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편의점 GS25 행사 포스터로부터 시작된 ‘집게손’ 논란이 최근에도 발생했다.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의 일부 회원들이 르노 코리아의 신차 홍보 영상에서 여성 직원이 집게손 동작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이다.1) 집게손 논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특정 이미지나 영상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지 않고 ‘집게손’이라는 기호에만 집착하는 특유의 태도이다. 즉, ‘집게손’을 탈맥락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최근 출간된 김경수의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필로소픽, 2024)에 따르면, 이와 같은 태도는 ‘인터넷 밈’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인터넷 밈이 우리에게 준 영향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매체 이론을 통해 디시인사이드 같은 포털 사이트가 유행하던 시절의 1세대 밈부터 SNS가 발전한 이후의 2세대 밈, 나아가 틱톡 이후의 3세대 밈까지 한국 인터넷 밈을 총망라하여 다룬다.2)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저자가 그 목적 이상을 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우리가 인터넷 밈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저절로 성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논란에서 드러나듯 전체를 보지 않고 특정 기호만을 문제삼아 타자를 억압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한 한국 사회에서 저자가 스스로도 “이상할 만큼 희망적인 관점”이라고 언급한 태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과도 연결된다.(p.11)
이 책은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라는 명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p.36) 그는 발터 벤야민과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매체 이론을 바탕으로 “시대별로 유행하는 매체에 따라서 사회가 달라지고 우리가 대상 혹은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도 달라진다”고 본다.(p.12) 즉, 인터넷 밈이 겉으로 드러나는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사실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대상 혹은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통시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밈’이 아니라 ‘인터넷 밈’이 분석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1장에서는 리처드 도킨스의 ‘밈’ 개념과 ‘인터넷 밈’이 어떻게 차별화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도킨스의 밈(meme)은 유전자를 의미하는 영어 ‘gene’과 운율을 맞춰 재현과 모방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mimeme’를 변형한 신조어이다. 그는 밈이 “모방을 통해서 전승되는 모든 문화적인 정보를 뜻하면서도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를 가리킨다고 말한다.(p.18)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가 경쟁을 거쳐서 살아남는 것처럼 밈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하였다. 글쓴이는 도킨스의 ‘밈’이 포괄적이고 모호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리모르 시프만의 ‘인터넷 밈’ 개념을 참고하여 “합성 소스를 기반으로 하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참여하는 대안적인 놀이”이자 “놀이를 통해서 작품을 생산하는 창작 행위”로서 ‘인터넷 밈’을 정의한다.(p.44) 글쓴이의 정의는 시프만이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인터넷 밈의 개념을 구체화한 데서 나아가 인터넷 밈을 일종의 “예술 창작으로 보고 비평하는 시선”을 확보할 수 있게끔 한다는 장점이 있다.(p.10) 그러나 한편으로는 밈 개념과의 차이에 중점을 두다 보니 도킨스의 이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친 듯 하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 밈이 경쟁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까닭에 공공재 및 공유재로서 밈을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는 서술에서는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글쓴이는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이 현실화된 매체 상황의 단적인 예로 ‘인터넷 밈’을 제시한다. “인터넷 밈에는 네트워크를 거치며 우연하게 매개된 공통 저자들”이 있으며, “심지어 인터넷 밈의 디지털 풍화(화질 열화)”를 야기하는 “기계도 인터넷 밈의 저자 중 하나”라는 것이다.(pp.60-61) 이러한 상황은 “인터넷 밈이 지적 재산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공공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p.64) 그러나 이는 커먼즈를 다소 소극적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커먼즈의 관점에서 본다면, 밈은 충분히 논쟁적인 개념이다. 피터 라인보우에 의하면 커먼(common)이란, 공유지(common land), 공통권(common rights), 커머너 또는 평민(common people), 공통감각 혹은 상식(common sense) 등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커먼이라는 단어의 역사를 살펴 보면서 ‘같이 하기(fellowship)’의 의미가 삭제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공유하기·행동하기·평등을 나타내는 강력한 단어가 제거됨으로써 커먼즈가 마치 천연자원만을 가리키는 것처럼 오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커먼즈가 “활동이며, 자연과의 관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사회적 관계를 표현”한다고 강조한다.3)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또한 공통적인 것(the common)이 공기, 물, 땅의 결실 등 자연이 제공하는 공통적 부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생산의 결과물 중에서 사회적 상호작용 및 차후의 생산에 필요한” “지식, 언어, 코드, 정보, 정동affect”이라고 파악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입장이 인간을 자연과 분리된 위치에 놓지 않고 공통적 세계에서의 상호작용·돌봄·공생에 초점을 맞추도록 한다는 점이다.4)
커먼즈의 개념을 고려하면, 인터넷 밈은 저자가 2장과 3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하듯 “어떠한 원본이 탈맥락화되면서 탄생한” 문자 텍스트, 그림, 영상 등의 합성 소스를 밈으로 가공하는 행위인 밈화를 통해 형성되는데,(p.76) 이때 밈화는 “상대방과 내가 평등해지기보다는 경쟁적으로 상대방과 달라지려는 노력 아래서 성립”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p.130) 저자는 이러한 노력이 “독자의 피드백이라는 심리적인 보상 외에는 그 어떤 금전적인 보상도 없”으며, “인터넷 밈을 생산하는 유저에게 목적이 있다면 페티시즘에 가까운 유희 추구, 그리고 밈을 공유하는 이와의 커뮤니티 형성”으로 “이들은 조회 수로 돈을 벌고자 하는 관종과 대척점에 있다”고 말한다.(p.129) 그러나 김학준에 의하면 유머러스한 게시물을 올린 이는 ‘인정욕구’를 충족받고자 하며, 게시물이 개념글에 등극하는 것은 명예로운 자본을 획득한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더욱이 종종 ‘별풍선’이나 ‘실버 버튼’과 같은 현실의 재화를 얻기도 한다.5) 인터넷 밈은 언제든지 자본화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밈은 단순한 커먼즈가 아니라, 커머닝을 둘러싼 경합을 야기하는 지점이다.
저자는 인터넷 밈이 “정치공학과 자본에 기반하는 기성세대의 세속화된 논리에 저항해 형성된 대안적 공간”이라고 주장한다.(p.176)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터넷 밈의 폭력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밈을 통한 “드립이 성공하고 베스트에 오르려면 상대가 곧장 웃을 수 있는 소재를 써야만” 하므로 “음담패설이나 소수자 비하, 외모 비하 등 맥락을 이해할 필요 없이 상대를 깎아내리면서 직관적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농담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p.146) 그러나 그는 위반적인 사유를 약자를 공격하는 데 소비하는 “일부 집단의 결여된 상상력이 문제”일 뿐이라고 단언한다.(p.172) 여기서 그가 말하는 상상력이란 커먼즈의 상상력일 터이다. 커먼즈가 결국에는 기존의 분리되고 단절되어 있던 관계성을 재사유하는 작업이라면, 그것은 무엇보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취약성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고 있는 것은 바로 경합의 가능성이다.
4장에서 저자는 한국 인터넷의 정치적 밈을 분석하며 “인터넷 밈이 사유의 부재로 우익에 의해 전유될 것이라는 공포는 가득한데, 왜 반대로 시민 사회가 다 함께 인터넷 밈을 전유할 가능성은 상상”하지 않는지 되묻는다. 그는 “상대방을 진정으로 웃기겠다는 본능”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며, 이러한 본능이 “나와 그 타자 사이의 접점을 사유”하게끔 만들 것이라 역설한다. 이러한 과정을 수십 번 거치면 “합성 소스에 깃든 독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다.(pp.220-221) 그러나 저자의 희망에 물음표를 던지게 되는 것은 5장에서 영화 및 AI까지 파고 든 인터넷 밈의 흔적이 드러내듯 인터넷 밈이 이미 우리가 대상 혹은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에 상상 이상으로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 및 이미지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지 않고 ‘집게손’만을 찾아내는 감각과 상대방을 웃기겠다는 일념 하에 원본에서 특정 부분을 탈맥락화해 밈으로 가공하는 감각 사이는 그다지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필자와 같은 비관론자의 의구심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듯 싶다. 그는 결론에서 예상되는 반론을 나열한다. 그러나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논증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듯이 예상되는 반론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대신 갑자기 푸바오 인터넷 밈을 언급한다는 사실이다. 이 역시 “비약적인 전개”를 특징으로 하는 “병맛만화”에서 합성 소스를 발굴해 내는 밈적 사유의 영향인 것일까?(p.84) 그는 “아침마다 푸바오 짤방을 공유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상실한 다정함의 파편”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석사학위논문 때부터 화제가 되었던 ‘가영이 짤’로 책을 마무리한다.(p.260) 이러한 결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나머지, 필자 역시 갑작스럽게 맥락을 이탈하자면, 이 책에 대한 세간의 반응이 궁금하여 포털 사이트에서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을 검색해 보았다. 진지한 리뷰들 사이로 이 책에 온갖 밈으로 화답하는 누리꾼들의 블로그 포스팅이 눈에 보였다. 그제서야 ‘희망’은 낙관 속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도저한 비관 속에서 가까스로 생겨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를 ‘밈적인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밈적인 희망’이 가능한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그 직분을 다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철저한 비관 속에서.
1)「르노 ‘집게손’ 논란…‘덮어놓고 사과’ 기업이 페미검증 키운다」, 한겨레, 2024.7.2.; 「[기자의 눈] 허구의 남성혐오 ‘집게손가락’」, 여성신문, 2024.7.10.; 「[수요광장] ‘집게손 억지 논란’에 응답하는 기업이 책임져야할 것」, 경인일보, 2024.7.9.; 「“르노 ‘집게손’ 직원, XX살죠?″ 살인 예고글까지 등장…과열 논란」, 세계일보, 2024.7.4. 참조.
2)김경수,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필로소픽], 2024, 12면. 이하 인용시 괄호 안에 페이지 수만 표기하기로 한다.
3)피터 라인보우, 정남영 역, [마그나카르타 선언], 갈무리, 2012, pp.320-321
4)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정남영·윤영광 역, [공통체], 사월의책, 2020, pp.16-17
5)김학준, 보통 일베들의 시대, [오월의봄], 2022, pp.3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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