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참사 10년 / 박성관

<현대사상> 21년 3월호는 [동일본 대참사 10년]을 특집으로 꾸려졌다. 그 중 트라우마와 깊이 관련된, 그러면서도 꽤나 상반된 글 두 편을 골랐다. 특히 뒤쪽의 글은 의외스러우면서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1. 「대담 : 환상도環狀島(환상도)의 수위를 낮춘다 - 진재(震災)와 트라우마 케어 10년」


대담자는 2011년 참사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야마우치 아케미(山内明美), 그리고 야마우치가 참사 몇 년 전에 수업을 들었던 교수 미야지 나오코(宮地尚子)다. 주로 도쿄에 거주하던 야마우치는 본가가 재난 지역에 속했지만 직접 큰 피해를 당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 덕분(?)에 재난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다수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선생들)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현지에서는 피해 당사자가 거의 아닌 사람으로 통하면서, 반면 방문자들에게는 피재민들을 대변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 대단히 곤혹스럽고 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괴로운 시절이었다고 한다.

한편 미야지 교수는 고향이 고베라서 1995년의 한신/아와지 대지진(진도 7.2)과 깊이 연루된 바가 있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쿠시마 대참사(진도 9.1)에 연대하며 고민을 축적해갔다. 야마우치의 곤혹스러운 처지에 공감하면서도, ‘당신이 안내 역할을 맡아주었던 덕분에 나 같은 외지인들이 이곳 피재민들과 나름 연결될 수 있었다’고 평가해준다.



1.1 나오미 클라인의 ‘재난 자본주의’를 떠올리는 대목부터. 이후의 대참사를 막는다는 명목하에 이 지역에 거대 방조제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말 그대로의 목적도 있었겠지만 재난을 자본 축적의 호기로 삼으려는 의도도 강하게 있었을 터이다. 현실적으로 이 지역은 지방 재정이 넉넉한 편이 못 되고 앞으로도 인구가 감소되어 갈 곳이다. 게다가 유지비도 만만치 않으며 현지 주민들의 생업이 바다와 관련도 깊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형적인 ‘재난 자본주의’다. 허나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그렇듯이 주민들 간에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당연히 복잡하게 현존하고, 이를 정치가들과 토건 자본은 충분히 활용하고 악용한다. 일본에도 기레기들의 활약은 대단해서 현지의 복잡다단한 모습들을 악의적으로 보도하고, 그러면 다른 지역들에서는 “너희는 의견 통일도 못해?”, “너희들이 진짜 바라는 바를 얘기해”, “모두 돈을 위해서 쇼하는 거지?” 등, 저열하고 천박한 소리들이 넘쳐난다. 대담자들은 정치와 토건 자본은 언제나 돈과 생업을 이용해 지역 주민들 간의 내분을 조장하기 때문에, 재난 지역에서 내분은 기본 사항이며, 그것을 이유로 재난 지역을 비난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1.2 재난 유적의 보존이냐 해체냐!


이 도시는 시가지 침수 구역을 10.6미터 높였다(盛土). 그리고 이 성토 위에 부흥상점가가 늘어서 있다. 한편 이 참사의 상징적인 장소인 방재대책청사는 구 시가지의 높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주변의 상점가에서, 10.6미터 아래에 철골만 남아있는 이 청사를 내려다보는 기이한 경관. 이 청사를 참사 유물로 보존할 건지를 둘러싸고 논의가 거듭되었다. 당초 시 의회에 3종의 청원서가 제출되었다.

1. 즉시 해체하자 : 유족들을 중심으로 해서, 청사를 보는 게 괴롭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

2. 진재 유물로서 보존하자 : 장래의 방재 교육을 위해 남겨둘 필요가 있다.

3. 해체냐 보존이냐 결정을 일정 기간 유보하자 : 방재청사 사고로 사망한 유족도 포함한 젊은 그룹. 좀 더 시민들의 감정이 차분해지고 나서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

참고로 1, 2, 3안 모두 재난 당사자들로부터 제출되었다. 한데 이 논의에는 예전부터 지역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해온, 시장을 중심으로 한 시장파와 반(反)시장파의 대립도 깔려 있었다. 그래서 시민들에겐 방재청사 보존 가부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어느 파벌인지를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고, 특히 소송문제가 일어난 뒤에는 특히 더 터부시되었다. 결론은 2031년까지 결정을 유보하기로 되었다.

재난만으로도 괴로운데 부흥 과정에서 이런 미묘한 문제들 때문에 새로운 상처나 분단이 아무래도 일어나기 십상이다. 대참사 이후는 복구의 과정이자 이런 사후 트라우마들의 치유 과정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당사자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사자가 다층적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지역에 태어나 새로이 자라나는 세대들의 문제도 있다.


1.3 기억의 계승과 픽션을 가하는 문제


같은 미야기 현에 속하는 게센누마(気仙沼)시의 한 고등학교는, 동일본 대참사 유물/전승관이 되었다. 이 시의 리어스 아크 미술관의 한 학예원이 감수한 것인데, 그가 말하기를, 전승관도 어쨌든 돈이 들고, 유구도 거의 비바람을 겪을 수밖에 없어 점점 더 썩고 부서져 가는 것을, 관람자들이 부상당하지 않을 정도로 어찌어찌 최저한도로 정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었다. “이대로 무너져 없어져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러자, “무너져 없어질 무렵에는 다음 쓰나미가 오겠죠.” 그러니까 명목은 ‘영구 보존’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다음 쓰나미까지 이어주는 정도일 뿐인 것이다.



이 미술관은 쓰나미가 지역의 문화풍토임을 분명히 하고, 쓰나미를 포함한 형태로 피재난지의 삶이 성립한다는 점을 명확히 전개하고 있는 래디컬한 미술관이다. 여기는 「동일본 대진재의 기록과 쓰나미 재해사」라는 전시가 상설되어 있는데, ‘피재물’(잔해들을 이 미술관에서는 이렇게 부른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의 목적은 진재 기록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추진하는 것, 진재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 특히 후자 관련해서는 객관적 기록을 그대로 전시하는 것만으로는 감상하는 사람들의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고 보고, 피재물 하나하나에 학예원이 이야기 카드를 붙여놓는다. 이 카드에는 실제 당사자들의 기록이 적혀 있지 않다. 당시 상황을 참고하여, 비체험자에게 리얼하게 간접 체험될 수 있도록 학예원이 ‘창작’한 것이다. 대담자들은 이 점을 강조하여 (전혀 비난의 의미는 담지 않은 채) ‘날조’라 말한다. ‘사실’은 아니지만 “대단히 절실한, 필연성을 동반하는 픽션”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미 공백이 된, 메울 수 없는 침묵을, 거기에 있던 사람이 스토리로 메워본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의 하나로서. 그러면서 자이니치인 김시종 시인의 말을 인용한다. 김시종 시인이 대참사 다음 달 “기억에 배어든 말이 없는 한, 기억은 단순한 흔적에 불과하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기억에 배어드는 말’을 학예원이 ‘날조’한 셈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하였고, 이제 그런 작업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실제로 후쿠시마에서는 아직 피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제염폐기물 등의 중간저장 상황에 대해서도 최종 처분장도 결정되어 있지 않다. 재난은 끝나지 않았고 트라우마는 새롭게 발생하기도 하면서 재난 지역과 그 주민들은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이 대담은 이외에도 ‘재난 지역과 젠더 – 여성의 이동과 어사일럼(asylum)’, ‘식민지를 사유한다’는 주제를 다룬다.



2. 「IDF 동북 미션과 이스라엘의 ‘세계 표준화'」


재해 당시의 극한 상태에서는 누구의 도움이든 환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10년이 지났고, 또 재난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라면 각각의 지원이 어떤 맥락에서 이뤄졌는지 물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참사 직후 최초로 받아들인 국제의료 지원인 이스라엘 의료팀의 활동을 살펴본다.

이들은 3월 중에 일본에 도착해 활동을 개시한 유일한 팀이었다. 의사 14명, 간호사 7명, 의료종사자 9명을 포함 약 60명은 모두 IDF(이스라엘 국방군) 소속이었다. 1번에서 언급된 지역인 미나미산리쿠에 진료소를 설치하고 10일간 약 200명을 진료했다.


이 지원이 성사된 데에는 19세기 후반부터 ‘근대국가’화 프로젝트를 개시하고 아시아의 광대한 영역을 식민지 지배한 일본과, 같은 무렵 시오니즘 운동에 의한 이민과 팔레스티나 식민지화를 개시한 건국 전 이스라엘의 유사성이 작동했다. 아울러 국가 형성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흡수한 내셔널 마이너리티에 대한 차별적 지배 양상이나,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지역 강자로 부상한 구도, 또 이스라엘은 이란, 일본은 북한을 적으로 명시하면서 자신을 ‘평화 애호 민주 국가’로 자처하는 행태 등, 여러 면에서 겹친다. 양국의 관계는 2012년 이후 급격히 가까워진다.


특히, 2019년에는 일본의 [방위성과 이스라엘 국방성 간의 방위장비 및 기술에 관한 비밀정보보호 각서]가 서명되어, 이스라엘은 ‘비밀’ 기술까지 일본에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군사 무기 관련 ‘미국제 3할의 가격으로 9할의 성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일본을 무인기(無人耭)의 새로운 시장으로 찍어서 공을 들이고 있다.


양국 간에는 2017년 <일본 이스라엘 이노베이션 네트워크>가 창설되기도 했다.

한편 일본 사회는 2000년대 이후 치안관리 강화나 ‘안전/안심 사회’ 같은 캠페인의 등장, 내셔널리즘이나 배외주의의 고양 등을 볼 때, 현저히 ‘이스라엘화’하고 있다. ‘전쟁국가화’, ‘전쟁이 가능한 나라 만들기’ 등의 표현만으로는 불충분한 어떤 거대한 변화가 가동중인 것이다.


이스라엘화란 무엇인가?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은 자국과 유사한 나라를 찾아내어 관계 강화를 지향하고 혹은 자국과 비슷한 나라를 만들어내는 노력을 계속 경주해왔다. 이스라엘을 ‘세계 표준화’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정치, 군사, 사회 등 여러 분야들 중에서 ‘마음 케어’의 이스라엘화만 짚어보자.


앞서 말한 IDF 의료 부대는 열흘간 활동 후 곧장 철수했지만, 이 지원에서 유래하는 PTSD(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처하기 위한 워크샵을 통한 노하우 제공 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스라에이드’라는 단체는, 처음에는 ‘PTSD방지를 위한 세러피’를 열고, 정기적으로 공개 워크샵 등을 열어 왔다. 2013년에는 장기적인 지원을 하는 사단법인 「일본 이스라에이드 서포트 프로그램」이 설립되어 음악 세러피 등의 워크샵과 차세대 리더 육성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재해 시 이스라엘로부터의 맨탈 지원은 1995년의 한신/아와지 대진재 때에도 있었다. 이스라엘 국방군의 전 주임 심리학자와 그의 아내가, 1984년에 이스라엘에서 개발된 「BASIC Ph」 등, PTSD에 처방하기 위한 접근법을 몇 가지 소개한다. 이는 3.11 참사 이후 일본에서도 급속히 알려지게 된 ‘리질리언스(resilience, 소위 회복력)’에 관한 연구로부터 산출된 모델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요소/국면을 신념, 감정, 사회적 지원, 상상력, 인지, 생리학 등 6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참사 이후 일본의 동북 지방을 중심으로 이 BASIC Ph를 사용한 워크샵이 몇 차례 개최된 이외에, 이를 배운 일본의 세러피스트들이 독자적으로 단체를 설립하여, 자위대를 포함한 다양한 장소에서 연수를 행하고 있다. 리질리언스란 본래 물리학 분야에 있어 탄력적 회복을 의미한다. 이것이 심리학에서 주목받기 시작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나, 2차대전 후 고아, 부랑아 관찰을 통해 새로운 개념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특히 3.11 이후의 맥락에서, 시스템이나 커뮤니티가 신속히 안정을 회복하는 회복력으로 정의되게 되었다. 핵발전소 사고 후의 부흥에 있어 ‘강하고 튼튼한(resilient) 사회구축’을 지향하게 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거나 도망치려 하지 말라고 주입함으로써, 참사 지역에서 인구유출을 억지하고자 하는 정책으로, 이 개념이 이용되고 있다.



리질리언스 개념은 끊임없는 집단적 스트레스 하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조사하거나, 아이들에게 늠름함(resiliency)의 스킬을 가르치는 실천을 하는 가운데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는 제2차 인티파다가 개시된 직후 이스라엘에서 ‘테러 공포 하에서 살아가는 부모들’이나 제2차 레바논 전쟁 하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끊임없는 포격 하에서 살아가는’ 북부 도시 등의 사람들에 대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이 ‘분쟁에 노출되어 온’ 배경, 이스라엘의 군사력이야말로 많은 신체적, 정신적 외상의 피해자(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인)를 대규모로 양산하고 있는 일 등은 일체 누락된다.

잔학한 피를 감춘 이런 반생명적인 테크닉이, 맥락도 다른 세계 여러 지역에 ‘전문가 파견’이라는 형태로 퍼져나가고 있다.


방금 살펴본 ‘마음 케어’의 이스라엘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화란 인간의 유기적 관련성을 단절하고 타자를 보이지 않게 하며, 사회 자체를 추상화는 프로세스다. 이 사상에서는 왜 방위나 대 테러 전쟁이 필요해지는지가 의문시되지 않는다. 자신을 위협하는 ‘적’은 있어도, 그 동기를 만들어낸 요인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게 된다. 상대가 늘 추상적인 존재로 남는다. 추상적으로 ‘목숨의 소중함’이 설파되고 ‘마음 케어’만이 강조된다. 안전과 안심을 구실로 사회 관리가 진행되고, 개인의 마음까지 그 대상이 되어버린다면, 그 점을 깨닫고 그에 저항하는 힘은 그 갇힌 사회 속으로부터 태어나기 거의 불가능해진다. 코로나 재난 속에서 세계가 각각의 커뮤니티 속에 자폐적으로 닫혀간다면, 이스라엘의 세계표준화는 더욱 진전되어갈 것이다.


박성관(독립연구자, [중동태의 세계]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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