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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산업에서 블랙핑크가 중요한 이유 / 차우진

2018년 미니 1집 <SQUARE UP>을 발표하며 데뷔한 블랙핑크는 역대 걸그룹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세계적인 걸그룹이 되었다. 발표하는 앨범과 싱글이 빌보드 핫 100과 핫 200에 오르는 것을 비롯해 2020년 블랙핑크의 정규 1집 <THE ALBUM>은 역대 걸그룹 초동 및 총판 1위, 걸그룹 최초 밀리언셀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블랙핑크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들이 있다. 특히 다양한 국가에서 자란 멤버들은 한국어와 영어, 태국어 등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 지역에서 안정적인 활동 기반을 만들 수 있기도 했다. 멤버인 지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쭉 자란 반면, 제니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10살 때부터 5년 동안 뉴질랜드 조기 유학을 다녀왔다는 점,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호주에서 자란 교포 2세인 로제는 한국과 뉴질랜드의 이중국적자이고, 리사는 순수 태국인으로 어릴 때부터 케이팝을 동경해 블랙핑크의 멤버가 되었다. 이런 다층적인 정체성은 블랙핑크의 이미지를 한국과 서양의 문화적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언어적 소통 뿐 아니라 정서적, 문화적 소통까지 가능한 이유다.


이때 태국과 호주가 아시아 음악 시장의 허브 역할을 하는 지역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태국은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음악의 종판 격인 ‘KK BOX’의 본산이고, 호주는 태생적으로 영국 음악 시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호주의 경우는 절세 목적으로 영국의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진출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음악 산업에 있어서 태국과 호주는 그 자체의 시장 규모보다는 주요 시장으로 연결되는 허브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블랙핑크의 멤버들이 그 지역에서 태어나거나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에서 문화적, 산업적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다.



사실 블랙핑크는 걸그룹의 새로운 수익구조를 재정의하고 창안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단지 멤버들의 매력과 음악적 매력을 통해 성과를 냈다는 점 외에, 산업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팀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걸그룹 중에서 이 정도의 산업적 성과를 보인 팀은 소녀시대, 블랙핑크, 그리고 아이즈원 정도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일까.


일단 아이돌 그룹의 음반 판매량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싱글은 스트리밍 차트 순위, 앨범은 판매량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 이유는 싱글의 인기도가 대중성과 연결되고 앨범의 판매량은 팬덤의 규모 및 밀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두 지표는 수익구조에도 영향을 주는데, 대중성이 더 높다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나 광고로 수익을 얻게 되고, 팬덤이 더 강하다면 콘서트나 굿즈로 수익을 얻게 된다.


2020년을 기준으로 종합 음반 판매량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가온 차트에서 발표한 2020년 연간 앨범 판매량이다.

앨범 판매량이 총 100만 장이 넘어야 5위권에 들어가고, 그마저도 10위권 안의 걸그룹은 블랙핑크 뿐이다. 사실 걸그룹 기준 단일 앨범 판매량을 봐도 100만장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걸그룹은 애초에 팬덤이 약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음악 산업의 핵심인 스타 시스템은 이성애적 일대일 관계를 기반으로 한 섹슈얼리티를 기초로 설계되었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는 걸 감안할 때 ‘당시의 상식’으로는 당연한 일이다. 다시 말해 남자 스타는 여성 팬을 감안해서, 여성 스타는 남성 팬을 감안해서 기획되고 재현된다. 아이돌 그룹도 예외는 아닌데, 10대 여성을 타깃으로 데뷔하는 보이그룹은 여성 팬덤의 소비력을 활동과 사업의 기반으로 삼게 된다. 문제는 걸그룹은 앨범과 굿즈, 콘서트 매출까지 보장해주는 팬덤이 약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여러 분석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은 10대 남성들은 10대 여성들에 비해 팬덤 활동을 꺼린다는 것이다. 한국의 가부장 문화에서 남성들이 연예인을 좋아하는 걸 넘어 방송국이나 행사장 등을 좇아가는 게 꺼려지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영미권 팬덤 분석에서도 남성들은 좋아하는 스타를 직접 만나거나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그 계보를 추적하고 앨범을 수집하고 맥락을 이론화하는데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여성 팬들은 스타와의 거리감을 중시하고, 남성 팬들은 스타의 히스토리를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걸그룹과 같은 여성 아티스트들은 섹시함과 귀여움 등을 강조하는 쪽으로 경쟁하게 되고, 그 결과 활동 기간 자체가 매우 짧아진다.


이런 맥락에서 걸그룹의 걸그룹의 수익구조는 보이그룹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보이그룹은 팬덤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쪽으로 활동의 방향을 맞추는 반면, 걸그룹은 대중적인 소비와 인지도를 겨냥하며 활동하는 걸 지향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엔 한국 특유의 콘서트 형식인 ‘행사’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행사는 크게 두 개 방향이다. 하나는 지자체의 공연, 또 하나는 주로 대학교에서 열리는 축제. 이 둘의 공통점은 보통 봄에 집중되는 무료 공연이라는 점이다. 주최측은 운영비로 음악가들을 섭외하고, 관객들은 무료로 공연을 관람한다. 이 오랜 관행 때문에 한국에서는 유료 공연이 자리 잡기 어려웠고, 대다수의 가수들이 행사를 주요 사업 모델로 활용했다. 이때 필요한 게 대중적인 인기다. 텔레비전이나 미디어 노출을 늘리고, 그를 기반으로 음원을 대량 소비시키는 전략은 결국 연초 몇 개월에 집중된 행사 섭외 순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이런 구조에서 걸그룹은 미디어에 노출되기 쉬운 컨셉, 화려하고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심화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행태는 걸그룹의 활동주기를 보이그룹에 비해 매우 짧아지도록 만들었다. 보이그룹이 보통 5년 이상 활동하는 것에 비해 걸그룹은 평균 3년 정도의 생명주기를 가진다는 얘기도 여기서 나왔다.


그런데 블랙핑크는 이런 구조를 깨뜨렸다. 바로 해외 시장에서의 성과 때문이다. 특히 일본과 동남아시아를 기반으로 인지도를 넓히던 블랙핑크는 2019년 이후 북미 지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며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해외 공연은 주로 투어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투어란 단기간의 공연이 아니라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진행되는 여정이다. 이런 투어는 유료 공연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브랜드 협찬과 광고에도 큰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투어의 수익모델은 티켓 판매 뿐 아니라 광고/협찬인 셈이다.


블랙핑크의 첫 투어는 2018년 7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일본 아레나 투어였다. 오사카와 후쿠오카 등 3개 도시 아레나 콘서트홀에서 8회에 걸쳐 진행된 공연으로, 유료 관객은 약 6만6천명 이상이었다. 공연은 매진되었고, 한 공연 당 최소 1백만 달러를 훌쩍 넘기는 수익을 거두며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뚜두뚜두”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도 2019년 11월 11일, K-POP 최초로 10억 회를 넘기며 신기록을 달성했다.



2018년 11월에는 블랙핑크의 첫 월드투어가 시작되었다. 2020년 2월까지 진행되는 대규모 투어였다. 서울, 방콕, 홍콩, 싱가폴, 자카르타 등 아시아 도시들 외에 런던, 파리, 베를린,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등 유럽 대도시와 미국 대도시 및 호주 시드니까지 포함된 월드 투어였다. 이 투어의 공식 스폰서는 기아자동차였고 차량 지원 뿐 아니라 전 공연의 스폰서쉽까지 맡았다.


블랙핑크는 런던 웸블리 아레나 티켓이 전석 매진되어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추가 공연을 열었다. 스파이스 걸스 이후 미국 공연에서 회당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유일한 걸그룹이고, 전세계 걸그룹 중 오세아니아에서 1회 공연 당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세번 째 걸그룹(푸시캣 돌스, 딕시 칙스, 블랙핑크)이자 최다 매출 기록을 보유한 팀이다.


심지어 이 모든 기록은 블랙핑크의 데뷔 앨범이 나오기 전에 달성한 기록들이다. 2018년 데뷔 후 2020년 겨울에 첫 정규 앨범이 나왔다는 점 역시 걸그룹의 수익화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도 할 수 있다. 블랙핑크는 기존에 걸그룹 팬덤은 약하고, 그로 인해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들기 어렵고, 따라서 오래 활동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사업성과 수익성으로 깨뜨린 첫번째 팀이다. 케이팝이라는 관점에서도, 걸그룹이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상징적인 성과이자, 달라지고 있는 음악 산업 전반의 관점에서도 의미심장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


차우진(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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