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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과 반상-‘나’와 ‘우리’가 따로 또 같이 / 노경희

Updated: Feb 1

K-컬쳐는 ‘비빔’이다?

     

한국문화의 속성을 ‘비빔밥’에 비유하는 이야기는 이제 고전이 된 담론이다. 일찍이 이어령은 디지털 시대야말로 아날로그가 더 필요하다면서 ‘디지로그’ 곧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함께 존재함을 아는 것, 이것이 문명을 읽는 지혜라고 하였다.(『디지로그-선언편』, 생각의나무, 2006) 그러면서 문화의 ‘통섭’을 강조하며 “여러 종류의 음식물을 함께 어울리게 하는 ‘비빔밥 문화’, 모든 걸 버무려 한입에 넣는 ‘보쌈 문화’, 이렇게 섞고 버무리는 게 ‘통섭’ 곧 ‘원만하게 포용하고(圓) 버무리고(融) 만나고(會) 소통하는(通) 원융회통’의 정신”이라고 말했다.(「파워인터뷰-이어령」 ‘산업화·민주화 영웅들 짐 내려놓고 떠나라’, 「문화일보」, 2011년 9월 10일)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또한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Electronics, Arts and Bibimbap)」(『신동아』, 1967)이라는 에세이를 기고한 바 있다. 그는 생전에 “비빔밥 정신이 바로 멀티미디어다. 한국인은 복잡한 상황을 적당히 말아서 잘 지탱하는 법을 안다. 그 복잡한 상황이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참여예술이다. 다른 요리와 다르게 손수 섞어 먹는 것이 특색이다”라며 비빔밥 정신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백남준에게 비디오 아트는 음악ㆍ철학ㆍ테크놀로지ㆍTV 퍼포먼스ㆍ조각ㆍ한국문화와 서양문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한데 섞은 혼합 예술이다.

이렇게 한국문화의 고유한 속성이 무엇인지 논하기 위해 비빔밥은 대표적인 상징물로 여러 차례 소환되었다. 최근 들어와서는 한국문화가 한 지역의 특수문화에 머물지 않고 ‘K-Culture’라는 이름의 지구촌 보편문화로 자리하는 상황을 맞이하여, 그러한 위상을 갖게 된 ‘요인’으로서 다시금 언급되고 있다.

     

전주 비빔밥
전주 비빔밥

     

일전에 경주에서 열린 APEC 2025 KOREA(2025.10.3.~11.1.) CEO 서밋의 기조연설에서 세계적 보이그룹 BTS(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K-컬처에 대해 “서로 다른 재료들이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유지한 채 한 그릇 안에서 섞여 완전히 새롭고 신선하며 즐거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라고 하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문화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비빔밥 비유로 드러냈다.

이렇게 우리문화의 기본 속성으로 ‘비빔’ 즉 서로 다른 것들이 ‘섞이는’ 점이 주목되어 왔다. ‘문화’는 본래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함께 섞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그러나 세계적 보편문화로 K-컬처가 거듭나고 있는 지금 시점에 우리 문화의 근간이 과연 ‘비빔’에만 있는지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전통 음식 문화에 있어 비빔밥이 과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인지를 살펴보자. 비빔밥이 한국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하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전통시대 우리 음식문화에서 비빔밥이 지니는 의미나 위상은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할 때 전혀 다르다. 오히려 모든 음식을 한데 섞어 비벼 먹는 것은 상것들이나 하는 짓으로 양반가의 예법이 아니라며 꺼리는 이들도 많았다. 대구의 대표 음식의 하나인 ‘따로국밥’은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 사람들이 밥과 국을 따로 담아 달라고 한 요청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을 만큼, 우리나라 반가의 음식 문화는 따로 먹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 왔다.

     


밥과 반찬이 스스로 존재하는 반상

     

오랜 기간 우리 밥상의 대표적인 차림은 밥과 반찬을 한 상에 하나씩 놓고 먹는 ‘반상’이었다. 흔히 3첩ㆍ5첩ㆍ7첩 반상이라 부르는 상차림이다. 주식인 밥과 부식인 반찬을 분리해 먹는 반상은 삼국시대부터 형성된 우리만의 고유한 밥상이다. 모든 음식을 한 상에 담아 한꺼번에 내놓는 방식으로, 시간 차를 두고 하나씩 차례로 나오는 서양의 코스 요리와 다르다.

     

20세기초 프랑스 드망즈 주교의 사진 「한국 밥상(Coree Bon Appetit!)」
20세기초 프랑스 드망즈 주교의 사진 「한국 밥상(Coree Bon Appetit!)」

     

‘첩’은 원래 뚜껑이 있는 반찬 그릇 곧 ‘쟁첩’을 뜻하는 말이다. 밥상 위 쟁첩의 수에 따라 3첩ㆍ5첩ㆍ7첩이 결정된다. 이때 기본 음식인 밥ㆍ국ㆍ김치ㆍ장ㆍ찌개(조치)ㆍ찜(선)ㆍ전골은 그 첩수에 들어가지 않고, 숙채(나물)ㆍ생채, 구이, 조림, 전, 마른반찬과 젓갈, 회 등이 반찬에 속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는 만큼, 반찬에 들어가지도 않는 음식인 밥ㆍ국ㆍ김치, 이 세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한 끼의 식사가 될 수 있다.

가장 기본인 ‘3첩반상’은 숙채ㆍ생채ㆍ구이(또는 조림)가 들어가는 것으로 ‘3첩’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밥상 차림이다. 여기에 전, 마른반찬ㆍ젓갈ㆍ장아찌 종류가 추가되면 5첩반상이 되는데, 전이 추가된 만큼 장류 또한 3첩반상의 간장만이 아닌 ‘초장’이 하나 더 추가되며, 기본 음식에도 국에 더해 ‘찌개’가 들어간다.

그러니까 5첩반상이면 이미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밥상이 차려진다. 여기서 두 가지 반찬이 더 추가되는 7첩에 이르러선 한 상에 다 차릴 수 없어 ‘곁상’을 따로 들인다. 대갓집에선 9첩반상까지 나오고 임금님 수라상은 12첩반상을 차린다고 하는데, 그 추가되는 반찬 숫자만으로도 이미 넘치게 많은 데다, 반찬수가 늘어나면서 곁들이는 장류 또한 간장ㆍ초장ㆍ초고추장으로 늘어나고, 7첩 이상에는 기본 음식으로 찜(또는 전골)이 더해진다. 첩수가 올라갈수록 단순히 반찬 개수만 두 가지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반찬에 딸리는 음식들까지 함께 늘어나는 것이다.

밥상 위에 올라가는 음식은 무작정 아무것이나 올리지 않는다. 밥상 안에 존재하는 음식들은 그 필요에 따라 합당하게 생겨난 것으로, 각각의 역할을 지녔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만 보더라도 간장과 초장, 초고추장에 어울리는 음식이 따로 있으니, 간단한 3첩반상은 국과 반찬의 간을 맞추는 데 필요하기에 ‘간장’만 올라가고, 5첩에는 새로 추가된 반찬인 전을 찍어 먹을 수 있는 ‘초장’이 더해진다. 7첩 이상에서는 ‘회’가 더 올라가므로 이를 찍어 먹는 ‘초고추장’이 필요해 세 종류의 장이 모두 올라갔다.

밥상 위의 반찬들은 아무리 3첩이라 해도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조리법 또한 다르게 하여 음식이 겹치지 않도록 했다. 여러 가지 맛의 조화를 한 상의 밥상에서 얻을 수 있었다. 5첩부터는 신선한 제철 채소로 만든 생채와 나물(숙채), 고기와 마른반찬 등 다섯 가지 맛을 한 번에 즐길 수 있게 밥상을 차렸다. 그 이상의 첩수들은 다섯 가지 맛을 갖추는 것은 5첩반상과 같으나, 그 재료와 조리 방식을 더욱 호사스럽고 다양하게 하였다.

또한 조미료와 향신료를 다양하게 사용하여 음식의 조화된 맛을 강조하였다. 단, 이때에도 재료가 지닌 기본적인 맛을 가리지 않으면서 감칠맛이 날 수 있을 정도의 양념으로만 사용하였다. 우리 음식은 반찬을 미리 조미한 상태에서 가열하므로 같은 재료라도 가열시간이나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맛을 냈다. 국, 찌개, 조림 등은 같은 양념을 사용했어도 가열 방법에 따라 맛이 다르고, 구이는 양념의 침투 시간에 따라 맛이 다르며, 나물은 양념의 분량은 물론 무칠 때 손놀림의 강약 조절에 따라서 싱싱한 맛과 감칠맛이 나는 정도가 전혀 달랐다.

이러한 반찬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년내내 부지런히 준비해야 했으니, 봄에는 각종 음식을 조리하는데 필요한 장을 담갔고, 밑반찬이 되는 젓갈과 장아찌를 마련했으며, 나물이 없는 계절에 대비하여 미리 나물을 뜯어서 말렸다. 가을에는 겨울을 대비하여 김장을 담갔고, 봄철에 담글 장을 위해 메주를 쑤어 띄웠다.

     


밥상 위의 작은 우주

     

그저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에 각각의 계절과 역할,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이 다양한 음식을 담는 그릇과 상차림 방식 또한 딱 맞는 형태와 재료, 격식을 지녔다.

    

반상기 전체.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상설전시실) 이대재 할머니 반상기

(손녀 대전대 역사문화학 교수 장지연 제공)


쟁첩과 종지
쟁첩과 종지

반상을 차리기 위한 한 벌의 그릇을 반상기라고 한다. 밥그릇ㆍ국그릇ㆍ조치기ㆍ보시기ㆍ쟁첩ㆍ종지ㆍ대접ㆍ쟁반을 기본 구성으로 하여 쟁첩의 수에 따라 구분한다. 모든 그릇은 담기는 음식에 딱 맞는 크기와 모양을 갖고 있다.

또한 한 상에 올리는 그릇은 같은 재질로 통일했다. 여름에는 주로 흙으로 빚은 백자나 청자를 썼고, 겨울에는 금속 재질의 유기(놋그릇)나 은기를 사용하였다. 『임원경제지』에서는 “여름에 자기를 쓰고 겨울에 유기를 썼는데, 유기를 쓴 이유는 담은 음식이 쉽게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음식에 따라 그릇만 달리한 것이 아니다. 그릇을 상 위에 놓는 자리 또한 질서와 격식이 있다. 우리의 밥상은 ‘외상차림’이 기본이다. 수저는 오른쪽의 구석 아래에서 1/3되는 지점에 숟가락을 앞쪽으로, 젓가락은 뒤쪽으로 놓고 끝이 상 밖으로 살짝 나가게 한다. 밥은 상의 제일 앞 왼쪽, 국은 오른쪽에 놓고, 찌개는 국의 뒤에 놓고, 찜은 찌개 뒤쪽인 상의 오른쪽 중간에 놓는다. 반찬 그릇인 쟁첩들은 짭짤한 찬이나 손이 덜 가는 음식, 즉 장아찌나 젓갈류는 왼쪽에 두고, 중간에는 나물과 생채 같은 일상적인 찬을 놓으며, 오른쪽에는 국이나 찌개, 전이나 더운 구이, 고기 종류 음식을 놓았다. 제일 뒷줄에는 김치를 놓았는데 김치 중에서도 국물김치는 오른쪽에 놓았다.

     

『시의전서(是議全書, 1800년대 말)』 「반상식도-구쳡반상/칠쳡반상」
『시의전서(是議全書, 1800년대 말)』 「반상식도-구쳡반상/칠쳡반상」

     

7첩반상 이상은 한 상에 모든 음식을 놓을 수 없어 ‘곁상’을 마련했고, 거기에 주로 찜이나 과일, 반주 등을 올렸다.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상인 ‘겸상’은 접대하는 의미로 어른이나 손님을 중심에 두고 반찬을 놓았다. 한 벌의 수저와 밥, 국을 따로 준비하여 정반대의 위치에 놓았다. 특히 따뜻한 찌개와 찜, 고기로 만든 반찬은 어른이나 손님 가까이에 놓아 예를 갖추었다.

     


‘나’와 ‘우리’가 함께하는 맛

     

이렇게 우리의 전통 밥상은 그저 모든 음식을 한데 섞어 비비는 것에만 있지 않다. ‘비빔’이 진정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비빌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밥상에서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그와 가장 어울리는 그릇에 담겨, 적확한 격식과 순서에 맞게, 자기 자리에 놓였다. 각각 정성껏 마련된 음식을 고유한 맛들이 가장 조화로운 방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한, 그야말로 밥상 위의 작은 우주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충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음식들이 존재할 때만이, 그 모든 것이 입안에서 섞이어 조화롭고 온전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우리 문화를 ‘비빔밥’에 견주어 보자. 이때의 비빔은 아무것이나 막 비비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서 나온 식재료와 이를 다루는 사람의 솜씨, 그것을 아름답게 담은 그릇과 격식에 맞는 상차림, 이 소우주를 하나의 그릇 안에 담아 따로 또 함께 어울리도록 섞는 것, 그것이 이제까지 우리가 ‘비빔밥’에 비유한 우리 문화의 존재 양태였다.

그 밥상 위의 음식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가. K-컬쳐가 세계와 함께 나아가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 고유의 맛을 찾아내어 그것이 가장 어울리는 형태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도록 하는 것, 우리 문화의 밥상 요소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밥상문화에서도 찾을 수 있는 원칙이다.

     


참고문헌

강인희, 『한국식생활사』, 삼영사, 1978.

윤서석, 『한국음식-역사와 조리』, 수학사, 1987.

이효지, 『한국의 음식문화』, 신광출판사, 1998.

정희정 집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반상기」 항목.

     

※ 이 글을 준비하는데 『규합총서』 강독 모임인 <조선의 옛조리서 함께 읽기> 강독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모임은 또한 한국연구원의 독회지원사업의 지원을 통해 꾸준한 공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도움들 하나하나가 함께 어울려 완성되었음을 밝혀 둔다.



노경희(울산대 글로벌인문학부 국문학전공 교수)
노경희(울산대 글로벌인문학부 국문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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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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