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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소설, 팬 액티비즘(fan activism), 시민적 상상력: '되돌아보기'에서 솔라펑크까지 / 헨리 젠킨스

최종 수정일: 2022년 2월 22일

번역: 전혜진(장르문학비평가, hjjun98@gmail.com)

감수: 오영진(michido@hanyang.ac.kr)

"2060년, 세계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닐 것이다…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청정 에너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몇몇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은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위한 세계의 평등과 정의를 위해 여전히 싸워야 할 것이다. 이는 어렵고도 지난한 작업을 요구한다… 홀로코스트가 있었지만, 우리는 광신자를 지도자로 뽑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정의와 평등의 위해 싸우는 저항군들과 함께 있다."

- 몬세라트 A. (멕시코)1)

판데믹으로 락다운 된 2020년 이래로, 남캘리포니아 대학의 시민적 상상력 프로젝트는 세계의 사람들에게 2060년을 기점으로 "되돌아보기"를 요청했다. 그리고 판데믹이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켰을지에 대한 그들의 상상을 공유했다. 다양한 참가자들이 다가올 미래를 곰곰이 생각함으로써 시민적 상상력의 지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2) 우리는 로봇 혁명과 환경 파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또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들, 인간 본성의 모순과 변화하는 세계를 포착한 이야기도 들었다. 이야기는 때로는 유토피아적이었고 때로는 디스토피아적이었으며, 때로는 둘 다였다. 중요한 것은 국경을 초월한 참가자들 모두가 현재 세계를 다시 상상하기 위해서 이 성찰적인 행동을 하는 방법, 즉 스스로를 미래로 투영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언어에 능통했다. 이불 밖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해석하고자 하는 많은 사회 비평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비판이론과 교육학 권위자 헨리 지루(Henry Giroux)의 2020년 글을 읽어보라. “이제 현실은 비참한 소설 작품으로만 상상될 수 있었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닮아간다… 머지않아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이 불길한데, 역사는 미결정 상태이고 불안정한 상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청년 및 그 밖의 사람들이 전 지구를 가로질러 봉기함으로써 — 거리를 행진하면서 영감을 얻고, 격려 받음으로써 — 급진적 민주주의의 미래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다시 상상되기를 기다리고 있다.”3)


여기서 다시, 이들 저자는 우리의 지구가 대면하고 있는 위기를 직시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유의 양식을 사변소설이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사변소설이 인생에서 관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빠르고 극적인 변화를 경험할 때에만 가능하며, 그 장르가 우리의 제도와 실천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택하는 방법을 창안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의 프로젝트가 지도를 그리고 세계의 공동체를 자극하려 애쓰는 것은 이러한 사고방식, 즉, 우리가 시민적 상상력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환이다. 그것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본질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4) 우리에게 상상하는 행위는 사소한 것이나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삶에 있는 진정한 간극을 인식하고 세계를 건설하는 대안적 방법을 찾게 한다. 얼마쯤 더 나은 10년을 위해,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꿈과 희망, 두려움과 열망을 공유하면서, 이 과정에서 모두가 살고 있는 곳인 세계를 각자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세계-구축(world-building) 프로세스를 이용하여 미국 및 세계의 공동체와 작업해오고 있다. 우리는 더 나은 세계는 어떻게 보일지,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수단으로서 보다 장기적인 성찰을 포함하는 것으로, 그리고 현재 순간의 한계를 넘어선 집단적이고 활동적인 생각의 과정으로 상상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계-구축에 대한 우리의 접근은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렉스 맥도웰(Alex McDowell)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의 제작 기술을 발전시켰다. 또한 서로 다른 세계가 어떻게 출현하는지 탐색하기 위해 이미 현재 일어나고 있는 추세를 따라 사고-시스템을 적용하였고, 이로써 다양한 전문적 기술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는 범죄를 예측하는 치안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미래, 개인화된 광고, 도시의 운명, 그리고 새로운 교통수단 양식에 대한 사유를 필립 K. 딕(Phillip K. Dick)의 원작 소설보다 잘 보여주었다.5) 맥도웰의 관심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에 들어맞는 세계를 만드는 데 있었지만, 우리의 관심은 세계 구축 과정 그 자체에, 그리고 참여자들이 성찰적 사고를 통해 서로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있다. 우리는 과학소설이나 독자들이 리믹스한 습작품을 워크숍과 브레인스토밍의 종자로 삼았고, 세계-구축 같은 것을 도구로 사용했다. 이러한 작업에서 아랍권의 교육자, 스웨덴의 게임 디자이너, 로스앤젤레스의 성 노동자와 보건진료 전문가들, 켄터키의 탄광 노동자와 담배 농장주처럼 다양한 그룹과 함께 시험하고 수정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멕시코와 파키스탄에서 우리의 모델을 활용하였다.6)


우리의 목표는 시나리오 기획이 아니며, 그럴듯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주변 세계를 다시 상상하도록 해주는 사변소설의 은유를 폭넓게 확장하는 데 있다. 미래뿐 아니라 현재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공유된 열망과 불안 주위로 공통의 토대를 발견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한 가지 개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미래로 열린 채로 있다. 참여자는 현재에 맞서는 방법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모순과 차이를 탐험한다. 우리의 관심은 시민적 재생을 위한 자원으로서 사변소설을 이용하는 데 있다. 이는 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젊은 활동가들과의 연대로 고무되었다.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젊은 활동가들이 사회적 정의와 정치적 변화를 모색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은 대중문화, 특히 사변장르에서 쓰는 속어로 말한다. 동시대적 시위 집회를 보라. 그러면 다수의 서로 다른 텍스트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배치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미 대통령 취임식에 이어 전국적인 여성 시위가 있었는데, 시위 내내 레아 공주(Princess Leia)의 형상이 기호로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스타 워즈 영화에서 레아가 연기한 역할은 월트 디즈니가 인수하고 프랜차이즈로 판촉된 이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점을 새롭게 인식했고, "여성의 자리는 저항에 있다"는 것을 알렸다. 다른 곳에서 우리는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의 소설, 『시녀 이야기(Handmaid's Tale)』의 시녀의 모습을 코스프레하는 데서 모방할 권리를 위해 싸우는 시위자들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다른 젊은이들(해리 포터 동맹)이 GLBTQ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해리 포터를 이용하는 동안7), 이민자의 권리 운동은 세계를 변화시켜왔던 "불법적인 이방인"의 형상으로 슈퍼맨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 밖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Avatar)〉에 나온 나비 족이 되어 "빼앗긴 국경을 가로지르며" 시위한다. “지구인들(sky people)이여, 너희는 우리 땅을 빼앗지 못해!8) 태국에서, 학생 시위자들은 부의 불평등에 저항하는 그들의 시위를 알리기 위해 〈헝거 게임(Hunger Games)〉을 본 따 세 손가락으로 경례하는 플래시몹을 한다.




우리가 찾은 대부분의 사례에서는 젊은 활동가들이 진보적인 대의를 선전하면서 과학소설을 포용하였다. 하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1976년 출판된 윌리엄 루터 피어스(William Luther Pierce)의 『터너의 일기(The Turner's Diaries)』(앤드루 맥도널드(Andrew MacDonald)라는 필명으로 나왔다)는 세계의 대안-보수가 흡수했던 수많은 과학소설들 중 하나이다. "시스템"을 겨냥한 폭동과 인종전쟁 묘사는 미국 국회의사당9)에서 발생한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 시위대의 폭동에 문화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언급된다.10) 각각의 사례에서, 사변소설은 이들 활동가에게 정치적인 시민적 대리자로서의 감각을 발달시키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과 윗세대들로부터 물려받은 세계를 비판하는 데 필요한 원천을 제공한다. 그리고 활동가는 때때로 영웅적 형상의 장난스러운 배치가 운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불가피한 패배와 좌절 속에서도 그들을 지탱해준다는 것이다.


워크숍에서, 우리는 보수적인 참여자들이 대안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데 더욱 주저하고, 인간의 진보 개념에 대해 보다 회의적이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문화적 전통에 더 골몰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워크숍 장면에 최선의 과거를 미래로 함께 가지고 간다는 신호를 삽입함으로서, 우리는 성찰 프로젝트를 확장하고 그와 함께 안정감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학소설이라는 장르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전에 어떻게 과학소설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을까? 그 중심에는 시민적 상상력이 있다. 간략한 설명을 위해, 나는 특정한 주요 순간과, 장르의 진화가 확산된 경향을 설명하는 핵심적 운동을 선택해 붓질하듯 짚어나가도록 하겠다. 에드워드 벨러미(Edward Bellamy)는 『뒤돌아보며(Looking Backward)』(1888)11)에서 미래 사회의 유토피아적 비전을 활용하여 산업혁명이라는 진보적인 시대를 비판하였다. 예컨대, 책에서는 작가 자신의 시대의 공장이 토해낸 그을음과 매연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반짝이는 하얀 도시를 구체화하였다. 벨러미의 소설은 사회적 공학의 보호를 상상하는 기술적 유토피아주의(테크노유토피아)로 알려진 확장된 사회적 운동의 일환이었다. 여기서 기술적 유토피아주의는 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위한 도시를 다시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하워드 시걸(Howard Segal)은 20세기의 초반 10년 동안 출판되었던 이런 종류의 소설 스물다섯 권을 비평하였다. 여기서 그는 기술적 이상이 제공하고 공학 원칙으로 형성된 사회 정치적 삶의 합리성을 심화시킴으로서 산업화 시대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세계관을 확인하였다.12)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개선된 진보적 시대의 비전을 반영했는데, 그것은 왜 미국 과학소설사의 초창기 장이 그 시기 진보적인 정책에 의해 형상화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시걸은 이들 소설이, 페이비언 사회주의부터 자유지상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치철학의 영역에서 도래했으며, 기술적 유토피아 모델은 2차 세계대전에 차곡차곡 진행되다가 파시스트와 전체주의 지도자에 의해 포섭되었으리라고 보았다.


영국에서, 허버트 조지 웰스(H. G. Wells)는 이 새로 등장한 장르를 정치적 논평을 위해 사용하려 애쓴 또 다른 초창기 작가였다. 『도래할 것들(Things to come)』에서, 그는 과학 인류에 의해 운영되는 미래 사회 - 전쟁과 혼돈으로부터 태어났다 – 를 상상하기 위해 기술적 유토피아 패러다임을 세웠다. 거기서는 시민의 삶에서 통치 권력으로서 합리성이 정치를 대체한다. 기술적 유토피아 모델은 종종 민주주의, 현재 실시되고 있는 "정치", 특히 사회적 공학자들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에 종종 저항하는 무식한 대중들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나타낸다.

휴고 건스백

휴고 건스백(Hugo Gernsback)은 미국 과학소설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단순히 과학자나 공학자보다는 더 많은 대중에게 빠른 기술적 변화의 영향을 주기 위해 토론을 열려고 하였다. 특정 종류의 과학 문해력을 장려하기 위해 그가 활용한 것은 펄프 잡지였다. 그는 최첨단의 발전을 결론으로 상정해놓고, 과학으로 알려진 것 — 분석을 넘어선 것들을 제외하였다 — 에 기초하는 이야기를 원했다. 그것은 근거 있는 추론의 양식으로, (그가 부른 대로 하면) "과학적 소설(scientifiction)"을 단순한 오락이기보다는 더 큰 목적을 가진 독특한 장르로 만들었다. 그리고 팬덤은 이야기를 토론하고, 허구적 전망과 비허구적인 전망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함께 미래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민적 공동체는 이 비전 안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았고, 이야기를 공들여 만들었다.


이들 초창기 팬덤은 처음엔 펄프 잡지의 편지 칼럼으로 모여 들면서 성장했지만, 곧 주요 도시에서 모였고, 결국에는 (종종 초국가적인 열망을 품은) 전국적인 팬 대회가 생기면서 직접적인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들 공식적인 팬 공간은 지적인 야심이 있고 기술적으로 경도된 젊은 남성들이 주로 차지했다. 훗날 주요한 과학소설 작가, 예술가, 출판업자, 비평가들이 대부분 이 계층에서 등장하게 된다. 애초에 이 젊은 팬들은 이전부터 있었던 아마추어출판연합(Amateur Press Association) 인프라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분산된 독자 네트워크 사이에서 그들의 글을 배포하던 곳이었다. 역사학자 마이클 샐러(Michael Saler)는 초창기 팬덤을 "상상력의 공적 영역"이라 평한다. 즉, 현실세계의 핵심적인 사회적 정치적 논쟁이 일어나는 공간은 상상적 작업의 렌즈를 통해 검토되며, 그런 세상은 이들에게 "현실로서" 간주되었다.13) 샐러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화의 기초가 되는 장르로서 이런 비평적 사유의 새로운 양식이 어떻게 과학소설 주변으로 형태를 갖추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1930년대까지, 과학소설에 등장한 비전은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물질적 형식을 띄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람들은 "내일의 세계"를 방문할 수 있었다, 비록 자가용을 앞세워 조직적인 유토피아적 사회를 표현한 제너럴 모터스의 퓨처라마14)처럼 법인의 후원을 받은 천막에 벨러미의 개혁주의적 추진력이 굴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과학소설의 비전은 일시적인 정치적 운동, 즉, 테크노크라시 운동이 되었다. 그것은 대공황을 맞은 미국 경제를 재설계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술적 유토피아처럼, 테크노크라시 운동은 공학 원칙과 발전된 기술이 가져다 준 편리성으로 정의되었다. 이로써 전문가와 합리성으로 통치하는 정부에 찬성하는 당파 정치를 제거하려 했다. 그들은 전세계적 혁명으로 연결되어, 방해와 폭력 없는 대중적인 사회주의적 상상력으로 연합된 중앙집권화된 계획을 원했다. 그들의 출판물은 종종 과학 소설, 특히 로봇과 다른 이성적인 기계 대리자와 연관된 소설들에서 메타포를 퍼왔다. 우리는 또한 그 때나 지금이나, 과학소설이 기계적 영역에 들어온 많은 이들의 야망을 형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전후 시기동안 우주비행과 원자 에너지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이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퓨처리안(Futurian)은 미국 과학소설 팬덤에 등장한 또 다른 사회적 운동이었다.15) 이 운동은 과학소설 팬덤 안에서의 토론으로 시작했지만, 젊은 사람들이 전문가로 변모하면서 널리 퍼지게 된다. 많은 퓨처리안들은 마르크시스트 조직의 멤버들, 혹은 "동무 여행자들"이었으며, “과학적 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질서를 고무하기를 바랐다. 앤드루 로스(Andrew Ross)는 퓨처리안의 영향을 추적했다. "팬덤에 사회적 의식의 침투하면서 펄프 이야기가 권위주의적 사회 질서의 미래를 발언하기 시작했을 때 단번에 영속적인 효과를 가졌다... 이 영역의 출판인과 편집인들이 세운 권위에 맞서면서, 그들은 마침내 대항문화적인 무언가를 형성했다."16) 로스는 공동 주거 실천이 어떻게 협동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확산에 영감을 주었는지(프레데릭 폴(Frederic Pohl)과 시릴 콘블루스(Cyril Kornbluth) 사이에서처럼) 그 증거를 제공했으며, 그들의 출판인들로부터 더 나은 원고료를 받기 위한 싸움을 어떻게 조직했는지도 설명했다. 게다가, 이 결연은 (그리고 그룹 안에서의 토론은) 광고가 범람하고, 이익을 목적으로 조직되고, 소비주의로 형성된 세계의 모습을 1950년대 과학 소설의 표상으로 알려주었다. 예컨대, 폴과 콘블루스의 『우주 무역상(The Space Merchants)』은 대중의 복종과 소비자 자본주의에 대한 허구적 비평을 통해 세계가 매디슨 가17)에 의해 전적으로 통제된다고 상상했다. 여기서, 상원의원은 국가보다는 회사를 상징하며, 국민들은 소비자로서 전적으로 대부분의 세계를 본다.


전후 세계의 또 다른 앵글로-아메리카 디스토피아 소설로는 조지 오웰(Georhe Orwell)의 『1984』,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화씨 451(Fahreheit 451)』가 있다. 각각은 사회가 종착점에 대해, 서로 다르지만 충격을 주는 비전을 표현했다. 그들의 비전은 여론을 형성하고 지적 발전을 억누르는 매스미디어 권력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현대사회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여전히 이들의 작품에서 끌어 온 어휘를 가지고 자주 토론하는 것을 보면, 이들 작가들이 얼마나 진보적인지 감탄하게 된다. 이 소설들은 반복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대다수의 디스토피아 소설은 삶에 그런 부정적 충격을 가져왔던 기관을 붕괴시키고 대체하기 위해 애쓰는 저항운동의 이야기를 포함한다. 한편 (순수한 유토피아 소설이 점점 드물게 되고 있음에도) 모든 유토피아 소설은 변화를 제안하면서 디스토피아에 대항하면서도 은연중에 디스토피아 — 가장 빈번하게는 현재 순간 — 를 담아낸다.


1960년대를 가로지르면서, 과학소설 문학과 그 팬덤은 헬렌 머릭(Helen Merrick)이 "과학소설 페미니즘"이라고 부른 돌풍을 일으키면서 중요한 토론의 현장이 되었다. 토론은 현재까지 살아있다, 예컨대, 위스콘, 매디슨 가, 위스콘신은 장르의 페미니스트적 전망을 주제로 한 과학소설 대회의 근거지가 되었다.18) 과학소설은, 『낯선 땅 이방인(Stranger in an Strange Land)』 혹은 『듄(Dune)』처럼 1960년대 미국 대항문화의 핵심 원천이었으며, 프레드 터너(Fred Turner)에 따르면 "대항문화에서 사이버 문화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19)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버펑크 운동은 디지털 혁명에 대응으로 등장했다. 그것은 인프라 구축에서 발생하는 빠른 변화를 처리하는 일상생활 속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살고 일하는 방식을 바꿀 방법을 제안한다. 그들의 소설은 사이버스페이스나 메타버스 같은 강력한 은유를 제공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온라인 생활의 성격을 매개로 생각하도록 하는 데 여전히 사용된다. 사이버펑크는 인간의 마음과 새로운 기술의 융합에 어느 정도의 양가감정을 표현했다. 그것은 다양한 서브컬쳐 작품들이 만든 풍경과, 대중과 다르게 자신을 정의하는 개인을 밀도 있는 묘사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종종 야쿠자나 다른 범죄조직이 통제하는 기업적 국가에 대한 저항운동을 이끄는 카우보이 해커 서사를 구성하였다. 여기서, 그들은 국민국가 사이의 경계뿐 아니라, 이제 완전히 거대한 사업과 조직된 범죄 사이의 구분선이 모호해진 국가를 통제하는 기업에 대한 비판으로 퓨처리안 비평을 확장하였다.


사이버펑크 운동은 그 사고방식이 하이테크 회사와 디지털 사생활 문제를 생각하는 많은 젊은 활동가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그것은 비주얼 아트, 패션, 음악 등의 테마에서 알 수 있듯이 문학운동뿐 아니라 예술운동, 그리고 정치운동으로서 이해되기도 한다. 사이버펑크 운동의 미학은 정치와 쉽게 분리될 수 없다. 상상했던 미래의 외관과 느낌은, 현재 바람직하거나 곤란한 것들을 발견하면서, 그 특징을 구현하고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이어진 과학소설 운동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스팀펑크 운동은, 19세기 시계태엽과 증기 기반의 메커니즘이 제공한 기술적 미래의 비전을 가진 초기-과학 소설로 되돌아가는데, 그것은 팬들의 창의적인 노력에 힘입어 아래로부터 출현하였다. 팬들 다수는 폭넓은 메이커 운동20)의 일부에 속해 있었다. 그것은 기술이 아름다운 주문제작 물건을 의미했던 초창기에 대한 특정한 향수에 의해 형성되었다. 제임스 H. 캐럿(James H. Carrot), 브라이언 데이비드 존슨(Brian David Johnson), 그리고 레베카 오니언(Lebecca Onion)은 스팀펑크의 미학을 인간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현대 기계 디자인에 대한 잠재적이고 지속적인 비판으로 여긴다.21)



바로 지금,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 은 급진적인 흑인 상상력의 강력한 선언으로 구성된다, 흑인 작가와 팬으로 구성된 이 새로운 세대들은 아프리카적 뿌리를 표현하고, 공유된 외상적 역사를 표현하며,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새로운 형식을 창안하는 길을 제안하려고 하는 사람들, 흑인의 목숨이 문제가 되는(black lives matters)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흑인 과학소설 작가들, 새뮤얼 딜레이니(Samuel Delaney)와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는 그 시기 작업한 재즈와 소울 연주자들처럼 아프로퓨처리즘의 기초를 세웠다. 문학적이고 음악적인 구체화 양쪽에서, 아프로퓨처리즘은 그들을 억압하려 하는 권력과 그들의 삶에 배치된 한계에 저항하는 과정을 확인하면서, 캐릭터의 삶에서 복잡하게 교차하는 특징을 문학적 형식으로 탐험했다, 여기서, 과학소설은 미국과 광범위한 아프로, 그리고 아프로-캐러비안 디아스포라 사이의 문화적 교환의 토대를 제공하였다.22) 아프로펑크 이미지, 사운드, 내러티브는 거리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시위자들이 이해하는 방식을 형상화했다. 시위자들은 종종 보다 미래적인 사회의 이미지를 통해서 그들이 주장하는 변화의 신호를 보냈다. 미국 문화에서 뒤처진 다른 그룹은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 과학소설의 도상으로 방향을 돌렸다.23) 예컨대, 토속적인 예술가들은 과학소설의 도상학적 용도를, 특히 〈스타 트렉〉과 〈스타 워즈〉의 이미지들을 변경하였다. 그들을 오직 과거에만 존재하고 미래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종종 확장된 문화로 가시화하였다.


솔라펑크 운동은 인간, 기술, 그리고 자연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일련의 대안적 과학소설 비전 중 가장 최근의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지속가능한 미래가 어떨지, 그리고 어떻게 전지구적 환경 재앙을 피할지를 보여주기 위해 과학소설을 활용하는 의식적인 노력을 상징한다. J. D. 모이어(J. D. Moyer)의 "솔라펑크 선언"은, 문학적 작업이 환경 액티비즘의 감각에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이 운동을 알리는 몇 가지 핵심 아이디어를 포착한다

우리는 솔라펑크다. 우리는 낙천주의를 빼앗겨 왔으며, 그것을 돌려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솔라펑크다. 유일한 다른 선택지는 부인하거나 절망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서, 솔라펑크는 휴머니티가 성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구현하는 미래의 비전이다. 즉, 식량난 이후, 계급제도 이후, 자본주의적 세계 이후, 휴머니티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고, 청정에너지가 화석 연료를 대체하게 되는… 솔라펑크는 과학 소설을 단지 오락거리가 아니라 액티비즘의 한 형식으로서 인식한다. 솔라펑크의 "펑크"는 반란, 대항문화, 포스트 자본주의, 반식민주의 그리고 열정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점점 더 무서운 방향으로 가는 메인스트림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24)

여기서 논의된 많은 초창기 운동들과는 달리, 솔라펑크는 전세계적 환경 정의 운동에 응답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초기 결정적인 작품들은 다양한 국가적 맥락(브라질과 일본이 특히 활동적으로 기여했다)을 가진 작가들을 포함하였는데, 그들은 지구를 위한 "가능한 미래"를 창조하고 토론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스팀펑크와 다르지 않게, 이 운동은 예술을 통해 이 사변적 미래를 시각화하고, 패션과 제작 실천을 통해 이들을 물질화하려는 욕망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다음에 벌어질 일을 상상하려 할 때, 우리를 현재 순간에서 과거로 데려간다. 우리는 성찰의 양식들이 미국 과학 소설의 역사를 가로지르며 출현하는 것을 보아왔다. 메이커 문화에서부터 패션, 놀이공원, 그리고 설치 예술에서부터 거리의 시위자에 이르기까지, 이 사유의 양식들은 팬과 창작자들 사이에서 과학소설이 촉진한 특정한 사고방식, 즉 단어로 출현했지만 곧 물질적 형식 안에서 구체화된다. 과학소설은 미래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지배적인 틀이기에 중대한 역할을 맡았다. 20세기와 21세기 미국에서 이러한 과학 소설과 진보적 운동 사이의 연결을 강조할 때, 우리는 장르가 통일된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과학소설이 상상해 온 몇몇 대안들은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울 힘이 되어준 반면, 다른 대안들은 권위주의적 정부나 다국적 기업 복합 기업체의 비전을 선전했다. 이 작업들은 군국주의와 민족주의에서부터 평화로운 변화에 이르기까지 다른 변화과정을 제안한다, 이 서로 다른 가능한 세계에 대한 토론 과정, 즉, 샐러가 "상상력의 공론장"이라고 부른 것은 비판적 사고와 문학적 기교를 발전시킨다.


시민적 상상력 지도 프로젝트를 위해 받은 이야기와 자료를 검토한 바, 가능한 미래에 대한 전지구적 의사소통이 만든 이 이야기들이 문학뿐 아니라 과학소설 영화를 경유하여 전지구적 으로 순환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응답자들은 종종 공통의 테마를 공유했다, 전지구적 의사소통을 위한 잠재적인 도구로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기술과 관련된 것들, 초강대국에 대한 불신과 국가 간의 보다 강력한 협력에 대한 바람, 지속가능성에 대한 강한 관심, 여성, 이민자, 피부색, LGBTQ+를 포함하여, 인권의 핵심에 다가서는 깊은 헌신, 그리고 세계 주변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핵심적인 낙천주의 등이 그것이다. 대면 워크숍에서는, 우리 다수가 살고 싶어 하는 세계를 향한 필수적인 변화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대대적인 붕괴가 필요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종종 판데믹이 바로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 즉 그것은 오랫동안 예견된 벌을 받는 순간이며, 사회의 생존 모델이 실패했고 그렇기에 새로운 대안의 수용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이 통찰들은 사변 능력을 한 데 모을 때 등장한다. 전후좌우를 살펴보거나 이방의 세계를 살펴보면서, 더 나은 세상은 어떨까를 생각하고, 그것을 획득할 최선의 방법에 대한 모델의 탐색하면서 말이다. 이 이야기들 중 다수는 대참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예상불가능한 복원력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도전에 직면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에게는 과학소설이 촉발하고 있는 시민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글은 2021년 12월 9일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주최: 성균관대 BK21 혁신·공유·정의 지향의 한국어문학 교육연구단)에서 헨리 젠킨스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확장한 것입니다.


헨리 젠킨스(미디어학자, USC School for Communication and Journalism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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