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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는 만들지 않는다. 단지 인간과 함께 탐험할 뿐 / 오영진


앞으로 작가들은 대본의 특정 대사나 장면을 입력하면 대사에 담긴 감정과 동기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아직은 그 성능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또한 무대 디자이너는 연극의 배경, 시간대,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여 대본의 주제와 맥락에 맞는 시각적 요소에 대한 제안을 받아 창작 과정을 개선하는 데 ChatGPT를 활용할 수 있다. 다음은 2023년 1학기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들과 내가 6주차에 ChatGPT를 이용해 생성한 대본이다. 이를 바탕으로 즉흥 연기워크숍을 진행했었다.


포: 얘들아, 다가오는 동아리 박람회 포스터 봤어?

수: 응, 봤어. STEM 동아리에 가봐야 할 것 같아.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준비되어 있거든.

모: 흠, 그거 흥미롭겠네. 근데 너희들 요리 동아리 포스터 봤어? 요리 대회를 열 계획이래.

포: 그건 잘 모르겠어. 난 요리에 관심이 없어. 게다가 대회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아.

수: 그건 네가 요리 실력이 없어서 그래, 포. 그럼 토론 클럽에 가입하는 게 어때?

포 야, 조심해, 수. 난 요리사는 아니지만 다른 재능은 많아.

모: 우리 모두 동아리 박람회에 가서 모든 동아리를 살펴보는 건 어때? 그러면 가장 관심 있는 분야에 따라 어떤 동아리에 가입할지 결정할 수 있잖아.

수: 좋은 생각이야, 모. 다만 거기서 입이 걸걸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포: (웃음) 나 같은 사람?

수: (웃으며) 아무 말도 안 할게.

모: (웃으며) 그럼 동아리 박람회에 같이 갈 계획을 세우자.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빨리 보고 싶네.

모두: 그래, 가자!



ChatGPT로 즉흥극 하는 법


실은 위 생성대화의 프롬프트는 이러했다.


“포, 수, 모라는 가상의 캐릭터가 있다. 이들은 각각 유머, 지성, 욕망을 자신의 주 성격으로 가진다. 이들이 교내에서 벌일 수 있는 대화를 생성해 봐”


위와 같은 다소 모호한 주문에 기계는 수 초 만에 대사를 생성했다. 각 캐릭터에 부여한 성격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대사가 공연에 쓸 만큼 품질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아직 대인관계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 대화의 흐름을 시뮬레이션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유의미한 분석이 가능한 지점을 준다. 우선 유머러스한 캐릭터는 대화를 이끄는 말을 먼저 꺼내고, 실없는 농담으로 긴장감 있는 대화를 연결하려 한다. 지적인 측면이 강한 인간은 다소 직설적이고, 까다롭다. 그는 대사를 받아치지 상대에게 먼저 던져주지 않는다. 욕망을 가진 존재는 무엇을 해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며 다음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 위 대사에서 ‘수’라는 캐릭터가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동아리에 들고 싶다고 말한 내용뿐 아니라 대화 문맥 안에서 냉소적이며, 흐름을 멈추는 역할을 하는 현상이 매우 흥미롭다. ChatGPT의 생성물이 단순 키워드 연결 이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ChatGPT가 지성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물이 아니라 ChatGPT가 학습한 문서들에 유머, 지성, 욕망 등의 키워드가 위와 같은 흐름과 성격의 구문들과 연관을 맺었기에 화용론적 의미를 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래의 대화는 기계에게 위 프롬프트에서 “이들이 지구 종말 직전에 벌일 수 있는 대화를 생성해 봐”라고 고쳐 다시 주문한 결과다. 앞선 대화와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모: (헐떡이며) 얘들아, 뉴스 봤어? 10분 후에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잖아!

포: (좌절하며) 뭐? 말도 안 돼! 어떻게 10분 안에 세상이 끝날 수 있어? 그건 불가능해!

수: (화를 내며) 이건 말도 안 돼! 누구 책임이야? 우리가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해!

모: (정신없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10분밖에 안 남았어!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작별 인사를 해야 할까?

포: (슬프게) 그건 소용없어. 지구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해.

수: (결연한 표정으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 이 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찾아서 죗값을 치르게 할 거야!

모: (충격) 수, 그건 아무 소용없어.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해.

포: (생각에 잠기며) 모 말이 맞아.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면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야 해. 나는 그게 음악을 듣는 일이야.

수: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고 난 좋은 영화를 보고 싶어.

모: (웃으며) 그럼 나는 맛보고 싶었던 완벽한 음식 조합을 시도해 볼거야.

모두: (다 함께) 해보자!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맛있는 식사를 함께 즐기며 마지막 몇 분을 보냅니다. 그리고 지구멸망!!!!)


이 대화가 각 캐릭터의 성격에 꼭 백 퍼센트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하나의 대사를 연습한 후 다른 상황에서 전개될 예상 대화를 시뮬레이션해보며 가상의 캐릭터인 포, 모, 수에 대한 입체를 얻어갈 수 있게 된다. 이를 종합하는 과정을 통해 특정한 캐릭터의 깊이 있는 개인적 역사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캐릭터 분석은 작가나 연기자가 주변을 관찰해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결과다. 현재의 생성인공지능의 기술적 원리상 비록 언어적인 차원에서 전개된 결과물만을 이용했지만, 기계를 경유해서 즉각적인 연산을 통해 시뮬레이션 가능하다는 매우 큰 장점이 있다.



연산가능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 창작자의 지위


동시에 위의 대화들을 따로 모아 엑셀 시트에 넣으며, 이와 같은 대사들을 합쳐서 각 캐릭터가 가졌을 성격을 보다 상세하게 생성해 음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경우 현재 엑셀에 연결해 GPT를 호출하는 명령어는 다음과 같다.

“=GPT("Combine the contents of this column into one story"(프롬프트 내용), A2:C2(구간), 0.8(확률결합온도), 700(사용토큰량), "gpt-3.5-turbo"(사용모델 지정))”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별것도 아닌 GPT함수 명령어를 이 글에서 보여주는 이유는 캐릭터가 대화를 나누는 맥락에 대한 다양한 시뮬레이션, 그 결과물의 기계연산적인 결합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연기를 해 본다는 것의 의미를 확연히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현재 생성인공지능 기술은 과거 텍스트들이 광범위하게 구축한 언어적 공간을 인간 창작자가 여행자가 되어 누비고, 때로는 그 공간들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눌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는 현재의 인공지능의 ‘생성’이란, 기계를 대리자로 삼아 어떤 결과물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 창작자로 하여금 어딘가 ‘탐험하는 행위’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술 작업에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미드저니 봇에 각기 “유머, 지성, 욕망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연극무대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라고 프롬프트한 결과물. 여전히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손표현과 알 수 없는 제4의 인물 혹은 오브젝트가 인상적이다. 인공지능 생성예술은 이와 같이 제어되지 못하는 측면을 그 자체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특징으로 삼는다.

인공지능은 언뜻 종종 제어되지 않는 방식 때문에, 그 스스로 작품생산의 대리자가 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생성인공지능의 원리는 언어뭉치 안에서 확률적으로 연결하는 방식 그 이상이 아니기에 일반인공지능적인 의식의 출현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오히려 우리는 생성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텍스트를 잠재적 공간으로 취급해, 인간의 구상으로는 연산되지 못하는 언어의 결합을 시뮬레이션하는 기술로 취급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인공지능은 조련해야 할 원숭이 정도로 보인다.


필라델피아에 본사를 둔 극단 다이캐스트(Die-Cast)는 최근 '혹성탈출: 지루한 유인원'(Planet of the Bored Apes)이라는 쇼를 제작하면서 ChatGPT를 작가 및 협업자로 활용했다. 이 쇼는 암호화폐, 블록체인, NFT, 챗봇, 그리고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스며든 다른 방식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자신이 해적판임을 알게된 인공지능 기반 NFT(Non-fungible token)가 ‘진짜’가 무엇인지 고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소재로서 인공지능뿐 아니라 작품의 요소를 생성하는 작업자로서도 배치했다. 이 연극의 감독인 브레나 게퍼스(Brenna Geffers)는 인공지능이 재미있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지만,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저자와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결국 저자와 진정성이 모호해지는 것이 아니라 또렷하게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는 말이다.


다이캐스트의 연극 <혹성탈출: 지루한 유인원>의 포스터. Philly Theatre Week: March 27~30. 2023.

지금의 인공지능은 스스로 작품을 쓰지도 않을뿐더러, 훌륭한 작품을 만들게 하는 영감이나 욕망을 인간 창작자에게 직접 발아시키지 않는다. AI는 창작 과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을 자동적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때문에 인간 창작자는 작품을 향상시키기 위해 AI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분별력이 유지되어야 제대로 된 기계-예술의 표본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글은 23년 6월 종이잡지 <연극평론>에 기고한 동명의 글을 현 시점에서 개고한 글이다. 전체적인 관점과 톤은 유지되지만 전망에 있어서는 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평가를 유보적인 태도로 고쳤다.


오영진(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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