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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의 투명 다리 / 김동규

최종 수정일: 1월 29일


울산에 온 지도 1년이 넘었다. 거주지를 서울에서 울산으로 옮기면서 생긴 가장 뚜렷한 변화는 지인이 거의 없는 곳에서 살다 보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가족끼리 산책 겸 자주 가는 곳이 집 근처 태화강이다. 집에서 강변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온갖 다양한 동식물들을 만난다. 깨끗한 강물에는 ‘물 반 물고기 반’이라 말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고, 그걸 잡아먹는 백로, 까마귀, 오리, 각종 철새 등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서울의 한강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이윽고 ‘태화강 국가정원’에 도착한다. 이곳은 도시 근린공원으로 2019년 순천만에 이어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봄에는 빨간 꽃양귀비와 장미 등 각종 꽃들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드넓은 정원이 국화와 억새들로 뒤덮인다. 11월 즈음 이 부근에는 추위를 피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떼까마귀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약 10만 마리 가량!). 일전에 하늘을 온통 검게 물들인 까마귀 무리의 군무를 보면서, 감격한 나머지 울산에 온 보람을 느낀다고 아내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이 광경 하나로 타향살이의 시름이 몽땅 사라진 셈이다.


태화강 국가정원 가장자리에는 강의 남쪽과 북쪽 둔치를 잇는 다리가 있다. 차들이 오가는 ‘국가정원교’가 그것인데, 바로 그 아래 설치된 인도교가 ‘은하수 다리’이다. 이 인도교의 특징은 다리를 건널 때 강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투명 바닥으로 조립되었다는 점이다. 그 투명 다리를 건너다보면 공중에 붕 뜬 느낌이 난다. 아이들은 그걸 무서워하면서도 재미있어한다. 투명하게 비치는 허공에 선뜻 발을 내딛기가 망설여지지만, 일단 발을 뻗으면 공중을 나는 듯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투명 발판의 내구성을 믿지 못하면, 이 자유를 결코 구가(謳歌)할 수 없다.


울산시 제공



‘은하수 다리’는 시민 공모로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투명한 바닥과 잘 어울린다. 시인 정현종은 「섬」이라는 짧은 시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1”라고 노래했다. 옛사람들 말처럼, 저마다 자기만의 별이 있다면, 그 별들을 잇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있어 커다란 별 무리가 만들어진다. 그 무리의 형체를 두고 은빛 강줄기(銀河水)라 부르기도 하고 우윳빛 길(milky way, via lactea)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기 헤라클레스가 너무 세게 헤라의 젖을 빨아서 그 천하장사의 입을 뿌리치면서 생긴 젖줄기라고 상상했다).


낯선 곳에서 살다 보면 모든 게 다 새롭다. 새로운 게 아무리 좋더라도, 새로운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힘들기 마련이다. 특히 낯선 사람과 만나는 일은 매번 어렵다. 상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와 관계를 맺는 일에는 언제나 위험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저이가 이방인을 환대하는 착한 이웃일지 손님을 배척하고 갈취하는 악당일지, 단박에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 자체를 주저하게 되고 피하게 된다. 지금이야 엄마 아빠보다 더 잘 적응하고 친구가 많아졌지만, 우리 집 아이들이 처음에는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던 이유다.


하기야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야 한다’는 속담도 있듯이, 낯선 타인을 만날 때에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단단한 돌다리마저 그러한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투명 다리를 어떻게 쉽게 믿고 건너갈 수 있다는 말인가? 낯선 타인에 대한 공포, 즉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생명체가 오랜 진화 과정에서 습득한 생의 본능적 지혜에 가깝다.


서양에서 이런 신중한 지혜를 잘 겸비한 최초의 사람이 오뒷세우스이다. 그는 트로이 전쟁 후 10년 동안 지중해 전역을 떠돌면서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외눈박이 식인 괴물 폴뤼페모스도 만나고 마법으로 사람을 돼지로 바꾸어 놓는 키르케도 만난다. 개중에는 나우시카 같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위험천만한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구사일생 귀향하고 나서도 집안 재물을 축내는 구혼자들은 차치하고라도 자기 식구들, 즉 아버지, 아내, 아들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곧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거지 행색의 나그네로 위장한 채 먼저 그들의 신의를 확인한다. 오뒷세우스는 현실의 위협에 대처하는 꾀 많은 사람의 전형 그대로다.


세상 풍파를 다 겪은 오뒷세우스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의 의심도 만만치 않다. 오랫동안 108명이나 되는 구혼자들에게 시달려서인지, 그녀는 오뒷세우스가 남편임을 밝혔는데도 선뜻 믿으려 하지 않는다. 남편하고만 공유했던 비밀을 통해 그를 시험한다. 남편이 들으라고 페넬로페는 하녀에게 부부의 방 밖으로 침상을 내놓으라고 명하는데, 이것을 들은 오뒷세우스가 역정을 내며 이렇게 말한다.


“여보! 당신이 하는 말은 정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려. 누가 내 침상을 다른 데로 옮긴단 말이오? 아무리 솜씨 좋은 자라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 정교하게 만든 그 침상의 구조에는 남모를 비밀이 있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그것을 애써 만들었으니 하는 말이오. 우리 안마당에는 잎사귀가 긴 올리브 한 그루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데 그 줄기가 기둥처럼 굵었소. 그 나무 둘레로 나는 돌들을 촘촘히 쌓아올려 방을 들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것이 완성되자 그 위에 훌륭하게 지붕을 씌우고 튼튼하게 짜맞춘 단단한 문짝들을 달았소. 그러고 나서 잎사귀가 긴 올리브의 우듬지를 자르고 밑동을 뿌리 쪽부터 위로 대충 다듬은 뒤 청동으로 훌륭하고 솜씨 좋게 두루 깎고 먹줄을 치고 똑바르게 말라 침대 기둥으로 만들었지요. …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제시하는 우리 침상의 비밀이오2.”

오뒷세우스는 낯선 이방인을 조건부로 환대하는 인물이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지 얼마만큼 이득이 되는지를 꼼꼼히 따져가며 환대할 손님과 쫓아낼 사람을 구별한다. 해를 입힌 자(구혼자들)에게는 무자비한 폭력도 불사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명대사가 등장하는 영화 <킹스맨>의 한 장면, 즉 술집에서 시비를 거는 동네 양아치들을 응징하기 위해 먼저 술집 문을 걸어 잠그는 장면은 『오뒷세이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하인을 시켜 자기 집 문을 걸어 잠근 후, 구혼자들을 무참히 도륙한다.


타자에 대한 철저한 무지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때로는 오뒷세우스처럼 조건을 따지면서 선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무조건적인 환대를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유나 조건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타인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만큼 감격적인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낯선 세상을 고향처럼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더욱 사랑할 수 있고, 그럴수록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다. 고독한 (인간) 별들이 투명 다리로 이어져 장대하고 아름다운 은하수가 만들어지듯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신뢰trust’라는 단어는 ‘보호하다’, ‘의지하다’, ‘안전하고 강하게 하다’라는 뜻의 고대 스칸디나비아어 ‘트레이스타treysta’에서 나왔다. 신뢰는 전설 속의 투명 다리 같은 것이다. 다리의 존재를 믿고 첫 발짝을 내디디면 그제서야 눈앞에 나타나는 그런 다리 말이다. 떨리는 두 발 아래 그 다리가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경계하고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 언제 어떻게 타인을 신뢰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까다로운 기술이다. 그러나 신뢰를 거부하고 모든 가능한 관계를 거부하면 취약함 속에 홀로 남게 된다. 그러니 아무런 보장 없이 몸을 덜덜 떨며 투명 다리 위로 한 발짝을 내디딘다. 일이 잘 풀리면 심연으로 추락하는 대신 전보다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3.”

그렇다. 신뢰란 투명한 은하수 다리와 같은 것이다. 미지의 타자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용기가 그나마 안전을 보장해 주는 최선책이다. 필승의 전략은 적과 피 흘리며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적을 아예 친구로 만드는 길이다. 그 길로 향한 출발점은 바로 ‘없어 보이는’ 투명 다리를 믿고 내딛는 첫 발걸음이다. 믿을만한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더라도 눈 질끈 감고 허공에 한 발 내딛는 용기가 관계의 시작이다. 다음부터는 한 걸음 더 다가설 때마다 신뢰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근거 없는(위험천만한) 첫 믿음, 바로 이것이 시인이 말했던 사람들 사이의 섬이다. 그곳에 가고 싶지 않은가?


  1.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사, 1978(초판), 1992. 「섬」 65쪽.

  2.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숲, 2019. 540-41쪽.

  3. 윌 버킹엄, 『타인이라는 가능성』, 김하연 옮김, 어크로스, 2022. 62-63쪽.


김동규(울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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