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게, 쉬운, 양자역학 2: 입자이자 파동인 게 그케 이상해? / 박성관

1. 분위기 깨는 이중성

양자역학 책들은, 자연과학 도서들이 으레 그렇듯, 이 분야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이 책이 얼마나 쉬운지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그러다 초반이 지났나 싶어질 즈음 이중슬릿 실험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는 머잖아 천기를 누설이라도 하듯 이렇게 속삭인다. 빛은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다고(짜잔!) 글쎄 이처럼 불가능하고 신비로운 일들이 양자역학에선 비일비재하게 출현한다고(짜자잔)! 그 뒤로 저자는 그 신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계속 알려준다(좌르르르륵)!

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양자역학 관련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보다 한 3~5년 전쯤에는 문돌이 외길 30년을 청산하고 이후에는 과학책들‘도’ 시간나면 읽는 그런 인생으로 1/4쯤 바뀌었다. 주로 생물학 관련서들을 열심히 공부했고 수학이나 물리 쪽은 가볍고 웃긴 책들을 어쩌다 읽어주었다. 그러다 어느결에 신비하고 난해하다는 소문으로 휩싸여 있는 양자역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자연과학의 ‘자’자를 알기 시작했고, 물리학에 대해서는 ‘ㅁ’자도 몰랐던 시절. 우선은 입문서부터 시작했다. 소문과는 달리 그리 무서운 동네는 아니었다. 좀 재미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간혹 들기 시작해 나도 놀랐다. 한데 문제는 늘 그것이었다. 책의 초반이 지나 중반에 접어들 무렵, 언제나 분위기 깨는 그 이중슬릿과 입자-파동 이중성이 튀어 나왔던 것이다. 나는 그 대목이 매번 이해가 안 갔다.


2. 이상하지만 불가능할 것까지야...

어떤 대상이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게, 그게 그렇게 불가능한 거야? 좀 이상하긴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처음엔 가벼운 의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불가능하다’든가, ‘그런 건 없다’는 따위의 단언이나 확신을 병적으로 꺼리는 체질이다. 의심은 적극적인 반론으로 성장하였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지?

우선 물 생각이 났다. 물 있잖아. 물이 얼면 얼음이 되는데 얼음은 입자...겠지? 입자지 그럼 파동이겠어? 그런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지. 물은 흐르고 때로는 물결도 치고 막 그러잖아. 그게 파동이잖아. 해묵은 연못에 개구리 풍덩! 하면 파문이 퍼져나가고, 그런 파문이 파동의 대표적인 예라며! 봐봐! 최소한 물은 입자였다가 파동이었다가 하잖아. 이게 뭐가 불가능해?

좀 더 보니 이런 게 한 둘이 아니었다. 단단한 바위도 그래. 용암으로 분출될 때는 뜨거운 액체야, 물결이나 파도처럼 막 흘러. 파동이지. 확실히 입자는 아니야. 그러다가 지상으로 나와서 식으면 딱딱한 물체, 그러니까 입자들의 덩어리가 되잖아. H2O만이 아니라 돌도 그러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책의 설명하고 정반대잖아. 과연 입자였다가 파동이었다가 하지 않는 물체가 하나라도 있는 걸까? 나는 이 의문에서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내가 읽은 어떤 책도 ‘불가능하다’고만 하지, 그게 왜 이상하고 불가능한 건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작년말에 TV에 나와서 이성민-김상욱 복식조도 똑같이 말하더라구. 3분 13초대부터 2분만 봐봐.

2021 KBS 과학기획 기초과학이 세상을 바꾼다. 캡처. 출처: https://youtu.be/ximYyWgq9bM

이성민 : 빛은 ... 뭔가요?

김상욱 : 그게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서 ... 빛은 파동이라고도 하구요, 또 한편 입자라고도 합니다.

이성민 : 이상하네요. 입자인 것이 어떻게 해서 저렇게 동심원을 그리는 파동이 될 수 있는 거죠?

김상욱 : 저건 사실 물이 흔들려서 만들어낸 패턴 ... 같은 거잖아요? 저 패턴을 파동이라 그래요. (예컨대) 입자는, 지금 이 돌멩이처럼 여기 있거나 이쪽으로 옮기면 또 여기 있거나 어쨌든 어느 한 곳에만 존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소리 같은 파동은 (널리널리 퍼져나가니까)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가 있죠. 근데 아까 이야기했지만 빛은 입자이기도 하거든요.

이성민 : 모순이네. 그렇죠? 근데 과학은 모순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김상욱 : 모순이라는 것이 뭘까? 사실 우리 인간이 단지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인간에겐 입자이면서 파동인 걸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것, 또 그 개념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돼요. 받아들이시기가 쉽지 않으실 거 같아요.

이성민 : 네. 쉽지 않아요.

김상욱 : 더 놀라운 점은 이제 오늘 저희가 이야기할 원자, 이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도 파동과 같은 성질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화면은 푸른 하늘로 가득 차고 몇 마디 나레이션이 흐른 뒤에 다른 주제로 옮겨간다. 늘 이런 식이었다.


3. 누락

이 대목에서 당신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과학자나 과학 덕후들, 적잖은 이과 출신 독자들은 이성민-김상욱 콤비의 대화에 (거의) 아무런 문제도 못 느낄 것이다. 책 깨나 읽는 사람들 중에도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상태일 거고. 그러나 나같이 문송한 자들은 거대한 혼돈에 빠져든다. 앞서 2. 「이상하지만 불가능할 것까지야...」에서 말해듯 말이다. 아니, 죄송. 잠시 내가 착각했다. 사실 나처럼 거대한 혼돈에 빠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선 아예 의문이 안 생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해가 안 되었으면서도, ‘히야, 양자역학이란 건 정말 신기한 세계구나’ 하면서 계속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나처럼 의문이 생긴, 순박한 마음의 소유자들도 분명히 있긴 할 거야. 단, 그런 사람들의 경우에도 이해가 안 되는 원인이 자신에게 있을 거라 지레 짐작하겠지. ‘이후 차차 알게 되겠지,’ ‘내가 과학에 젬병이니까 그런 거겠지’ 하며 다음으로 넘어갈 거야. 여기서 책을 덮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한마디로 말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이 있을 거야. 그중에서 나처럼 거대한 혼돈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드는 사람은 꽤나 드물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독자들은 책의 저자가 여기서 중대한 설명을 누락시켰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4. 과학인가 최면인가?

내 생각엔, 많은 독자들이 입자-파동 이중성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에 별로 공감하지 않을 거 같다. 그럼에도 저자가 불가능하다고, 신비하다고 자꾸 이야기하니까 왠지 그런 거 같은 심정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양자역학에서는 신비하고 모순된 사태가 자주 나온다고 여러 차례 들어본 적도 있고 해서 깊이 의심을 안 하게 된다. 이렇게 넘어가기 때문에 이후의 독서 과정에서도 심각한 의문이 안 생기는 게 아닐까? 이어지는 내용들은 내가 실제로 실험해볼 수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의문이 생기기는 더 힘들다. 그래서 다 읽고난 뒤 남는 것은 이상하고 신비로운 사례들을 많이 들었다는 기억. 그리고 양자역학은 정말 신비한 거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되면 교양스러운 느낌을 얻은 것이지 세상이 실제로 바뀌어보이지를 않는다. 이건 과학이라기보다는 최면 체험에 가깝다. 그래선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양자가 뭐냐?’고 물어보면 십중 팔구는 극도로 작은 입자 같은 거 아니냐고 답한다. 양자는 중성자나 양성자나 전자 같은 그런 물질이나 물체가 아니라고 말해주면 놀라기까지 한다.


5. 유치원 졸업한지가 언젠데...

이후 과학책들을 더 읽게 되면서 물리학에서 말하는 ‘파동’이 내가 이미지화했던 ‘파도’나 ‘물결’과는 (비슷하지만) 꽤나 다르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조금 아까 대화에서 김상욱 교수가 말하듯이 “물이 흔들려서 만들어낸 패턴 ... 같은 거 (...) 그런 패턴을 파동”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해두자면 파동은 파도가 아니다. 파동은 물질이 아니다. 파동은 파도가 보이는 움직임의 패턴인 것이다. 영어로는 파동이 ‘파도’와 똑같은 wave이니 더 헛갈릴 수도 있겠다. 우리말은 그래도 ‘파도’와 구별해서 ‘파동(波動)’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고, 파동의 뜻도 ‘물결(波)의 움직임(動)’이라고 하니 물리학에서의 정의와 매우 가깝다.

양자 유치원 다니던 시절의 다른 물음들도 하나 둘 해결되어갔다. 더 넓게, 더 깊게 과학의 세계로 들어갔다. 내가 과학자가 된 것은 아니니, 점점 더 수준 높는 과학책들로 옮아갔다고 해야겠다. 그럼에도 입자-파동 이중성 문제는 난공불락이었다. 왜 입자이자 파동이면 모순인 건지, 물리학자들은 그게 왜 불가능하고 또 신비롭다고 확신하는 건지 오래도록 알 수 없었다.


6. 알려주시는 분께 후사함

작년에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거의) 확실한 답을 얻었다. ‘(거의)’라고 한 건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하고 내 스스로 생각하게 된 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못된 답일 수도 있고 매우 불충분한 답일 수도 있다. 혹시라도 이 문제에 대해 답해주는 좋은 책이나 영상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라. 후사하겠다. 원하시는 것이 입자물이든 파동물이든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으니 꼬옥 부탁드린다. 독자들 중에는 ‘아니 그렇게나 알고 싶었으면 전문가한테 물어보면 되지 왜 그걸 혼자서만 고민한 거지?’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다. 그 이유는 .... 오늘은 말하지 않겠다. 무려 30여분에 걸쳐 주저리주저리 썼지만, 글도 넘 길어지고 딱히 꼭 필요할까 싶어서 싹 다 지웠다(5분간 애도).


7. 나의 이중성과 이 글의 독자들


나는 책을 읽다 보면 너무 많은 의문들이 튀어나와 책을 빨리 못 읽는다. 내 장점이자 단점인데 그래선지 단점이 잘 안 고쳐진다. 나의 두 가지 특징이 아니라 나의 어떤 면모의 이중성인 듯 하다. 단점을 없애려면 장점도 따라 없어져야 하는 그런 경우랄까? 자연과학책을 읽을 때도 똑같다. 다행히도 요즘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많은 의문들이 금세 풀려 너무 기쁘다. 의문들 중에는 입자-파동 이중성처럼 이해가 안 되는 문제도 많고, 또 책에 나오는 실험 장치들을 보면 세부 부품들이나 재료들 중에 많은 것들이 궁금하기도 하다.

이 연재의 독자들은 나같은 일반 독자들이다. 과학책을 읽으면 이해 안 되는 게 많은 분들, 기초가 박약한 주제에 궁금한 건 또 어찌나 많은지 모르겠는 분들, 이런 과학 지식은 알아서 어데 쓰는지 모르겠고, 사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분들이다. 자, 다음 달부터는 양자역학의 역사로 바로 들어간다. 초중반이 지날 즈음, 파동-입자 이중성과 관련된 답도 발표하겠다(짜잔). 그리고 양자역학책을 다 읽고도 ‘양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입도 뻥긋 못하는 분들도 꽤 되던데, 그것만은 꼭, 정확히, 사무치게 알려드리겠다.


박성관(독립연구자, <중동태의 세계> 번역자)

조회수 85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