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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으로 수다 떨기: 이스라엘의 힘 (상)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박성관

1. 무슨 책인지 정확히는 모른 채 읽기 시작했다. 읽어가면서 계속 놀랐는데 굵직한 것만 쳐도 네 번 정도는 되는 거 같다. 그렇다고 정신 사납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책은 또 아니다. 계속 몰입을 시키면서 반전 때문에 더 사로잡히게 되는 그런 책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베셀이 될 만하다. 이 책을 ‘과학책으로 수다 떨기’ 첫 번째 책으로 정했다. 너무 긴 수다가 되고 말아서 분하다. 그래도 15만 명이 넘게 읽었다니 길게 떠들어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긴 할 터이다. 과학 전문기자가 쓴 과학에세이로 분류될 수 있고 구매층은 주로 20, 30대 특히 여성들이라고 한다.



2. 책의 화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결정적인 말을 듣는다. “넌 중요한 존재가 아냐!” 우리의 삶에 특별한 의미 따위는 있을 리 없다는 메시지. 한데 그런 아버진 경쾌하게 잘도 살아가는 것 같다. 화자는 그렇게 살아지질 않는다. 고통스럽고 불안하다. 그러다가 어류 분류에 거의 일생을 바친 역사 속의 생물학자를 알게 된다. 1851년에 태어나 1931년에 사망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는 세계의 질서를 파악하고 말겠다는 강렬한 꿈이 있었다. 치명적인 좌절을 맛보지만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자기 삶을 살다 간 사람. 최대의 큰 시련은 엄청난 세월 동안 수집하고 명명하고 분류한 물고기 표본들이 1905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거의 모두 파괴된 사건이었다. 유리단지는 깨지고 물고기들은 흩어지고 파괴되었다. 단지 안에 들어 있던 이름표들(그가 새로 붙인 학명들)도 모두 흩어져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생명의 나무’의 형태를 밝혀냄으로써 지구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려던 조던. 그는 파괴된 잔해 앞에서 벌떡 일어나 바늘을 들었다. “그러고는 한 번의 유연한 동작으로 바늘을 물고기의 목살에 찔러 넣어 이름표를 꿰매 붙였다. 폐허에서 구해낼 수 있는 모든 물고기에 이 작은 동작을 반복했다.” 다시 유리단지가 깨지더라도 물고기와 이름표는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물고기의 “목에, 꼬리에, 눈알에 꿰매 붙인 이름들. 이 작은 혁신은 도전적인 소망을 담고 있었다. 이제 그의 작업은 혼돈의 맹공 앞에서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이라는, 다음번 혼돈의 공격 때는 그의 질서가 흔들림 없이 우뚝 서 있을 거라는 도전적인 소망.”(p.18)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고기들을 정확히 분류하여 전체의 질서를 그려낸다는 게 그리도 절대적인 의미가 있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이 세계는 정말이지 확고하고 안정된 질서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왜 내 삶은 이렇게 불안하고 마음 둘 곳 없이 헤매는 것일까?


3. 세계라는 카오스 속에서 불안과 공포, 무의미함에 춥게만 살아가던 화자는 필사적으로 이 물고기 분류학자의 삶에 매달린다. 이 과학자와 자기 아버지는 삶에 대한 불안과 회의가 없는 것처럼만 보였다. 반면 자기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큰언니에겐 힘겹게 견뎌야 할 삶밖에 없었다. 학교 친구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당하던 어두운 복도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이런 화자의 삶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이 속도감 있게 교차된다. 그러면서 책의 장르가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나의 예상을 몇 번은 뒤집어놓았는데, 책의 3/4쯤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이 책이 무슨 책인지 확실히 감이 왔다. 이 뒤로도 이야기는 나를 계속 몰입시켰지만, 동시에 저자의 식견에 대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4.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 이름부터가 처음부터 불길하긴 했다. ‘다윗의 별 요르단’이라니. 책을 읽다 보면 조던과 동료들이 새로 발견한 어류에 학명을 붙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끔 그의 성을 따서 무슨 무슨 요르다니라고 했다. 아, 그렇지! 조던이 요르단이고, 요르단이 요단강의 그 요단이지! ‘데이비드 스타’라는 것이야 당연히 다윗의 별,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국기 중앙에 떡허니, 좀 유치하게 박혀있는, 그러나 그 피로 물든 무시무시한 별일 테고. 나치에 의해 생지옥을 강요당하며 최대 6백만 명이 살해당한 피해자 유대인들. 그런 유대인들이 남의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해(1948년 선언) 아랍인들을 마구 학살해왔고 그 숫자는 이미 1천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작으로, 과학과 종교와 자본의 합작으로 인류 역사상 최대의 학살이 반복되어 왔다. 그러면서 그들을 피해자로만 그려내는 홀로코스트 영화와 소설은 계속 제작되고 인류의 양심은 극장과 독서대에서만 울고 있다. 그런 이스라엘인들이, 그런 미국인들이 삶에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무의미에 시달리는 건 이렇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5. 책이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영화 <그래비티>, <어라이벌(컨택트)> 등이 오버랩되었다. 워낙 잘 쓰인 책이고 잘 만들어진 영화들이어서도 그랬고, 춥고 뿌리뽑힌 삶에서 자기 정체성(여자, 다성애, 어머니)을 드디어 찾아내 지구에 처음으로 안착한다고 하는, 요즘 한참 유행하는 주제 면에서도 같다. 요단강 너머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던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서양인들에겐 새로운 버전의 구약성서라 할 만도 하다.


6. 물고기들의 “목에, 꼬리에, 눈알에 꿰매 붙인 이름들”은 20세기 초에 등장한 우생학으로 이어진다. 정신박약 등의 근거를 들어 여성들에게 자행되었던 불임수술 후 꿰매어진 여성들의 아랫배! 이 양자를 포개는 저자의 무시무시한 이미지술을 타고 이제 이야기는 우생학 쪽으로 급전한다. 우생학의 계보 맨 처음에 찰스 다윈의 사촌 조카인 프랜시스 골턴이 있다. 이를 강력히 지지했던 유럽의 지식인들과 이데올로그들 중에는 히틀러가 있었고. 어쩌면 이러다 말 수도 있었을 한때의 흐름이 미국에서 급격히 활발해진 데에는 바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대활약이 있었다. 미국과 유럽의 상징이기도 한 과학 분야의 스타요, 미국의 명문대학인 스탠포드 대학의 창립총장이기도 했던 그. 결국 조던이 세우고 수호하려던 질서는 남성들의 코스모스였고 비남성들의 카오스였다.


7. 10장 ‘진정한 공포의 공간’은 20세기 초 우생학에 미쳐 돌아갔던 사람들이 나치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도 오십보백보로 존재했음을 잘 보여준다. 1차 대전 직전에 전쟁을 못해 안달이었던 건 독일, 오스트리아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 반유대주의는 나치 이전에도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만연해 있었다는 것 등은 학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렇게 대중적인 세계적 베셀에서 이런 점을 잘 기술해 놓은 걸 보니 저자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다. 그랬기 때문에 우생학에 대한 이 책의 서술은 실망스러웠다. 저자는 현대 생물학의 성과에 입각하여 우생학이 반과학적이었음을 확증적으로 비판한다.


8. 내가 실망했던 건 현대 생물학에 입각하여 우생학을 심판했다는 점이다. 현대의 유전학과 생물학이 우생학과 그리도 다른 것일까? 차이점이나 대조점 못지않게 공통점이 많지 않을까? 사실 우생학은 수많은 과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지지했던 현대 과학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생학이 과도했다는 비판까지는 정당하지만, 마치 그것이 과학이나 진보에 정면으로 반하는 한낱 이데올로기였던 양 비난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다. 현대 생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막는 해악일 수 있다. 40여 년 전에 이미 이 점을 지적한 대중과학서가 출판된 바 있다. 바로 스티븐 J.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사회평론, 2003. 김동광 역)다.


9. 유전자 결정론자들이나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은 흔히 과학이 사회와 정치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객관적 지식이라는 전통적 권위에 호소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펴왔다.”([[인간에 대한 오해]], p.65) 대표적으로 루이 아가시(1807-1873) 같은 생물학자가 그랬다. 아가시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도 반복해서 언급되지만, 실제로 19세기 후반의 매우 저명한 과학자였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우상이기도 했다. 아가시는 “자신이 흑인을 다른 종으로 구분한 것을 변호하면서 이렇게 썼다. “자연주의자들[당시 과학자들을 이렇게 불렀다]은 인간의 육체에 관한 문제를 순수한 과학의 문제로서 생각하고, 그것을 정치나 종교와 연관짓지 않고 연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p.65-66) 아가시 같은 인종차별주의자요 진화론 반대자가 이렇게 말하다니! 이렇게 분개하며 곧장 속단해서는 진실을 볼 수 없다. 그들은 백인중심주의나 서구중심주의를 옹호하는 데 눈이 멀어 나쁜 과학을 했던 게 아니다. 우생학은 과학이 이데올로기에 물들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다. 만일 진실이 이런 것이었다면 굴드가 영어로도 400쪽이 넘고 한글 번역본으로는 600쪽을 훌쩍 넘는 두꺼운 책까지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굴드는 [[인간에 대한 오해]]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나는 과학 자체가 객관적 활동이고 과학자가 자신의 문화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실재하는 세계를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과학이 올바르게 실행된다는 신화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이다.”(p.66) 사실은 이런 신화 때문에 우생학자들은 광기에 가까운 오류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화를 충분히 세척해내지 못하고 있는 현대 생물학으로 우생학을 비판하니 실망할 수밖에.


10. 나에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우생학을 나쁜 이데올로기에 물든 사이비 과학으로 비난한다고 읽혔다. 내 판단이 맞다면 이것은 비판이라기보다는 비난이다. 그런 비난은 현대의 유전학이, 더 넓게는 현대 생물학이 얼마나 남성적이고 서구중심적이고 제국주의적인지를 은폐한다. 저자는 여기에 여러 가지 근거를 대지만 핵심적인 근거는 캐롤 계숙 윤의 [[자연을 명명하기]]다. 이 책의 저자와 제목은 처음 들었다. [[물고기는...]]에 따르면, 분지학이라는 새로운 분류학에 입각하여 기존 분류학이 얼마나 인간의 직관에 의해 오도되어 왔는지를 비판하는 책인 것 같았다. 20여년전부터였던가, 생물학 관련 책을 통해 ‘분지학(分枝學)’에 관해 크고 작은 소식을 접했다. 충격적인 혁신을 이룩했지만 아직 생물학자들 대부분의 동의까지는 확보하지 못한 정도였는데..... 그랬던 학계 분위기가 이젠 완연히 분지학에 장악되었나 보네. 어떻게 해서 그리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니 실제 룰루 밀러의 소개가 정확히 맞는 얘기인지부터 확인하고 싶어졌다.



11. 분류란 무엇이고 어떻게 혁신되어야 하는지 얘기하고 싶지만 글이 이미 너무 길어졌다. 그냥 책 소개로 대신하고 넘어가자. 분류라는 게 어떻게 하는 거고 학명은 어떻게 짓는지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학교에서 속명+종명을 배우고, 그래서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고... 하는 정도 플러스 알파일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니 이상할 것도 없고 문제라는 것도 아니다. 단, 이 기회에 좀 더 알고 싶다면 [[정보화혁명의 세계사 – 1700∼1850]](너머북스)의 2장 [분류법과 명명법의 발견 - 정보의 조직]를 보시라. 특히, 린네가 어떻게 분류를 해나갔는지가 내겐 재미있었다. 아주 초반에는 학명이 78개의 단어로 이루어지기도 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한 생물종의 특징을 최대한 담다보니 거의 책 한 페이지에 달하는 긴 이름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다윈의 분류학인데, 이쪽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아마도 사람들은 분류를 유사성이나 공통성에 입각한 활동이라고 알고 있을 텐데, 이게 큰 오류라는 말이다. 유사성이나 공통성은 분류의 근거가 아니며, 때로 전혀 닮지 않은 생물들도 같은 종이나 속으로 분류될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 뙇!하고 적어놓았지만, 대부분은 이 책을 읽지 않고 또 읽어도 대부분은 이 점을 읽어내지 못한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분류가 과연 인간의 편의적인 활동 결과인지 아니면 자연의 질서 자체를 반영한 것인지 하는 문제부터 아직 결론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학자들 중에도 많다. [[물고기는 ...]]은 인간의 분류가 자연의 실상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거나 그 실상을 왜곡해서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실상이라는 게 따로 있다고는 생각하는 쪽이다. 다만, 그 실상만으로는 부족하며 우리의 삶에는 인간으로서의 입장이 더 중요하다는 정도로 말하고 있다. 아~ 얘기가 다시 길어져 버렸네. 서두르자. 그래서 두 번째로 언급할 책은 [[종의 기원]]이라 적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아무도 안 읽을 테니 대신 내가 쓴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그린비)을 내민다. 책이 어찌나 두꺼운지, 분류 문제를 다룬 13장 ‘박물학의 끝, 자연학의 탄생’만 해도 160쪽이나 된다. 아무튼 나는 여기다가 내가 생각하는 다윈의 분류 혁명에 대해, [[종의 기원]] 13장을 해설하면서 적어놓았으니 참고하시라. 마지막으로 덧붙일 것은 들뢰즈가 기존 분류학을 비판하면서 강도(강렬도)에 의한 분류를 제안했다는 점이다. 가령 일을 하는 말인 사역마는 경주마보다는 일을 하는 소와 같은 군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글쎄... 흥미롭긴 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하고 또 그게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지까지는 잘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분류라는 것에 대해 유일한 자연 질서를 찾으려고만 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에 비하면 아예 새로운 분류를 창안하려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우리에게는 다윈 혁명(1차 분류 혁명)에 이은 새로운 3차 혁명이 필요하니까. - 다음 달에 계속


박성관(독립연구자, <분해의 철학>2022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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