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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도 비벼질 수 있을까? / 전은기

기술에서 K를 다시 생각하다

     

팝, 드라마, 웹툰, 영화 등 많은 대중문화에 K를 붙여가며 각 콘텐츠들이 한국적이다란 점을 강조하는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관광(K-트래블)이니, 교육(K-무크)이니 다양한 산업분야에도 K를 붙이기 시작하더니 이제 기어이 기술에도 K가 붙기 시작했다. 기술에도 국적이 있는 것일까? 기술에 있어서 K로 대표되는 한국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기술 분야에 있어서 K라는 개념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사용되는 듯하다.     

첫 번째 관점은 과거의 (과학)기술입국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담지한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데, 이 관점에서는 아직은 선진국에 도달하지 못한 한국이 독자적으로 기술을 발전시켜 국가적 역량을 키워야 선진국에 도달해야한다고 주장할 때 사용된다. 이때 K는 집중적으로 육성되고 발전되어 선진국의 기술들과 싸우게 되는 한국을 대표한다. 두 번째 관점은 첫 번째 관점의 거울상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적 역량은 아직 모자라니 핵심적 기술은 선진국에 기대지만 그 활용 기술에 있어서는 최고가 되자는 개발도상국가적 관점이다. 선진국이 가진 본질적 기술을 잘 활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한국이 K가 된다. 두 관점 모두 한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차이점은 다음에 지나지 않는다. 첫 번째 관점은 미래에는 개발도상국을 벗어나보자는 것이고, 두 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취하자는 것이다.     

이제 이런 낡은 발전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K를 다시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게임의 예를 들어보면, 과거 전적으로 해외의 기술을 수입하여 게임을 즐기던 한국은 해외의 기술을 잘 활용하면서 역량을 키우고, 국가적으로 육성되기도 하면서 기술력을 발전시켰다. 이에 오늘날 한국은 게임 산업의 자장 안에서 최고 수준의 게임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역량을 갖춘 국가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 산업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 그런데 게임 그자체가 K콘텐츠의 하나이거나 한류의 대표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제 조금씩 관점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기술력을 갖추거나 산업적 차원에서 대단히 큰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한국을 대표한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게임은 매출과 같은 산업의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한류라는 흐름을 주도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게임을 즐기는 문화형식들, 예를 들어 e-스포츠나 게임스트리밍 등의 새로운 문화향유방식을 창조해내면서 전 세계적으로 게임 강국의 이미지를 생성해냈고, 한국은 세계 게임문화 형성의 중심에 위치한다. 이때의 한국은 최첨단 기술의 총체로서의 게임을 직접 생산하는 국가라기보다는, 한국적이란 관념에 매몰되지 않은, 즉 다양한 게임 콘텐츠들을 향유해 온 이용자 문화에서부터 형성된 문화와 추후에 더해진 국가적 역량이 뒤섞인 총체다. 이는 충돌과 융합을 강조해온 백남준의 비빔밥론과 유사한 기술실천에 힘입은 결과로 생성된 결과다.     

1967년 <신동아> 12월호.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
1967년 <신동아> 12월호.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

백남준은 실제로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것들을 버무려 새로운 것을 만드는 행위를 비빔밥에 빗대어 한국적인 정신이라 설명하고, 자신의 멀티미디어 예술실천의 원천이라 말해왔다. 이때 섞는다는 것, 그 자체가 한국적인 것이라거나 예술적인 실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섞은 것을 자신의 역량으로 재해석하면서 문화적으로 생산한 새로운 것이다. 그의 말마따라 K라는 것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어 선진국에 도달했다는 의미나 남의 기술을 활용해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올 활용기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한국적인 정신이라 칭하는 비빔밥처럼 여러 가지를 잘 섞고 비벼서 새롭게 의미화된 것들에 붙이는 대명사가 되어야 한다.


     

비빌 때는 재료도 중요하지만 그릇과 도구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무조건적으로 섞는다고 섞이는 것은 아니다. 백남준의 아이디어는 이제는 많이 알려진 기술장인 이정성과 같은 기술자들을 통해 실체화되었다. 이질적인 것들을 섞어내려던 그의 예술적 실천은 기술자와의 협업을 통해 수정되고 변형되고 구체화되면서 구현된다. 이처럼 비빔밥도 비비기 위해서는 숟가락이나 젓가락과 같은 도구와 각종 재료들이 비벼질 그릇도 필요한 법이다. 다시 말해 토대가 있어야만 융합을 해낼 수 있다.     

각종 기술을 잘 비벼내 ‘한국적 문화’로 지금까지 향유되는 문화가 있다. 단적인 예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노래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의 가라오케 문화와의 연관 지어 한국에 수입된 일본 기술을 개량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많은 연구들에서 언급하듯 노래방이란 기계장치는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컴퓨터식 노래반주기”1)다. 이 기계가 만들어진 토대는 청계천 일대의 전자상가라는 그릇과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며 기술적 실천을 일상적으로 해온 기술상인, 기술장인들이라는 도구들이다.2)     

청계천 일대는 일제시기부터 각종 중고 부품과 밀수품들이 모여드는 일종의 ‘기술시장’으로 형성된 곳이다. 미군 공습에 대비해 공터로 남겨둔 청계천 인근에 폐품, 장물, 중고 물품 등이 거래되었으며, 미군 매점에서 흘러나온 각종 전자제품들과 일본에서 밀수입한 물품들이 유입되면서 각종 전자제품들이 도입되고 유통되는 물리적 장소가 된 것이다. 이곳에서 유통되는 물품들은 장물인 경우도 많았기에 추적을 방지하기 위해 파괴하고 분해해서 부품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 부품들을 활용하여 수리, 복제, 재조립, 개조를 하는 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기술 시장’으로서의 청계천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상인들, 기술자들은 자연스럽게 임시변통의 제작을 체화한다. 초기 노래방기계는 작은 용량의 저장장치를 극복하기 위해 노래반주기기에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결합한 새로운 기계로써의 노래반주기로 기획된다. 부품을 재조립, 개조하며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기술실천의 산물로 그 초기적 형태가 구체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 초기적 형태는 상품성을 가지기 어려웠는데 초기적 형태의 노래방이 나타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는 유흥업소 단속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1992.04.15
동아일보. 1992.04.15

따라서 노래반주기에 상품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노래반주기가 아닌 다른 것이 되어야만 했다. 당시 청계천 일대의 가장 전도유망한 산업이었던 아케이드 게임기의 형식이 노래반주기에 접목되었다. 동전을 넣으면 노래가 나오는 노래자판기로 기술적 성격이 재조정 되었던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유흥업소용 기계장치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시키기 어려웠기에 캐비닛을 씌워 1인만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제작되었다. 기계를 사용하는 동안 접객원이 동석할 수 없음을 물리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술적 방향성이 재조정되면서 전자오락기계로서의 성격이 계속해서 덧붙여진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제공되는 가사와 음향기계에서 제공되는 음향에 맞추어 음을 입력하여 점수를 매기는 일종의 비디오 게임의 속성을 계속해서 더해간 것이다.     

이처럼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그곳에서 활동하는 기술상인들에 의해 이질적인 기술들이 비벼지며 구체화되고 실체화되어 나타난 것이 노래방이란 기계다. 노래방은 모두가 체험적으로 아는 것처럼 한국적 디지털기술놀이문화로 자리 잡았고 이제는 한국을 뛰어넘어 국제적인 디지털기술놀이문화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당시에 존재하던 다양한 기술이 섞였기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섞는 그릇으로서 청계천 전자상가의 구조적, 역사적인 형태 그리고 섞는 도구로서의 청계천 일대의 기술자들이라는 도구들의 기술실천에 의해서 재구성되었기에 나타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세운상가 인근의 낙원상가 음악가들의 음악실천, 예를 들어 각종 음원을 듣고 그 음원을 악보를 변환시키고 그 악보를 토대로 전자음으로 기록해주는 행위들도 이질적인 재료로 더해지며 노래방에 토착적 성격을 더했다. 이렇게 이질적인 다양한 재료들이 섞여서 토착적으로 비벼진 기술들이야말로 K기술이라고 불려야 하지 않을까?



1) 송도영. (2000). 문화산업의 속도성과 도시적 일상문화 성격의 형성: ‘방 문화’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인류학, 33(2)호, 49-78쪽.

2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1980년대 말에 다양한 곳에서 오늘날 노래방기계와 비슷한 것을 기획하고 있었다. 본 글에서는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개발된 초창기 노래방기계를 사례로 다룬다. 이것이 최초의 노래방이라거나, 모든 노래방 기계가 여기서 출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은기 (기술문화 연구자)
전은기 (기술문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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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한국연구> 편집위원

이영준 (한국연구원 원장)

김동규 (울산대 철학상담학과 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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