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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단 앞, 떨어져 나온 마지막 말 / 김보슬
타이포그래피에서 'orphan'이라는 용어가 있다. 줄바꿈을 할 때 마지막 줄에, 또는 새로운 페이지 맨 위에 남겨진, 문단의 마지막 줄을 가리킨다. 이전 문단에 속했지만 페이지 넘김으로 인해 혼자 떨어져 나온 한 줄 ㅡ 비슷한 몇 가지를 고아orphan, 미망인widow, 낙오자runt로 세분하기도 한다. 모두 쓸쓸한 말들이다. 무리에서 이탈한 채 혼자 덩그러니 놓인 그 글자를 보고 있으면, 새삼 고아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형제를 지키는 사람 2주 전 사회적기업 ‘브라더스키퍼’ 창립자 김성민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이 기업은 자립준비청년, 즉 만 18세가 되어 보육원과 위탁가정의 보호가 종료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정서적 자립을 돕는 조직이기도 하다. 회사명은 창세기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아벨의 행방을 묻는 신에게 가인이 반문한다. "내가 내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까?" 김성민이 어릴 때부터 품었던 염원, '형제를 지키는 사람

한국연구원
12월 4일4분 분량


무엇을 건너온 것일까? / 김동규
한강 작가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시인이었다. 지금도 이따금씩 시를 쓴다고 한다. 등단 1년 전인 1992년 연세대 학보사인 연세춘추가 주최하는 연세문화상에서 한강은 ‘윤동주 문학상’을 받았다. 당선작의 제목은 「편지」이다. 심사위원은 정현종, 김사인 시인이었으며, “굿판의 무당의 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열기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라며 심사 소감을 밝혔다. 1) 그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 하나만 꼽는다면, 단연 이 문장이다. “사랑이었을까… 잃을 사랑조차 없었던 날들을 지나 여기까지” 여기에서 먼저 주목할 단어는 ‘사랑’이다. 나는 한강 작품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어가 사랑이라 생각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에는 8세 때 썼다는 글이 이렇게 소개된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한강, 『빛과 실』, 에크리, 2025

한국연구원
12월 2일4분 분량


앨리슨 패리시, 언어의 벡터화 실험의 의의 / 오영진
앨리슨 패리시(Allison Parrish)의 "벡터화된 단어를 활용한 실험적인 창작 글쓰기(Experimental Creative Writing with the Vectorized Word)"는 언어를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닌, 조작 가능한 연속적인 데이터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녀는 시인이자 프로그래머, 게임 디자이너로서 뉴욕대학교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에서 컴퓨터 생성 시를 가르치며, 언어를 벡터로 표현하는 실험을 통해 전자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전통적으로 언어는 글자, 단어, 문장과 같은 불연속적인 단위로 구성된다고 여겨져 왔다. 이는 마치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이나 오디오 파일의 샘플처럼 각각의 독립적인 의미를 지닌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패리시의 접근 방식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그녀는 언어를 벡터 공간 속의 점으로 치환함으로써, 단어들 간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조작할

한국연구원
12월 2일4분 분량


자살공화국의 민낯, 내몰린 삶과 단절된 죽음 / 강부원
최근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이 공동 발표한 ‘2024년 자살률 통계’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자살공화국’이라는 뼈아픈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 총 14,872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40명 이상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셈이며, 이는 OECD 평균(10.8명)의 세 배에 가까운 수치다. 매일 버스 한 대를 가득 채울 만큼 숫자의 생명이 자살을 통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공동체가 마주한 비극적인 현실이다. 출처: 통계청 연령별 통계는 더욱 충격적이다. 30대의 자살률은 전년보다 14.9% 증가했고, 40대는 14.7%, 50대는 12.2% 늘어났다. 30대에서 50대까지는 한 사회를 견인하고 지탱하는 가장 중추적인 세대이다. ‘일해야 할 나이’, ‘가정을 지켜야 할 나이’에 속하는 이들 중 가장 많은 수의 사망자가 자살을 선택해 목숨을 끊는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무언가 고장났다는

한국연구원
11월 16일4분 분량


여분의 무게 / 마준석
출처: AP News 10월 17일 베를린 미테구에 있던 평화의 소녀상이 결국 철거되었다.1) 일본의 체계적이고 집요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5년 동안이나 자리를 지켰으니, 이마저도 독일과 한국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 덕분일 것이다.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 협의회는 소녀상을 새로운 장소로 옮겨 다시 설치할 계획이라 밝혔다. 작년에는 오스트리아 린츠 대성당에 설치된 성모 마리아상이 반달리즘으로 파괴되었다.2) 아기 예수의 탄생을 묘사한 많은 작품들을 다시 떠올려보자. 아기 예수는 푹신한 마구간의 짚더미 위에 순백의 모포로 싸인 채 새근새근 자고 있다. 그 모습을 평화로운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 너무나 사랑스러운 장면이지만, 모든 작품들에서 출산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완벽하게 표백되어 있다는 사실은 다소 기이하지 않은가? 에스터 슈트라우스 작가의 출산하는 성모상은 이러한 지극히 당연한 물음에서 출발했고, 이를 신성모독이라 생각한 반대자들에 의해

한국연구원
11월 12일5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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