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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깰 수 있는 동물 / 박성관

최종 수정일: 2020년 11월 4일

1. 조만대장경.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위선자라 공격하던 자들이 만들어낸 재밌는 신조어다. 언론이 까밝혀낸 그와 가족의 실상(?)에, 그가 과거에 했던 온갖 정의로운 말들을 갖다 대기만 해보라. 그리하면 조 장관이 얼마나 위선자인지를 스스로 드러낼지니, 그의 과거 어록이 곧 조만대장경이다!

2. 나는 소심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말이라도 박력있게 하자는 쪽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거, 주장하고 싶은 게 분명히 있는데, 그걸 나중에 곤란할지도 모르니 말하지 않는다고? 또는 지레 줄여서 말한다고? 그거 좀+너무 천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마구 내지르는 타입의 인간에게 가끔 감탄하기까지 한다. 열렬하게 같이 퍼마신 다음 날 친구한테 전화 걸어 “내가 어제 말이 너무 심했던 거 같은데...” 운운하는 사람과는 상종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던 것은 김수영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대략 이 정도가 위선자 프레임을 보며 떠오른 것들이었다.

3. 약속이란 많은 경우, 억압 체제가 우리 신체와 내면에 새기고 싶어하는 문신이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고 말해야만 끝났던 예전의 ‘국기에 대한 맹세’가 딱 그랬다.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그녀는 “혹시 나중에 아이를 갖게 된다면, 결코 맹세하는 아이로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온통 불행뿐이었던 삶으로부터 이렇게 맑은 세계를 출산하는 것(원인을 배신하는 결과!), 이것이 아나키스트다. 나는 그녀의 말이 사람들의 상식과 윤리가 되는 사회를 바란다. 그런데 참 묘하지, 이 또한 그녀의 열렬한 맹세 아닌가! 자신을 억눌러온 체제에게 어떤 약속도 해주지 않겠다는 자발성의 극한!


4.

김영삼 : 니는 와 그리 거짓말을 잘 하노?

김대중 : 난 거짓말 한 적 없다. 약속을 못 지켰을 뿐이지.

김영삼은 집안도 부유하고 학벌도 좋고 정치적 기반도 경상도였다. 게다가 자~알 생겼다. 그러니 거짓말 할 일이 적었겠지. 김대중은 젊어서부터 “빨갱이!”라는 공격에 시달렸고(적은 그의 목숨을 여러 번 빼앗으려 했다) 상고 출신에다가 정치적 기반은 호남이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거나 사후에 얼버무려야 할 때가 자주 있었을 것이다.

밑바닥 사람들의 어두운 삶에도 수많은 거짓말과 협잡과 변명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영롱하다. 자신과 가족들이 살아남아야 했기에 그 말들은 필사적으로 얽히고 설켰다. 여성들은 얼굴에 다른 얼굴을 덮었다. 한데 거기에 스스로 매혹된 별난 성분의 파우더가 뿌려지기도 한다. 화장이 가끔 얼룩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5. 특이한 사람 니체는 잊어버림이 무능력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특별한 능력이라고 했다. 그래놓고 곧 이어 잊지 않음, 즉 “약속을 할 수 있는 동물”을 찬양했다. 그런 동물종이 탄생하기까지 인류사가 피와 고문으로 얼룩져야 했단다. 푸코는 이 통찰을 자기 식으로 사용하여 󰡔감시하라, 처벌하라󰡕를 썼다. 거기에는 사람들을 약속할 수 있는 주체로 주조해 낸 근대의 혹독한 과정이 그려져 있었다. 책 종반부에 접어들면서 내가 태어난 이 세상이 무시무시해졌고 깊이 슬펐다.

6. 약속은 할 때도 부담스럽지만 약속한 이후 부담감이 더 가중되기도 한다. 억지로 한 약속이든 스스로 다짐한 것이든, 공적인 약속이든 친한 친구랑 한 약속이든 마찬가지다. 나는 이 부담감이 심히 불쾌하고 싫어서, 오래 전부터 이 무게를 줄이고 싶어했다. 그러다 얼마 전 이상한 사람 니체에게서 팁을 하나 얻었다. 그는 약속이란 걸 단지 ‘저당잡힌 언질’이 아니라 자신이 능동적으로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약속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때 우리는 “주권자로서의 개인”이 된다는 거다. 약속에 알레르기가 있는 내게 기묘하게도 설득력이 있었고, 나는 처음으로 그가 조금 마음에 들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도덕의 계보󰡕를 보시라. 만일 그의 짜증나는 말투 때문에 못 읽겠는 분들에겐 이 책을 권한다. 󰡔도덕의 계보󰡕보다 더 나아간 팁도 들어 있다.


7. 니체의 생각은 그렇고, 내가 생각하는 ‘약속 이후를 자유롭고 명랑하게 지내는 법’은 이렇다. 우선 약속에 대한 과중한 부담감은 건강에 해롭다는 걸 기억하자. 지키기가 힘들면 안 지켜도 된다. 그냥 지키기 싫을 때도 그렇게 해보자. 사실 적잖은 약속들이 주변의 압력 혹은 유형무형의 강요에 몰려 그만 내뱉게 된 것일 때도 종종 있지 않은가! 그런 억울한 느낌은 대체로 약속을 한 후 점점 더 강해지는데, 그게 확신으로 바뀌면 더더욱 안 지키는 게 좋다. 또 한 가지, 약속한 것보다 더 나은 걸 해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남과의 약속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다짐의 경우에도.

8. 다시 말하지만,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누가 그런 관념을 내 귀에 피가 나도록 속삭였는지 자주 의심해보자). 법과 맺은 약속이라면 위반하고 처벌받으면 된다. 도덕적 약속이라면 어기고 비난받으면 된다. 이런 상황까지 포함하여, 약속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나의 선택영역이고 나의 자유다. 헌법도 그렇다. 헌법을 영어로 constitution이라 한다는 데 착안해보자. 헌법은 이전에 사람들이 구성한 것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불만스럽다면 안 지키거나 아니면 시간이 들더라도 다른 것으로 새로 구성해가면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우리’의 자유며, 선택지들은 의외로 다양하다. 아예 안 지킬 수도 있고 반만 지킬 수도 있다. 더 좋은 걸 해줄 수도 있고 약속을 조금 바꾸어 지킬 수도 있다. 물론 약속 그대로 지키는 것도 때로 좋다. 단, 그 때에도 가능하면 나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그러자.

9. 약속을 부분적으로 어길 때는 변형이라고 하고, 거짓말을 할 때는 상황의 변화에 대한 자상한 설명이라고 생각하자. 이때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게 관건이다. 어차피 깨야 할 때라면, 내 마음이라도 편한 게 정신 건강에도 좋고 실제 목표 달성도도 높다. 이렇게까지 알아듣게 얘기했는데도 선뜻 내키지 않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도록 몇 가지 얘길 해드리겠다.


먼저, 이 방면에 관해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불세출의 영웅 바쿠닌을 소개하겠다. 그 분의 전공 분야는 ‘돈 빌리고 안 갚기’였다. 바쿠닌님은 워낙 중요한 혁명을 수행해야 했기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돈을 꿔야 했다. 한번 마주 앉기만 해도 금세 반할 정도로 호탕한 매력남이셨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냥 주거나 선선히 꿔주었다. 제일 많이 주고 또 끊임없이 꿔준 사람은 러시아의 문학가 트루게네프였다. 부유했던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돈을 빌려주었는데, 이상하게도 빌려가는 시점들이 대체로 일치한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바쿠닌이 그에게 돈을 빌린 다음, 더욱 많이 우려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통해 대신 빌리는 술책을 부린 것이었다. 그분의 위대함은 못갚는 걸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빌릴 때부터 갚겠다는 부담감 자체를 느끼지 않으셨다. 계급의 적에게 진 빚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지만, 이걸 제외하고는 아예 상환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순결한 영혼이었다.


당대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였던 게르첸은 바쿠닌에게 매달 10파운드를 줬고, 빌려준 돈의 액수도 적지 않았다. 한번은 잡지 제작을 위해 마련해 놓은 큰 금액마저(ㅠㅠ)빌려주게 되었다. 게르첸은 이전에 빌린 건 안 갚아도 되지만 이건 정말 꼭 갚아야 하는 돈이라고 신신당부하며 빌려주었다. 그러나 바쿠닌이 어디 갔겠는가? 아무래도 안 되겠던 게르첸이 몇 번 돈 얘길 하자(그것도 애걸조로) 바쿠닌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그렇게 과거에 연연하는 거야!”(E.H.카 󰡔바쿠닌 평전󰡕. 삼가 봉독하시길)


10. 이런! 사례 하나를 얘기했을 뿐인데 벌써 약속한 분량을 넘어섰다. 어쩔 수 없다. 무수한 사례들을 조사해 놓았지만(정말이다), 딱 두 가지만 언급하겠다. 우선 자연과학의 (할)아버지 갈릴레오의 마술사적 테크닉부터. 그는 책을 쓰면서 논증 중간 단계쯤에 꼭 필요한,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진술(진술 1)이 있을 경우, 1단계 - 일단 진술 1이 옳다고 쓴다. 2단계 - 그건 증명하지 않고, 그보다 몇 배나 더 불가능해 보이는 진술(진술 2)을 증명하면 믿겠냐고 한다. 3단계 - 진술 2를 멋지게 증명해보인 다음, 진술 1도 사실은 증명할 수 있다며, 그 다음 논증 단계로 상승해버린다.



사람만이 아니라 각종 동식물들의 속임수와 약속 파기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 얘긴 지금 할 여유가 없으니 대신 기본 물질들 자체가 그렇다는, 더 엄청난 사실을 제시하겠다(만일 그렇다면 각종 동식물들은 문제도 아니지 않겠는가?). 기본 물질들은 자기가 자기라는 것을 부정하는 신공을 구사한다. 우리가 잘 아는 수소는 H₂, 즉 H가 두 개 모인 것이다. 그런데 셋이 모이면 전혀 다른 성질의 중수소(H₃)로 변태(變態)한다. 마찬가지로 산소도 두 개 모이면 산소(O₂)고 셋이면 오존(O₃)이 된다. 그런데 나는 방금 수소 한 개나 산소 한 개는 말하지 않고 둘이나 셋만을 말했다. 그 이유는 자연계에 수소 하나, 산소 하나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있다, 아주 잠시 동안은). 결국 H 하나는 고정된 존재도 아니고 고유한 성질도 없지만, 그게 두 개(2H)면 H₂가 된다. 게다가 3H면 H₂의 3/2배인 3/2H₂가 아니라 H₃(중수소)라는 전혀 다른 물질이 되어버린다. H₃에 H₂도 없고 H도 없다는 이 황당한 사실. 잠시 샛길로 빠지자면 수학에서도 그렇다. 3 안에는 3이 없고, 있는 거라고는 1이나 2뿐이다. 모든 수가 그렇다. 또 자연수의 집합 안에는 ‘자연수의 집합’이라는 원소가 없고, 실수의 집합 안에는 ‘실수의 집합’이 없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주기율표에서 보는 대부분의 원소들이 그러하다. 무에서 유로, 그 다음엔 다른 유로. 이것이 물질들의 생활사(生活史)다. 자기를 반복할 때마다 변태하니 다른 것과 만나면 어떻겠는가! 수소는 산소와 만나면 뿅!하고 물이 되어버린다. 염소와 만나면 염산(HCl)이, 질소와 만나면 암모니아(NH₃)가 된다. 경탄은 할지언정 전혀 불안스레 여길 일이 아니다. 기본 중에 기본인 에너지와 물질만 있던 빅뱅 직후의 상태에서 오늘날 이토록 다양한 우주로 다채롭게 진화한 것은 자연스럽다. 심지어 지구에서는 생명체들까지 탄생하고 번성하지 않았는가! 이런 일을 당신이 했는가? No! 그럼 각각의 은하계나 별, 행성들이 했는가? No! 그럼 남은 것은 물질들 자신뿐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그 다음에 그걸 또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자연계의 기본 모드다. 그 물질들로 이루어진 인간들이 자신의 과거를 부인하는 일은 극히 자연스럽다. 이것이 만물의 본성이요 힘이다.


박성관(독립연구자 겸 번역가. 『표상 공간의 근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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