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정신의 자기 전개로서 한국의 근현대사 / 손영식
- 한국연구원
- 4일 전
- 4분 분량
1. 우리는 기어코 윤석열 씨를 탄핵시켰다. 정말 가슴 뭉클한 순간이다. 나는 문득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이 생각났다. 그것은 자신의 고향 봉평을 위한 헌사이다. 나 역시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헌사를 쓰고 싶었다. 탄핵은 민주주의의 중대한 승리이다. 그것의 역사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근현대사의 시초까지 가게 된다.
노신은 북경에 살 때, 날마다 폭격하는 비행기 소리를 들으면서 그 순간 죽는 자들을 애도하다가, 전선으로 나간 젊은 제자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시 모음집을 만들면서, 「들풀(野草)」이라는 시를 쓴다. 밟혀도 밟혀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는 잡초를 생각한 것이다. 그의 「희망」이라는 시 역시 그렇다. “절망은 허망하다, 마치 희망이 그러하듯이!” - 그는 중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가슴 아파 한다. 그 중 더 슬픈 것은 그의 희망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더 슬픈 것은 앞으로도 실현될 희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 그에 비해서 나는 결실을 맺은 역사가 있는 한국에 산다. 나는 나라면 도저히 할 수 없었던 헌신과 희생을 하신 분들께 헌사를 바친다.

2. 나는 한국 근현대사의 시초를 1850년대 말의 민란이라 생각한다. 김씨 세도 정치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대원군의 집권과 개혁이 있었다. 이 개혁은 민란의 주축인 소작인 농민에 대한 지주 사대부의 공포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종이 안으로는 민씨 세도 정치에, 밖으로는 청나라에 의존해서 자기 권력을 유지했다. 청나라 의존에 반발한 갑신정변, 세도 정치에 대한 거부가 갑오 농민 봉기로 나타난다. 이에 대한 답이 갑오경장과 독립협회와 만민 공동회라는 개혁 운동이다. 이를 고종은 광무 개혁으로 뒤엎고 황제가 되는 것을 답을 한다.
일본이 1905년 을사 조약으로 조선을 강점하기 시작하면서 의병의 투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1910년 총독부 지배를 하면서 의병을 철저히 진압하자, 만주로 옮겨서 신흥 무관학교를 세운다. 그 결과가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 등이다.
일제가 ‘헌병 경찰’ 등으로 강압 통치를 했지만, 1919년에 3.1 운동이 들불처럼 전국을 휩쓴다. 그 결과는 상해 임시 정부의 수립, 그리고 1920년대 일제의 문화 통치이다. 이후 독립 운동은 미약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한국이 독립하지 못 했을 것이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뒤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은 식민지가 독립하는 붐을 이룬다. 강대국도 더 이상 식민지를 유지하지 않기로 나간다. 독립한 국가는 거의 대부분 독재자가 등장해서 강압 통치를 한다. 바로 그 시기에 시민이 들고 일어나서 독재자를 몰아낸 거의 유일한 사례가 한국이다. 1960년 4.19 혁명이 그것이다.
식민지에서 독립한 대부분의 국가는 독재자의 손에 떨어진다. 그 가운데 독재자가 독재 권력을 사용해서 경제 개발을 한 경우는 한국이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독재는 싱가폴의 리콴유 총리, 중국의 1980년대 개혁 개방 세력이 벤치마킹을 할 정도였다. 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개발을 했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자신의 권력의 정당성을 경제 개발에서 찾은 것이다. 왜 권력의 정당성을 제시해야 했는가? 바로 끊임없는 학생 시위와 시민의 저항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미 이승만 대통령을 몰아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
일국의 대통령이 술자리에서 총 맞아 죽는 것도 드문 경우인데, 다시 쿠데타와 독재가 들어섰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독재는 계속되었는데, 그것보다 더 질긴 것은 시민의 저항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죽은 자가 앞장 서고, 산 자가 뒤 따르는 행진”이 결국 독재를 극복해낸 것이다.
유신 시대에는 겨울 공화국에 절망한 사람들은 과연 봄이 올까 정말 희망을 가지지도 못 했다. 그러나 결국은 끝내 봄이 왔다. 영국은 1215년 마그나 카르타에서 1688년 명예 혁명까지 군주에 대한 신하들의 투쟁은 근 500년 가까이 했다. 우리 역시 세대가 흘러가도 망각하지 않았고 좌절하지도 않았다.

3. 한국은 근대와 현대가 구분없이 함께 시작된다. 근현대를 일관하여 관통하는 것 가운데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바로 국민 주권이다. 한중일 세 나라를 비교해 보면 이는 명확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근대화를 시작한다. 폐번치현(廢藩置縣)을 하여 천황 중심의 중앙 집중제로 국가를 개편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서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 그 목표를 정한론(征韓論)에 둔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대만을, 러일전쟁의 승리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다. 조선 주둔군은 만주를 침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내친 김에 중국을 침략하여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나아가 미국을 공격하여 2차 대전을 일으킨다. 군부가 국가의 주도권을 잡은 결과이다. 2차 대전의 패망 뒤에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자민당 1당 독재였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의 몫은 전혀 없었다.
중국은 아편 전쟁에 패배한 이후 신해 혁명으로 중화민국을 세운다. 그러나 원세개의 황제 즉위로 중국은 분열되어 군벌이 할거하게 된다. 5.4 계몽 운동 뒤에 국민당의 부활, 공산당의 창건으로 중국은 국공 내전에 빠진다. 이 내전을 틈타서 일본이 중국을 침공했다. 결과적으로 이 침공은 모택동의 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하게 만들어준다. 중화인민 공화국을 세운 뒤에 모택동은 1950년대의 대약진 운동으로 수천만 농민들을 아사(餓死)로 몰고, 1966-76까지 문화대혁명으로 혁명 동지였던 관료 지식인들을 대량 숙청한다. 이 과정은 중국 역사에서 호걸들이 기의(起義)해서 무제한의 리그전을 벌이고 최종 승자가 천하를 차지해서 왕조를 세우기의 반복이다. 게다가 황제가 된 자는 봉기 동지들을 대량으로 제거하고, 과실을 독점한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대표적이다.
4. 일본 중국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국민의 저항이 특징이다. 세월이 흘러도 저항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 시작은 미약했고 늘 진압당하였지만, 계속해서 일어나고 더 강해졌다. 그리고 결국 1990년대에 들어서서 민주화를 이루었다. 한국의 민주화의 과정은 때로는 프랑스 대혁명 같고, 때로는 영국의 국왕과 신하의 기나긴 투쟁 같기도 하다 .
이 과정을 보면, 마치 절대 정신이 있어서 그 자신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헤겔은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절대 정신이 자기 자신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 역사이고, 또한 해당 시대의 사회 국가의 제도가 된다고 한다. 이는 이성이 현실화되고, 현실이 이성화되는 과정이다. 현실은 고종, 일제, 이승만과 박정희 등이 지배했고, 국민의 저항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반’을 이룬다. 그 결과는 한국이 스스로 민주화를 이룬 몇 안 되는 나라가 된 것이다.
5. 윤석열 대통령은 2024. 12.3에 비상 계엄을 느닷없이 던졌다. 그는 손바닥에 ‘임금 王’을 쓰고 대선에 도전했고 얼떨결에 당선되자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다. 주역은 첫머리에서 ‘용’을 임금의 상징으로 쓴다. 123에 비상 계엄을 한 것도 역술의 느낌을 풍긴다.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 하지만, 그는 과거 두 번의 계엄령을 그대로 따라 한다. 독재와 종신 집권을 노린 것이고, 왕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우리의 역사를 관통하는 절대 정신을 우습게 안 것이다. 역술로 이성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멈추지는 않는다.
6.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면 매듭이 되는 굵직한 사건들이 명백히 큰 실패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큰 기여를 한다. 일제에 식민지가 된 것은 치욕이지만, 그것은 왕정을 끝내 주었다. 우리 스스로 조선 왕조를 끝내기는 지극히 어려웠을 것이다. 왕정→공화정으로 가는 것은 역사의 필연적 과정이다. 6.25는 동족 상잔의 비극이지만, 사회 구조가 철저하게 파괴되었기에 봉건적 신분제를 벗어나 비교적 평등한 근대 사회로 나가게 된다. 두 번에 걸친 쿠데타와 독재 정부는 국민을 짓눌렀지만, 초기 경제 개발을 위한 무식한 힘이 되었다. 이렇게 실패가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된 것도 국민 주권이 늘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뒤에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로서 선진국의 반열에 든 드문 경우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근현대사를 이끈 원동력은 국민의 힘이다. 그 힘은 절대 정신의 자기 전개로 드러난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다시 우리에게 절대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