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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관하여: 자녀에 대한 부모의 양가감정 -무조건적 자녀 사랑 VS. 무자식이 상팔자다?!- / 김성희

저출산 시대의 한국사회에서 자식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합계출산율’은 한 명의 여성이 가임 기간동안 자녀를 출산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2015년 1.24명을 기점으로 2020년 0.84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가임기에 해당하는 성인 남녀들을 인터뷰 해보면, ‘결혼은 선택’인 것과 같이 ‘자녀 출산 또한 선택’이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실제로 초등학교를 방문해 보면, 형제자매가 없는 외동아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아이를 적게 낳는 “저출산” 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60년대, 70년대 대한민국의 상황은 사뭇 달랐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발달한 사회에서 자녀는 곧 노동력이었으며, ‘가부장제’가 만연하던 한국사회에서 남자 아이의 출산은 노동력의 생산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가문의 대물림과 동시에 어머니의 지위를 굳건히 해주었다. 즉, 이와 같은 상황은 남아선호 사상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상황이 변화하고 ‘산아제한’ 정책이 나오며 국가에서는 “많이 낳아 고생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라는 구호를 내걸기 시작했다. 각 가구에 경제적 지원을 포함한 각종 혜택을 내건 이 정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하여 서서히 한국의 출산 자녀 수는 하락세를 보이게 된다.



각 가정의 공주, 왕자의 탄생


대한민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도 적은 수의 자녀를 출산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되었다. 이는 곧 한 가정 내 자녀의 수가 한 명 내지 두 명인 것을 뜻하게 되며, 자녀의 수가 적어질수록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에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부모 자신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총 동원하여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해주기를 원하며,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동시에 과도하게 자녀의 긍정적 측면만을 강조한다. 이는 자녀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은 돌아간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어린 자녀들의 공주, 왕자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신조어 ‘맘충’이라는 단어의 대두 또한 이 같은 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맘충이라는 단어는 주변 사람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하여 주변이나 사회 전반에 직간접적인 부정적 영향 및 피해를 입히는 아이 엄마를 뜻하는 신조어이다. 이처럼 자신의 자녀를 위해서 부모는 기꺼이 이기적이 되며 주위를 돌보지 못하게 되는 맹목적 사랑에 휩싸이게 되곤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는 사회적 흐름과도 연결되어 치열한 경쟁사회 내 개인주의가 성행하는 사회의 흐름과 함께 자기 중심적인 자녀가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치열한 학업열은 부모의 자녀 학업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 자녀가 공부를 하는데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 공부에만 집중하게 한다거나, 공부를 위해서 이사를 강행하거나, 경제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부모의 삶을 희생하며 자신의 일생을 자녀에게 모두 퍼붓는다.


‘맹모삼천지교’라 했던가… 현대판에는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거세며, 대학교에는 헬리콥터 부모들이 떠돌아 다닌다.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자녀의 학업을 위해 학교에 들락거리며 극성스럽게 군다는 의미를 뜻하는 ‘치맛바람’은 한국 학부모를 비꼬는 언어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한국의 수능 장면과 함께 자녀의 대학 입시를 위해 야단스러운 부모들과 함께 묘사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녀들이 대학교에 들어가면 헬리콥터 부모가 등장한다. 1990년 미국 발달학자 클라인(Cline, Foster)과 페이(Fay, Jim)에 의하여 명명된‘헬리콥터 부모’는 성인이 된 대학생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자녀의 일상을 통제하는 부모를 일컫는 말로, 하늘에서 헬리콥터가 떠 다니는 것과 같이 부모들이 대학생 자녀를 자신들의 시야에 넣고 통제한다는 비유에서 나타난 말이다. 이러한 부모들의 출현은 자녀의 삶에 있어 독립성을 저하시키며 혼자서 하는 행위를 어려워하는 의존적 자녀를 만든다.



맹목적 사랑의 대상, 자녀


이러한 부모들의 심리 상태에는 자녀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늘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본인을 희생한다. 이는 예전 사회나 현대사회의 부모나 다름이 없다. 다만 한 두 명의 자녀에 집중되는 부모의 관심은 자녀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며,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반발이 사회적 부작용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에게 경제적 혹은 정서적인 면에서 의존적인 자녀를 묘사하는 ‘캥거루족’ 등이 여기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부모 스스로에게 있어서도 자녀에게 집중하는 삶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 되기도 한다. 부모 또한 본인들의 꿈이 있었을 것이며, 추구하는 목표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50대 이상인 대다수의 부모들에게 자신들의 꿈에 대해 인터뷰 하면, 과반 수 이상에서 ‘자녀의 성공과 행복’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들리곤 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자녀는 무조건적 사랑(unconditional love)의 대상이며, 유교사상을 통해 부모가 존경받아왔던 것처럼 그 이면에는 자녀에 대하여 부모도 자신들을 희생하는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녀에 대한 사랑은 자녀의 수가 줄어들며 그 관심이 한 아이에게 집중됨에 따라 맹목적 사랑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자녀가 없는 부부의 경우 ‘이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자녀를 포기한 이기적인 사람…’저출산 대한민국에서 무자녀 부부를 수식하는 문장 중 하나이다. 결혼 후 자녀의 출산은 정상적인 것이며, 자녀의 존재 자체를 미화 하는 내재화된 문화는 미디어를 통해서도 종종 반영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혼을 통해 아이 출산으로 끝나는 드라마, 힘든 육아를 보여주면서도 아이의 웃음에 모든 힘듦이 사그라지는 영화 속 한 장면… 생명의 가치는 소중하다는 존재론적 입장에서 이와 같은 장면들은 미화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저출산 국가 속 자녀에 대한 맹목적 사랑은 자녀에 대한 집중도를 증가시키며 협소한 가족주의를 심화해 간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흥행 이유 중 하나로 손꼽히는 5살짜리 막내 역할인 꼬마 ‘진주’는 동네 어른들의 관심으로 성장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공동 육아’라고 일컫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만의 자녀’에 집중하여 양육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아이’로 생각하며 함께 더불어 키우는 문화… 70년대, 80년대의 한국사회의 현실이었던 이 같은 문화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대사회에서 양육 대책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이는 사회적 책임과 가족 책임 간의 대립을 펼치고 있는 부양 이슈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전 세대들은 자녀에게 희생을 한 만큼 자신들의 노후를 자녀들에게 맡길 수 있는 세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세대가 변하였다. 부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확산되며 가족 책임에 대한 의무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흐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책임 및 희생은 그 어떤 때보다도 치열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후 문제는 중·노년층에서 최대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



자녀 = 부모!?


사회적 흐름은 막을 수 없는 홍수와 같다.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사회의 변화는 흐름을 타고 변화할 필요가 때로는 있다는 것이다. 이를 현대사회의 맹목적 자녀 사랑과 노후 빈곤이라는 사회적 이슈에 빗대어 볼 때, 이전 세대와 같이 나의 못다 이룬 꿈을 자녀에게 투영하는 방식으로는 자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헬리콥터 부모의 탄생은 캥거루족을 이끌게 되며, 부모는 자신의 노후를 책임질 수 없는 형편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발달 단계에 따라 맹목적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 있지만, 성장함에 따라 자율성과 독립성이 중요한 시기로 변화하게 된다. 이는 영유아기 부모의 사랑과 관여를 통해 성장하여 성인 초기가 되며 점차적으로 독립적 성인으로 발달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후 노화가 이루어져 노년기가 되면 누군가의 도움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 되곤 한다. 이러한 발달 단계를 고려할 때, 우리는 자녀에 대한 태도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녀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나의 발달 단계에서도 나의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부모의 책임감과 함께 부모에게 당연한 부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잘 돌보아준다’는 말과 같이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분신이 아닌 한 명의 개체로 받아들일 연습이 필요하다. 영유아기 때 나만 찾고 쫓아 다니던 자녀가 성장하여 떠나가는 모습은 한편으로 뿌듯하지만 서운한 감정이 함께 동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와 자녀와 개별화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준비는 자녀가 성장하여 집을 떠남에 따라 중·노년의 부모만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는 ‘빈 둥지 시기’, 결혼 후 오랜 세월을 함께 하다 나이가 들어 이혼하는 ‘황혼이혼’ 등 삶의 시기별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이슈들의 출연 시 보다 필요해지곤 한다. 삶에 있어 위기로 느껴질 수 있는 이러한 시기들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자녀에 대한 관심 뿐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파트너와의 관계 또한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성희(연세대 교양교육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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