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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부끄러움, ‘동아시아 비교문학’을 역사화·현재화하는 정동들-『동아시아 비교문학:근대성의 서사, 담론, 정동』 (서영채, 소명출판, 2025) 서평 / 신지영

하나의 분기점, ‘동아시아’ 비교문학


이 책은 하나의 분기점 위에 있다. 한국 비교문학 연구가 30년간 걸어온 역사를 체현하면서도, 현재의 복합위기 속에서 이 시간을 어떻게 현재화할 것인가 하는 물음 위에 이 책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근대문학은 시작부터 ‘서구’와의 비교 속에서 스스로를 형성해왔다. 비교를 둘러싼 온갖 반응 속에서도 이 책은 문학적인 것이 생성되는 원형적 계기로서 불안과 부끄러움에 주목한다. 따라서 책 제목 ‘동아시아 비교문학’은 지역적이기보다는 미학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동아시아’의 경험을 담은 비교문학을 제시하는 선언적 효과를 지닌다.

 최근 비교문학과 관련된 책들이 꽤 많이 출판되었다. 문학을 넘어 영화, 법학, 역사, 디지털 인문학까지 포괄하는 벤 허친슨의 『비교문학』(민현주 이유진 역, 교유서가, 2025)은, 다양한 문화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위대한 유토피아적 꿈”이라고 비교문학을 정의한다. 미국비교문학회(ACLA)가 발간한 ‘세계적 전환기의 비교문학’이란 부제로 유명한 <번하이머보고서>(1993년)와 1990년대 미국 비교문학 대표주자들의 글을 실은 『다문화주의 시대의 비교문학』(푸른사상, 2022)도 출간되었다. 국내연구에서도 외국 문학의 번역, 수용 등을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베스트셀러, 세계문학, 비교문학』(이행선, 양아람, 소명, 2023), 한국 현대 시인들과 서구·일본·중국 문학과의 상호텍스트성을 포착한 『한국 현대시와 비교문학』(김한성, 푸른사상, 2024)도 출간되었다.


사진1: 벤 허친슨 저, 민현주 이유진 역, 『비교문학』, 교유서가, 2025
사진1: 벤 허친슨 저, 민현주 이유진 역, 『비교문학』, 교유서가, 2025
사진2: 『다문화주의 시대의 비교문학』 푸른사상, 2022
사진2: 『다문화주의 시대의 비교문학』 푸른사상, 2022













그러나, 이 책처럼 ‘동아시아’ 비교문학이라는 표제를 전면에 내건 경우는 최근에는 드물었다. 비교문학 관점의 책이 활발하게 출간된 것이 200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중반이고, 동아시아론이 확산되었던 시기와 겹쳐짐에도, 비교문학과 동아시아의 접점은 그렇게 활성화되지 못했다. 비교문학은 한국에서 동아시아론과 접점을 갖기보다 서구이론에 기반한 문학분석이라고 여겨지거나, 문화충돌을 초점화할 때조차도 ‘서구에서 동양으로’라는 위계가 작동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국 및 동아시아 문학 연구에서 ‘비교’는 태생적 조건이었음에도 명시적으로 논의되지 못한 것은 왜일까? 또한 비교문학의 태생이 기성문학에 대한 비판성에 있음에도, 동아시아론이 지닌 비판성과 활발하게 조우하지 못한 것은 왜일까? 비교문학을 탈식민화하는 것은 따라서 여전히 현대적 과제다. 이러한 점에서 동서 문학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근대성을 마주한 동아시아 삼국이 교차하는 맥락에 주목하고, 그 순간마다 동아시아 문학자의 반응과 태도를 예각화함으로써 내재적 차이들을 밝혀낸 이 책의 현재성이 있다.


     

미적 근대성이 마주한 흔들림들: 불안, 죄의식, 부끄러움.


 ‘동아시아’ 비교문학을 언명하는 이 책에는 서울대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교육과 연구를 고민해 온 10여 년의 궤적과 문학비평가로서의 연륜이 담겨 있기도 하다. 교단에서 학생들과 부대끼며 다듬어졌으리라 여겨지는 구체성을 입힌 표현들은 익숙한 개념마저도 신선하게 느끼게 하며, 군데군데 번뜩이는 비평적 해석은 지적 자극을 준다.

 10장에 이르는 각 장은 정교한 비평적 구조로 짜여 있다. <동아시아라는 장소와 문학의 근대성>(1장)은 저자의 시각을 압축해 놓은 장으로 근대성이 지닌 아포리아를 펼쳐 놓는다. 이 “공명하는 양태들”을 저자는 아버지 세대의 위선에 저항하며 개인의 진정성을 찾는 둘째아들서사(2~3장), 문명국가 만들기를 향해가는 계몽주의적 첫째아들서사(4장), 예술적 파멸을 향해가는 막내아들의 탕아서사(5,6장)로 구성했다. 특히 미적 근대성의 동력으로서 ‘불안’을 다루는 7~8장, 동아시아 지식인의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다루는 9~10장은, 이 책의 백미이자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동력이다. 근대성의 중심에 자리한 흔들림을, 동아시아에 영향을 준 서양 고전을 종횡으로 연결하며 맥락화한 이 책의 동력은, 근대성의 자기부정을 통해 형성된 문학적인 태도로부터 나온다.

물론 이 책은 역사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 한계를 역사화할 때 나타나는 현재적 단초도 담고 있다. 이러한 단초를 확장시키는 독해는 ‘외부’와 부단히 비교(당)하며 형성되어 온 동아시아 비교문학이 도달한 비판성과 창조성이지 않을까.

동아시아의 문학자가 근대성과 마주해 온 ‘마음’의 과정을, 가부장제적 가족구조로 서술한 한계는 분명하다. 하지만 ‘아버지-아들’ 서사 속 오이디푸스의 불만을, 불안·죄의식·부끄러움으로 포착한 점은, 이 분명한 가부장적 서사를 전복하는 선명한 안티고네적 고민이기도 하다. 특히 근대성이 지닌 계몽주의, 인간중심주의, 공리주의적 한계를 뒤흔드는 ‘불안’에 대한 천착(7~8장)은 루쉰과 이광수와 같은 첫째아들서사 속에서도 과잉과 불안을 읽어낸다. 죄의식과 부끄러움의 구조를 세 단계로 파악하며 전개되는 9~10장은 동아시아 남성 문학자의 지적 구조를 조명함으로써, 근대적 개념인 ‘민족’이 상처와 트라우마의 공동체라는 것도 드러낸다.(438쪽)

근대성의 자기부정이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도 물어야 한다. 저자는 한중일의 지정학적 배치를 언급할 때도 ‘식민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일본은 근대성을 선취한 보편으로, 중국은 제국주의 침략의 한복판에 있는 전쟁터로, 한국은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포로수용소로 표현한다. 아쉴 음벰베도 이야기했듯이 “수용소-형태”는 죽음정치를 배분하는 식민주의에서 나타난다는 점에서, ‘포로수용소’라는 명명은 식민화된 조선의 상황을 꿰뚫는 것이기도 하다.(『죽음정치』, 동녘, 2025, 200쪽) 그러나 근대성에 천착함으로써, ‘외부’를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나 그 세력의 대행자 노릇을 한 일본 제국주의로 한정시킨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쉽다(169). 서영채도 자주 언급하듯이, 미적 근대성은 어긋나거나 파멸하거나 주변화된 존재들을 또 하나의 ‘외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를 상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이 책에 중국 작가 비중이 적다는 점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서영채의 사유를 깊이 끌어안는다면, 문제는 한중일의 고른 분포 여부가 아니라, 하나의 민족국가 깊이에 탕아‘들’의 출구 혹은 장소를 마련할 수 있는가이기 때문이다.

사진3: 루쉰, 「광인일기」, 『신청년』, 1918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0366&cid=59014&categoryId=59014  
사진3: 루쉰, 「광인일기」, 『신청년』, 1918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0366&cid=59014&categoryId=59014  

사진4: 루쉰의 초상화
사진4: 루쉰의 초상화

그러므로 문제는 다시 미적 근대성이다. 이 책의 동력인 불안·죄의식·부끄러움은 어디를 향해 갈 수 있을까? 저자는 “죄의식은 책임감과 연결되는 윤리적 감정”임에 비하여 “부끄러움은 능력주의에 바탕을 둔 감정으로 명예심과 연결”(280)된다고 쓰면서,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세 단계로 분류한다. 민족단위의 부끄러움이 가장 먼저 등장하고, 다음이 성찰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죄의식이며, 그 단계 후에 개인 차원의 부끄러움이 등장한다는 것이다.(437) 부끄러움을 근대성과 대면한 동아시아 문학자의 단계별 사유로 해석한 독창성은 “근대성의 내부화된 외부자”로서 문학적인 것을 위치지음으로써 가능했다.(64) 루쉰의 잡문은 문학을 버리고 선택된 것이지만 “어떤 문학보다 더 문학적인 것”이 되었으며(87), 죄의식과 부끄러움은 동아시아의 과잉된 책임감이나 능력주의를 비판할 수 있게 한다.(233).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불러온다. 또 다른 아시아, 제3세계, 여성, 비/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동시대의 비교문학에서, 부끄러움은 어떻게 ‘나’를 갱신하는 동어반복에서 벗어나 또 다른 존재를 감지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까?


     

미래의 비교문학을 감지하기


이 책의 매력은, 정교한 구조 내부에 해체적 힘이 내장되어 있다는 데 있다. 미적 근대성의 기질이라고 할만한 이 삐딱함은, “동아시아의 서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편이 가장 좋을 것”이며, 만약 필요하다면 “경계의 종식을 위한 방편”으로만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386).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유의 이유다. 서영채는 “한번 만들어진 경계는 반드시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을 지금까지 현실에서 경험해 왔다고 말하다.(386) 근대성의 아포리아를 책 구조에 반영시킨 듯한 이 말이, 차별에 대한 강렬한 부정에 나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근대는, 식민주의는, 무엇이며 종결된 것일까? 근대의 능력주의와 실용주의는,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거치면서 ‘뉴노멀’이라는 말로 삶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침투하여, 가짜 적대감·경쟁심·차별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때 미적 근대성의 “거듭되는 부정의 운동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원점에서 두 번 더 먼 곳에 데려다 놓는다”라는 시적인 말이 시사하는 바 크다(24). 이 두 번 더 먼 곳에서, 어떤 존재의 장소가 마련될 수 있을까?

근대성에 내재된 자기부정을, 문학적인 것 속에서 심화시켜 “구체적 보편”을 재구성하는 것. 이것이 당대의 고통에 이 책이 답한 방식이었다. 그 궤적을 집 나온 (입센이 아닌) 루쉰의 ‘노라’처럼 읽어가면서 깊어졌던 질문은 이것이다. 노라는 시가 나오야가 될 수 있었을까, 알기는 했을까. 알았던들, 과연 그렇게 되길 바랬을까?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한 존재는 자신의 실존적 맥락을 벗어나 사유하고 느끼고 연결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모든 존재에게 각자의 위치를 돌아보고 거기에서 벗어나도록 촉구하는 부끄러움을 유발한다.

사진5: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 <민주주의와 깃발> 박물관 외벽 사진. 출처:식민지역사박물관 홈페이지 https://absorbed-order-0c3.notion.site/Documenting-today-s-democracy-1c2619e7730580ffbb56d1681883d9f8 
사진5: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 <민주주의와 깃발> 박물관 외벽 사진. 출처:식민지역사박물관 홈페이지 https://absorbed-order-0c3.notion.site/Documenting-today-s-democracy-1c2619e7730580ffbb56d1681883d9f8 

서영채는 “응원봉의 해일 속”에서 느낀 “세대를 넘어선 가슴 벅찬 연대감”을 기록한다. 그 기록을 본 누군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배제해 왔으나 사실 그 민주주의를 추동해 온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었던 이름없는, 숨죽인, 비/인간화된 존재들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비교문학의 탈식민주의적 비전은 이제 ‘인간’인 나로서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상상할 수도 없는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자리에 놓여질 ‘동아시아 비교문학’이란 무엇일까? 서영채의 이 책은, 이 물음 앞에서 끊임없이 불안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기질을 날카롭게 유지하라고 촉구하는, 역사적이고 현재적인 동아시아 비교문학의 기록으로서 있다.



     

신지영(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 교수)
신지영(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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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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