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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우리들의 그윽한 수풀 / 김보슬


섬은 국토의 최전방으로 영해와 영공의 기점이며, 독특한 생태환경과 역사·문화 자원의 보고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섬의 중요성과 가능성은 충분하게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혹자의 말을 빌리자면, 섬은 아직도 일부 뭍 사람들에게는 “육지의 부스러기” 쯤으로 생각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바다의 문제는 곧 지구 전체의 문제일 터이다. 또한, 섬의 자원과 자산은 급속한 기후변화를 비롯해 지구가 현재 당면해 있는 여러 가지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쓰일 수 있는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그렇다면 세계 섬들 간의 교류와 협력을 꾀하고, 창의적인 섬 문화, 언어, 몸짓으로 지구가 처한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은 타당해 보인다. 올해 4월, 우리나라에서 행정구역상 섬이 가장 많은 전라남도 신안군에는 ‘섬문화다양성네트워크 추진단’이 설립됐다. 문화 다양성을 근간으로 전 세계의 섬 관련 기관, 지방정부, 활동가, 연구자를 망라한 초국가 네트워크의 기초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추진하는 일들 중 하나가 바로, 예술가들과 함께 바다숲 살리기에 앞장서는 것이다.


그런데 바다숲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일 먼저 든다. 바닷가에 있는 숲인가? 바다의 넓고 깊음을 초록이 우거진 수풀에 빗댄 말인가?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바다 밑에 있는 숲이다. 한자로 해중림(海中林)이라 표기되는 해저의 녹지. 해초, 산호초, 켈프 등으로 이루어진다. 지구 산소의 약 70퍼센트를 제공하는 아주 중요한 곳이니, ‘지구의 폐’로 잘 알려진 아마존의 밀림만큼이나 우리에게서 멀고 가까운 모든 생명 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파도 소리 없는 서울을 섬, 바다와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섬은 우리나라의 그윽한 수풀이라고 했던 다산 정약용의 말을 떠올려 보면서…


[사진 1. 바다숲, 출처_National Ocean Service, oceanservice.noaa.gov]

그런 바다숲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최근 국가적으로 바다식목일(5.10)을 지정하고 바다목장을 조성하는 등 해양생태계 보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바다 생물에 식량을, 전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바다숲이 사라지는 것은 실로 끔찍한 위기가 아닌가. 지구 온난화, 해수 오염으로 인해 해조류의 번식량이 급감하고 그 자리에 하얀 석회조류가 덮이는 바다 사막화. 갯녹음이라고도 하는 이 현상이 그 중심에 있다. 바다숲이 사라지면 바다의 생명 활동이 위협받음에 따라 어민의 소득과 건강한 식자원이 감소하는 등 그 연쇄반응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삶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바다숲 보호는 섬 지역만의 과제가 아니라, 지구를 보호하고 건강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지역사회와 국제사회가 실로 함께 대응해야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바다숲은 육상환경과는 달리 육안으로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식의 토대조차 연약한 실정이다. 이러한 어려움에 맞서기 위해 섬문화다양성네트워크는 국제 캠페인을 구축하고 있다. 이제, 코로나를 겪어본 인류는 플랑크톤의 단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을 알리는 데에 문화활동이 가장 설득력 있지 않을까? 언어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춤 움직임 등, 예술 장르를 활용하는 이 캠페인의 이름은 <바다숲 살리기 산다이>이다.


[사진 2. <해초와 바다 세상(Seaweed and Sea World)>, 프랙탈아티스트 박보석]

나의 이전 글에서도 ‘산다이’가 언급된 적 있지만, 이것은 서남해 도서‧연안지역에서 연행된 노래판에서 유래한 단어로, 섬마을이나 갯가 청춘남녀가 어울려 놀이하는 것을 뜻한다. ‘산대희(山臺戲)’에 대응하는 전남 지역의 말. 남도 전통의 연희문화, 연애문화를 함축하고 있다. 지역성과 상징성을 가진 말이다. 그러나 고답적인 차원에서 산다이를 재현하자는 것이 아니라, 캠페인에 참여하는 각자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 과정을 능동적으로 주고받음을 강조하기 위해 프로젝트 이름으로 이것이 차용되었다.

이 캠페인에는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참여한다. 아직 생소한 용어인 ‘바다숲’을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고 놀이화하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무용, 그림, 사운드아트, 사진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가지고 펼치는 바다숲에 관한 메시지는 웹사이트를 통해 대중과 공유될 것이다. 우리나라 출신의 김이슬(무용), 박윤삼(미술), 박철휘(콘셉트디렉팅·웹디자인), 오치근(그림책), 이권형×파제(음악), 현지예(드라마투르기)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Deborah Lynn Afuang(필리핀, 무용), Sasaki Sujin(일본, 사운드아트), Sacha Copland(뉴질랜드, 무용), Randy Richardson(캐나다, 사진)이 참여 중이고, 곧 이들의 작업을 대중에 알릴 웹사이트 또한 준비 중이다. 웹사이트는 2020년 12월 말에 있을 오픈을 앞두고 있는데, 각각의 작업은 시민들에게 행동이나 화답을 요청할 수도 있고, 피드백을 거치며 진화할 예정이다.

2020년 10월 그리고 11월, 프로젝트 참여자들 간에는 몇 차례의 만남이 있었다. 연구자에게 생태학 공부의 조언을 청하는 시간, 작가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 그리고 신안의 섬 현장을 답사하고 섬에 관련한 전문적인 강연을 듣는 시간이 그것이었다. 살리기 위해서는 구조의 대상을 바라보는 것, 듣는 것, 실감하는 것, 마침내 우리의 앎의 문을 조금씩 넓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터였다. 그러한 만남의 흔적 중에서 인상 깊은 하나를 여기에 짧막히 공유한다. 바다숲 살리기 산다이 관계자들과 어느 생명과학자의 대담이었다.


[사진 3. <Cities and Oceans of If>, Aviva Rahmani, 2002]

바다의 위기는 육지의 위기다! 만일, 바다의 천연자원이 가치 있게 보존된다면?

대담

2020년 10월 8일. 김산하(영장류학 박사), 김보슬, 현지예(바다숲 살리기 산다이 관계자)는 서울 을지로의 커피숍에서 만났다.

김보슬: 만남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님께서는 영장류학자로서 연구 분야가 바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신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자문을 요청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생명다양성재단’의 사무국장으로 계시며 작년에 기획하셨던 <쓰레기와 동물과 시> 백일장처럼, 포괄적인 생명성과 문화 다양성을 여러 각도에서 다루어 오신 분이라는 점에서, 저희 참여 작가들에게도 들려주실 이야기가 있으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현지예: 저도 박사님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 역시 대학에서의 전공은 생명과학이었는데요, 이 캠페인의 이름에도 들어가는 ‘살린다’는 행위가 과연 무엇일지 근원적인 고민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산하: 바다숲을 전면에 언급하는 예술 프로젝트나 국제 캠페인의 사례가 없었기에 이번 프로젝트는 특별히 고무적이며 기대가 큽니다. 바다숲은 은유적으로 ‘숲으로서의 바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해조류, 켈프, 산호초 등으로 이루어진 실체적 숲이기도 합니다. 순수 해양 관련 기관에서도 드물게 다루는 영역이라, 바다숲에 관한 대중의 인식은 확실히 부족하지요. 아트워크 작업에 앞서 검토해 볼 만한 것으로,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은데요.

1. 사이트 확보

바다숲을 현실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도록 최소 한 군데의 현장을 확보하여, 오감이 작동하는 공간을 토대로 하여 생각을 펼치고 나누기를 바랍니다. 이건 정말 중요해요.


2. 바다숲 그리고 생물과의 상호작용 리서치

‘핵심종’으로 기능하는 생명체들을 공부해 보기를 바랍니다. 가령, 성게를 먹이로 하는 해달의 숫자가 줄어들면 초식을 하는 성게에 의해 바다숲은 사라져 가는데요. 동물, 플랑크톤, 혹은 조류가 각기 어떻게 바다숲을 활용하고 있는지, 바다숲은 어떤 특정 종에 취약한지를 알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러한 작용은 돌고 돌아 어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돼요.


3. 해양환경 보전의 문제

해양 자원을 둘러싼 산업의 실상을 알아보기 바랍니다. 기업 및 각종 이익집단의 만행은 바다 생태계뿐 아니라 인권마저 위협하고 있거든요.


4. 범지구적 환경 문제

바다의 위기는 지구 전체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해양 문제가 전 지구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관해 조사해 보기를 권합니다. 조력이나 풍력을 이용한 발전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인식되고 있으나, 그 이면에서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하지요.


5. 행동 유발

신안의 주민, 어민을 포함한 다양한 일반시민들과 접촉하는 링크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끼리의 소극적인 ‘좋아요’로 끝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적극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들과 더불어, 컨텐츠 가공이나 발굴에 있어서는 진실성이 중요합니다. 결과물을 전파하고 홍보하는 문제는 도리어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잘 하시리라 믿거든요.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진실한 목소리를 담아주기를 작가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출신지, 거주지별로 각자의 섬에 대한 인식을 마주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자기 안의 인지하지 못했던 섬을 비롯해 별 볼 일 없는 섬조차 별 볼 일 있게 만들어주는 작업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보슬(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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