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민정음의 서브컬처적 기원과 가치판단의 문제 / 오영진

최종 수정일: 2월 22일

주변에서 재작년 인기를 끌었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2020)를 종종 <쀼의 세계>라고 별칭으로 부르는 일은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우리는 여기서 '부부'가 '쀼'로 바뀐 것이며, 그 이유가 시각적으로 '부부'의 각 음절 '부'가 닥닥 붙어있으면 언뜻 '쀼'의 형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개의 애칭인 '멍멍이'가 '댕댕이'로 표기되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시각적으로 '멍'과 '댕'이 교환되기 때문에 생긴 신조어지만 우선 '댕댕이'(tɛŋtɛŋi))는 발음이 귀엽다는 이유로 멍멍이의 대체어 자리를 더 쉽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팔도비비면'이라는 비빔라면 브랜드는 '네넴띤'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리뉴얼 해 팔리고 있다. 한글의 자모체계의 조합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오인들이 하나의 놀이로 인식되어 소위 '야민정음'의 표기체계를 구성한다. 본격적으로 야민정음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행하기 시작한 해가 2017년 정도였으니 이제는 새로운 표기법으로 안착한 듯 보인다. 이런 흐름을 반영한 듯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재에 쉬어가는 코너로 '야민정음'식 표기를 안내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여전히 야민정음식 표기가 한글을 파괴하는 놀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으며, 이에 대한 가치판단도 한글에 대한 창조적 파괴라는 관점과 혼란스러운 은어라는 관점이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논쟁을 이 글에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문제는 애초 답이 없는 문제이며, 현재 현상에 대한 가치를 비교하자면 양쪽의 판단 모두 옳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야민정음 현상의 끝자락에서 그 가치에 대해 논하는 일은 이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조선대학교의 강옥미 교수는 그의 논문 <야민정음과 급식체의 해체주의 표현연구>(2018.08, 인문학연구)에서 이 같은 야민정음식 표기 방식이 언어의 기표를 해체하려는 자연스러운 욕망의 결과이며, 가깝게는 20세기 초 한국문학의 전위적인 사례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일이라고 진단한다. 서울대학교의 박진호 교수는 교내 언론 기고문에서 15세기 한글이 창제된 이후 인쇄소에서 조판의 특정 활자를 다른 표현으로 재활용하기 위해 각도를 바꾸어 사용한 일은 종종 있었던 일이며, 규칙 안에서 최대한 창조적으로 표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당연한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서울대저널, <야민정음, 발랄한 문자 놀이>(2017.09.04, http://www.snujn.com/news/33973?ckattempt=1) 각기 문학과 언어학의 연구자들이 볼 때 야민정음이 보여주는 언어유희적 측면은 오랫동안 지속된 인간의 창조적 행동의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며, 한글에 대한 변용은 너그럽게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문화연구자로서 필자는 위 해석에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이 야민정음식 표기방식이 21세기인 지금 왜 대중적인 유행을 얻게 되었는 지, 표기체계의 변용문화가 한편으론 폭력적인 방식으로 누군가에 대한 혐오의 표현으로 사용되는 일이 잦은 지에 대해 대답하기는 어렵다. 야민정음은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독특한 인터넷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야민정음을 출발시킨 자들의 목적은 예술가의 타이포그라피적인 실험도, 인쇄기술자의 제한상황을 돌파하는 재치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작 야민정음을 만들어 내었던 디시인사이드(https://www.dcinside.com. 미국의 4chan 커뮤니티와 비슷한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원 커뮤니티에서는 그 인기가 사라지고 있는 편이다. (*'야민정음(yamindzʌŋɯm)'은 디시인사이드 내 '야구갤러리(yagugɛllʌri)'와 '훈민정음(hunmindzʌŋɯm)'의 합성어라는 기원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이 야민정음을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야민정음의 문화는 본래 특정 인터넷 부족민의 은밀한 소통방식이었으며, 그것이 노출되어 대중화되자 그것을 만든 자들에게 버림받고 있다는 사실은 야민정음 역시 인터넷 밈 문화의 한 구성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인터넷 밈은 기본적으로는 한 장의 인상적이며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인 경우가 많으며, 처음엔 특정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통해 발견되고 통용된다. 이것은 단지 공유하고 소비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단위로 작동한다. 특정한 감정적 순간을 담은 경우가 많아서 복잡하지 않지만 짧은 표현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원 출처에서 절취되어 그 맥락과는 상관없이 제 멋대로 소통의 단위로 쓰인다는 점에서 인터넷 밈은 새로운 세대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15년간 한국에서는 TV프로그램 연출에 있어 자막을 붙여 시청자에게 상황 설명을 다채롭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그 자막의 사용이 인터넷 밈의 쓸모를 더했다.

"이건 꿈일거야" 라는 자막을 단 TV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한 장면. 황당하거나 어이없는 경우, 댓글에 첨부하는 인터넷 밈으로 자주 사용된다.

처음엔 작은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다가 점차 보편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 그것에 열광했던 원 커뮤니티는 이내 그 인터넷 밈에 싫증을 내고, 다른 인터넷 밈을 찾아 헤멘다. 애초 인터넷 밈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유머 이전에 표식이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이미지에 반응해 웃을 수 있는 일은 해당 커뮤니티의 일원이 아니면 쉽게 익힐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한 인터넷 밈을 표현단위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게시판의 올드 유저인지, 뉴비인지 확인하는 척도가 된다. 최근에는 디시인사이드(광범위한 취미, 취향 공동체) 유저를 중심으로 경쟁상대인 루리웹(게임, 애니메이션 위주의 서브컬처 공동체) 유저를 색출하려는 '근첩'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근'이 'ㄹ'로 오인되는 교환관계를 이용해 루리웹을 뜻한 'ㄹ'을 '간첩'이라는 말에 합성한 말이다. 야민정음과 배타적 부족주의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영어권에도 야민정음과 유사한 leet라는게 있었다. 영어의 표기체계를 숫자나 기호로 대체해 인터넷 게시판의 은어로 사용하는 문화다. 이 문화는 1980년대 게시판 문화에서 그 기원을 갖는다. leet는 1337라고 표기되기도 하는데, 이는 알파벳과 숫자의 도상적 유사성 때문이다. 그들은 you를 u로, are를 r로 축약하는 방식도 애용했는데, 오늘날 한국의 급식체의 자모 축약체와 유사한 것이다. BBS 관리자가 시스템에서 공유되는 음란한 콘텐츠를 단속할 때 사용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leet를 애용했다. 대표적인 예는 포르노를 Porn에서 p0rn(O에 0 포함)으로 혹은 p()rn으로 바꿔 표기하는 일이었다. leet는 게시판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특정한 폴더에 접근할 수 있는 한정된 사용자 그룹을 의미하는 elite에서 기원한 명칭으로 시스템의 헛점을 파고드는 언어사용을 하나의 특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생명력을 사실상 잃고 몇몇 표현만 살아남은 leet에 비해 야민정음은 비교적 최근에 발화되어 국내에서 아직은 계속 통용되는 중이다. 이는 그 간의 leet에는 인터넷 밈이라는 동력이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통적인 leet가 퇴행했을 뿐, 인터넷 밈에 기반한 의사소통 체계는 서양이나 한국이나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최초 야민정음의 유행도 은어체계의 배타적인 부족민적 특징에 기인하며, 인터넷 밈으로 만들어져 퍼져나갔다. 예를 들어 디시인사이드의 야구갤러리에서는 야구 선수 '강귀태'의 컴퓨터 게임 상의 출력 상태가 '강커태'로 오인되는 측면을 이용해, 종종 '귀'를 '커'로 바꿔 부르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었다.(2009년의 일) 이는 이후 <무한도전>의 [알래스카에서 김상덕씨 찾기]편에서 개그맨 정형돈이 '앵커리지' 한인회관의 문자를 '앵귀리지'라고 잘못 읽는 우스꽝스러운 장면(2010년의 일)과 조우해 인터넷 밈으로 확산되어 '귀=커' 혹은 '커=귀'라는 문법을 획득하게 된다.

출처: 유튜버 '아이템의 인벤토리', '야민정음'은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 2019.03.09. (https://youtu.be/33T2BdLv7Fc) ; '아이템의 인벤토리'라는 유튜버는 인터넷 문화의 기원을 설명하는 인터넷 언어학자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무한도전> [김상덕씨 찾기]편. 2010.

이 외에도 '유=윾', '대=머' 등의 교환관계는 대부분 특정한 인터넷 밈의 발견과 연이은 확산에 힘입어 형성된 것이다. 이 말인즉 야민정음의 체계는 결코 자의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각의 교환에는 지난 10여년간 하위 인터넷 문화의 역사가 농축되어 있으며, 개별 사용자의 임의적인 시각적 오인 현상은 기각되어버리고 만다. 야민정음 유행의 끝자락에서는 이러한 야민정음의 형성과정이 읽히지 않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각각의 문자 치환행위가 특정한 밈의 정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그 안에 포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귀여운 단어인 '댕댕이'의 이면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김머중 머통령'으로 폄하해 불렀던 특정 커뮤니티의 정치적 입장과 폭력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대=머'의 최초 기원은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던 특정 커뮤니티의 사상검증놀이의 산물이었다.)


하위문화가 갖는 저속함과 부족주의적 특징 즉 인정받지 못하는 자들의 서로 간 식별의 욕구가 인터넷 밈화된 야민정음의 통용에 기초해 있다. 그래서 대중들이 '멍멍이'를 '댕댕이'로 표기해 사용할 수록 그것의 원안자들은 해당 은어표현에 흥미를 잃거나 침범당했다고 느낀다. 이 점이 흥미로운 것인데, 야민정음의 은어적 성격이 무너지면서 동시에 야민정음 자체를 강화하는 현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침범당한 것 같으면 새로운 야민정음 표기로 돌파하려는 특정 커뮤니티의 노력을 가속화한다. 조금 더 괴상하고 읽기 어려운 야민정음 체계는 이러한 심리로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야민정음은 익명화되고, 정치적이거나 계급적으로 소외받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역구별짓기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표기체계인 셈이다.


다소 읽기 어려운 위 야민정음 표기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세종대왕님을 울게 만듭니다.이 문서는 훌륭하신 세종대왕님께서 너 같이 어린 백성을 어여쁘게 여겨 만드신 훈민정음을 모욕하는 것에 대해 다룹니다.당신이 이걸 한 번이라도 쓴 적이 있다면 곧장 세종대왕 상을 향해 3000배를 올려야 마땅합니다."

부족주의적 인터넷 밈이 그 특정 커뮤니티의 통제를 벗어나 확산되면서, 더 해괴한 방식으로 진화하는 일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터넷 밈인 개구리 페페의 경우, 처음에는 4chan 등에서 슬픈 눈을 뜨고 할 일이 없는 잉여로운 백수의 이미지였다가 이것이 본격적으로 유행하자 극성적인 4chan 이용자들이 알카에다 페페, 나치 페페, 총기난사 페페로 더 위악적으로 개량해 대중적인 사용을 막으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그것이 오늘날 개구리 페페가 인터넷 극우의 대명사가 된 연유다.


인터넷 세대의 텍스팅 기반 소통방식과 인터넷 밈 문화, 검열 통과와 구별짓기의 욕망 등 여러 항목들이 오늘날의 야민정음이라는 은어체계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야민정음의 진짜 문제는 한글파괴가 아니라 이 표기체계가 모욕경제의 언어로 너무 자주 기능한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건(2014)의 '유가족'을 '윾가족'으로 조롱하거나 광주 민주화 항쟁(1980)을 '팡주 폭도 사태'로 모욕하는 일이 잦으며, 이는 모두 키워드 차단 등의 조치를 비웃으며 은어체계를 알고 있는 자들만의 낄낄거림을 동반한다. 이 골방에서 낄낄거림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야민정음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야민정음의 특정 표현을 최초 야민정음의 문맥에서 끊어버리고 (그들이 최초 밈을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원안에서 무단절취할 때 오히려 야민정음은 한글의 긍정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익명화된 인터넷 환경이 지속되는 한, 은어체계의 발달과 그것의 대중화라는 변증적 관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제2, 제3의 야민정음 체계를 선물로 받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이버 네트워크는 우리들의 정체성 불안과 그것을 투사할 정념을 동력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언어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을 시스템에 반항하고 천진하다는 점에서 사이버펑크적 언어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이러한 긍정성 이면에 혐오발화의 무기가 된다는 점에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야민정음 자체가 한글에 대한 모독이나 파괴인 것이 아니라 현재로서는 야민정음의 음지화가 특정 네티즌들의 위악적인 태도를 부추기고 강화하는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으니, 이를 양지로 끌어내는 게 더 나은 미래라는 판단을 내리고자 한다.


*이 글은 필자의 2021년 한글날 국제학술대회의 발표내용을 기초로 쓰여졌습니다.


오영진(문화평론가, <에란겔: 다크투어> 연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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