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여자들이 있었다 / 한보람
- 한국연구원

- 11월 12일
- 3분 분량
올 여름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른바 ‘케데헌’으로 불리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를 휩쓸었다. 영화가 처음 공개된 날부터 입소문은 심상치 않았다.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영화를 틀었는데,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생소함과 반가움이 밀려왔다. 화면에는 3인조 케이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거대한 악을 물리치는 화려한 액션이 펼쳐졌다. 온전히 여성들만의 강력한 힘으로 악령과 싸워 세상을 구원하는 시나리오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놀랐다. 이전에도 여성 슈퍼히어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 슈퍼히어로들이 적지 않게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더우먼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여성 히어로들은 강력한 힘과 재주를 가진 남성 히어로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도였다. 이처럼 확고하고 온전하게 그들만으로 세상을 지켜낸 여자들의 이야기는 이미 존재했을지라도 그리 익숙하고 당연한 건 아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출처:넷플릭스]>](https://static.wixstatic.com/media/e687c0_cd232f2f164e46bc96d6750267c56536~mv2.jpg/v1/fill/w_868,h_1082,al_c,q_85,enc_avif,quality_auto/e687c0_cd232f2f164e46bc96d6750267c56536~mv2.jpg)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가 영화가 끝났다. 그새 생각의 끈은 대한제국기 한국을 살았던 여성들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당대 민‧형사 사건들을 담고 있는 재판기록 『사법품보』에 등장하는 여성들이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대한제국기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조선의 일상을 살고 있었고,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여성이라 하면 유교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던 열녀 이미지가 쉽게 떠오른다. 강요된 희생을 감내하며 힘없이 쓰러져간 연약한 존재 정도의 이미지다. 그런데 그 시대 재판기록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흔한 상상 속 조선 여성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빨래하는 조선 여성들> 출처: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https://static.wixstatic.com/media/e687c0_fc5da50d8ab342a0b4d627be01a7d821~mv2.jpg/v1/fill/w_694,h_372,al_c,q_80,enc_avif,quality_auto/e687c0_fc5da50d8ab342a0b4d627be01a7d821~mv2.jpg)
재판기록을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그녀들의 과감한 행동력이었다. 1901년 함경남도 장진군에서는 임씨 여인이 이장백이라는 남성을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명절날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해묵은 일들로 시비가 붙었고, 난장판이 된 술자리에서 임씨의 남편 김운인이 이장백에게 맞아 피를 흘리다가 다음날 숨을 거둔 것이다. 임씨는 남편을 죽인 원수와는 잠시라도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칼을 들고 이장백을 찾아가 그의 가슴을 찔러 죽였다. 그리고 바로 관아로 가서 자신의 행위를 당당하게 고했다.
이 사건이 흘러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이 남성을 굳이 직접 찾아가서 살해하는 장면 때문이다. 남녀 간 힘의 차이는 확연하니, 여성이 남성을 대면해서 살해하려는 건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다. 그런데도 임씨는 직접 했다. 임씨의 케이스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임씨 외에도 그 시대 여성들이 자기 가족을 죽게 한 상대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직접 살인에 뛰어든 사건들이 재판기록으로 여럿 등장한다.
그녀들이 힘의 강약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뛰어든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사건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상대를 처단하는 의미를 갖는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구성원의 인명에 해를 가한 상대에 대해 직접 복수살인을 저지르는 케이스들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이 소속된 공동체는 가족이었으니, 여성들은 가족을 죽게 만든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자기 손으로 직접 처단했다.

여성이 공동체 침해를 처단하는 행위는 직계 가족을 죽인 원수에 복수하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조선시대 산송, 즉 가문의 묫자리 다툼에서도 여성들은 활약한다. 관련하여 1899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일어난 강씨 집안 과부의 사건이 있다. 그녀는 시어머니 묘지 근처에 몰래 장사지낸 타인의 무덤을 발견하고는 직접 호미를 들고 그 무덤을 파헤쳐 해골을 드러냈다. 이른바 남의 무덤을 함부로 훼손한 사굴 사건의 행위 주체자가 된 것이다. 산송에 얽힌 사굴 사건은 조선후기 형사사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만큼 사회적으로 중요한 분쟁이었다. 하지만 부계중심의 가족질서를 추구한 조선사회에서 친족 묘지의 수호는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였다. 가문의 문제였기 때문에 여성의 순번까지는 오지도 않는 사안이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강씨 집안 과부에게는 장성한 아들 강치수도 있었다. 이 일은 당연히 아들이 대처할 문제였다. 하지만 그녀는 직접 했다. 아들에게는 해골을 집까지 옮기는 보조 역할을 주었을 뿐이다. 혹시 아들이 저지른 일을 덮어주기 위해 본인이 했다고 증언한 걸까? 그렇진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가문의 영역을 침해한 무덤을 파헤친 수많은 다른 여성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여성 사굴사건의 법정마다 재판관들은 한결같이 ‘일개 나약한 여인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녀들이 아닌 친족 남성을 진범으로 주목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했노라고 조목조목 따져서 그녀들이 범인임을 입증해 냈다.
공동체의 주체적 행위자로서 서고자 한 열망, 공동체를 덮친 위협에 누구보다 먼저 대응하고 지켜내고자 한 책임감. 조선시대는 유교사회의 수동적 피해자로 여성을 몰아갔지만 여성은 적극적이고 과감한 행동들을 통해 그녀들의 정체성을 표출했다. 형사사건에 연루된 여성들의 모습이니 그저 극단적인 일부의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그때 그녀들은 공동체의 수호자로 스스로를 지목했고, 결단했고, 지켜냈다. 우리가 그녀들에게 더 관심을 갖는다면 재판기록을 넘어 더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케데헌’이라는 키워드를 치면 끝없이 많은 신규 뉴스들이 새롭게 뜬다. 제작사 넷플릭스에서 주인공 걸그룹 헌트릭스의 인형과 보드게임을 뒤늦게 출시하기로 했다는 뉴스도 보인다. 케데헌 열풍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앞으로 여성 슈퍼히어로가 세상의 악과 싸워 인류를 구원하는 시나리오는 점점 더 익숙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미래의 여성 히어로들이 화제가 될 때마다 그때 그녀들이 기억되었으면 한다. 여성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주체였고, 그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 지켜내고 있었음을. 여성 슈퍼히어로는 인류의 긴 역사 속에 이제야 당연한 존재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하지만, 현실의 여성 히어로들은 우리 일상 속에서 언제나 존재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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