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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국연구원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 / 김영실

최종 수정일: 6일 전

본 기고글은 BTS로 대변되는 K라는 상징적 자산의 퀴어성, 특정산업의 주체가 아닌 다중적 주체인 아미의 힘에 대해 논평하기를 바라는 편집자의 의뢰에 의해 작성된 글이지만, 필자의 얕은 지식으로 인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논하게 됨을 미리 양해 부탁드린다. BTS의 팬덤인  ARMY로서, 음악치료사로서 그들의 고유성을 평가해보고 최근의 사태에 대해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혹은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방탄소년단(BTS)를 모르기는 어렵다. 멤버가 몇 명인지, 어떤 곡이 있고 어떤 퍼포먼스를 해왔는지는 잘 몰라도 BTS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지구적으로 계속 세워지는 기록은, 7명 전 멤버가 다 해외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인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더 신기한 일이다. 그들의 앨범명인 Love your self를 주제로 UN에서 혐오와 편견, 사랑에 관한 연설을 했고, Best selling music artists의 자료를 살펴보면 2020년에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멤버 전원 다 입대 후 2명은 제대를 했지만 공식적인 휴식기인 현재에도 사전에 제작된 솔로앨범이 발매되고, 활동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RM의 개인활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는 2024년 독일 ‘시슬로페 페스티벌’에 출품되어 4분야에서 수상을 했고 2024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상영되었다. 이 외에도 군백기인 현재에도 유명 음악스트리밍 제공 플랫폼에서 여전히 그들의 음악은 순위권을 지키고 있고 누적 스트리밍 기록은 연일 갱신되고 있다.


방탄의 음악은 오디오에 국한되지 않는 복합적 컨텐츠이다. 마치 영화나 연극처럼 잘 설계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각자의 역할이 있으며 가사에는 그들의 실제 서사가 담겨있다. 곡, 가사, 안무는 영상의 형태로 팬들에게 소개되며, 하나의 퍼포먼스를 완성하기 위한 연습 과정은 면밀히 촬영되어 온라인상에 공개된다. 완성된 결과만이 아니라 좌충우돌의 과정도 팬들에게 공개하면서 인간적인 면과 투명성(transparency)이 확보된다. 또한 그들의 컨텐츠는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 재소비 된다. 컨텐츠 소비자는 BTS 영상의 특정 부분을 선택적으로 편집하며 2차 창작을 한다.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영상물의 종류인 리액션 영상도 있다. 팬의 입장에서 무조건 감탄하는 영상도 있지만, 각자 전문분야의 지식을 십분 발휘하는 전문리액터들도 있다. 특히 음악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경우, 전반적인 곡의 흐름, 음향, 프로듀싱의 측면에서 곡 내 특정 지점에 해당 보컬을 사용하는 의도, 특정 멤버가 함께 또 따로 가창을 하는 이유와 그 효과, 선택된 장르와 리듬의 시의성과 적절성 등을 매우 면밀하게 분석해주는데 현업 전문가들의 곡 분석이라 그런지 살아있는 지식을 얻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산 지식은 또 ARMY들에 의해 소비되고 공유되면서 아티스트와 팬덤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진솔함과 용기, 희망은 BTS의 또 다른 키워드이다. 이는 자작곡 가사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대부분의 멤버가 10대인 시절인 초기앨범에는 학교 제도에 대한 비판과 어렵기만 한 사랑이야기를 풀어냈고, 이후 지구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겪게 되는 혼란스러움을 깊은 자기 탐색을 하며 풀어낸 <Love your self 承 ‘Her’ (2017)>, <Map of the soul: Persona(2019)>로 연결된다. 펜데믹 동안 발매된 <BE(2020, 2021)>에서는 이로 인해 공연이 중단되고 팬들과 소통이 단절된 아티스트로서 뿐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역병의 시기를 견디는 그들의 마음(상황, 일상, 시간들)과 함께 이겨내자는 희망의 메시지가 오롯이 담겨있다(‘어둠에 숨지마, 빛은 또 떠오르니깐(life goes on, BE)).


BTS를 공부하며 건강한 사랑의 방식을 배우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의미는 자의식 가득한 나르시스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적인 스타가 된 그들이지만 자신들의 시간을 엮어나가는 데 있어 불안해하고,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되뇌이며 땅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살아가려고 애쓰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when we fall we know how to land’, Permission to Dance, 2021) 하루하루 불안을 이겨내며 인생을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은 우리의 취약성과 수치심을 인정하는 순간은 용기를 발현하는 순간이다. 취약성(Vulnerability) 학자로 불리는 Brene’ Brown은 Ted talk, The power of vulnerability(2010)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 취약성을 받아들이고 그게 나임을 인정하는 것이 용기, 변화, 사랑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BTS의 음악을 향유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자신의 삶의 면면을 녹인 음악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 감정, 관계, 영혼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성찰은 심리치료에서도 중요하게 고려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다채로운 면 중에 특히 문제에 사로잡혀 강박과 불안에 빠지기 쉽다. 현대인의 불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 문제에 직면하고 있지 않는 순간에도 문제를 되뇌며 문제해결법을 시뮬레이션하며 부지런히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생각을 하는 순간에는 마치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은 착각을 하지만, 현실에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방탄의 음악은 다양한 감정을 만나게 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정서조절도구이자 치유의 도구가 될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개념은 안녕감(well-being)이며 정신적 안녕에 있어 핵심은 정서조절(emotion-regulation)이다. Emotion의 단어를 살펴보면 e(외향)와 motion(동적에너지) 결합되어 있다. 정서는 여러 자극에 의해 자연스럽게 변화하며 외부로 향하는 에너지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 상대방의 표정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정서에너지가 외부로 향하는 순간이다. 감정과 관련된 질환 중 불안과 우울이 대표적인데, 이는 감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감정을 반복적으로 억압하게 되면서 긍정 정서도 함께 억압되어 전반적인 생의 에너지를 얻는 통로도 함께 차단되기 때문이다. 우울이란 슬프거나 무거운 마음으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실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되는 무감정이 맞는 표현이다. 종이를 한장 꺼내서 최근에 경험한 다양한 감정의 단어를 써내려가다보면 감정을 만나온 나의 궤적을 간단히 확인할 수도 있다. 혹자는 수많은 감정의 단어를 적을 수 있는 반면, 기본적인 정서 외에는 쓰기 어려운 경우도 흔하다.


한편, BTS의 지구적 위상에 비해 실망스러운 일도 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BTS <yet to come> in BUSAN’에서의 어수선한 공연 전 준비도(줄서기, 인파에 대비한 편의 시설 전무)는 대한민국 주요 대도시의 미숙한 행정력의 민낯을 경험하게 했다. 이는 비교적 최근 행사인 <2024 BTS FESTA>에서도 반복되었다. 앞서의 행사는 분명 세계박람회에 대비하는 도시의 준비도를 보여주는 행사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BTS외에 무엇을 준비한 것일까? 얼마전까지 시끄러웠고 현재에도 진행 중인 하이브 내의 경영권 분쟁을 살펴보면 산업의 입장에서 과연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자신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아티스트를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하는지에 의문을 품게 된다. 솔직한 인터뷰라고 평가 받기도 한 어느 PD는 본인과 협업하는 아티스트를 향해 “내 새끼”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과연 독립적인 아티스트라고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더 이상 매력적인 아티스트가 아니라 한 명의 대단한 프로듀서가 쥐락펴락하는 나약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이브 역시 방탄을 독립적인 아티스트로 존중하고 있는지 질문을 하고 싶다. 아티스트를 앞세워 여러 행사를 개최하고, 매번 새로운 컨셉의 굿즈를 만들고, 컨텐츠를 촬영하고 발매한다. 반면 멤버를 향한 원색적인 악플, 지나친 인신공격성 미디어, jtbc의 오보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 하지 않는다.


다만 이 모든 상황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는 어렵다. 진실이란 상대적이고 자신의 자리에 따라 변하기도 하는 것이므로. 과연 그들은 무엇을 지키고 있고, 그동안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가. 방탄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무엇이 가장 가치로운가? 그들의 수많은 디스코그래피? 수많은 1위의 기록들? 매번 경신되는 스트리밍의 횟수? 한국어 가사를 따라부르는 외랑둥이들(BTS의 해외팬을 일컷는 용어)? 해외의 유명 셀럽들이 방탄을 언급하며 팬임을 고백할 때 느껴지는 뿌듯함? 그들은 K-자산인가? 빌보드뮤직어워드 시상식장에서 멤버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콘서트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팬덤의 힘? 매번 놀라움을 주는 그들의 퍼포먼스? 누가 방탄을 성공으로 이끌었는가?

이쯤 되니 무엇이 한 개인의 입장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이 행위를 반복할 건지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지킨다. 재산을 지키고, 집을 지키고, 관계를 지키고, 생각을 지킨다.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킨다. 단순히 생각해보자면 가치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양적인 것과 질적인 것으로 나뉜다. 무형의 가치는 유형에 비해 간과되기 싶고 지켜지기는 어렵다.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최종적으로는 수치로 정산되는 양적인 가치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출처: elpais과 RM의 인터뷰. https://english.elpais.com

리더 RM은 인터뷰를 통해 그들에게 붙여진 K의 가치에 대해 언급했다. 스페인의 유력 일간지인 엘파이스(El Pais)와의 인터뷰(2023. 3. 12)에서 K-pop의 성공은 혹독하게 밀어붙이는 잔인한 산업구조에서 기인한 것도 있으나 이는 젊은 세대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부분이며 K라는 라벨은 단순히 현재의 한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제침략,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성공으로 이끈 선배들의 공에서 기인한다며 K의 의미를 정의했다. 또한 LA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RM은 방탄 성공의 이유로 아미가 50%, 7명의 멤버가 각 5%씩, 나머지 15%는 하이브와 빅히트의 기여라고 했다(2021. 11. 29). 실제로도 그들의 성공에는 ARMY의 비중이 크다. 그들의 국제적 성공의 시작점인 미국시장 진출에도 팬들이 라디오방송국에 다양한 홍보활동을 하거나 그들의 음악을 알리는 노력이 유효했다(유 퀴즈 온더 블록, 99회)

이처럼 방탄으로 대표되는 K라는 상징적 자산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방탄과 지구인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온 우주, 세계관, 세상, 언어, 사랑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므로, BTS라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보존되어야 하는 그 무언가가 될 수는 없다. 무형의 가치는 또한 유한한 것이므로 언젠가는 사라질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지켜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으며 모두의 답은 다를 수 있다. 단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진리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단 하나의 사실을 믿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저 타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애쓰며,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한다. 더욱 욕심을 내자면 우리의 아티스트들이 더욱 독립적인 존재로 고려되어 존중받길, 그래서 방탄의 음악을 에너지 삼아 생의 에너지를 느끼며 충만히 살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소개: 김영실(mtherapy4u@gmail.com) 음악치료학 박사, 음악중재전문가(KCMT), 음악심상 전문치료사(FAMI) 소위 말하는 늦덕 ARMY(BTS 팬덤의 명칭)이다. V의 풍경(scenery)를 우연히 듣고 반했으며, 이후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방며들었다. BTS를 만나며 첫 덕질을 시작, 발라드곡 일색이었던 플레이리스트의 급변기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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