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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연극<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 최엄윤

얼마 전 공놀이클럽이 제작한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를 봤다. 2024년 종로문화재단과 공동제작 하여 아이들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제61회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받고 2026년 국립극단의 기획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폭넓은 관객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3년째 연극과 더불어 자랐을 어린이 배우들을 보며 내가 처음 연극 무대에 섰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연극은 쓰인 대본을 외워 인물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와는 달랐지만, 그 경험은 내게 평생의 추억이자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우리는 모두 일곱 명의 6학년 어린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까지 국어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희곡을 읽고 연극 할 경험이 없었는데 ‘어린이연극제’를 계기로 대구 어린이회관 꾀꼬리극장이라는 큰 무대에서 공연하는 기회를 얻었다. 꽤 오랜 기간 매일 수업이 끝나면 늦은 시간까지 학교 강당에 모여 연습하던 기억, 무대 뒤에서 친구들의 장면이 끝나고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던 시간, 마침내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 서서 수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았을 때의 뿌듯함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출발했다. 1934년 7월 24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오감도>처럼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띄어쓰기가 표시되지 않아 시인 이상과 이상한 어린이와 어린이 연극과 이상한 어린이 연극, 그리고 시 <오감도>와 오감이라는 감각에 관한 생각까지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이 뻗어 나간다. ‘까마귀가 공중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그림’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상의 시 <오감도>는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길은 막다른 골목으로 1의 아해부터 13의 아해까지 무섭다고 그런다. 무서움, 달리기, 반복 끝에 시인은 1의 아해, 2의 아해 그 누구든 ‘무서운 아해’라도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다고, 길이 뚫린 골목이라도,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고 끝맺는다. 멀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까마귀 시선 속 13명의 무서운, 무서워하는 아해들을 공놀이클럽의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에서는 무대 위, 가까이에서 오감으로 만나게 하려 한 듯하다. 어느 어린이 관객은 “저는 진짜 오감 연극인 줄 알았어요. 시각, 촉각, 미각, 후각 이런 감각들이 막 나오는 연극인 줄 알았어요. 근데 실제로 그런 감각들이 다 나오긴 해요.”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얼이 맺히고 응집되어 신이 난 어린아이와 같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어린이 청소년 아홉 명과, 어른 다섯 명의 출연자가 13가지 무서움을 이야기한다. 말하고, 뛰고, 뒹굴고, 객석과 공을 주고받기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공연 중 구석에서 토론하고, 실시간 방송을 하고, 원작자인 이상이 살던 시대의 모던 걸과 모던 보이로 분해 연기를 펼쳐 보이기도 하는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자유로운 모습은 어린이들이 창작의 주체임을 드러낸다. 공놀이클럽은 “‘디즈니’ 같은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에 반대하고 우리와 완벽히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시민”인 어린이와 ‘무서운 것’과 ‘이상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리서치 워크숍을 하며 “학예회처럼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즐기는 연극”을 만들었다.

     

“이상하고 무모한 여정(강훈구 연출)”이 “어린이 연극의 관습들로부터 완전히 비켜선 공연”(제61회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 심사평 중)이 되기까지 연극에 대한,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붙들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관객 앞에서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상징과 규칙의 세계에 동참하는 것이고 어린이들과 연극을 만드는 것은 함께 놀고 발산하는 과정이다. 상징과 규칙의 세계에서도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표현하고 관객들에게도 그 에너지가 예술적으로 감각되는 경험은 드물고 귀하다.

     

한편, 2019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한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 국제심포지엄 II에서 진행을 맡은 김종길(당시 경기도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은 “어린이는 얼이 어리고 있는 존재(아이)이고, 어릴 때는 늘 얼이 어리고 있어서 신이 난 존재로 산다며, 얼을 들깨워 다시 몸의 신명, 마음의 신명을 틔워야 한다.”(출처: 아르떼365)라고 설명했다. 훈민정음에서 ‘어린’은 ‘어리석은’이라는 뜻이지만 김종길 큐레이터가 말한 ‘어리고 있는’은 ‘맺히다. 응집해 있다’로 해석된다. 즉 얼이 맺히고 응집되어 신이 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몸과 마음의 신명을 틔우는 것이 중요한데, 연극은 신명을 찾고 발산하는 예술의 한 형식이다. 그래서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의 어른 배우들은 어린이들과 어울려 ‘얼’을 꺼내어 ‘신명 나게’ 풀어내는 것에 동참한 동료들이자 현재 자신들의 무서움을 솔직하게 꺼내 놓는 여전히 ‘이상한어린이’와 같았다.

     

세상 모든 사람이 연극을 하면 좋겠다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에서 ‘어린’ 사람들이 마주한 무서움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인생 그 자체”, “경쟁”, “전쟁”, “배제당하는 것”,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나이 드는 것” 등, 무서움의 실체는 어른인 나의 고백과 닮아있다. 배우 한 사람씩 꿈을 이야기하고, 다음 장면에서 나이가 들어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거나, 누군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삶을 장밋빛 환상으로 그리지 않아 좋으면서도 슬프기도 했다. 막다른 길을 달리든 뚫린 길을 달리든, 달리든 달리지 않든 결국 좋다고 말한 이상의 시 <오감도>를 오롯이 이해할 순 없어도, 어렸을 때 꿈을 이야기하고 커서 그 꿈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했더라도, 무서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더라도, 달려도 달리지 않아도 모두 괜찮다는 말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미숙하고 두려움 많은 나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하고,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 내면서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그런 식의 성장은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된다. 그러니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해 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 주는 것이 아닐까.”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사계절, p.53)

     

내가 앉은 객석 앞자리에 앉아 두 손을 꼭 쥐고 연신 눈물을 닦고 있는 관객을 보았다. 아마도 어린이 배우의 어머니인 듯했다. 무대 위의 아이가 잘해 낼 수 있길 기원하는 마음, 단단하고 자유롭게 선 아이의 모습을 보는 뭉클함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 어린이 배우들이 등장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기원하고 있었고 그 부분은 사실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개인적인 에피소드 하나를 덧붙이자면 어린이들과 1년 정도 매주 연극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강의실을 벗어나 종종 동네 뒷산에 올라 수업했는데 어느 날 술래잡기를 하다 계속 술래가 된 아이가 토라져서 혼자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후 친구들이 슬며시 예쁜 돌을 가져다 아이에게 건넸고 아이는 화가 금세 풀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스스로 갈등을 풀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초등학교 6학년, 첫 연극 경험 이후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연극을 하면 좋겠다고 늘 말하고 다녔다. 비록 반공을 이야기하는 어른들을 흉내 낸 공연이었지만 강당에서의 연습 시간이 내내 그리웠었다. 이후 연극을 공부하며 만난 은사님이 ‘나에게 있어 연극의 의미’를 알려 주신 적이 있다. 나는 그저 무대에 서는 것이 좋고 연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연극은 내게 사춘기 시절의 도피처였고, 그 도피처는 사람 속에 있는 것이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을 때 내 안의 오랜 질문에 정답을 찾은 것처럼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도피처는 세상으로부터 숨는 곳이 아니라, 무대와 객석이 서로의 존재를 기원하며 연결되는 곳, 아이들이 예쁜 돌 하나로 다시 친구의 손을 잡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무대와 배우, 관객이 함께 완성하는 공동체의 예술, 연극과 어린이가 만날수록 세계는 더 신명 나고 더 넓어질 것을 나는 여전히 믿는다.


최엄윤, 사무엘 베케트의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언젠가 결국은 창작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omyunchoi@hanmail.net
최엄윤, 사무엘 베케트의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는 말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언젠가 결국은 창작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omyu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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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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