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환 철학선집 V 리뷰 / 김동규

1월 14일 업데이트됨


변신의 철학자


박동환 철학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아마도 끊임없는 ‘변신’일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변신은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명제가 역설적으로 변치 않는 진리를 주장하듯이, 박동환은 다채로운 개념적 변주를 통해 세계의 변화무쌍함과 인간의 무지함을 ‘시종일관’ 갈파하고 있다.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 ‘이다’라는 긍정보다는 ‘아니다’라는 부정이, 앎보다는 무지가, 자기화보다는 타자화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급변하는 세상에 응답하며 박동환의 철학은 지금도 카멜레온처럼 어린아이처럼 변신 중이다. 그런 까닭에“박동환의 철학은 ( )이다”라는 형식의 단언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그의 철학은 ‘유혹하지만 결코 잡히지 않는’ 괄호 자체다.


출간된 그의 선집 제목만으로 철학의 추이를 대강은 살펴볼 수 있다. 첫 저서 『서양의 논리 동양의 마음』은 박동환 철학의 기본 얼개를 보여준다. 그는 20세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철학자로서 동서 철학을 아우를 수 있는 미래철학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 자신의 철학적 사명이라고 보았다. 미래철학의 전체 그림을 대강 스케치했으나, 이 책에서는 우선 서양철학을 정리하는 일에 집중한다. 두 번째 책 『동양의 논리는 어디에 있는가』에서는 초점을 동양철학으로 대폭 이동시키지만, 여전히 서양철학의 정수를 단순 명료화하는데 천착한다.


세 번째 책인『안티호모에렉투스』에서 드디어 중국철학을 갈무리하고(출간 직전에 북경에서의 연구 기간을 가졌다) 동서철학에 대한 정리를 완성한다. 그것이 바로 ‘3표론’이다. 1표는 서양철학, 2표는 동양(중국)철학, 마지막 3표는 두 문명권 주변에서 유대민족이나 한민족처럼 떠도는 사람들, 그러나 미래를 주도해 나갈 그들의 철학적 기초가 제시되고 있다. 네 번째 책인『x의 존재론』은 3표론을 철학적으로 정교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1, 2표가 아닌 3표의 연장선에서 박동환은 자신의 철학, 곧 x의 존재론을 다듬는다. 한마디로 말해서,『x의 존재론』은 본격 (동서 철학을 넘어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철학’의 첫 신호탄이다. 문명의 아웃사이더인 한국철학자가 누구보다 먼저 쏘아 올렸다는 점만으로도 뜻 깊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출간된『진리의 패권은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사월의책, 2019)에서는 x의 존재론을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칸트나 괴테처럼 원로 지식인의 식을 줄 모르는 위대한 정열을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자, 전작 『x의 존재론』에 대한 디테일한 각론, 즉 역사철학, 신학, 사회학의 기본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통상 존재론에서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한다면, 박동환 철학에서 존재는 X, 존재자는 x로 표기된다. 모두가 미지의 엑스다. 다만 X는 x의 시종(始終), 생멸(生滅)을 주관하는 x의 근원으로 설정된다. x로서의 인간은 X를 알 수 없으며, 인간이 추구하는 진리는 인간이 아닌 X의 소관 영역이다. 진리의 패권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앎이 깨지는 순간, ‘깨침’이라는 부정적 형식으로만 알려지는 것이다. 책 내용을 모두 요약할 수는 없기에, 개체의 의미와 한국철학의 향방을 피력하는 부분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개개의 생명이 존엄한 이유


아이가 태어났다. 부모들은 아이의 양육을 위한답시고 항상 부산하고 불안하다. 전전긍긍하며 부모는 그들의 생 전체를 양육에 쏟아 붓는다. 유감스럽게도 아이는 부모 뜻대로 자라지 않는다. 아이가 백지상태(tabura rasa)로 태어났다면 부모가 공들여 새겨 넣는 대로 성장하는 게 맞을 것이다. 자기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처럼 자식도 안 된다. 내 인생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자식 인생을 어떻게 마음대로 이끌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백지상태 가설은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는다. 그렇다면 선천성/유전자 가설을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다. 부모의 손길이 닿기 이전에 이미 아이의 개체성이 결정된 상태라는 생각에 기울 수밖에 없다. 이것에 대한 박동환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 개체 생명이 태어난 다음에 통과하는 경험과 학습의 과정이라는 것은 그 생명의 유지와 발달에 필요한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는 태어날 때 이미 많은 정보를 자신의 고유한 기억체계 안에 내장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 이에 따라 어미 배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가 그에게 달려드는 맹수로부터 도망치는 동작을 한다든가, 날아드는 파리를 막기 위해 눈을 깜박거리는 반응을 하는 것이다. 한 개체 생명이 그의 기억체계에 저장하고 있는 내재성은 실로 그가 소속하는 계통의 종이 수백만 수천만 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반복적으로 겪었던 크고 작은 충격과 그로부터 학습한 반응기제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107-108쪽).”

개체의 특이성은 우주적이고 생물학적인 영원의 기억에 소속된 x이기에 그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한 개체는 우주와 생명 진화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바탕 위에서 움직인다. 예를 들면 유전자도 영원의 기억에 속한 것이다. 혐기성 박테리아가 지구에 존재하는 것은 과거 지구대기에 산소가 없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지금 살아있는 것들은 생명의 나이가 같다. 지상에 처음 탄생한 생명의 끝 마디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생의 경로가 달랐을 뿐이다. 갓 태어난 핏덩어리나 한포기 잡초마저 존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십 억 년을 이어온 생명, 그것의 존엄을 지키려는 노력이야말로 윤리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철학의 혁명은 주변부 철학자의 몫


최근의 국제정세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라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좌충우돌하고 있는 우리의 운명을 절감케 한다. 일본의 경제적 도발, 미국과 중국의 압박, 그리고 지소미아 종료 선언으로 대표되는 한국 정부의 전례 없는 응대. 강대국들의 겁박에도 생존하면서 어떻게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생존의 의미 이외에 우리 같은 주변부 경계인들의 삶에 존재론적인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일까? 철학자라면 이런 의문들에 어떤 답변을 내놓을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한국인들은 특히 근세 이후 역사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문명과 패권의 주변 지대로 밀려나 있으면서, 그리고 어떤 시대에 일부는 유대인들의 경우처럼 객지로 피난하거나 이주할 수밖에 없는 체험을 겪으면서도, 주변 존재 또는 경계인으로서 파악한 그들 고유의 특이한 운명과 세계인식을 반추하며 체계화한 사상의 보편성을 역사에 남기지 못하였다. 그들은 세계의 패권이 지배하는 문명과 세계관에 스스로 종속해 들어가서 편승하는 학습의 전통을 체질화하여 왔다(85쪽).”

주변 경계인에게 보편적인 사상 내지 철학은 불가능한 것일까? 철학은 중심을 참칭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에 불과한가?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와 예술, 몸으로 경쟁하는 체육 등에서 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여전히 철학과 순수과학 영역은 한참 뒤처져있다. 왜 그럴까? 소위 먹물들의 문화 사대주의적 습성 때문일까? 이 고루한 습성을 깨는 것이야말로 한국인이 이제는 돌파해야 될 마지막 과제가 아닐는지. 우리의 마지막 물음은 이런 것이다. (미래를 이끌고 갈) 주변자의 혁명적인 철학은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x의 존재론’은 하나의 좋은 준거가 될 수 있다. 크고 작은 결점들이 있다 하더라도, 패권의 주변인으로서 일찌감치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평생을 벼려 온 철학자의 사유물이기 때문이다.

후배 철학자로서 그의 식지 않는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김동규 (철학자, 한국연구원 학술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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