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토토토이, 니체의 음악 정신 / 김동규

니체는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되었고, 28세에 『비극의 탄생(1872)』이라는 첫 책을 출간했다. 파릇파릇한 정신이 낳은 이 책은 이후 화염처럼 타오른 니체 철학에 기본 땔감을 제공한다. 여기에서 니체는 당대 유럽 문화 데카당스의 뿌리를 찾기 위해 서양 문화의 계보를 추적한다. 철학자다운 거시적 스케일로 그가 찾은 뿌리의 극단은 고대 그리스 비극이다.


통상 비극은 ‘슬픈 결말을 가진 연극’으로서 연극의 하위장르로 이해된다. 그런데 비극(悲劇)으로 의역해서 그렇지, 트레저디(tragedy)란 어원적으로 ‘숫염소의 노래’라는 뜻이다. 다수의 작품에서 주인공이 끝내 파멸되는 패턴을 보여(물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도 있다) 비극(悲劇)으로 번역했지만, 원래 동물을 희생물로 바치던 고대 축제의 ‘원시종합예술’, 즉 시가, 건축, 회화 및 조각, 무용, 음악 따위가 분화하지 않던, 줄기세포 같은 예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의미라면, 비극은 서양 예술의 모태라고 규정할 수 있다. 니체가 서양 문화의 기원으로 돌아가, 고대 그리스 비극에 도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양 예술(문화의 고갱이)이 쇠진해진 이유를 니체는 디오니소스 원리의 약화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두 가지 원리에 의해 지탱된다. 하나는 ‘아폴론적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디오니소스 원리’다. 아폴론은 별명이 빛나는 자(포이보스)인 태양의 신이자, 궁술과 예언, 음악과 의료의 신이기도 하다. 형태가 드러나려면 빛이 필요하기에, 아폴론적 원리에 충실한 예술 장르는 조형 예술이며, 이와 관련된 용어로는 형태, 꿈, 아름다운 가상(가면), 선과 윤곽, 절도 등이 꼽힌다. 반면 디오니소스는 마그마처럼 분출하는 근원적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는 포도주의 신이자,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불완전한 신이어서 평민들의 신, 고통받는 신이자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하는 신이기도 하다. 디오니소스 원리가 주된 역할을 하는 예술 장르로는 비조형적인 음악이 꼽힌다. 개별화된 형태가 다시 무형으로 돌아갈 때 야기되는 공포와 황홀감, 자기망각, 도취가 이 원리의 연관어들이다. 디오니소스적 예술에서 인간은 더 이상 예술가로 그치는 게 아니라 예술가 자신이 작품이 된다. 춤추는 무용수를 상상해 보라. 그는 예술가이자 작품이다.


니체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원리가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을 때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고 보았다. 힘의 균형이 깨어지는 순간 예술은 병약해진다. 니체의 시선으로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서양 예술에서는 디오니소스적 힘이 점점 약화되었다. 첫 조짐은 이미 고대 그리스 시절에 보였다. 말하자면 소크라테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인물들의 과도한 합리성 추구가 예술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이 책 초판본의 원제목은 『음악 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이다. 익숙하게 알려진 제목에 ‘음악 정신으로부터(aus dem Geiste der Music)’라는 말이 더 첨가되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럼 여기서 음악 정신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 문맥상 대충 디오니소스와 관련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사람들은 음악이 치료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의술의 신인 아폴론은 리라를 들고 다니는 음악의 신이기도 했다(아폴론이 수학적 비율의 음악이라면, 디오니소스는 도취와 황홀경의 음악을 가리킨다). 그럼 음악이 가진 치료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뮤직(Music)이라는 낱말에 그 실마리가 담겨 있다. 뮤직은 뮤즈에서 온 말이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뮤즈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쉬네의 딸이다. 말하자면 음악적 치유력은 기억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억일까? 니체에게 기억은 살갗을 태우는 ‘화인(火印)’, 즉 고통을 통한 각인에 가깝다. 기억은 고통을 수반한다. 기억 자체가 ‘고통에 대한 기억’이다. 음악은 이 기억에서 유래한 것이며, 비극은 이런 음악에 기원을 두고 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심인성 질병의 대다수는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것이다. 너무도 고통스러웠기에 외면하고 부인하고 망각하려던 그 아픈 과거가 유령처럼 현재에도 배회하며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말이다. 그런 질환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아픔을 직시하고 보듬고 기억해 주어야 한다. 그런 이후에야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편안히 망각할 수 있다. 이처럼 기억은 망각의 조건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어에 ‘오토토토토이(ototototoi)’라는 말이 있다. 발음이 좀 이상하게 들린다. 그리스 의성어다. 격한 비명, 울부짖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고통을 토해내는 외침,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탄식을 표현한 말이다. 거의 번역이 불가능한 단어다. 이 말이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페르시아인들>에 등장한다. 그리스와의 무모(페르시아 왕의 오만에 기인)한 전쟁으로 숱한 페르시아 젊은이들이 죽어서,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애도하는 내용이다.


놀랍게도 이 비극은 그리스의 원수였던 페르시아인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시선을 담고 있다. 종국에는 죽고 ‘고통받는 자’라는 점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인들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극의 마지막에 이 탄식이 등장한다. 전쟁에 패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가 코러스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크세르크세스: 이제 내 외침에 화답하여 그대도 외치시오.
코로스: 슬픔에 슬픔으로 처연하게 화답하나이다.
크세르크세스: 나와 함께 소리 높여 노래 부르시오.
코로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옮긴이 천병희 선생은 ototototoi를 4번 반복되는 ‘아이고’로 번역했다)

엄습한 고난에 맞서서 인간은 슬픔으로 처연하게 화답한다. 그의 첫 일성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뜻이 분간되지 않는 비명, 오토토토토이다. 이후 도저히 말로는 담을 수 없는 비명은 기억이 되고, 음악의 뮤즈로 변모한다. 바로 이것이 니체가 말했던 ‘음악 정신’이다. 신화 속에서 갈가리 찢겨 고통받았던 디오니소스, 힘없는 민중들이 사랑했던 그 신의 정신이다. 오랫동안 이 비극 정신이 망각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음악 정신으로부터 비극이, 그 비극으로부터 예술이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해변의 모래알갱이처럼 숱한 음악들이 있건만,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희귀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 이 글의 일부는 최근 사회와 역사의 아픔에 공감하는 클래식 음악인들의 단체인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임형섭 단장/지휘자) 결성 및 첫 연주회를 축하하는 글로 사용되었다. 다시금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뜻있는 음악인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https://www.champhil.com/


김동규(철학자, 한국연구원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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