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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문화론으로 본 웹툰의 장르 / 박세현

대중문화의 소재적 ‧ 장르적 비빔밥 문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자신의 예술세계가 ‘한국의 비빔밥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에서 착안된 ‘비빔밥 문화론’은, ‘우연의 창조적 활동’에서 ‘필연의 창조적 의미’를 도출해내고자 하는 창작자적 본능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작 나는 억지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러 아이디어를 섞어서 실행을 옮겼더니, 아니 그 결과물이 어느 새 서로 다른 것들의 융합을 통해서 알 수 없는(혹은 생뚱맞게도) 조화를 보인다는 것이다.

한때 미디어 학자 헨리 젠킨스가 미디어 콘텐츠가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들면서 융합하여 새로운 형태와 문화현상을 만드는 것을 컨버전스(convergence)라고 칭하면서, ‘융합’이라는 용어보다 ‘컨버전스‘가 더 익숙한 말이 되기도 했다. 물론, 백남준의 비빔밥 문화와 헨리 젠킨스의 컨버전스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겠지만,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기술적‧문화적 융합을 의미를 설명고자 한 두 사람의 의도는 유사해 보인다.

한편 융합, 조화, 혼종, 퓨전, 화합 등 키워드로 풀이되는 ‘비빔밥 문화’의 특성은 대중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실 대중문화산업에서 어떤 작품이 뜻하지 않게 시쳇말로 대박을 치면서, 융합과 혼종의 공식이 결과론적으로 성공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인 마냥 분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작년과 올해 세계적 핫 이슈가 된 애니메이션 <케이 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비빔밥 문화’에 적절하게 부합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케데헌>에는 K-팝, K-퓨드, K-전통, K-애니 등 대중문화의 소재적 융합도 있지만, 액션, 스릴러, 개그, 로맨스, 판타지 등 대중문화의 장르적 혼종도 존재한다.

     


웹툰만의 장르적 특징

  

그렇다면, 트랜스 미디어 시대에서 OTT의 원천 스토리 IP로 인정받고 있는 웹툰에서 비빔밥 문화론은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논의하기 전에 우리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사실 이야기를 구조로 가지고 있는 영화, 드라마, 문학 등 다른 대중문화도 그렇겠지만, 특히 웹툰에서 작품의 성향을 결정하는 요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장르’다.

장르(Genre)는 종류, 유형, 양식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문학, 미술, 예술 분야에서 공통된 특징과 패턴, 스타일, 더 나아가 작품의 정형화를 이루는 형태와 범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장르는 예술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양식과 패턴을 정형화된 형태(format)다. 현대 대중예술에서 장르는 수용자나 관객들이 작품에 대한 이해와 서사구조에 대한 재미, 작품의 표현양식에 대한 흥미를 확인하는 데 활용된다. 결국 형식적 혹은 내용적 관점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의 공통된 특징을 찾아서 카테고리화한 것이 장르인 셈이다.

문학과 영화에서도 장르는 이야기의 구조와 내용에 따라, 추리/미스터리/스릴러, 공포/호러, 역사, 멜로, 액션, SF, 영웅, 판타지, 코미디, 퀴어, 스포츠 등 다양하게 구분되고 있다. 반면 웹툰에서 장르는 세 가지의 기준에 따라 구분되고 정리된다. 하나는 성별, 둘째는 연령이며, 마지막 하나가 이야기다. 물론 영화, 드라마, 소설 등도 이야기나 표현의 수위에 따라 소비 대상을 어린이층, 청소년층, 성인층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대중예술의 장르 구분 기준은 창작자나 소비자의 창작/향유 구조적 관점에서 만화웹툰처럼 세부적이거나 다층적이지 않다.

특히 웹툰시대에 장르의 이름이나 구분 기준이 많이 변했고 다양해졌다. 여기에 ‘~물’이라는 용어가 각 장르의 특징과 설정을 더욱 세분화하고 구체화하는 역할을 한다. ‘육아물’ ‘호러물’ ‘빙의물’ ‘환상물’ ‘요괴물’ ‘에로물’ ‘이세계물’ ‘미션물’ ‘헌터물’ ‘기업물’ ‘직업물’ ‘악녀물’ ‘정치물’ ‘캐빨물’ ‘천재물’ ‘피폐물’ ‘계약물’ ‘이혼물’ ‘일상물’ ‘오컬트물’ ‘팬픽물’ ‘히어로물’ ‘남녀역전물’ ‘순애물’ ‘차원이동물’ ‘기갑물’ ‘영지물’ 등…. ‘~물’은 그 끝이 없다.

이들 단어는 마치 ‘해시태그’나 ‘키워드’처럼 보이지만, 웹툰의 장르를 결정하는 세부적 설정과 기준, 더 나아가 세계관을 구축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의 출판만화와 달리,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탄생한 웹툰의 장르가 매우 복잡다단했고 디테일해졌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런 점에서 웹툰의 장르는 그림의 표현기법과 이야기의 내용, 영화나 회화적 연출, 웹소설의 ‘~물’ 설정 등이 복합적으로 합쳐지면서, 장르적 다층성과 혼종성을 보이고 있다.

     


재료만큼이나 양념이 중요한 웹툰의 퓨전 장르

     

일반적으로 여러 장르를 섞는 것을 크로스오버, 하이브리드, 복합, 퓨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웹툰의 장르적 혼종성을 단순히 서로 다른 장르가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고만 설명하기에는, 웹툰의 장르적 다층성과 세분화의 역학관계가 여타 대중문화보다 훨씬 복잡다단하다. 그래서 웹툰산업에서는 - 물론 여기에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음에도 - 크로스오버, 하이브리드, 복합 장르를 아울러서 퓨전 장르로 통칭하기도 한다.

네이버 웹툰 페이지 화면
네이버 웹툰 페이지 화면

로맨스 판타지에는 로맨스, 멜로, 개그, 액션, 판타지 등, BL에도 추리/스릴러/미스터리, 개그/코미디, 액션 등 이질적인 장르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결국 메인 장르 내에 다양한 서브 장르적 설정이 다층화되어 있다. 그래서 웹툰에서 이런 퓨전 장르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설정과 성질을 –다시 말하지만- ‘세계관’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함정이 있다. 그 첫 번째 함정이 바로 성별과 나이다. 같은 성별이라도 비슷한 나잇대라고 하더라도 선호 장르의 설정과 성질이 다층적이며 세부적이다. 이런 현상은 유독 웹툰에 강하다. 두 번째 함정은 무작정 장르의 크로버스오버나 세계관의 융복합이 필수불가결적으로 성공하는 퓨전 장르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단지 장르 간의 혼합이 웹툰의 성패와 재미를 만드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잘 만들어진 웹툰은 세계관과 함께, 스토리의 구조, 캐릭터의 매력, 사건의 생동감 등을 적절하게 배합해야 한다. 비빔밥에 어떤 재료를 넣든 그 맛의 묘미를 결정하는 것은 참기름과 고추장이듯 말이다. 웹툰도 마찬가지다. 결국 웹툰의 성공과 재미는 작품이라는 그릇 안에 다양한 장르라는 재료를, 작가의 기발하고 천부적인 창의력이라는 양념으로 얼마나 제대로 버무려지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웹툰 작가 세계에도 절대미각의 셰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박세현(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장)
박세현(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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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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