 유학자 이이는 ‘更張’을 주장한 개혁가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이 단어 更張의 독음은 ‘경장’일까 아니면 ‘갱장’일까? 更은 동사로 쓰이면 고칠 경, 부사로 쓰이면 다시 갱, 이런 식으로 쓰임새에 따라 발음이 달라진다. 이에 따라 경장인지 갱장인지 합당한 판단이 필요하다.


更張은 간지와 결합하여 역사 용어가 되기도 한다. 요즘은 갑오개혁이라 하는 역사 용어는 본래 甲午更張이라 했던 것인데 역시 更張의 독음에 따라 갑오경장이 될 수도 있고 갑오갱장이 될 수도 있다. 역사 용어는 통일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경장인가 갱장인가 하는 문제는 이에 이르러 옳고 그름을 논해야 하는 상태로 떠밀려 버린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更張은 경장으로 읽는다. 甲午更張도 갑오경장이라고 읽어 왔다. 사실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언젠가 更張을 갱장으로 읽어야 옳다는 주장을 접한 다음부터 更張을 경장으로 읽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동중서가 한 무제에게 올린 대책으로 인해 更張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악기의 조율이다. 악기의 풀어진 줄을 팽팽하게 다시 맨다는 뜻인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줄이 썩어 있으면 반드시 풀어내서 새 줄로 교환해서 다시 맨다는 것이다. 改絃更張 또는 解絃更張이라는 어구가 그래서 가능하다. 이것은 부분적인 수선이 아니라 근본적인 교체를 의미한다. 


동중서는 악기의 조율, 곧 更張을 국가의 개혁에 비유했고 이를 更化라고 표현했다. 나라가 오래되어 제도가 낡았으니 새 제도로 조율해서 국가에서 제 소리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발상이었다. (조율의 해석은 폭이 넓다. 가수 한영애의 노래처럼 잠자는 하늘님이 이제 그만 일어나 이 세상을 다시 조율하는 것은 동학의 ‘다시 개벽’을 떠올리게도 하는, 조율의 새로운 상상이다.)


여기서 更張의 독음 문제로 다시 돌아간다. 更張의 의미는 알겠는데 이 의미는 이 어휘를 경장으로 읽어도 살아날 수 있고 갱장으로 읽어도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악기의 줄을 새 줄로 바꾸어서 그것을 악기의 본체에 고쳐 맨다고 할 수도 있고 다시 맨다고 할 수도 있으니 ‘고칠 경’이든 ‘다시 갱’이든 언뜻 보면 更張의 의미 실현에는 지장이 없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선말기 강릉 유학자 심상룡의 문집에서 「更張論」을 만났다. 이 글은 갑오개혁이 更張을 표방하지만 실은 更張 개념을 배반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제적인 글인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대개 更張이 악기의 조율 문제라면 사람들은 악기의 줄에 관심을 두기 마련이다. 썩은 줄을 새 줄로 전면적으로 교체해서라도 악기의 제 소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데 更張의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상룡은 반대로 줄이 아니라 악기를 생각했다. 更張이란 악기를 조율하는 일이지 그 악기의 본질을 부수고 다른 악기를 만드는 일은 아닌데, [其更張當如何? 卽當去其陳腐, 新其柱絃, 使之調音, 而不必破碎本質, 便作異器, 以求琴瑟之調也.] 지금의 이른바 更張이 국가의 본질을 부수어 다른 나라를 만들고 있음을 개탄했다.


이어서 눈이 번쩍 뜨이는 문장이 나타났다. 更張이란 고법의 보존이 중요하고 부득이 새 법으로 更했으면 잘 지켜서 효과를 얻어야 하는데 更하고 다시 更하기만 하니 좋은 법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는 것, 更張의 방도는 근본을 세움에 있는데 근본은 세우지 않고 그저 更하고만 있으니 지금의 법은 법이라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었다. 


여기서 심상룡이 사용한 更은 모두 동사로 쓰였고 更張과 밀착 관계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更張의 기본적인 의미를 更함으로 보면서도 그 이상의 본질적인 의미를 추구하여 更張이 단순한 更함과는 차원이 다름을 말했다. 이런 방식의 논법이라면 更張은 갱장이 아니라 경장으로 읽어야 합리적이다. 특히 ‘更하고 다시 更하다’[更而復更]는 표현이 재미있는데 그가 更張의 更을 다시 갱으로 읽었다면 이런 표현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심상룡의 「更張論」이 고맙다. 이미 更張은 경장으로 읽히는 말인데 무어 그리 수고해서 해결할 문제인가 싶지만 그래도 更張의 언어 습관에서 동사 更을 확인시켜 주는 사료의 존재는 반갑기만 하다. 아울러 경장에 관한 생각이 줄의 개혁에 초점을 두는가 악기의 보존에 초점을 두는가 하는 문제는 경장의 개념사 연구로도 흥미로운 주제인데 관련하여 ‘갑오경장’과 ‘경장’의 개념적 불화 가능성은 망외의 소득이다. 언젠가 다시 강릉에 여행가면 이번에는 해운정을 찾아 심상룡을 추억하며 그가 지은 「해운정중수기(海雲亭重修記)」와 「해운정팔경(海雲亭八景)」을 읽어보고 싶다.


노관범(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노관범(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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