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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문명의식’을 다룬다는 난제- 정출헌, 『조선전기 문명전환과 동국문명의 지평』 서평 / 이상민

작성자 사진: 한국연구원한국연구원

최종 수정일: 6일 전

들어가며

     

조선 왕조 성립의 역사적 의미라는 문제는 한국 전근대사를 다루는 한국학 분야의 가장 뜨거운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 시대에 대한 긍정/부정적 기대감의 과열은 자연히 역사 내에서 조선시대가 무엇을 ‘변화·창출시켰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조선 시대를 거쳐 한국사에서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 ‘있는가’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연구 질문이지만, 만일 그것이 있다고 가정한다 해도 이는 선뜻 설명하기 어려운 해묵은 난제이다. 고려와 조선은 무엇이 같고 다른지, 만일 다르다면 조선의 ‘달라짐’은 어떤 과정으로 말할 수 있는지 등의 만만치않은 과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출헌(이하 저자)의 책 『조선전기 문명전환과 동국문명의 지평󰡕(이하 본서)』은 그 어려운 난제를 ‘동국문명’ ‘문명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 연구서이다. 저자는 조선 건국은 천년 가까이 이어져 온 불교문명 국가로부터 유교문명 국가로의 전환을 도모해 간 문명사적 일대 사건이라 주장한다. 조선을 건국한 권력의 승자들은 유교문명에 기초한 중화문명을 조선에 구현하고자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중화문명과 자국전통 사이의 긴장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였고, 중화문명과 구분되는 중국문명의 성취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 양상은 왕조교체기로부터 조선 전기 전체에 걸쳐 반복되었는데, 이는 시기에 따라 정도전의 ‘시서예악(詩書禮樂)’, 권근의 경술문장(經術文章)', 변계량의 성교자유(聲敎自由)’, 신숙주의 ‘훈민교화(訓民敎化)’, 서거정의 ‘문장화국(文章華國)’, 그리고 김종직의 ‘연문소도(沿文訴道)’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1. 폭넓은 주제에 대한 과감한 개념화

     

조선 초기의 문명 전환을 ‘동국문명’과 ‘문명의식’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본서는 단순히 왕조 교체나 정치사적 사건으로 국한하지 않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어떤 사상적 기초 위에서 문명을 재구성했는지 탐구한다. 이러한 시도는 조선사의 연구에서 흔히 놓치기 쉬운 사상적, 문화적 지형을 파악하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저자는 조선 초기의 문명 전환을 단지 ‘유교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단선적 서술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통해 조선 왕조가 자신만의 정체성과 문명 의식을 구축하려 했음을 강조한다.

     

저자의 작업에서 특히 돋보이는 점은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단계별로 정리해, 각 시기별로 ‘훈민교화’(訓民敎化), ‘문장화국’(文章華國)과 같은 개념으로 구조화한 것이다. 이 개념들은 조선 초기 지식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중화문명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독자적 성격을 드러냈는지를 탐구하기 위한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나아가 저자가 조선 전기 사상·문화사의 다양한 연구주제들을 최대한 폭넓게 수용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매끈하게 주조해낸 것 또한 탁월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책에는 문학과 사상, 제도와 인물, 국제정세의 변화와 국내정치 등의 다양한 주제가 폭넓게 망라되어 있어, 그 자체로 조선 전기 사상·문화사에 대한 이해를 원하는 독자에게 권할 만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평자 해당 시기를 연구하는 연구자이자 까마득한 후학으로서 본서를 읽고 지금껏 놓치고 있던 많은 사실들을 다시금 정리할 수 있었다.

     

2. 선언적 주장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제안한 개념들이 조선 초기의 문명 전환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전달하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기획’ ‘구현’ ‘심화’의 3단계로 정리한 저자의 문명전환론의 각 단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단계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다소 불명확하다.

     

우선 ‘유교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가진 명료함과 한계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저자는 조선 초기를 불교문명에서 유교문명으로 전환하는 시기로 규정하지만, 이러한 전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부족하다. 특히 ‘유교문명’이라는 용어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아 독자들에게 혼란을 준다. 이 개념은 책의 핵심 키워드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선언적으로 제시되어 설득력을 약화시킨다.

     

특히 ‘유교문명’과, 그 유교문명에 의해 대체된 ‘불교문명’이라는 용어가 특별히 정의되지 않은 상태로 사용되고 있는 것 또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불교문명’이란 단순히 불교가 지배적인 사상으로 작용하던 시기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사회 구조와 문화적 특징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인지를 저자는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유교문명’이라는 용어도 구체적인 정의 없이 사용되며, 이는 독자들이 조선 초기의 전환 과정을 이해하는 데 혼란을 야기한다. 과연 저자가 상정한 ‘유교’와, 독자가 생각한 ‘유교’, 그리고 조선 전기를 살아간 유학자들이 생각한 ‘유교’가 정말 같은 범주일지 의심을 감출 수 없다.

     

이러한 의구심은, 저자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들 사이의 일관성이나 상호 연결성이 명확하지 않은 점에서 더욱 가중된다. 본서는 조선 전기의 문화적인 성취의 대다수를 노련한 필치로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미덕이 있다. 국호 문제부터 시작하여, 교서 반포, 악장 제작, 관각문집 발간, 훈민정음 창제, 훈구 사림 문제, 도학의 창도 등 한 가지 주제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주제를 저자는 한 권의 책에 엮어내었다. 그러나 이들 개념은 언뜻 ‘유교’·‘문명’이라는 포괄적인 용어 속에서 연결되어 있을 뿐, 각자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이들의 느슨한 연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교·문명’등의 용어를 최대한 정의하지 않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한편에서, ‘시서예악’과 ‘훈민교화’등의 특수한 개념어로 각 시기를 설명한 시도는 탁월하지만, 그것이 조선 초기 150년 내내 동일하게 유지되었는지, 아니면 시기별로 다른 양상을 보였는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 또한 명료하지 않은 것 또한 아쉽다. 예컨대 ‘시서예악’이나 ‘훈민교화’와 같은 개념이 조선 왕조 초기에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인지, 아니면 이전 시대에도 존재했던 요소를 재구성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논증이 부족하다. 특히 저자가 제안한 개념들이 실제 역사적 상황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적 증거가 더 보강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저자의 주장이 ‘기획’ ‘구현’ ‘심화’라는 명확한 단계론을 제시하고 있으나, 그 각 단계가 정확히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궁극적으로 그 단계를 통해 변화한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그에 비해 명확치 않아 아쉽다.

     

나가며

     

조선 초기의 문명 전환을 ‘유교문명’이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분명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독창적 통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개념적 정의와 논증의 구체성이 보강될 필요가 있다. 특히 ‘유교문명’과 ‘불교문명’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이들이 조선 초기의 역사적 맥락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더 필요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결과적으로, 본서는 조선 초기의 문명 전환에 대한 과감한 문제의식을 제기했지만, 그 논의의 선명성이나 구체성 면에서는 아쉬운 책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조선 초기의 사상사와 문화사를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틀을 제공하며, 앞으로의 연구에서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임에는 의심이 없다. 그것은 평자가 (편집진의 요청에 따라) 본서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하는 서평을 작성했음에도, 저자의 책에 대한 ‘반대’를 표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책의 가치가 반드시 논의의 선명한 완결에만 한정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저자가 이어나갈 것이라 밝힌 조선 중·후기에 대한 저술에 대해서도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이상민(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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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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