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인종주의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넘어서기 / 김헌주

최근에 게재한 논문 「‘반일 종족주의 사태’와 한국사 연구의 탈식민 과제」에서 ‘반일 종족주의’류의 극우담론을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했다. 핵심은 기존의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에서 탈피하는 것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계급·젠더 등의 경계 자체를 문제시하는 트랜스내셔널 관점(trnasnational perspective)을 확립하고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성소수자를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인권 문제에 대한 적극적 관심도 중요한 제언 중 하나였다. 인종주의 문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결국 같은 선상에서 용해될 수 있는 문제였다.


‘반일 종족주의’ 담론은 한국인에 대한 혐오적 인종주의 담론이었다. 그 주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익숙한 논리이며 특별한 얘기는 아니다. 이러한 담론에 대한 극복은 기존의 민족주의적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내부에 뿌리내린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인종주의 등)을 청산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탈식민주의 연구의 문제의식이 인문사회학 연구자들에게 많이 받아들여지면서 이러한 지적은 계속되어 왔지만, 아직 일반화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의정부고의 ‘관짝소년단’ 재현과 샘 오취리의 비판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더욱 확신이 들었다. ‘관짝소년단’ 논란은 매년 화제가 되는 의정부고의 졸업사진에서 불거졌다. 일부 학생들이 최근 이슈가 되는 가나의 상여꾼이 관을 이고 추었던 춤을 패러디한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흑인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얼굴에 검은 칠을 하는 ‘블랙페이스’였다. 퍼포먼스가 언론의 주목을 받자 이 사진이 인종차별적 행위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었다. 더 나아가 가나 출신의 방송인 샘 오취리가 이 사진에 대해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이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비판을 제기하면서 논쟁이 촉발되었다.


샘 오취리의 비판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샘 오취리의 의견에 동의하며 사과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 가면 공장에서 돈이나 벌지 모르지만 한국 와서 좀 뜨니 훈계질을 하고 있다”, “흑인 피부색이 검어서 검게 칠한 것뿐인데 별 게 다 불편하다”, “한국인이 블랙페이스를 모른다고 왜 욕을 먹어야 하냐”는 등 샘 오취리를 비판하는 견해도 많았다. 결국 비난 여론이 확대되자 샘 오취리는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제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1 : 의정부고 ‘관짝소년단’ 사진

반면 다른 의견도 많았다. 2020년 8월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인종차별에 대한 교육을 공교육에서 자세히 다뤄야한다는 청원글이 올라온 것이다. 이 글은 2020년 8월 20일 기준 7,815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개인적으로 해당 학생들이 본인들의 행동이 잘못된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고 판단”하며 이 상황이 ‘논란거리’라고도 생각 하지 않는다고 단호한 의견을 밝혔다. 요컨대 “다른 인종이 흑인 흉내를, 특히 검은색조의 화장품을 얼굴 피부에 바르고 누가 봐도 저건 흑인을 흉내낸것이라고 생각이 들게끔 행동하는 것은 이른바 '블랙페이스' 라는 대명사로 정리되는 인종차별적 행위이며 서구권에서는 이미 20세기 중반 부터 중단되어온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교육 과정 안에서 인종차별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하여 다시는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사진2 : 블랙페이스의 인종차별적 맥락을 설명한 CNN 기사. CNN 캡처

사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돌파하고 한류가 전세계를 휩쓸고, 동남아 등 저개발 국가들의 노동인구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 비해 한국사회의 인종주의 감각은 둔감하다.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단일 혈통 민족주의라는 신화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한참 전에 한국은 공식적으로 다문화 사회로 규정되었다.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외국인 정책 이행보고서를 심사하면서 ‘순수 혈통’이라는 개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보고서에는 “한국의 현실을 볼 때 이미 한국은 단일민족이 아니므로, 현재 한국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단일민족이라는 한국의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도록 교육, 문화, 정보 분야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또 한국 보고서 담당 특별보고관인 안와르 케말 위원 등은 “순수 혈통 개념은 다른 사람이 불순한 혈통을 가졌다는 뜻을 내포한다”며 “인종 우월성 관념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프레시안」, 우려스러운 북의 단일민족관, 2007년9월 11일).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공교육, 특히 역사교육에서 한국은 임지현 교수가 언급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Victimhood nationalism)’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식민지배를 겪은 피해국이므로 배타적 민족주의도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집단의식이 한국사회에 여전히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가 피해로만 점철되었을리 만무하다. 베트남 전쟁 중에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 라이따이한과 코피노 등에 대해 한국사회는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한국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한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근대 이후 한국의 발전과 욕망을 직시하고, 한국인에 의해 이루어진 가해들에 대한 성찰도 역사교육을 비롯한 공교육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현실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이번 광복절 경축사 논란에서 보듯 친일청산과 반북논리가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100년 전의 일제 식민지 시기와 70년 전의 한국전쟁이 한반도의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두 가지가 역사인식의 준거가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의 의제와 인권 감각에 걸맞는 역사인식의 전환이 있어야할 것이다. 그 시작은 우리 안의 인종주의와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김헌주(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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