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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간이여 / 나희덕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한 달 남짓 지났다. ‘어, 어’하는 사이 금세 여기까지 떠밀려 온 셈이다. 이렇듯 회고를 통해 감각되는 시간의 속도는 유난히 빠르다. 아니, 순식간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는 반성 과정 자체가 찰나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죽기 직전, 의식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면 일생의 파노라마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것이다. 마지막이 예정된 유한한 시간은 단숨에 주파될 수밖에 없는 ‘순식간’의 운명을 부여받았다. 새해 벽두에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마음의 장소』가 출간되었다. 국내외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시인의 마음이 머물렀던 자리를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 글이다. 책을 읽다가 내 눈길이 멈춘 곳은 시계가 등장하는 두 꼭지였다. 하나는 런던 근교 옥션에서 구입한 백 년 넘은 괘종시계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셰익스피어 초상과 그의 작품 『십이야』의 몇 구절이 새겨진 손목시계 이야기다. 두 이야기 모두 시계와 시간을 말하고 있다. 그

한국연구원
21시간 전4분 분량


20대의 피부, 40대의 눈빛 - 하이패션이 요구하는 얼굴에 대하여 / 김보슬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됐다. 공식 행사에 참석한 벨라 하디드(Bella Hadid)가 기자들 앞에 서 있는 장면이었다.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포즈를 취하는 그의 얼굴은 분명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슈퍼모델의 것이었다. 1996년생, 아직 20대 후반. 신체 조건이나 피부 상태만 놓고 보면 젊음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눈빛과 입매가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마치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뒤 중장년에 접어든 이처럼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다. Schiaparelli 드레스를 입고 주목 받는 벨라 하디드, 영상 캡처 콜라주, 영상 출처_인스타그램 @burginmag 이 묘한 괴리감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왜 패션 모델들은 하나같이 실제 연령을 뛰어넘는 ‘원숙한 표정’을 연출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을 안고 다른 톱 모델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케이트 모스, 지지 하디드, 아노크 야이, 그리고 최근 부상하는

한국연구원
1월 31일3분 분량


곤충정치는 가능한가? / 오영진
“난 최초의… 곤충 정치인이 되고 싶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1986년 영화 〈플라이〉에서 파리-인간 혼종으로 변해가는 과학자 세스 브런들이 내뱉는 이 대사는 영화 속 광기 어린 농담으로 소비되었다. 괴기한 선언처럼 들렸고 관객은 웃거나 몸서리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 그 틈으로 들어가 보면 '곤충정치'는 단지 SF의 기발한 설정이 아니라 오래된 생태적 지혜와 과학적 통찰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떠오르는 질문처럼 보인다. 인간 정치가 인간이라는 종의 형상을 전제하는 동안 수많은 생명이 그 정치의 바깥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곤충정치'는 인간 중심적 정치 체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의 틈 같은 것이 되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당연히 곤충정치를 상상하는 일이 인간이 곤충을 흉내 내자는 제안은 아니다. 인간이 곤충을 대표해서 말하자는 윤리적 대리 또한 아니다. 인간이 도래하기 훨씬 이전부터 여러 원주민 문화는 곤충과 인간의 공생적 관계를

한국연구원
1월 19일7분 분량


우리 편이라는 착각 – 민주당은 왜? / 강부원
스캔들은 또 다른 스캔들로 덮는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주식 차명거래, 보좌관 갑질, 축의금 강요, 인사청탁, 성추행, 공천비리, 뇌물 등등. 더 나올게 있을까 싶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라는 양비론적 비판에도 따로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무관심을 촉발해, 불법계엄 처벌이나 내란 척결 수행에도 찬물을 끼얹는 처사다. 이재명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8개월 간 민주당 내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나 소동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이는 권력에 취한 정권이 도덕적 긴장을 상실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징후다. 이춘석, 최민희, 문진석, 김남국, 장경태, 김병기, 강선우로 이어지는 일련의 부도덕한 행위와 비윤리적 태도는 민주당 박수현 대변인의 발언에서 보듯 “국민의힘에서나 있을 일”과 유사하다.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할 때 조차

한국연구원
1월 9일3분 분량


윤리적인 악을 위하여 / 마준석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2>는 끝내주는 맷집으로 쿵푸 마스터가 된 ‘포’와 대포의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쿵푸의 명맥을 끊으려는 악당 ‘셴’ 간의 대결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포가 그의 앞길을 막고 대적하자 잔악한 셴은 대포의 모든 포문을 열어 포에게 직사 사격을 가한다. 하지만 이미 쿵푸의 극의인 내면의 평화를 깨달은 포. 포는 푸짐한 뱃살에서 오는 탄성으로 부드럽게 모든 포탄을 도로 셴에게로 돌려보내고 셴의 군대는 궤멸한다. 절망한 채 완전히 넋이 나간 셴. 포가 다가와 마지막 화해의 말을 건넨다.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셴도 다시금 선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팬더 일족과 자신의 부모를 학살한 셴에게도 회개의 손길을 내미는 포를 보고, 셴은 가슴속에 깊이 팬 상처를 끼고돌았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본다. 상처는 결국에 나을지언정, 그럼에도 흉터는 남는다고, 그리하여 오직 더 많은 힘과 권력만이

한국연구원
1월 5일5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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