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아인슈타인 논문의 서론 / 박성관

최종 수정일: 2022년 11월 30일

오늘은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직접 읽는다. 맨날 풍문밖에 듣지 못했던 분들을 위해 과연 아인슈타인이라는 자는 뭘 어떻게 썼는지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어서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많은 경우 논문의 맨 앞에 서론을 쓴다. 1905년의 다섯 논문 중 네 편엔 모두 서론이 달렸다(E=mc²으로 유명한 9월 논문은 총 3쪽밖에 안 되기 때문에 굳이 서론이고 말고 할 게 없었을 것이다). 서론에는 무엇을 썼나? 짐작하는 대로다. 자기의 문제의식이 뭐고 그래서 이 논문에서 수행할 과제는 무엇인지를 확연히 밝혀놓았다. 1905년 당시 그는 특허청에서 오후 6시까지 근무했기 때문에(심지어 토욜에도 근무를 ㅠㅠ), 서둘러 가도 도서관 문이 닫혀 있는 그런 불우한 공무원이었다. 그래서 그의 논문에는 주가 거의 달리지 않는다. 최신 논문이나 잡지들을 봤어야 주석을 달든 말든 하지! 그 덕분에(^^) 우리는 그의 문제의식을 수많은 각주들의 범벅을 헤쳐나가지 않고 곧장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쉬운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볼 것은 아인슈타인이 광양자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한 1905년 3월 논문, 즉 광양자 논문의 서론이다. 그가 “매우 혁명적인” 논문이라고 자처했던 바로 그 논문이다. 광양자는 빛알이라고도 한다. 더 이상 작게 쪼갤 수 없는 빛의 기본 단위다. 그래서 빛양자다. 그리고 양자이기 때문에, 이 빛알 하나하나보다 작은 빛은 없다. 한편 더 큰 빛도 이것의 정수배 크기의 것만 존재하지, 이것의 3.14159배나 42.195배인 빛은 실존하지 않는다.


1. 우리가 본론을 못 읽지 서론을 못 읽냐?

자, 광양자 논문의 서론 중에서도 첫 문장이다.

“기체를 비롯한 무게 있는 물체에 대하여 물리학자들이 지금까지 형성해온 이론적 개념과, 소위 ‘진공’ 속에서의 전자기적 과정을 다루는 맥스웰의 이론 사이에는, 근본적인 형식상의 차이가 존재한다.”(3월 논문 = 광양자 논문)

아인슈타인의 거의 전형적인 스타일의 문장이다. 정말 그런지 실감하기 위해 특수상대성 이론 논문의 역시나 첫 문장을 보자.

“현재의 통상적인 해석에 따르면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운동 중인 물체에 적용될 경우, 현상에 내재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비대칭성이 초래한다고 알려져 있다.”(6월 논문 = 특수상대론 논문)

자, 뭐가 전형적이냐? 아인슈타인은 어떤 체계와 어떤 체계 간에 근본적인 비대칭성이 있다는 걸 발견한다. 비대칭성은 일반적으로 말하면 두 대상이 모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은 그냥 드러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철저히 뒤져보고 오랜 숙고를 한 끝에 발견해낸다. 그에게 두 앎의 체계 간에 모순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현재 존재하는 각각의 앎이 아직 충분치 못한 상태라는 의미였다. 따라서 모순을 발견하면 불편하면서도 크게 기뻤다. 그 모순을 모순 아니도록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앎에 이르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비대칭의 발견은 더 높은 차원의 앎을 향한 필수적인 출발점이요, 따라서 그는 이제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요컨대 그에게 모순 혹은 비대칭은 사물 자체의 본질이 아니라 인간의 탐구 능력의 현재 수준에 따른 현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나 아인슈타인이 더 높은 수준의 종합에 도달해 그 모순을 자연스레 해소하겠노라. 그럴 경우 우리는 더 높은 앎의 차원으로 상승하면서 우주도 하나, 우주의 원리도 하나임을 더욱 확신할 수 있으리라. 대략 이런 구도다.


2. 나의 오랜 가설 – 아인슈타인과 스피노자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여러분이 오늘의 전체 구도를 헛갈리지 않도록 내 결론을 먼저 말해버리겠다. 아인슈타인은 일찍부터 원자론을, 넓게 말해서 입자론을 받아들였다. 단, 최종적인 진리는 아직 아니라는 전제하에서의 승인이었다. 그는 맥스웰 전자기학이 기반해 있는 파동론도 받아들였는데, 역시 같은 전제가 깔려 있었다. 입자론도 파동론도 나름의 진리성을 갖고 있다. 틀린 것은 아니고 상당한 진릿값을 갖고 있지만, 최종 진리는 아니다. 두 이론이 현실을 상당한 정도로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간의 논리나 개념이 다르고, 심지어 상호 대립도 하고 있는 걸 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 최종 진리의 상 아래서 볼 때 입자론과 파동론은 상대적인 진리성만 갖고 있는 것이리라.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스피노자주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이 생각은 아인슈타인의 머릿속 풍경에 대해 내가 오랫동안 품어온 가설이며, 이 연재가 끝나기 전에 판가름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옳은 판단이든 그릇된 판단이든 어느 한쪽으로 쫑이 날 것이다. 오늘은 이 가설하에 아인슈타인이 쓴 논문들의 서론을 보여드리려 한다. 아, 그전에 만지트 쿠마루의 󰡔양자 혁명󰡕 중 한 단락을 먼저 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3. also의 중요성

“아인슈타인은 오래전부터 모든 것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산적인, 불연속적인 물질의 조각들이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예를 들면, 기체의 에너지는 기체를 구성하는 개별 원자들의 에너지를 모두 합친 총합이 된다. 그러나 빛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에 따르면, 아니 맥스웰의 이론만이 아니라 파동이론이라면 모두 마찬가지지만, 광선의 에너지는 빛의 부피가 점점 증가하면서 연속적으로 퍼져나간다. 연못에 돌이 떨어지면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해서 파동이 바깥쪽으로 넓게 퍼져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둘 사이의 차이를 “심오한 형식적 차이”라 불렀고, 그의 “다면적 사고”를 자극하는 그런 차이 때문에 불편했다. 그는 만일 빛이 불연속적인 양자들로 된, 그래서 불연속적인 것이기도 하다면, 물질의 불연속성과 전자기 파동의 연속성이라는 이분법(으로 인한 괴리)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

내 가설에 따르면 이 단락은 아주 쉽게 이해된다. 단, 이 번역은, 한글 번역본이 좀 이상하길래 원문과 대조하여 빠진 단어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이 마지막 문장의 원문은 이렇다.

“He realised that the dichotomy between the discontinuity of matter and the continuity of electromagnetic waves would dissolve if light was also discontinuous, made up of quanta.”(밑줄은 인용자).

한글 번역본에서는 also를 누락하고 말았다(여러분 잘 보이시라고 내가 밑줄을 쳐놓았다). 그 결과 빛이 “불연속적인 것이기도 한 것”이 아니라 단적으로 “불연속적인 것”이라 가정한 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래서는, 물질은 불연속이고 전자기 파동은 연속이라는 이분법으로 인한 문제가 해소된다는 게 이상하다. 물질은 연속적인 것이기도 하고 또한 불연속적인 것이기도 해야 입자-파동 이분법에 의한 문제가 해소될 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한 가지 귀띔해드릴 게 있다. 방금 본 인용문의 내용이 3월 논문의 서론과 거의 같은 내용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머잖아 확인하시고, 그 전에 먼저 특수상대론 논문의 서론 초반을 같이 봐두자. 그러면 광양자 논문의 서론이 더 깊이 이해될 수 있을 테다.


4. “현상에 내재하지 않는” 게 뭐꼬?

자, 이 시점에서 특수상대론 논문의 첫 단락을 다시 방문해보자. “현상에 내재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비대칭성”이라는 구절이 보이는가? 이게 뭘까? 알고 보면 아주 쉬운 얘기다. 잠쉬,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다시 방문해보자. 고리 모양으로 둥그렇게 감겨있는 코일이 있고 막대자석을 그 고리 안으로 넣었다 뺐다 하는, 그 실험 이야기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나? 코일에 전류가 흐르지. 자, 여기서 퀴즈. 그럼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되나? 즉, 막대자석은 그대로 놓고 코일 쪽을 왔다갔다 하면? 역시나 이번에도 전기가 흐른다. 결국 자석과 코일 간에 상대 운동 상태가 조성되기만 하면 전류는 흐르기 때문이다.2) 그런데 아인슈타인 당시의 전자기학은 이 두 현상을 다른 원리에 의해 설명하고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아인슈타인 얘기는 이게 얼마나 황당하냐는 거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현상에 내재하지 않는3) 심오한 형식적 차이”라 점잖게 불렀다. 자석을 움직이나 코일 쪽을 움직이나 실질은 동일한데,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의 형태(즉, 이론적 해석)는 다르기 때문에 이를 “현상에 내재하지 않는 심오한 형식적 차이”라 불렀던 것이다. 어렵지 않은 얘기다.4)

자, 서론의 내용을 미리 숙지했으니, 과연 이런 내용을 아인슈타인이 뭐라 써놨는지 직접 확인해보시라. 대부분의 독자들 인생에서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이해하며 읽어보는 첫 경험이 될 것이다. 단, 마지막 문장은 좀 까리할 것인데, 그것까지 완전히 파악하긴 기대하지 말아 주시길. 자, 그럼 행운이 함께 하기를!


5. 특수상대론 논문의 서론

“현재의 통상적인 해석에 따르면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운동 중인 물체에 적용될 경우, 현상에 내재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비대칭성이 초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를 들어 자석과 도체(즉, 코일)의 전기역학적 상호작용을 생각해보자. 이때 관측되는 현상은 도체와 자석의 상대운동만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종래의 견해는 이 두 물체 중 어느 한쪽이 운동하는 경우와 다른 쪽이 운동하는 경우를 전혀 다른 것으로 구별한다. 만일 자석이 움직이고 도체가 정지 중인 경우에는 자석 주위에 일정한 에너지를 지닌 전기장이 발생하여, 도체가 있는 장소에 전류를 발생시킨다. 이와 반대로 자석이 정지 중이고 도체가 운동하는 경우에는, 자석 주변에 전기장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체 안에 기전력(起電力)이 발생하며, 비록 여기에는 에너지가 수반되지 않지만, (전자의 경우와 후자의 경우 상대 운동은 동일하다고 가정한다면) 전자의 경우에 전기적인 힘에 의해 산출된 것과 크기도 같고 방향도 같은 전류를 도체 속에 발생시키는 것이다.5)”(사진 1 보라색 부분의 전체 번역이다).

사진은 아인슈타인이 이 논문을 발표했던 <물리학 연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독일어 사용자일 필욘 없고, 그저 ‘아하, 서론이, 첫 단락이 저 정도의 분량이구나. 그리고 사진 2를 보니 알겠네, 저 정도의 분량으로(한 페이지 반 정도) 서론이 끝나고 곧장 본론이 시작되는 거구나’ 하시면 된다.

종반 부분이 뭔 소린진 몰겠지마는, 우리가 얻으려던 목표는 분명히 얻었다. 코일에 전류가 흐르는 하나의 동일한 현상에 대해 종래의 물리학에서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한데, 이 두 설명이 전혀 다른 설명이라는 것이다. 자, 서론의 세 번째 단락(즉, 마지막 단락)으로 직행하자. 대충 봐도 된다. 당신이 주목할 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이제부터 전개할 이론은 모든 전기역학이 그렇듯이 강체(剛體)의 운동학에 입각해 있는데, 어떠한 전기역학 이론도 그 주장은 강체(좌표계), 시계, 전자기적 과정 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운동체의 전기역학에 내재하는 곤란의 근원이다.”(사진 2에서 푸른색 두 줄로 표시된 대목의 전체 번역이다)

내용을 잘 모르겠는데도 갑자기 단호해지지 않는가! 이렇게 쓰고 아인슈타인은 곧장 본문(I. 운동학 부문, 사진에서 하단 보라색 부분)으로 들어간다.


6. 광양자 논문의 서론

자, 드디어 우리가 보려고 했던 바로 그 논문, 광양자 논문 앞에 도착했다. 이 논문의 서론은 네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문장 앞부분에 ‘물체’라는 단어가 나올 텐데, 그것은 소위 원자론, 즉 불연속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바로 다음 부분에 나오는 맥스웰 이론의 전자기적 과정은 연속 혹은 파동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두 부분을 밑줄 쳐 놓을게). 자, 이제 준비 운동까지 다 했으니 그중 첫 단락부터 고! 고!

“기체를 비롯한 무게 있는 물체6)에 대하여 물리학자들이 지금까지 형성해온 이론적 개념과, 소위 ‘진공’ 속에서의 전자기적 과정을 다루는 맥스웰의 이론 사이에는, 근본적인 형식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즉, 물체의 상태라는 것은, (아무리 많더라도) 어쨌거나 유한할 수밖에 없는 개수의 원자나 전자의 위치와 속도에 의해 완전히 특정(결정)된다고 생각된다. 반면 어떤 공간의 전자기적 상태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공간에 대한 연속 함수가 사용되며, 따라서 공간의 전자기적 상태를 완전히 특정하고자 한다면, 유한개의 양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맥스웰의 이론에서는 모든 순수한 전자기적 현상에 대해 – 따라서 빛 현상에 대해서도 역시 – 그 에너지는 연속적인 공간 함수(Raumfunktion)라 간주되는 데 반해, 오늘날 물리학자들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무게 있는 물체의 에너지는 원자나 전자에 대한 총합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무게 있는 물체의 에너지는 (유한 개의 원자나 전자의 총합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많은 작은 부분들로 (끝없이) 분할할 수는 없는 반면, 맥스웰의 이론에 따르면 (더 일반적으로는 파동론이라면 어떤 것이든) 점상(點狀) 광원으로부터 방출된 광선의 에너지는 어디까지라도 끝없이 증대해가는 체적 속에서 연속적으로 확산되어 간다.”(사진 3의 보라색 단락이다. 밑줄은 인용자).



좌측 제일 상단에 적힌 132가 당시 <물리학 연보>에 실릴 때의 페이지다.

앞서 말했듯 이 단락은 오늘 3절의 처음에 쓴 󰡔만지트 쿠마루의 [[양자 혁명]]으로부터의 인용문과 실질적으로 같은 내용이다. 기체는 기체들을 이루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까, 기체의 에너지는 기체를 구성하는 개별 원자들의 에너지를 모두 합친 총합이 된다. 그러나 빛은 파동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광선의 에너지는 빛의 부피가 점점 증가하면서 연속적으로 퍼져나간다. 그러니까 이때의 에너지는 한 개 두 개로 셀 수가 없다. 자,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아까 자석과 도체(코일) 때의 문제와 흡사해져 버렸다. 하나의 현상을 각각 다른 원리로 설명하는 게 심각한 불일치를 초래했듯이, 빛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광자라고 간주할 때와 광파라고 간주할 때 근원적인 불일치가 발생한다. 전자의 경우는 개체 하나하나의 총합이라는 이해가 가능하지만, 후자, 즉 파동으로 볼 경우에는 그런 덧셈이 불가능한 것이다. 입자론에서는 무한한 분할이 불가능하므로 원자라는 최소 단계에서 멈추고 그때까지 세어진 원자들을 모두 합해야 한다. 하지만 파동은 계속 퍼져가기 때문에 이런 정지와 덧셈이 모두 불가능하다. 동일한 빛 현상 하나를 두고 이렇게나 심오한 형식적 차이를 초래해서야 어찌 과학이고, 확실히 정립된 물리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어지는 것은 나를 화들짝 놀래킨,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두 번째 단락의 전체 번역이다.

이렇게 질문을 던진 다음, 논문은 나를 화들짝 놀래킨,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두 번째 단락으로 이어진다. 전체 번역을 보이겠다. 아인슈타인이 고요하기만 하던 물리학에 순간적인 변화를 초래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친다.

“빛의 파동론은 공간의 연속 함수를 이용하는 이론으로, 순수한 광학 현상을 훌륭하게 기술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고, 이후에도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는 일은 결코 없을 터이다. 그러나 여기서 잊어선 안 될 것은 광학적 관측에서는 어떤 순간의 값이 아니라 시간적 평균값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또 회절, 반사, 굴절, 분산 등에 관한 이론이 실험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어 있다 해도, 연속적인 공간 함수로 다뤄지는 빛 이론은 빛의 발생과 빛의 변화 현상에 적용하면, 실험과 모순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진 3의 아래에서부터 사진 4의 위에서 넷째 줄까지다. 우측 제일 상단에 찍힌 133은 당시 <물리학 연보>에 실릴 때의 페이지다.

빛의 파동론은 큰 변화 없이 지속하는 현상들은 잘 설명할 수 있지만(파동은 연속 현상이므로 이 능력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빛이 갑자기 생겨나거나 빛이 금속에 갑자기 흡수되어 버리는 그런 찰나의 현상에 적용하면 느닷없이 고장 나 버릴 수도 있다. 후자의 현상이라면 연속체인 파동을 다루는 파동론보다는 불연속체인 입자를 다루는 입자론이 적실하지 않겠는가!


7. 잠시 지난달 복습

나는 지난달에 3월 논문의 제목 [빛의 산출과 변환에 관한 하나의 발견적 견지에 대하여]에 특히 주목한 바 있다. 산출과 변환은 영어로 창조와 전환(轉圜)이었고, 이중 전환은 가령 유충에서 번데기로, 번데기가 나비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변태(metamorphosis)와 같은 뜻이라 했다. 이는 맑스가 말했던 ‘수전노가 자본가로 화려하게 변태’하는 것이기도 하고, [[장자]]에서 장주가 크게 깨달아 나비라는 대자유인으로 날아오르는, 가히 우화등선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내 얘기는 더 멋있어진다는 얘기라기보다는 수전노와 장주를 다루던 원리와 이론으로 자본가와 나비를 대해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연속성을 다루던 과학 이론으로 단절성과 급변성을 억지로 이해하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방출과 흡수를 빛의 창조(creation)와 급격한 본성의 변화(metamorphosis, conversion)로 포착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보고 나니, 어떤가, 이것이 기묘하게도 이전에 보았던 흑체복사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어떤 점에서 그러냐고? 아무것도 없던 흑체의 공동(空洞). 거기에 열을 가하면 흑체의 내벽은 점점 뜨거워지면서 빛을 뿜어낸다(무로부터 빛의 창조 혹은 빛의 방출). 이 빛은 공동 안을 가로질러 다른 내벽으로 흡수된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흑체의 작은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방출된다.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처음에 흑체에서 방출된 빛은 흑체 내부에 있는 기체의 원자들과 전자들에 의해 좌충우돌한다는 점이다(흑체의 내부에는 흑체의 바깥과 마찬가지로 일반 대기가 존재할 터이다). 그런 점에서 흑체 내부에서 맥동하는 빛의 에너지는, 좌충우돌하며 운동하는 공동 내 원자들과 전자들의 에너지의 총합이 된다. 무슨 야바위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는 이 순간 뜨거운 열이 빛이 되고, 파동인 광선의 에너지가 원자와 전자들의 에너지의 총합이 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정말 그런가?


8. 급격히 세네 번째 단락으로!

이제 이 논문의 세 번째 단락을 보자. 아니, 아예 마지막 단락까지 봐버리자(사진 4의 주황색 부분이 셋째와 넷째 단락이다).

“이제 내게는 다음과 같은 것이 사실이라 생각된다. 즉, “흑체 복사”, 빛 루미네센스7), 자외선에 의한 음극선8) 발생,9) 등 빛의 산출 및 변환과 관련된 현상을 관측한 결과로 볼 때, 빛의 에너지는 공간에 불연속적으로 산포되어 있다10)고 하는 가정에 의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제시한 가정에 따르면 한 점의 광원에서 방출된 광선이 전파될 때, 그 광선의 에너지는 점점 더 증대하는 공간 속에 연속적으로 퍼져가는 게 아니라, 공간의 몇몇 점에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유한개의 에너지 양자(Energiequanten)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에너지 양자는 더 이상 작게 분할되는 일 없이 운동하며, 어디에 흡수되거나 어디서 발생하든지 간에 늘 동일한 하나의 덩어리로 거동한다.

이 논문은 이후 제시할 접근법을 탐구에 활용해 줄 연구자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나를 이 길로 이끌어준 추론과 사실을 제시하는 바이다.”


9. 다음 달부터 모드 전환

아인슈타인의 논문, 그중에서도 서론을 잘 감상하셨는지 모르겠다. 이런 걸 처음 보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 보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야기가 딱딱해진 거 같아 내 마음도 좀 딱딱하다. 담달부터는 좀 부드럽고 촉촉한 쪽으로 가보겠다. 어니스트 러더포드가 등장해 원자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약 100년 전엔 원자를 어떤 이미지로 상상했던 걸까?



1) 만지트 쿠마루, 󰡔양자 혁명󰡕, p.66.

2)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4389841&cid=60217&categoryId=60217. 이 영상 중반에 “전압은 이러한 움직임 중 하나가 이루어질 때에만 유도된다.”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왜 그렇지? 두 움직임이 같은 방향이면 실질적으로 상대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까? 아니면 두 움직임의 방향이 반대여도 마찬가지라는 걸까? 나는 “상대 운동 상태가 조성되기만 하면” 전류가 흐른다고 썼는데, 이런 문제는 생각하지 못했다. 깊이, 많이 아시는 분들이 교시해주시면 감사하겠다.

3) ‘.....에 내재하지 않는’의 독일어 원어는 anzuhaften, 영역은 inherent in이다.

4) 이 지점에 대해 아인슈타인이 1920년대에 쓴 미발표 원고는 생생하게 자신의 고민 과정을 전해준다. [6장 빛과 시계 맞추기], [[뉴턴과 아인슈타인]](창비, 2004), p.183-184.

5) 임경순 편, 󰡔100년만에 다시 찾는 아인슈타인󰡕(사이언스북스, 1997), p.157-158. 번역은 여러 곳을 변경했다.

6) ‘무게 있는(ponderable) 물체’란 무거움을 지닌 물체, 무게를 잴 수 있는 물체를 말한다. “19세기 초의 물리학자들은 세상에는 보통 물질과 여러 가지 에테르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상상한 에테르는 무게가 없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특별한 물질이었다. 19세기 초에는 빛 에테르, 전기 에테르, 열 에테르 등이 있어서 그것들의 운동이 각각 빛, 전기, 자기, 열 현상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6장 빛과 시계 맞추기], [[뉴턴과 아인슈타인]](창비, 2004), p.152.

7) Photolumineszenz.

8) Kathodenstrahlen. 오늘날 ‘전자’를 당시엔 ‘음극선(cathod ray)’이라 불렀다.

9) 가령 금속에 강한 빛(즉, 자외선)을 쪼이면 금속으로부터 전자가 튀어나온다.

10) “공간에 불연속적으로 듬성듬성 흩어져 있다”의 원문은 “diskontinuierlich im Raume verteilt sei)이다.



박성관(독립연구자, <현대 철학의 최전선>번역자)


조회수 278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