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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으로 수다 떨기: 이스라엘의 힘 (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박성관

(지난달 칼럼 [이스라엘의 힘 (상)]에 이어서 계속)

12.

[[자연을 명명하기]]의 내용이 쫌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소개된, 그런 정도의 견해를 펼치는 책이라면 꼭 읽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도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아마존과 일본 아마존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다소 의외의 면이 발견되었다. 우선, 아마존의 [[자연을 명명하기]] 책 소개를 잠시 보자. “생물학자 린네는 18세기에 생물종들을 커다란 변이 가능성의 견지에서 규정하고자 분투했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인간의 직관이나 시각적 판단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분류학이 근대화됨에 따라, 생물학 연구실에서는 (세계의 질서를 세우려는 인간의 내적인 성향에 반하는) 반직관적인 결과들을 산출해냈다. 이런 분류학자들의 과학적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캐롤 윤이 주장하는 바는, 우리 인간은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낯설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흠... 그렇단 말이지. 살짝 흥미가 꼬물거렸다.

한편, 일본 아마존의 소개는 이와 미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분류라는 행위는 분류자와 분류 대상이 일체가 되어 구축되는 ‘환세계(環世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발전한 과학적 분류학은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등을 주장하며, 인간의 환세계로부터 괴리되고 말았다. 과연 이것으로 좋은 것일까? 과학과 직감의 항쟁을 그리는, 재밌고 새로운 발견들로 충만한 책.”

평가의 방향에 있어 아마존과 일본 아마존은 상반된다. [[자연을 명명하기]]가 급! 읽고 싶어졌다. 덤으로 분지학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고... 특히 과학을 인정하면서도 과학과 동등한 다른 세계상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점에서 나랑도 잘 맞을지 모른다. 이와 비슷한 노선을 장하석의 [[온도계의 철학]]에서 읽고 반가웠다(이 김에 말해두자면, 언젠가 그의 [[물은 H₂O인가?]]를 가지고도 수다를 떨 예정이다).

13.

다시 [[물고기는....]]으로 돌아가자. 이 책의 부제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의 내용에 비추어 꽤나 자연스러운 듯하다. 그 순간 내 마음속의 외침, ‘더 핵심적인 요소인 희망과 공포가 빠졌어!’ 맞아, ‘희망과 공포’. 아~ 이 책을 읽으면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세계관을, 그 미국적 버전을 이토록 순도 높게 읽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만일 나한테 이 책의 부제를 지으라고 한다면, 지금 있는 부제의 앞에 ‘희망과 공포’를, 맨 뒤에는 ‘춥고 어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덧붙였을 것이다. 넘 길긴 하지만, 이렇게 하면 책 전체는 더 충실하게 요약될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14.

고등학교 때 합창단을 하면서 한동안 연습한 곡이 있었다.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곡이었다. 무슨 곡인가 싶으시다면, 유튭에 ‘작은 세상(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이라고 쳐보시라. 당신도 너무너무 잘 아는 노래다. 어? 그런데 이 노래가 이런 가사로 되어 있었나!? 싶어질 것이다. 나는 고교 시절에 이 노래를 반복 연습하면서 ‘희망과 공포’라는 대목에서 종종 의아했다. 왜 ‘희망과 공포’지? 앞에 ‘기쁨과 슬픔’은 자연스럽지만 ‘희망과 공포’는 어째선지 그와 비대칭이라는 감이 들었다. 그러던 것을 30년도 더 지나 이제야 확연히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기쁨과 슬픔은 일상의 감정이지만 희망과 공포는 서양인들의, 혹은 기독교인들의? 아니면 유대인들의 기본 세계관이었구나. 지금 이 말이 확! 와닿지 않는 분들이라면 도리어 [[물고기는 ...]]을 읽어보시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무시무시한 공포나 카오스로 느껴지는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그런 어둔 내면을 어떻게든 다독이며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겐 이 책이 크나큰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공포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독서 체험이 될 수도 있겠다. 암튼 나는 이리하여, 그 친숙하기 그지없고 편안한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희망과 공포’ 대목에서 갸웃거렸는지 드뎌 알게 된 것이다.

15. 내 질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방금 말한 노래의 제목은 왜 ‘작은 세상’인가? 실제로 노래를 부르다 보면 마지막 대목에서 영 이상하다. ‘산이 높아 험해도 바다 넓고 깊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이 무슨 말인가? ‘산이 험해도 바다 깊어도’야 인생을 살다 보면,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다 보면 누구나 다 공감하게 되지. 그런데 이어지는 가사가 ‘그렇다 해도 작고 작은 이 세상’이라니, 참으로 이상해. 보통 사람의 상식이나 감각이라면 그렇게 되질 않는다. 즉, 어렸을 때는 이 세상이 너무 험하고 무섭고 나만 불행한 거 같고 했더라도, 나중에 커서 보면 그건 아주 작은 세상일 뿐이었다. 성장해서 보니 이 세상은 훨씬 더 넓고 다채로운 곳이구나... 대략 이런 것이어야 한다. 물론 이렇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역시 세상은 험한 산, 깊은 바다와도 같이 무시무시한 곳이었어.... 정도로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가사는 ‘산이 높아 험해도 바다 넓고 깊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왜 이렇게 노래가 끝나지?

'서구인들의 희망과 공포'라는 주제로 인공지능이 그린 삽화. Midjourney bot 생성. 프롬프터 오영진.

16. ‘희망과 공포’라는 대목은 온 세상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아니다. 설령 인간 본연의 열망과 두려움이라 인정하더라도, 그런 본성이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의 문화를 걸쳤다는 점 또한 인정되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내게 낯선 이 가사가 왜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건지도 이해할 수 있다. 대략 이런 이야기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과 좌절을 겪지만, 그렇다 해도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하나님 지으신 이 우주 전체에서 보면 우리가 겪은 그런 일들과 그런 세상은 작고 작은 것에 불과하다. 요단강 건너 천국에 가면 모두 보상을 받고 아버지 야훼의 품안에서 영생토록 행복하게 살아갈지니...... 뭐 이런 내러티브가 아닐까? 이건 ‘내피셜’이니까 어떻게 평가하시든 자유고 더 관심있는 분들은 나무위키 ‘작은 세상’을 검색해보시길. 이 노래가 디즈니 놀이기구의 테마곡이었다는 첫 대목부터 충격적이다. ㅋㅋㅋ

17.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다 보면, 이 책이 인간의 보편적인 두려움이나 고독한 실존을 마치 그 자체로 다루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룰루 밀러의 현란한 스토리텔링이 화자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유대인 혹은 미국 문화의 특이성을 가리는 것이다. 책의 종반부로 갈수록 내 머릿속에서 강하게 부상했던 ‘회복력’이라는 걸 가지고 이 얘길 좀 더 해보겠다. 이것은 레질리언스(resilience)를 번역한 단어로 ‘회복탄력성’이라고도 한다. 제러미 리프킨의 [[회복력 시대]] 같은 책도 있고, 페미니즘 관련해서도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종종 보셨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시대의 키워드기도 하다. 나 역시 이 개념이 매우 리얼하게 느껴지곤 했는데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왠지 모르는 음습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고, 그래선지 직접 써본 기억은 없다. 그러다가 애정하는 일본 월간지 <현대사상> 2021년 3월호 특집 ‘동일본 대진재 10년’에서 [IDF의 동북 미션과 이스라엘의 ‘세계 표준화’]라는 글을 읽었다. 이 글에 따르면 후쿠시마 대참사가 발발했을 때 일본에 가장 먼저 상륙한 해외 의료 지원단은 바로 이스라엘에서 온 IDF의 팀이었다. 의사 14명, 간호사 7명, 의료종사자 9명을 포함한 총 약 60명의 규모였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스라엘이 일본에서 아주 가까운 나라도 아닌데 어떻게 그리 빨리, 나름 규모를 갖춘 의료지원팀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이 60명은 하나같이 IDF, 즉 이스라엘 국방군에 속해 있었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시작하는 이 글은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현암사)가 국내에 번역된 다나미 아오에의 글이다. 이 글에서 레질리언스 대목만 뽑아 읽어보자. 우리가 일상적으로도 자주 사용하는 PTSD,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말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도 알 수 있다. 좀 무시무시하다.

“레질리언스란 원래 물리학에서 탄력적 회복을 의미한다. 근래 이 말이 심리학 분야에서 주목받기 시작해 보리스 시륄니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나 2차 세계대전의 고아, 부랑아 등의 관찰을 통해 이 개념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특히 2011년의 후쿠시마 대참사 이후의 맥락에서 시스템이나 커뮤니티가 신속히 안정을 회복한다는 의미의 회복력으로 정의되게 되었다. 세실 아사누마 브리스는 핵발전소 사고 후의 부흥에 있어서 “강하고 단단한(resilient) 사회 구축”이 지향되고, 무서워하거나 도피하는 일을 사람들에게 그만두게 만들고, 핵발전소 사고 재난지로부터의 인구 유출을 억제하고자 하는 정책으로서, 이 개념이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밑줄에 의한 강조는 내가 했다)

나의 꺼림칙한 예감은 과히 틀리지 않았다. [[물고기는....]]의 기조 정서와 오버랩되면 불쾌감이 올라올 수도 있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BASIC Ph 모델에 관한 전문서의 일본어 번역을 읽으면, 레질리언스 개념의 위험성이 다른 각도에서 부각된다. 이 모델은 끊일 새 없는 집단적 스트레스에 처한 사람들의 행동을 조사한다거나, 어린이들에게 단단함(resiliency)의 스킬을 가르치는 실천을 한다거나 하는 가운데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제2차 인티파다가 개시된 직후의 이스라엘에서 “테러리즘의 공포 하에서 살아가는 부모들”이나 제2차 레바논 전쟁 하에서의 “생명을 위협하는 끊일 새 없는 포격 하에서 살고 있는” 북부 도시, 키리야트 셰모나의 사람들에 대한 관찰이 바탕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보충설명 1. Basic Ph는 레질리언스에 관한 연구로부터 생겨난 모델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요소나 국면을 신념(Brief), 감정(Affect), 사회적(Social) 지원, 상상력(Imagination), 인지(Cognition), 생리학(Physiology) 이렇게 여섯 가지로 나누어 그 대문자를 취한 것이다.

보충설명 2. 인티파다란 아랍어로 ‘봉기’를 뜻한다.

보충설명 3. 제2차 레바논 전쟁이란 2006년 헤즈볼라가 카추샤 로켓 포격을 한 데 대하여, 이스라엘이 레바논 전 국토에 공중 폭격을 가한 비대칭 전쟁이다.)

18. ‘희망과 공포’, ‘작고 작은 이 세상’에서부터 지금 이 대목까지를 읽고 무엇을 어떻게 느끼실지는 각자의 자유다. 아마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물고기는 ...]]이라는 소설책을 읽고 다 다르게 느낀다면 그 또한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그러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 나는? 나는 어떤가? 답이 금방 안 나온다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몇 번 되뇐 다음 다시 답변을 시도해보시라. 그 과정에서 나에게 ‘물고기’는 무엇이었고, 또 무엇인지를 발견하시게 되기 바란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이 말은 나의 내면에 오래도록 잠재해 있던 것일까, 아니면 책의 띠지가 망막에 맺힌 뒤로 내 가슴에서 울리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 어쩌면 당신은 이 비슷한 말들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당신에게 속삭인 자는 과거에 누구였고, 또 지금은 누구일까?

19. 사소하다면 사소한 아쉬운 점들 몇 가지

19.1 물고기 대신 어류 : 영어는 물고기도 어류도 모두 fish지만(새도 조류도 bird인 것처럼), 우리는 서구언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물고기와 어류라는 말이 상호 대별되는 측면이 생겼다. 그런 연유로 이 책에서 지적되는 ‘물고기 부재’의 문제점은 다소 약화된다. 너무 호들갑 떠는 건 자칫 과학 권위주의로 흐를 수 있단 말이다. 생물학책 조금 보고서 버섯은 식물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모른다고 개탄하는 부류, 천문학책 조금 보고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별은 태양인데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며 뻐기는 부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의 생물학이 버섯을 식물로 분류하지 않는 건, 식물을 광합성 여부로 분류하게 된 규약 변경의 결과일 뿐이다. 이런 변화에 의미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버섯을 수직으로 꽂혀 있는 존재로 파악하는 ‘식물(植物)’이라는 이해에 잘못된 점은 전혀 없다. 유대인이나 게르만인들 보면 탁월한 예리함 혹은 웅혼한 근원주의로 출발하지만 결국은 과한 데까지 치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질러온 짓이 홀로코스트를 초과한 지 한참 되었다는 건 또 말할 필요가 없을 테고, 작년 말(2022년 12월 7일) 독일에서 적발된 내란음모 사건 또한 어처구니가 없다(‘2022 독일 쿠데타 모의’). 일부 구 귀족 중 하나인 융커 가문 출신 인사들이 주도했으며, 전직 독일 연방의회 의원과 전현직 독일 연방군 장교, 러시아 측 극우 세력 일부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도대체 얘들은 평소 뭘 먹길래 이런 일을 상상하고 또 그걸 현실로 옮기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건지, 황당무계하기 그지없다. 이게 주로 역사나 토양의 산물인지 아니면 기본 성정이나 체질이 더 크게 작용한 건지, 다 아니면 그냥 안 좋은 수맥이 흐르는 것이겠지만, 하여간 잊히기 힘든 일들을 심심찮게 벌인다. 이런 생각 하다 보면 아인슈타인이 떠오른다. 유대인 혈통에 독일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보냈던 그도 참 특이했던 게, 다른 사람들하고는 더할 수 없이 살갑고 재밌고 비권위적인, 그런 인간 관계를 맺었던 거 같은데, 이상하게도 자기 가족들과는 참 힘들었던 거 같다. 거의 부적응 상태 아니었을까 싶어질 정도다. 부인을 포함해 자녀들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 ㅠㅠ

19.2 마지막에 나오는 양성애와 레즈비언 관계는 나처럼 ‘배타적 이성애주의’에 학을 뗀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인 환영 대상이다. 하지만 너무 얌전하다고 느껴져 불만스러웠고, 그래서 오래전에 읽었던, 훨씬 더 새롭고 자극적이었던 은하선의 [[이기적 섹스]]가 떠올랐다. 또, 우열을 비교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는 ‘미국책’이라서 그런지 더 깊이 들어간 면과 함께 부족한 점도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알면서 덜 쓴 측면이 있다면, [[물고기는 ...]]은 저자의 식견 자체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한우리 외 [[교차성×페미니즘]](여이연)이라는 좋은 책도 계속 떠올랐다. 특히 교차성 관련해서 그러했다. 하지만 이 책 역시, 교차성을 연대라는 견지에서 흡수하고 있는 점은 불만스러웠다. 교차성이 정체성과 둘이 아니라는 점까지 나아간 책이 있다면 읽고 싶다. [[물고기는 ...]]보다 스토리텔링을 더 잘하긴 어렵겠지만, 내용 면에서는 훨씬 더 좋은 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20. 다음번 수다 떨 책을 예고하겠습니다.

먼저 후보로는 장하석의 [[물은 H₂O인가?]], 장회익의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 양자역학이 불러온 존재론적 혁명]], 임소연의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레베카 스클루트의 [[헨리에타 렉스의 불멸의 삶]]이 뽑혔습니다. 짝짝짝짝짝! 가장 먼저 배제된 건 마지막 책입니다. 왜냐면 리뷰 세 번 중 최소 한번은 우리나라의 필자, 그리고 또 한번은 여성 필자로 고르려고 생각 중이기 때문이죠. 이번에 [[물고기는....]]을 다루었으니 두어 달 뒤에는 당당히 후보가 될 수 있겠습니다. 앗! 아니구나, [[헨리에타...]]는 주인공으로 보나, 저자로 보나 ‘여성’ 쪽으로 분류 가능한 책이잖아 ^^. 그리고 임소연의 책은 너무 작게 만들어서 나는 읽기도 불편했는데 급기야 내 방에서 사라졌고 아직 못 찾고 있습니다. 없으니 어떡합니까, 발굴될 때까지 일단 제외! 그리고 다른 고민을 좀 더 한 끝에 장회익 선생님의 신간으로 낙착되었습니다. 함께 페이스 메이커 해주실 분들은 널리 참고하시라~!


박성관(독립연구자, <분해의 철학>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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