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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숲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 / 오영진

최종 수정일: 11월 8일

작년 11월, 학생들이 숲속에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생태학 수업처럼 보이지만, 이 수업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이었다.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을 논하면서 우리는 왜 숲에 있었을까.

학생들이 찍어온 사진들을 보면 개미 세 마리가 기이하게 얽혀 있는 장면, 오래된 솔방울 위에 기생해 돋아난 버섯, 흙과 이끼가 엉킨 이미지들이 있었다. 모두 비정형적이고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나는 이 이미지를 그대로 프롬프트로 최대한 옮겨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재현을 시켜보았다. 그러나 결과물은 달랐다. 개미는 세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로 나오거나, 더듬이가 과도하게 많았다. 아무리 자세히 지시해도 학생들이 가져온 현실의 장면과 닮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언어 기반의 기계에게 재현하라고 시키는 일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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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어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지만, 사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가 훨씬 넓다. 손의 미묘한 제스처들처럼 이름 붙일 수 없는 형태들이 존재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 언어 바깥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언어 데이터를 통해 훈련된 기계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프롬프트그래피(promptography)’라는 말을 자주 쓴다. 19세기에 ‘빛으로 그린 그림’을 뜻하는 포토그래피(photography)라는 용어가 등장했듯, 이제는 ‘언어로 그린 이미지-글-소리’의 시대가 온 것이다. 말하자면 생성형 인공지능은 빛이 아니라 프롬프트로 작동한다. 하지만 그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제너레이션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언어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는 기술이다. 이를 수학 용어를 쓰자면 ‘인터폴레이션(interpolation)’이라 부른다. 두 점 사이의 가능한 관계를 계산하는 능력이다. 예컨대 “황금 우엉조림 레시피를 만들어줘”라는 문장을 넣으면, 기계는 다섯 단어의 의미 좌표를 계산해(독자들을 위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단어들을 찾아 확률적으로 연결한다. 전혀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언어들의 관계를 조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성형 인공지능은 창조의 천사처럼 보이지만, 실은 연결의 마법사다.


이론적으로 이 기술의 한계가 존재한다. 워싱턴대의 에밀리 밴더 교수는 이를 “확률적 앵무새(probabilistic parrot)”라 불렀다. 언어를 모방하고 되풀이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콜롬비아대의 라파엘 밀리에르는 “확률적 카멜레온”이라 했다. 뉴욕대의 게리 마커스 교수는 “끝없는 단어의 조합으로 허황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계적 이야기꾼”이라고 했다.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던질 때, 돌아오는 답은 현문현답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것의 재결합과 약간의 확장인 이유다.

이제 심각해지는 문제는 정보의 납작화(flattening)다. 예를 들어 수많은 블로그들이 인공지능으로 '황금우엉조림' 레시피를 자동 생성해 올리면서, 세상의 조리법은 놀라울 만큼 비슷해졌다. 아마 기계가 이런 데이터를 다시 학습한다면, 정보는 점점 더 납작해질 것이다. 서로 다른 레시피가 단 하나의 황금우엉조림 레시피로 수렴하듯, 언어와 사유의 다양성도 희미해진다. 실은 교실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느낀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잠시 멈칫한 뒤 “잘 모르겠어요” 혹은 어디선가 들은 말을 반복한다. 인간의 사고마저 점점 납작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 세대에 대한 비난은 아니다. 말하기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경험과 사실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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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생성 인공지능’을 국내 교양 수업에 가장 먼저 도입한 교수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엔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가 남는다. 기술이 창의와 해방의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사고를 납작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언어를 벗어난 감각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냄새, 형태, 소리, 감정에 대한 훈련이다. 숲속에서의 수업은 바로 그 훈련이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구현할 수 없는 비언어적 이미지들을 학생들이 직접 찾아내고 기록하는 일. 그것이 언어 바깥을 감각하는 예술 교육이다.

그렇다고 내가 기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은 여전히 언어 내부에서의 잠재성을 탐구하는 훌륭한 도구다. 2022년, 나는 미드저니를 이용해 ‘머리카락 권총’이라는 이미지를 만든 적이 있다. 머리카락과 권총이라는 전혀 다른 속성의 단어를 결합한 결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형상이 탄생했다. 인간은 고정관념과 카테고리 때문에 이런 발상을 하기 어렵지만, 기계는 언어적 경계를 초월해 새로운 조합을 보여준다. 언어의 잠재적 공간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여전히 유의미한 창의 행위다.

중요한 것은 방향일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과 함께(with AI) 살아가되,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beyond AI) 감각을 회복-획득해야 한다. 언어 안에서의 급진적 실험과 언어 밖에서의 새로운 체험,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훈련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비슷해졌고, 동시에 가장 맛있는 지 여전히 의문인 황금 우엉조림 레시피처럼 납작해질 것이다. 오늘도 숲속에서 인공지능 수업을 해본다. 언어의 한계를 체감하고, 언어 바깥의 세계를 느끼기 위해서다. 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이게 가장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 발표는 서울과기대 교양대학이 주최하고, 한국연구원이 후원한 <교양의 고양이들>이라는 행사 중 이뤄졌습니다. 핀조명과 무대장치 위에서 기존 학술발표와 다른 톤으로 발화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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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진(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오영진(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댓글 1개


rping Zhuang
rping Zhuang
3일 전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세상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한다면 분명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때일수록 잠 이런 때일수록 잠시나마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Block Blast 의 free online games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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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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